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58)
58화
맨디는 스스로를 평범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렸을 때는 남들과 다를 것이 없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예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어쨌거나 인간의 범주는 벗어나지 않았다.
맨디가 하프 엘프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이차 성징 이후였다.
이차 성징 이후 엘프의 특징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귀였다.
엘프처럼 완전히 뾰족하지는 않지만, 인간처럼 뭉툭하지도 않았다.
정확하게 둘을 섞어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후 맨디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됐다.
그녀의 어머니는 엘프에게 강간을 당했고, 그 후 자신을 가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불행의 씨앗이라는 생각에 맨디는 위축됐고, 점점 내향적으로 변해 갔다.
남들의 시선에 극히 예민해졌고, 하루하루 자신을 좀먹어 갔다.
그런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엘로이가 만들어졌다.
또 다른 인격이 형성된 것이다.
새로이 등장한 엘로이의 성향은 맨디와 정반대였다.
엘로이는 마수처럼 거칠고 폭력적이었다.
적이라고 생각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목을 물어뜯었다.
그런 엘로이의 파괴적인 성향 때문에 문제도 많이 일으켰다.
상황이 점점 최악으로 치닫자 이제까지 수면 아래 숨어 있었던 맨디의 인격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는 엘로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앞으로 나섰고, 그 결과 예전보다 훨씬 활동적으로 됐다.
맨디는 엘로이와 협정을 체결했다.
네오 서울에선 주로 맨디의 인격이, 남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을 때는 엘로이가 활동하는 것으로 말이다.
엘로이는 지금이 자신이 활동할 때라고 판단했다.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창이 들려 있었다.
평범한 창이 아니었다.
던전에서 출토된 아이템이다.
주인에게 자동으로 소환되는 기능이 있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 무기.
아홉 갈래로 갈라지는 창날의 모습이 꼭 꼬리 아홉 개 달린 구미호를 연상시켰다.
그래서 창의 이름 또한 ‘미친 구미호’다.
미친 구미호는 쿠라얀에서도 전설로 전해지던 무기다.
그런 무기가 엘로이의 손에 들어온 것은 어찌 보면 운명이었을지도 몰랐다.
엘로이가 반쪽이나마 엘프의 핏줄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우우웅!
엘로이의 손에서 미친 구미호가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녀의 투지를 느끼고 미친 구미호가 반응하는 것이다.
엘로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할래? 갈가리 찢겨서 마수의 먹이가 될래? 순순히 내 말을 들을래?”
“안 들으면 마수의 먹이가 되는 건가요?”
“호호! 당연한 걸 왜 묻고 그래? 아, 세 번째 선택지도 있다.”
“그게 뭡니까?”
“저 새끼 죽이고, 너하고 나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는 거지? 그럼 모두가 해피해질 수도 있지.”
그녀가 말한 ‘저 새끼’는 바로 쌍봉낙타에 타고 있는 김상식이었다.
김상식도 그 사실을 알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저, 저를 왜 죽입니까? 저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맨디의 비밀을 알았잖아.”
“아무한테도 말 안 하겠습니다. 절대 비밀을 지키겠습니다.”
“에이! 그 말을 누가 믿어? 그냥 죽여서 입을 막는 게 깔끔하지.”
“제발 살려 주십시오.”
김상식이 쌍봉낙타에서 내려 무릎을 꿇었다.
도망간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도주해 봐야 금방 잡힐 텐데, 차라리 애원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김상식은 눈물 콧물 흘리며 엘로이를 바라봤다.
그에 엘로이가 코웃음을 쳤다.
“거, 재수 없게 사내새끼가 질질 짜기는…….”
그녀의 시선이 다시 제온을 향했다.
“어떻게 해 줄까? 선택해. 네 몫이야.”
“어느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차라리 맨디와 대화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녀를 불러 주세요.”
“그건 안 되겠네. 그년은 성격이 물러서 말이야.”
“그래도 전 만나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요?”
“간단해! 나를 이기면 돼. 내가 쥐어 터지면 그녀가 나올 거야.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간단하네요. 다행스럽게도.”
“날 이길 자신은 있고?”
“궁금한 게 있는데 그 창 하나 믿고 그렇게 기고만장한 건가요?”
“뭐?”
“그냥 하프 엘프라는 것 하나 빼면 그리 특별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너무 자신감이 과한 것 같아서요.”
제온의 웃음기 담긴 말에 엘로이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가 미친 구미호를 꼬나 잡으며 말했다.
“씨발! 좋은 말로 하니까 주제도 모르고 까부네. 꼭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동감입니다.”
“하아! 내가 그 주둥이 다 털어 버리고 만다. 씨발 새끼!”
엘로이의 화가 폭발했다.
그녀가 미친 구미호를 휘둘렀다.
순간 허공에 마나로 만들어진 창의 환영이 나타났다.
그녀의 스킬 중 하나인 레인 스피어였다.
미친 구미호로 펼친 레인 스피어의 위력은 엄청났다.
콰콰콰쾅!
레인 스피어가 작렬한 모래가 화산이 터진 듯이 연신 폭발을 일으켰다.
모래가 기둥처럼 치솟아 올랐다가 사방으로 비산하면서 일대가 완전히 뒤집혔다. 하지만 어디서도 제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엘로이가 제온을 찾아 눈을 번뜩였다.
곧 그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제온은 어느새 이십 미터나 왼쪽으로 이동해 있었다.
창에 당한 상처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잔재주를…….”
엘로이가 바람처럼 제온에게 달려들었다.
미친 구미호가 쭉 길어지며 제온을 찔러 왔다.
관통당하기 직전 제온이 건틀렛을 낀 주먹을 휘둘렀다.
쩌어엉!
쇳소리와 함께 미친 구미호가 튕겨 나갔다.
“뭐야?”
엘로이가 깜짝 놀랐다.
미친 구미호는 던전에서 출토된 아이템답게 엄청난 관통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지간한 무기나 갑옷 따윈 종잇장처럼 찢어발길 수 있었다. 그런데 별거 아닌 것으로 보이는 건틀렛 따위가 미친 구미호를 막아 낸 것이다.
“그것도 던전에서 얻은 아이템인 모양이구나.”
“친구가 만들어 준 물건입니다.”
“씨발! 인간 따위가 그런 물건을 만들었다고?”
“그쪽도 반쪽은 인간인데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닙니까?”
제온이 피식 웃었다.
엘로이가 황당해할 만하다.
지금 그가 끼고 있는 건틀렛은 예전에 만난 케일리가 만들어 준 것이다.
보기 드문 인챈터인 케일리의 역작에 레드 드래곤의 눈이 결합하면서 초열의 건틀렛으로 진화했다.
초열의 건틀렛은 케일리가 처음 만들었을 때와 전혀 다른 물건이 됐다.
그 위력은 결코 미친 구미호에 뒤지지 않았다.
“죽어엇!”
엘로이가 발작했다.
그녀는 미친 듯이 창을 휘두르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제온 주위에 뿌렸다.
그것은 일종의 덫이었다.
네오 서울에서 마수들을 사냥하기 위해 만든 덫.
당연히 평범한 물건이 아니다.
일대에 마나를 품은 생명체가 있으면 가공할 흡인력으로 끌어들인 후 포박한다.
일단 덫에 걸리면 제아무리 강한 마수라도 잠깐은 움직일 수 없다.
엘로이는 그런 덫을 십여 개나 뿌렸다.
이로써 제온의 퇴로를 모두 막았다.
그녀는 마음 놓고 제온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녀의 모든 공격은 제온의 건틀렛에 막혔다.
까가가강!
쇳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엘로이는 앞으로 달려들며 공격했고, 제온은 뒤로 물러나며 방어했다.
뒤로 물러나는 것보다 앞으로 달려드는 것이 더 쉽다. 또 공격에 힘을 실을 수 있기에 더욱 위력적이었다.
당연히 앞으로 달려드는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엘로이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정반대였다.
제온은 보이지 않는 끈에 매달린 것처럼 미끄러지듯 뒤로 물러났는데, 엘로이의 속도로도 따라잡기 벅찼다.
더욱 열받는 것은 제온이 아직까지 어떤 스킬도 쓰지 않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다는 것이다.
마치 그녀의 진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씨발 새끼가 어딜…….”
엘로이가 광분해 미친 구미호를 휘둘렀다.
그때마다 엄청난 위력의 스킬이 제온에게 쏟아졌다.
콰쾅!
모래가 터져 나가고, 칼바람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제온의 머리도 덩달아 바람에 흩날렸다. 하지만 머리카락 뒤에 가려져 있던 눈동자엔 한 점의 흔들림도 없었다.
미친 구미호가 아홉 개로 분열되는 것이 보였다.
환영이 아니라 진짜 아홉 개가 된 것이다.
엘로이가 손짓하자 아홉 개의 창이 허공 높이 올라갔다.
아홉 개의 창을 연결한 마나에서 엄청나게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뒈져랏! 나인 스피어 스트라이크.”
엘로이 최강의 스킬이 펼쳐졌다.
제온의 망막에 빛무리가 가득 담겼다.
문득 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재밌네!”
이렇게 자신에게 이를 드러내고 덤벼드는 상대를 만나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남쪽 저 먼 곳에서 레비아탄과의 전투 이후 어지간한 마수들은 아예 제온을 피했다.
그 때문에 이제까지 제대로 싸울 일이 거의 없었다.
오랜만에 이렇게 전력으로 덤벼드는 상대를 보니 꽤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제온이 초열의 건틀렛에 마나를 주입하며 일격을 날렸다.
푸화하학!
순간 초열의 건틀렛에서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홍염은 마치 용오름처럼 회전하며 날아가 나인 스피어 스트라이크와 격돌했다.
콰아앙!
“크윽!”
엘로이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강한 충격으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제온을 쓰러트리기는커녕 오히려 반진력에 타격을 받은 것이다.
아홉 개의 창이 제각기 튕겨 나가고, 그 사이로 제온이 내달려 오는 모습이 보였다.
붉게 달아오른 건틀렛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손등 부위에 빛나고 있는 붉은 보석이 거대 마수의 눈동자 같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사이 엘로이의 지척까지 도달한 제온이 강력한 일 권을 날렸다.
쾅!
“컥!”
엘로이가 비명과 함께 뒤로 튕겨 나갔다.
그나마 팔을 교차해 공격을 막았기에 망정이지, 반응이 조금만 늦었어도 가슴뼈가 송두리째 함몰될 뻔했다.
양팔이 부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제온의 공격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콰직!
그의 무릎이 그녀의 얼굴을 가격했다.
이번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코가 부러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래도 엘로이는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반격하려 했다.
하지만 제온이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쾅!
제온의 주먹이 그녀의 복부에 작렬했다.
엘로이는 위장에 들어 있던 음식을 모두 토해 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씨발!”
엘로이가 손을 뻗었다.
미친 구미호가 소환되어 잡혔다. 하지만 그녀는 미친 구미호를 미처 휘두를 수 없었다.
제온이 무릎으로 가슴을 짓누른 후 억센 손으로 그녀의 팔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엘로이가 이를 악물면서 제온의 팔을 뿌리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제온이 그녀를 짓누른 자세 그대로 입을 열었다.
“맨디를 불러와.”
“좆까!”
쾅!
순간 제온의 주먹이 엘로이의 얼굴에 작렬했다.
광대뼈가 부러지며 피가 튀었다.
“맨디를 불러오라고.”
“이익!”
“뒈지기 싫으면…….”
엘로이가 독기 가득한 눈으로 제온을 노려봤다. 하지만 제온의 눈동자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고 말았다.
‘무슨 눈이…….’
감정을 읽을 수 없는 건조한 검은 눈동자.
마치 인간이 아닌 마수의 눈을 보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말할게요. 엘로이로 뒈지든지, 아니면 맨디를 내보내든지 선택해요.”
“제……기랄!”
그 말을 끝으로 엘로이의 표정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반항적인 느낌이 완전히 사라지고, 겁을 잔뜩 집어먹은 얼굴이 나타났다.
맨디였다.
“흐흑!”
맨디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런 맨디를 보며 제온이 웃었다.
“이제야 대화가 통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