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56)
56화
여정은 순탄했다.
제온은 귀신같이 마수의 서식처를 피해 갔다.
어떨 때는 빙 돌아가는 것 같아도, 나중에 돌아보면 제온이 지나온 길이야말로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는 소름이 끼쳤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제온은 최적의 지형을 찾아 잠자리를 만들었다.
식사는 제온이 보관하고 있던 육포로 했고, 식수는 밤새 활짝 펼쳐 둔 천이나 옷가지에 맺힌 이슬을 쥐어짜서 해결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제온과 함께 다니면서 사막에서의 생존 방법을 조금이나마 터득할 수 있었다.
맨디는 제온에게 경외감을 느꼈다.
‘그는 진짜 사막에 대해 잘 알고 있구나.’
물론 네오 서울에도 사막을 잘 아는 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활동 영역은 네오 서울 인근으로 한정됐다.
그 이상을 벗어나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온은 달랐다.
분명 처음 와 보는 지역인데도 한눈에 어디에 마수가 서식하고 있는지, 또 어떤 종류인지 대번에 파악했다.
그야말로 최고의 길잡이였다.
그제야 제온이 왜 혼자 사막을 돌아다니는지 이해가 됐다.
이런 능력이 있다면 굳이 번거롭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막을 다닐 이유가 없었다.
많은 이들이 함께 다니면 그만큼 마수에게 탐지되기 쉽기 때문이다.
제온과 함께 다니면 그럴 걱정이 없었다.
그는 마수들의 영역 경계선을 따라 이동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제온을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모래가 체력을 갉아먹고,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이 몸에서 수분을 앗아 가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인인 김상식이 겪는 고통은 맨디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렇게 제온이 편의를 봐줬지만, 한계에 달해 헉헉거리고 있었다.
입술은 쩍 갈라져 껍질이 일어나 있었고, 눈동자에선 초점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쌍봉낙타를 타고 있어도 그랬다.
아무런 능력도 없는 일반인이 살아남기엔 사막이란 환경이 너무 가혹했다.
맨디가 슬쩍 김상식을 바라봤다.
“헉! 헉!”
그는 마치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쌍봉낙타 등 위에서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이 이상 그녀가 그를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그때였다.
선두에서 걷던 제온이 갑자기 멈추더니 바닥의 모래를 살폈다.
맨디가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
“왜 그러세요?”
“이곳부터는 조심해야 합니다.”
“네?”
“샌드웜이 좋아하는 모래예요. 놈들은 이렇게 부드러우면서 입자가 고운 모래를 좋아하죠.”
입자가 고운 모래일수록 작은 진동도 크게 증폭된다.
지표면의 진동을 감지해 먹이 활동을 하는 샌드웜 같은 마수가 서식하기 최적의 지형이었다.
맨디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모래도 종류가 다른가요?”
“다릅니다.”
“그게 구별이 된다구요?”
“사막에서 오래 생존하면 가능합니다.”
“진짜…….”
맨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나 그게 가능했으면, 사막은 이미 인간에게 지배당했을 것이다. 그게 되지 않으니 아직도 사막은 마수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오직 제온만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맨디는 그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됐다.
“샌드웜의 영역 외곽을 따라 움직일 겁니다. 샌드웜이 감지할 확률이 낮지만, 그래도 발소리 나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제온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만일 그 혼자였으면 이렇게까지 조심할 이유가 없었다.
사막은 그의 영역이었고, 샌드웜은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맨디와 김상식과 동행하는 이상 조심해야 했다.
칠 년 동안 세상을 떠돌아다니면서 얻은 깨달음 중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질투와 시기심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보다 잘난 사람은 어떻게든 깎아내려야 했고, 할 수만 있다면 자신과 같은 레벨로 끌어내리고 싶어 했다.
그런 이들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벌써부터 번거로워지는 것은 질색이었다.
제온이 그렇게 샌드웜의 영역 외곽을 따라 걷고 있을 때였다.
“음!”
갑자기 그의 시야에 이질적인 광경이 들어왔다.
저 멀리 모래에 반쯤 덮여 있는 물체가 보였다.
“뭐예요?”
맨디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일단 시신 같긴 한데…….”
“시신?”
그녀가 제온이 보는 곳을 바라봤다.
한참을 집중한 끝에 맨디는 제온이 보고 있는 물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저건 분명 7팀의 복장인데.”
맨디가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먼 데다가 모래에 파묻혀 있어, 누가 쓰러져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제온이 말했다.
“일단 가까이 가 보죠.”
“네!”
맨디가 고개를 끄덕이며 제온의 뒤를 따랐다.
그 뒤를 김상식이 타고 있는 쌍봉낙타가 따랐다.
거의 이십여 분을 걸은 후에야 세 사람은 쓰러져 있는 사람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제야 쓰러져 있던 자의 얼굴이 확실히 보였다.
맨디가 눈을 크게 떴다.
“아니카?”
7팀의 유일한 여자인 아니카가 분명했다.
순간 아니카가 눈을 번쩍 떴다.
“호호! 걸렸구나.”
그녀가 언제 쓰러져 있었냐는 듯이 벌떡 일어섰다.
맨디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뭐야?”
“뭐긴 뭐야? 우리 함정에 걸려든 거지. 호호!”
아니카가 멀찍이 물러서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 순간 근처 모래 속에 숨어 있던 이들이 튀어나왔다.
자하르와 펠릭스, 대런과 세이도 등 7팀 전부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제온 일행을 포위했다.
자하르가 맨디를 보며 말했다.
“용케 살아 있었군.”
“자하르 팀장. 이게 무슨 짓이죠?”
“무슨 짓이긴? 혈색을 보아하니 물과 음식을 제대로 먹은 것 같은데, 나눠 먹자는 거지. 보다시피 우린 며칠째 제대로 먹지 못했거든.”
7팀의 행색은 엉망이었다.
얼굴은 핼쑥하게 말라 있었고, 피부는 푸석푸석해져 각질이 일어나 있었다.
무사히 쉘터를 탈출하긴 했지만,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굶주린 것이 분명했다.
소지한 비상식량을 아껴 먹었지만, 이틀 전에 모두 동이 났다.
그 후 그들은 쭉 굶주린 상태였다.
그런 7팀의 시야에 멀쩡히 살아 있는 맨디와 김상식이 포착됐다. 굶주린 그들과 달리 맨디의 얼굴엔 혈색이 돌고 있었다.
식량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자하르가 제온을 바라봤다.
“아마도 식량과 식수는 네가 가지고 있겠지?”
맨디와 김상식의 능력으로 사막에서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결국 이들 중에서 변수가 될 만한 사람은 제온밖에 없었다.
“그들을 버리고 이쪽으로 와라. 그편이 너에게도 좋을 거다.”
정중하게 말했지만, 눈빛은 흉포하기 그지없었다.
이미 이틀이나 굶었기에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식수와 식량을 구할 수만 있다면 부모도 죽일 수 있었다.
“우리에게 물과 음식을 주면 네오 서울에서 크게 보답하마.”
자하르의 눈빛은 독이 잔뜩 오른 마수를 연상시켰다.
그것은 다른 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죽했으면 자존심도 버리고 모래 속에 숨어서 제온 일행을 유인했다.
제온이 피식 웃었다.
“물과 음식을 주면 정말 살려 주기는 할 건가요?”
“당연하지. 네오 서울까지 우리가 보호해 주마.”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데요?”
“어차피 너에겐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우리 손을 잡는 것이 네가 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것이다.”
자하르가 말하는 사이 펠릭스와 대런 등이 제온 일행의 뒤쪽에 자리 잡았다.
여차하면 스킬을 사용할 기세였다.
그때 맨디가 나섰다.
“꼭 이래야겠어요? 우리 모두 같은 식구들이잖아요.”
“식구? 우리 팀 외에 그 누구도 식구라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 말은 이 사람도 같은 팀으로 받아 줄 생각이 없다는 거죠?”
맨디의 말에 자하르의 표정이 굳었다.
유도 심문에 넘어간 것이다.
좋게 설득하긴 글렀다는 것을 깨달은 그 순간 명령을 내렸다.
“모두 죽여라.”
“죽여어!”
“차앗!”
무투계 각성자인 대런과 세이도가 먼저 달려들었고, 펠릭스와 아니카가 뒤쪽에서 지원했다.
대런의 기계 의수와 세이도의 검이 제온을 공격했고, 펠릭스의 저주와 아니카의 마법이 맨디에게 쏟아졌다.
“누가 당할 줄 알고?”
독이 바싹 오른 맨디가 이제까지 꽁꽁 감춰 왔던 스킬을 펼쳤다.
맨디의 몸이 순식간에 다섯 개로 분열했다.
환영 마법의 하나인 미러 이미지였다.
퍼퍽!
펠릭스의 저주와 아니카의 마법은 맨디의 환영을 강타했다.
그사이 진짜 맨디는 아니카의 뒤로 이동했다.
“나도 처음부터 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그녀는 무방비 상태의 아니카에게 마법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빨리 자하르가 움직였다.
“어딜?”
퍽!
그의 일격이 맨디에게 작렬했다.
“꺄아악!”
맨디가 비명과 함께 튕겨 나갔다.
팀장답게 자하르의 공격은 매우 강렬했다.
맨디가 바닥에 엎어져 피를 토했다. 그런 맨디를 보고 아니카가 살기를 피워 올렸다.
“뒈질 뻔했네. 씨발 년!”
그녀는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었다.
자하르는 맨디의 처분을 아니카에게 맡겨 두고 제온에게 시선을 줬다.
한참 대런과 세이도가 제온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온이 간발의 차이로 그들의 공격을 모두 피해 내고 있었다.
“제법 실력이 있군.”
대런과 세이도의 실력은 패스파인더들 중에서도 뛰어난 편이었다.
특히 둘의 조합은 완벽해서 많은 이들에게 절망을 안겨 줬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대런과 전광석화처럼 쏘아지는 세이도의 검.
둘은 마치 의식을 공유하는 것처럼 완벽하게 제온을 몰아붙였다.
제온도 어떻게 대응할 방법이 없는지 피하기만 했다. 그런데 그의 몸놀림이 이상했다.
마치 누가 줄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모래 위를 미끄러졌다.
대런과 세이도가 움직일 때마다 발목까지 모래에 푹푹 빠지는 것과 대조됐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이 압도적인 우세에도 제온을 쉽게 제압하지 못하고,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갔다.
‘모래 위의 전투에 익숙한 놈이다.’
자하르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전에 제온을 제압해야 했다.
“노옴!”
자하르가 합세했다.
콰앙!
그의 주먹질에 공기가 터져 나갔다.
당연히 목표는 제온이었다. 하지만 제온은 간발의 차이로 자하르의 공격을 피했다.
자하르가 연신 공격하며 말했다.
“반항할수록 네놈만 힘들어질 뿐이다. 순순히 항복하는 게 좋을 거다.”
“항복해도 살려 주지 않을 거잖습니까?”
제온이 웃으며 말했다.
세 사람의 합공 속에서도 그는 여유가 있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이 자하르의 심기를 건드렸다.
“네놈의 사지를 잘라 마수 밥으로 던져 주마.”
“그렇게 마수가 좋으면 불러 드리죠.”
“뭐?”
콰아앙!
그 순간 제온이 다리를 크게 굴렀다.
폭음과 함께 고운 모래 입자가 하늘로 비산했다.
강력한 진동이 모래를 타고 멀리 전해졌다.
단순한 발 구름이 아니었다.
제온이 지배력을 이용해서 진동을 아주 멀리까지 보낸 것이다.
그것도 샌드웜이 제일 좋아하는 파동으로 형태를 바꿔서 말이다.
그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콰콰콰!
먼 곳에 있던 샌드웜들이 진동에 반응해 몰려왔다.
자하르나 팀원들은 느끼지 못했지만, 제온의 감각엔 그들의 움직임이 선명히 잡혔다.
“무슨 개수작이야?”
“죽엇!”
“이 씨발 새끼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자하르와 대런, 세이도가 제온을 공격할 때였다.
콰아앙!
모래를 뚫고 거대한 벌레들이 제온의 등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
샌드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