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55)
55화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사막에는 비가 전혀 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반쪽짜리 지식에 불과하다.
사막에도 비는 내린다.
다만 너무 순식간에 쏟아지고, 또 금세 모래 속으로 사라져 흔적이 남지 않을 뿐이다.
어떨 때는 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쏟아지기도 하고, 실제로 일대를 물바다로 만들기도 한다. 다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순식간에 모래 속으로 사라질 뿐이다.
사막에서도 유독 물이 잘 모이는 지형이 있다.
일대에 쏟아지는 비가 웅덩이, 혹은 연못처럼 고이는 지형.
물론 물은 순식간에 사라지지만, 그런 곳엔 유령 연가시가 잠들어 있다.
모래가 바싹 말라 있을 때는 죽은 듯 잠들어 있지만, 비가 내려 고이면 거짓말처럼 깨어나는 기생 생명체.
등급으로 따지면 F급도 되지 않는 하잘것없는 존재.
심지어 네오 서울에선 그런 마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래서 애써 작성한 마수 도감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F급에도 들지 못하는 기생충 같은 마수.
하지만 그 위험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일단 놈이 체내에 들어가면 제아무리 강한 마수라도 물을 찾다가 탈수해 죽고 만다.
적어도 역장으로 전신을 보호할 정도가 아니라면 유령 연가시의 촉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각성자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체내에 침입하면 몰아낼 방법이 없다.
제온이 그런 사실을 알아낸 것은 우연이었다.
그가 지나가던 곳에 비가 왔고, 마침 그 웅덩이에서 유령 연가시가 깨어났고, 또 물을 마시러 거대 마수가 왔다. 그리고 제온은 거대 마수가 꼭두각시가 되어 움직이는 것을 지켜봤다.
그때부터 제온은 유령 연가시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유령 연가시를 얻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일단 놈들이 살기 최적의 지형이 그리 많지 않았다.
비가 아예 안 오는 지역이면 존재하지 않았다. 비가 오면서도 잠시라도 고이는 지형은 사막에 그리 많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어렵게 유령 연가시를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놈들을 생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때문에 제온도 유령 연가시를 얻는 것을 몇 번이나 실패했다. 하지만 여러 번의 실패 덕분에 유령 연가시를 생포할 방법을 찾았다.
제온이 로브 안에서 조그만 유리병을 꺼냈다.
유리병 표면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파다닥!
제온이 물웅덩이에 도착하자 유령 연가시가 감지하고 요란하게 몸을 떨었다.
놈들은 철사 같은 몸을 뒤틀며 제온에게 달려들었다.
팔다리도 없이 철사 같은 몸을 기괴하게 꼬며 다가오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저게 무슨?”
“아!”
멀리서 지켜보던 맨디와 김상식이 놀라 눈을 부릅떴다.
유령 연가시의 몸이 갑자기 투명하게 변하더니 미사일처럼 제온에게 쏘아졌기 때문이다.
그때 제온이 손에 들고 있던 유리병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쏘아지던 유령 연가시 세 마리가 유리병 안으로 쏙 들어갔다.
마치 유령 연가시가 스스로 유리병 안으로 들어간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맨디는 알고 있었다.
제온이 모종의 수를 쓴 것이 분명했다.
원하던 유령 연가시들을 얻었으니 나머지는 필요 없었다.
화학!
순간적으로 제온의 몸 주위에 고열의 불길이 일어났다.
시뻘건 불길은 나머지 유령 연가시를 순식간에 불태워 버렸다. 그렇게 유령 연가시를 정리한 제온은 발아래 모래를 퍼서 유리병에 가득 채웠다.
이게 핵심이었다.
마법 처리를 한 유리병에 유령 연가시가 잠들어 있던 곳의 모래를 넣는 것.
그러면 거짓말처럼 유령 연가시가 잠이 든다.
제온에게 달려들 때는 일 미터가 넘게 커졌던 유령 연가시가 손가락보다 작게 오그라든 채 수면 상태가 됐다.
제온은 유리병의 뚜껑을 닫으며 콧노래를 불렀다.
“흐흥!”
그의 얼굴엔 마치 개구쟁이 같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제온은 유령 연가시가 든 병을 로브 안에 수납했다. 실제로는 아공간에 넣은 거지만, 맨디와 김상식의 눈에는 로브 안에 둔 것으로 보였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폭우가 멈추고 햇볕이 쨍쨍하게 내리쬈다.
맨디와 김상식이 눈을 끔뻑거렸다.
순식간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정신이 없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네오 서울에선 절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모래 언덕을 내려와 제온에게 다가왔다.
맨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유령 연가시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뭐가요?”
“여러모로 쓸모가 많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에요. 네오 서울에 갖다주면 연구해서 여러 사람에게 도움이 될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예요.”
맨디는 네오 서울에서 파견한 슈퍼바이저답게 새로운 형태의 마수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제온은 단호히 그녀의 관심을 끊었다.
“죄송해요. 유령 연가시는 내 개인적인 호기심 때문에 구한 거예요. 갖고 싶으면 직접 잡아요.”
“아! 그런 뜻이 아니라…….”
맨디가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지금 그녀의 목숨줄은 제온에게 달려 있었다. 그의 심기를 거스를 때가 아니었다.
“죄송해요. 제 욕심이 과했네요.”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다음부터 안 하면 돼요.”
맨디의 사과에 제온이 부드럽게 웃었다. 하지만 맨디는 웃을 수 없었다. 제온의 웃음이 왠지 섬뜩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맨디는 그제야 제온이 어떤 사람인지 자각했다.
상대는 사막을 홀로 돌아다닐 정도로 강하면서 경험이 많은 이였다.
‘아까 사용하던 스킬로 봐서는 마법계 화염 각성자일 확률이 커.’
폭우가 쏟아지는 데도 순식간에 유령 연가시를 태워 버린 것만 봐도 상당한 수준인 것이 분명했다.
‘적어도 C급에서 B급.’
이 정도면 네오 서울에서도 상당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맨디는 더욱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련의 소동이 끝나고 세 사람은 다시 이동했다.
김상식의 체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맨디와 교대했다.
“하아!”
쌍봉낙타에 올라탄 맨디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아무리 각성자라고 해도 모래 위를 온종일 걷는 것은 체력을 엄청나게 갉아먹었다.
반나절만 걸어도 숨이 턱 끝에 달하고 뜨겁게 달궈진 공기에 기도가 탈 것만 같았다.
제온이 그런 맨디에게 말했다.
“목이 마르면 젖은 옷을 쥐어짜서 마시면 됩니다.”
“그런…….”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그마저 증발하여 마실 것도 없을 겁니다.”
제온의 말에 맨디가 급히 겉옷을 벗어 쥐어짰다. 그러자 물이 흘러나왔다.
맨디는 흘러내리는 물을 허겁지겁 마셨다.
김상식도 맨디의 행동을 따라 했다.
제온은 그들이 충분히 물을 마실 수 있도록 기다려 줬다.
사실 제온의 아공간엔 꽤 많은 물이 있었다.
물을 나눠 줘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손쉽게 얻기만 해서는 사막에서 절대 생존할 수 없었다.
스스로 물을 구하고, 먹을 것을 사냥해야 했다.
네오 서울에 무사 귀환하고 싶으면 지금부터라도 그런 습관을 들여야 했다.
제온은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일행들을 이끌었다.
김상식과 맨디는 교대로 쌍봉낙타에 타며 체력을 보충했다. 그리고 제온을 관찰했다.
온종일 걸었음에도 제온은 힘든 기색이 하나 없었다.
심지어는 땀도 흘리지 않았고, 호흡이 가쁜 기색조차 없었다.
맨디와 김상식은 그런 제온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거지?’
‘사막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 같아. 아니, 그렇다고 해도 저게 가능한 건가?’
보면 볼수록 제온에게 궁금한 것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하지만 제온은 자신에 관한 것을 말해 줄 생각이 없는지 묵묵히 걷기만 했다.
“흠!”
한참 걷던 제온이 갑자기 멈춰 섰다.
그는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손으로 모래를 치웠다. 그러자 모래에 덮여 있던 물체가 드러났다.
제온이 모래 속에서 찾아낸 것은 뜻밖에도 시체였다.
몸 안의 수분이 모두 날아가 미라처럼 바싹 마른 시신이었다.
그가 두 사람에게 물었다.
“누군지 알아보겠습니까?”
“이자는 3팀의 각성자예요.”
맨디는 단숨에 시신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싸이클롭스가 습격했을 때 제일 먼저 탈출한 각성자였다. 가장 먼저 도주했으니 당연히 살아 있을 줄 알았다. 그런 그가 왜 이곳에서 죽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제온이 각성자의 시신을 완전히 끄집어냈다. 그러자 등에 입은 상처가 드러났다.
“바로 등 뒤에서 공격당한 것 같군요. 상처의 크기나 모양으로 봐서 검인 것 같은데…….”
제온의 말에 맨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싸이클롭스가 습격해 왔을 때 팀별로 탈출했다. 그러니까 이자의 곁에는 같은 팀원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자를 배후에서 기습해 죽인 자는 3팀 동료일 것이 분명했다.
제온이 계속 말했다.
“소지품이 아무것도 없군요. 소지하고 있던 것을 모두 털어 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약탈당했다는 거죠?”
“네!”
“하아!”
“사막에 고립되면 인간의 본성이 나오죠. 그리 놀랄 일도 아닙니다.”
제온이 별거 아닌 것처럼 말했다.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예전부터 원한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었고, 아니면 시체가 가지고 있던 물건을 눈독 들였던 것일 수도 있었다.
사막같이 척박한 환경에 고립되면 이제까지 꼭꼭 감춰 뒀던 본성이 나온다.
이런 광경을 수도 없이 봤기에 제온은 놀라지 않았지만, 맨디와 김상식은 큰 충격을 받은 듯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제온이 일어나며 말했다.
“출발합시다. 곧 냄새를 맡은 마수들이 올 겁니다.”
시신을 수습해 준다고 시간을 허비했다가는 마수들의 목표가 되기 좋았다.
마수가 오기 전에 이곳을 떠나는 것이 최선이었다.
다행히 맨디나 김상식 모두 순순히 제온의 말을 따랐다.
시신과는 그저 같이 파견 나온 동료 관계일 뿐이다.
개인적인 교류가 없었기에 냉정히 떠날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크헉! 저리 가. 이야아!”
갑자기 저 먼 곳에서 누군가의 악에 받친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제온은 일행을 데리고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향했다.
“쯧!”
갑자기 제온이 혀를 찼다.
맨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러나요?”
그녀의 눈에는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제온이 무엇을 보고 혀를 차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제온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와이번 무리입니다.”
“와이번?”
그제야 맨디가 허공에 시선을 줬다.
저 먼 하늘 위를 맴돌고 있는 와이번 무리가 보였다.
조금 더 걸어가자 와이번 무리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각성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창을 휘두르며 와이번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의 공격이 와이번에게 닿을 리 없었다.
와이번은 마치 고양이가 쥐를 갖고 놀 듯 각성자를 가지고 장난쳤다.
그때마다 각성자의 몸에는 큰 상처가 생겼다.
네오 서울에서 만든 보호구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지만, 와이번의 날카로운 발톱 앞에서는 소용없었다.
서거걱!
와이번의 발톱은 각성자의 보호 장구를 걸레쪽처럼 헤집어 놨다.
공격받는 각성자의 이름은 크리어드.
조금 전에 제온 일행이 발견한 시신과 함께 3팀에 속한 각성자였다.
그는 동료를 죽이고 물과 아이템을 강탈했다.
물이 모자랐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이템은 덤이었다. 어차피 죽은 자에겐 필요 없는 물건이었으니까.
그렇게 동료를 죽인 후 혼자 사막을 횡단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생존할 자신이 있었다.
제아무리 사막이 위험하다고 해도 자신이라면 충분히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깨닫는 데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크아아!
하늘에서 공격해 오는 와이번 무리의 이빨과 발톱에 그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크아악!”
결국 크리어드는 와이번의 이빨에 목이 물려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크리어드가 죽자 와이번들이 만찬을 즐기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 모습이 꼭 까마귀 무리를 연상시켰다.
“크윽!”
크리어드의 시신이 찢겨 나가는 모습을 본 김상식이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그의 얼굴엔 역겨움과 공포의 빛이 공존했다.
맨디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각성자답게 상황을 냉정히 살폈다.
그녀의 시야에 유독 큰 와이번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와이번들이 게걸스럽게 크리어드의 시신을 먹고 있었지만, 놈은 관심 없다는 듯이 홀로 고고하게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다른 와이번보다 족히 두 배는 크면서 윤이 나는 검은 몸체.
한눈에 봐도 놈이 와이번의 우두머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놈의 거대한 몸체 주위엔 은은한 붉은빛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맨디는 은은한 빛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봤다.
“역장? 그럼 B급 이상의 마수?”
적어도 B급 이상의 마수, 혹은 던전의 보스 정도가 되어야 가질 수 있다는 역장을 검은 와이번이 가지고 있었다.
검은 역장 주위로 스파크가 튄다. 역장이 너무 강력해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A급 마수의 역장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즉 검은 와이번은 A급 마수였다.
“헉!”
맨디가 자신도 모르게 신음성을 내뱉었다.
검은 와이번과 시선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분명 거대한 검은 와이번은 그녀가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딸꾹!”
몸을 잠식하는 엄청난 공포에 절로 딸꾹질이 나왔다.
저 흉포한 와이번 무리가 자신들을 가만둘 리 없었기 때문이다.
놈들은 자신의 영역에 그 어떤 생명체가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맨디는 곧 와이번 무리가 날아와 자신들을 공격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와이번 무리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특히 거대한 검은 와이번은 다른 곳을 보며 딴짓을 했다.
마치 이곳에 봐서는 안 될 것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혹시 그 때문에?’
맨디가 급히 제온을 바라봤다. 그러자 제온이 웃으며 말했다.
“와이번 무리가 배가 찬 모양입니다. 우리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것을 보니. 놈들이 언제 마음이 변해 쫓아올지 모르니 어서 갑시다.”
그는 맨디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가, 같이 가요.”
“으헉!”
맨디와 김상식은 더 생각할 여유도 없이 제온의 뒤를 따랐다.
제온 일행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자 검은 와이번이 다시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멀어지는 제온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검은 와이번의 눈빛엔 옅은 공포의 빛이 어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