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54)
54화
남자는 제온이었다.
칠 년이라는 시간은 그에게서 애티를 앗아 갔다.
얼굴에선 젖살이 사라지고, 눈빛은 깊어졌다.
동작 하나하나에도 여유가 담긴 것이 강자의 품격이 느껴졌다.
제온이 로브 안쪽에서 물이 담긴 가죽 부대를 꺼냈다.
“목이 마를 텐데 마셔요.”
“아! 고마워요.”
마침 타는 듯한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맨디는 거부하지 않고 가죽 부대를 받아 들었다.
그녀는 먼저 물을 마시고, 가죽 부대를 김상식에게 넘겨줬다.
물을 마시자 기력이 어느 정도 돌아왔다.
“후우! 고마워요.”
“정말 감사합니다.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두 사람이 제온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제온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다들 무사하니 다행이네요.”
“그런데 다른 분들은 없나요?”
“일행이라면 없습니다.”
“그럼 사막을 혼자 횡단하고 있다는 건가요?”
맨디가 눈을 크게 떴다.
나름 정예라는 패스파인더 팀들도 무리를 지어 겨우 이곳까지 왔다. 그만큼 사막은 위험했다.
어디에 어떤 마수가 서식하는지 알 수 없었다.
특히 칠 년 전 마나 대폭발 이후 마수 생태계가 크게 변해 기존의 데이터가 무용지물이 된 후 더욱 위험해졌다.
네오 서울 근처를 제외하고 안전한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제온은 태연하게 혼자 사막을 횡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맨디가 의심하는 게 당연했다.
제온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감이 좋습니다. 마수들을 미리 감지하는 능력도 조금 있구요. 그래서 느낌이 좋지 않다 싶으면 무조건 다른 길로 갑니다. 그러면 마수들의 서식처를 피해 가더군요.”
“따로 감지 스킬을 가지고 계신 건 아니구요?”
“그건 아닙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한 감을 가지고 있군요. 생존에 큰 도움이 되겠어요.”
“덕분에 이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제온에게선 노련한 생존 전문가의 느낌이 났다.
오랫동안 사막에서 생존한 사람이 아니면 가질 수 없는 여유가 있었다.
맨디가 잠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녀는 제온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래도 지금은 그밖에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목적지가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그건 왜 묻습니까?”
“혹시 네오 서울 근처로 간다면 저희도 데려가 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네오 서울 말입니까?”
“네! 보답은 반드시 하겠습니다. 부디 우리를 네오 서울로 데려가 주십시오.”
“쉽지 않은 일이군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칠 년 전부터 마수의 서식 지형도가 크게 변해서.”
“그래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저와 김상식 씨는 모두 네오 서울 안에서 제법 괜찮은 직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를 데리고 가면 네오 서울에서도 섭섭지 않게 보답해 줄 겁니다.”
제온의 정체도, 어디서 왔는지도 몰랐다.
평소라면 절대 이렇게 모든 것이 불확실한 존재에게 의뢰 따윈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하르의 배신으로 모든 것을 잃은 그녀에겐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당장 네오 서울의 위치가 어딘지도 알 수 없었다.
단순히 북쪽으로 올라가면 나타날 거라는 순진한 생각 따윈 하지 않는 게 좋았다.
사막의 풍경은 비슷비슷해서 정확한 방향을 잡고 움직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지금 그들은 올 때 타고 온 트럭들을 모두 잃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제온을 놓치면 사막을 헤매다가 미라처럼 말라 죽고 말 것이다.
그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제온밖에 없었다.
김상식도 제온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제발 저희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그나마 맨디는 각성자이기나 했지, 김상식은 정말 평범한 사람이었다.
여기서 버려지면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이 분명했다.
제온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 어쩔 수 없네요. 알겠습니다. 일단 네오 서울까진 데려다주겠습니다.”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네오 서울까지만 데려다주시면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김상식이 감격 어린 표정을 지었다.
***
하루가 무척 고되었는지 맨디와 김상식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제온은 잠이 든 두 사람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역시 네오 서울에서 왔군.”
두 사람은 모르겠지만, 제온은 처음부터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자하르와 7팀이 고블린 부락을 찾아왔을 때부터였다.
그가 고블린들을 몰살시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자하르와 7팀의 복장과 장비는 세련되어 있었다. 사막에서 겨우 생존하는 사람들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문명의 때가 잔뜩 묻은 복장을 보고 있자니 네오 서울이 그리워졌다.
칠 년 전 데이오든은 하이엘툰과 함께 사라졌다.
말 그대로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멸한 것이다.
그 충격으로 사막의 지형이 완전히 뒤바뀌고, 초유의 마나 폭풍이 발생했다.
제온은 둘의 최후를 끝까지 지켜본 유일한 사람이었다.
둘이 모두 사라졌을 때 제온은 커다란 상실감을 느꼈다.
그 후 그는 정처 없이 사막을 떠돌아다녔다.
데이오든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딱히 목적도 없었고, 특별히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칠 년을 살았다.
데이오든과 함께했던 일 년의 시간을 더하면 팔 년이나 사막을 떠돈 것이다.
그동안 꽤 많은 일이 있었고, 그런 경험들이 제온을 성장시켰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 슬슬 네오 서울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이 들던 차였다.
두 사람과의 만남은 그런 제온의 마음에 불을 댕겼다.
어차피 목적지가 같다면 이들을 데리고 가는 그림도 나쁘지 않았다. 손쉽게 네오 서울에 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제온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자리에 누웠다.
그는 로브에 몸을 깊이 파묻으며 잠이 들었다.
키에에에!
다음 날 아침 제온은 멀리서 들려오는 기묘한 소리에 눈을 떴다.
맨디와 김상식은 아예 경기하며 벌떡 일어섰다.
“뭐죠?”
“무슨 소리가…….”
그들은 겁에 질린 기색이 역력했다.
멀리서 들려온 소리에 담긴 적의와 살의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제온이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와이번의 울음소리입니다. 아무래도 멀지 않은 곳에 와이번의 둥지가 있는 것 같군요.”
“와……이번이라구요?”
“맙소사!”
두 사람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와이번은 B급 마수였다. 하지만 위험도는 A급 이상으로 평가받았다.
다른 마수들과 달리 놈들의 주 무대가 하늘이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갑작스럽게 나타나 공격할지 예상할 수 없기에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제온이 몸을 일으켜 밤새 펴 뒀던 차양과 나무 기둥 들을 회수했다.
“와이번이 이쪽으로 먹이 활동을 하러 오기 전에 떠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는 능숙하게 펼쳐 뒀던 짐을 거둬 쌍봉낙타의 등에 실었다.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떠났다.
맨디와 김상식이 허둥지둥 제온의 뒤를 따랐다.
특히 김상식의 얼굴은 불쌍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멀리서 들려온 와이번의 울음소리만으로도 그의 심장은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
이러다가 심장이 터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다.
‘이곳은 지옥이야. 싸이클롭스에 이어 와이번이라니. 저 사람은 대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생존해 온 거지?’
그의 시선은 앞서 걷는 제온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제온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태연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모래도 그에겐 별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옆을 보니 맨디도 벌써 힘겨워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각성자라도 모래 위를 걷는 것은 체력을 극심히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네오 서울까지 걸어갈 생각을 하니 정신이 다 아득해졌다.
“헉! 헉!”
얼마 걷지 않았는데 땀이 비 오듯 흐르고,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그때 제온이 뒤돌아봤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요.”
“네?”
“둘이서 번갈아 가며 낙타를 타십시오, 그럼 체력을 보존하는 데 조금 도움이 될 겁니다.”
“당신은요?”
“전 모래에 익숙해서 온종일 걸어도 괜찮습니다.”
벌써 땀에 흠뻑 젖은 두 사람과 달리 제온은 뽀송뽀송했다.
얼굴도 평상시와 똑같았고, 숨소리 하나 거칠어지지 않았다.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감사합니다.”
김상식은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쌍봉낙타의 등에 올랐다.
뜨거운 열기에 노출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아까처럼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김상식은 제온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제온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다시 태연하게 걸음을 옮겼다.
맨디는 그런 제온의 뒷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그의 걸음은 정말 특이하구나. 어떻게 발이 빠지지 않고 저렇게 미끄러지듯 걸을 수 있는 거지? 마치 모래가 알아서 그를 밀어 주는 것 같지 않은가?’
정말 특이한 걸음걸이였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걷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었다.
‘그도 각성자겠지. 마법계, 그도 아니면 무투계? 등급은?’
궁금한 것이 무척이나 많았다.
일단 제온이 각성자인 것은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 이런 뙤약볕에서 저리 태연할 수 없을 테니까.
맨디가 진짜 궁금한 것은 제온이 어떤 종류의 각성자인가였다.
손목의 계급장을 보면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제온은 손에 건틀렛을 끼고 있었다.
그가 착용한 건틀렛은 팔뚝까지 가리는 형태였다.
특이하게도 손등 부위에 둥글게 가공된 붉은 보석이 박혀 있어 시선을 끌었다.
건틀렛을 낀 것으로 봐서는 무투계 같기도 했다.
저런 무기는 주로 무투계 각성자들이 사용하니까.
하지만 무투계 각성자라고 단언하기엔 제온이 풍기는 분위기가 이상했다.
무투계 각성자를 상징하는 색은 붉은색이다.
각성 능력의 영향을 받아 활동적이고 정열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급장의 색깔도 붉다.
반대로 마법계 각성자들은 차가움을 상징하는 푸른색이다.
아무래도 본능보다 이성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마법계와 무투계 각성자는 구별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제온에게선 그런 특징이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복장만 보면 무투계가 분명한데, 행동거지나 눈빛은 마법계에 가까웠다.
‘두고 보면 알 수 있겠지.’
네오 서울까지 거리는 무려 천 킬로미터가 넘는다.
그렇게 먼 거리를 동행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맨디는 최대한 체력을 보존하면서 걸으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그녀는 바람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뜨거운 햇볕에 체온이 달아오르면 바람을 살짝 일으켜 더위를 식혔다. 덕분에 쌍봉낙타에 타고 있는 김상식보다 견딜 만했다.
그때 앞서 걷던 제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비가 올 것 같습니다. 저 위로 올라갑시다.”
“네?”
“비요?”
맨디와 김상식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구름 한 점 보이지 않고, 태양이 이리 뜨겁게 내리쬐는데 비라니.
제온이 미친 줄 알았다.
그러나 제온은 두 사람의 반응에도 아랑곳없이 높은 곳으로 이끌었다.
어차피 선택지가 없기에 두 사람은 제온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대에서 가장 높은 모래 언덕 정상에 도착했을 때였다.
콰르릉!
순식간에 먹구름이 끼더니 천둥 번개가 쳤다.
이어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진……짜였어?”
“맙소사!”
거짓말 같은 현실에 두 사람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엄청난 기세로 쏟아져 내린 비는 낮은 지대에 가득 고였다.
만일 제온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아래쪽에 있었다면 지금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 높은 지대로 올라오길 잘했다고 생각할 때였다.
제온이 물이 고인 지대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리만큼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가 말했다.
“이렇게 사막에 비가 오고, 물이 고이면 깨어나는 놈들이 있습니다. 마침 이곳은 놈들이 서식하기에 최적의 지형을 갖추고 있군요.”
“깨어나다뇨? 뭐가 말입니까?”
“저놈들요.”
그 순간 물이 고인 곳에서 기포가 뽀글뽀글 올라오더니 무언가 나타났다.
마치 철사를 꼬아 놓은 것처럼 가늘고 기다란 몸체의 기괴한 생명체들이 어그적 거리며 움직였다.
그 기괴한 모습에 맨디와 김상식은 속이 거북해져 왔다.
맨디가 배를 부여잡으며 물었다.
“저, 저게 뭔가요? 저런 것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유령 연가시입니다. 건조할 때는 잠들어 있다가 수분이 공급되면 깨어나 희생양을 찾아요.”
“유령 연가시?”
“놈들은 희생양의 체내로 파고들어 뇌를 조종해 물을 찾게 만듭니다.”
“사막에서 물이라뇨?”
“그래서 무서운 겁니다. 유령 연가시에 잠식당하면 사막을 하염없이 헤매다 결국 탈진해 죽으니까요. 그럼 놈들은 사체에서 양분을 빨아먹은 후 잠이 들어요. 그리고 비가 오면 다시 깨어나죠.”
사막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와이번 같은 마수가 아니다.
저렇게 보이지 않는 위협이 더욱 무섭다.
맨디와 김상식이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제온이 유령 연가시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요.”
“아니, 저렇게 무서운 것들이 있는 곳엔 왜 내려가요?”
“예전부터 한 마리 꼭 갖고 싶었거든요.”
제온이 웃으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