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59)
59화
의식이 두 개라고 해서 시야가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엘로이가 전면으로 나섰을 뿐이지, 맨디 역시 똑같이 시야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엘로이가 제온에게 얼마나 처참히 당하는지 똑똑히 지켜봤다.
엘로이의 고통은 맨디의 고통이기도 했다.
당연히 그녀가 당하는 아픔을 고스란히 느꼈다.
때문에 겁먹은 표정으로 제온을 볼 수밖에 없었다.
제온이 말을 걸었다.
“맨디! 맞죠?”
“맞……아요.”
“엘로이와 당신이 각기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알 것 같아요. 네오 서울에 관계된 일은 당신이, 그 외 싸우는 역할은 엘로이가 맡고 있죠?”
“네!”
“엘로이가 나오는 것 가지고는 뭐라고 하지 않을게요. 단 나와 협상을 하거나 정보를 줄 때는 무조건 맨디가 나와야 해요. 가능하죠?”
“가능……해요.”
“오케이! 앞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으로 정리합시다.”
“그게 끝인가요?”
“뭐가요?”
제온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맨디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엘……로이가 무례를 저질렀잖아요.”
“아, 그거? 괜찮아요. 별로 위험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제온이 뭐가 문제냐는 듯 피식 웃었다.
엘로이는 분명 강했다.
아마 각성자 등급으로 치면 적어도 B급 이상일 것이다.
특히 마지막에 펼쳤던 스킬은 꽤나 위험했었다.
제온이 아닌 다른 각성자였다면 큰 상처를 입거나 낭패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엘로이는 그만큼 대인 전투에 능했다.
문제는 제온이 그녀보다 더 전투에 능하다는 것이다.
데이오든과 헤어진 후 칠 년 동안 제온은 수많은 싸움을 해 왔다.
대부분이 마수와의 전투였지만, 인간과의 전투도 적잖았다.
그 지역의 원주민, 스캐빈저 등 제온을 노리는 자들은 많았다.
제온은 그들과의 싸움을 모두 이기고 이제까지 살아남았다.
엘로이와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을 쌓은 것이다.
그 덕분에 굳이 모래를 사용하지 않고도 엘로이를 제압할 수 있었다.
맨디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엘로이는 강한데…….”
“강하더라구요. 조금만 더 경험을 쌓으면 위험할 것 같기도 하고……. 아! 일단 이것 좀 마셔요.”
제온이 갑자기 로브 안쪽에서 조그만 병을 꺼내서 그녀에게 건네줬다.
“이게 뭔가요?”
“일종의 치료제라고 보면 될 거예요. 복용하면 어지간한 상처 따윈 금방 나아요. 아, 마시기 전에 부러진 뼈는 미리 맞춰 두고요. 자칫 어긋난 채로 붙어 버릴 수도 있으니까.”
맨디는 코가 부러진 상태였다.
제온의 무릎에 가격당했기 때문이다.
그제야 자신의 상태를 인지한 맨디가 코를 다시 맞췄다.
우둑!
부러졌던 코뼈가 제자리를 찾자 한결 숨 쉬는 것이 편안해졌다.
맨디는 제온이 준 정체불명의 치료제를 마셨다.
치료제를 마시는 순간 기묘한 청량감이 느껴졌다.
부러졌던 코뼈와 금이 갔던 양팔 뼈에 열기가 올라왔다. 뼈가 붙고 있다는 신호였다.
맨디는 깜짝 놀라 빈 병을 바라봤다.
“이거 뭐죠? 이런 치료제는 들어 본 적이 없어요.”
“몇 가지 마수의 피와 약초를 섞어 만든 거예요. 제법 쓸 만하죠?”
“이 정도면 단순히 쓸 만한 정도가 아닌데요?”
네오 서울 안에서도 이 정도 효능을 가진 치료제는 본 적이 없었다. 제온이 준 치료제를 네오 서울로 가져가면 난리가 날 것이 분명했다.
‘도대체 이 남자는…….’
그녀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존재였다.
사막의 모든 것을 환히 꿰뚫고 있는 데다가 소름 끼치게 강하다.
네오 서울에 이런 자가 있었으면 분명 그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모른다는 것은 제온이 네오 서울 안에서 성장한 자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네오 서울 밖에 이런 강자가 존재했다니.’
자신도 모르게 팔뚝을 문질렀다.
소름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녀의 내면에서는 엘로이가 뭐 이런 것을 두고 호들갑을 떠느냐고 난리 치고 있었다. 다시 싸우면 자신이 이길 수 있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맨디는 알고 있었다.
다시 엘로이가 나와서 싸워도 제온의 적수가 될 수 없음을 말이다.
맨디가 물었다.
“긍금한 게 뭐죠?”
“혹시 엘하룬이라고 들어 봤나요?”
“그게 뭐죠?”
맨디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했다.
“모르나요? 쿠라얀에서 넘어온 이종족들이 만든 도시라는데.”
“뭐야? 그 개새끼들이 도시를 만들었다고?”
갑자기 엘로이의 인격이 튀어나왔다.
제온이 인상을 쓰든 말든 열받아서 엘로이가 말을 마구 쏟아 냈다.
“진짜 그것들이 도시를 만들었다고? 네오 서울처럼. 어서 말하라고.”
“내가 분명 엘로이가 아닌 맨디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을 텐데요? 아무래도 금방 가르침을 잊는 타입인 것 같군요.”
“아, 그게……. 씨발! 미안. 그게 그러니까. 열받아서 나도 모르게…….”
“왜 당신이 열받죠? 엘하룬엔 당신의 일족도 있을 텐데.”
“내가 사랑의 결과물인 줄 알아? 엘프 개새끼가 우리 엄마를 강간해서 나온 쓰레기라고. 그러니 좋게 들리겠어? 어딘지 말해. 당장 내가 쳐들어가서 다 죽여 버릴 테니까.”
엘로이가 살기를 발산하며 방방 뛰었다.
어딘지 알면 당장 쳐들어갈 기세였다.
제온이 그런 그녀를 보며 말했다.
“당신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니, 맨디를 내보내요.”
“야!”
“진짜 뒈지고 싶지 않으면…….”
“씨발 새끼!”
엘로이가 욕과 함께 퇴장했다. 그리고 맨디가 나타났다.
그녀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죄송해요. 애가 진짜 화나면 제어가 안 돼서…….”
“됐고, 진짜 엘하룬을 모른다는 거죠?”
“그런 곳이 있다는 것조차 지금 처음 알았어요.”
“네오 서울 안에 이종족들은 좀 남아 있나요?”
“좀? 제법 많이 있어요.”
“수십 년 전 있었던 대학살 때 많이 죽지 않았나요?”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고 있죠? 맞아요! 그때 엄청나게 죽어 나갔다고 해요. 하지만 바퀴벌레처럼 금방 불어나더라고요.”
맨디의 말투엔 이종족에 대한 증오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녀 역시 엘로이처럼 이종족들을 증오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엘프들을 말이다.
“그들 중에 엘하룬을 알 만한 자가 있을까?”
“글……쎄요.”
맨디가 말끝을 흐렸다.
그때 눈치만 보고 있던 김상식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이스 퀸이라면 알지도 모릅니다.”
“아이스 퀸?”
“북쪽 구역 지배자의 이명입니다.”
“그런데요?”
“그녀는 순수 엘프입니다.”
제온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김상식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아이스 퀸이 순수 엘프라구요?”
“네! 순혈의 엘프인 것으로 짐작되고 있습니다.”
“개 같은 년.”
맨디가 분노 섞인 음성을 토해 냈다.
현재 네오 서울은 크게 다섯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시장인 진금호가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다.
당연히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네오 서울의 전반적인 정책들을 총괄했다.
테라포밍의 부작용으로 폐허가 됐던 서울을 마법과 문명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로 재탄생시킨 인물이 바로 그였다.
네오 서울 시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시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살아 있는 괴물.
네오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장벽만큼이나 그의 권력 역시 공고했다. 하지만 그의 권력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바로 동서남북, 네 구역의 지배자들이었다.
비록 진금호의 권력엔 미치지 못하지만, 그들도 각기 한 구역을 차지한 채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동 구역의 지배자 세든.
서 구역의 지배자 김현수.
남 구역의 지배자 샤오룬.
마지막으로 북 구역의 지배자 아이스 퀸.
아이스 퀸은 엘프였다.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기에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녀의 존재조차 알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존재했다.
두꺼운 장막 뒤에서 북 구역을 이끌어 나갔다.
북 구역에 유독 이종족들이 많이 존재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네오 서울에 생존해 있는 이종족들은 거의 대부분이 북 구역에 자리를 잡고 있다.
아이스 퀸은 그들을 철저하게 보호해 줬다.
“그년은 절대 말하지 않을 거야. 오직 제 종족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년이니까.”
한때 맨디도 아이스 퀸에게 몸을 의탁하려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하프 엘프라는 이유로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아이스 퀸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수하 중 한 명이 그랬다.
그는 순혈의 엘프라는 것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초라한 모습으로 찾아온 어린 맨디가 하프라는 것을 알고 엄청난 모욕을 줬다.
그 사건 이후로 맨디는 북 구역이라면 치를 떨었다.
아이스 퀸이 아닌 수하에게 당한 모욕이었음에도 말이다.
그 후로 맨디는 두 번 다시 북 구역에 가지 않았고, 아이스 퀸에 대한 이야기만 나와도 치를 떨었다.
제온의 반응은 그녀와 달랐다.
“고마워요. 좋은 정보를 알았네요. 확실히 그녀라면 엘하룬을 알 확률이 높겠네요.”
“도움이 돼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비밀 지켜야 하는 것 아시죠?”
“물론입니다.”
“알겠어요.”
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지켜야 할 비밀이었다.
지금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사람들도 엘하룬이라는 도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쩌면 네오 서울의 수뇌부들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다만 엘하룬이 정확히 어느 곳에 있는지 모를 뿐이다.
제온도 마찬가지였다.
데이오든이 하이엘툰과 함께 죽은 후 제온은 세상을 떠돌았다.
그가 향했던 곳 중에는 캄차카 콜로니도 있었다.
캄차카 콜로니 근처에 있을 거로 짐작되는 엘하룬을 찾기 위해서였다.
제온은 자신의 능력이라면 어렵지 않게 엘하룬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무리 인근을 뒤져도 엘하룬은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제온은 엘하룬이 특별한 방법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마 결계나 마법 같은 것으로 모습을 완벽히 감춘 거겠지.’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제온은 깔끔하게 엘하룬을 찾는 것을 포기했다.
그는 가 보고 싶은 곳이 많았다.
엘하룬 한 곳에 목이 매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후 캄차카 콜로니를 떠나 세상을 떠돌았다.
‘아이스 퀸이라. 네오 서울에 들어가면 반드시 만나 봐야겠군.’
확실한 답을 얻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실마리는 잡았으니 마음 편히 네오 서울로 돌아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제온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이제 갑시다.”
“네!”
“감사합니다.”
맨디와 김상식이 제온을 뒤따랐다.
김상식은 제온이 자신을 버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맨디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여기서 있었던 일이 새어 나가면 엘로이가 당신을 죽일 거예요.”
“엘로이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그런 사람 못 봤습니다.”
“그 다짐 계속 지켜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도 목숨이 소중한지 압니다.”
“지켜보죠.”
맨디의 말이 김상식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맨디는 이제까지 두 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숨겨 왔다.
그녀가 하프 엘프라는 사실도 말이다.
이 두 가지 비밀 중 하나라도 새어 나가면 그녀는 상당히 곤란해진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협박하는 것이다.
이제 김상식은 제온뿐 아니라 맨디의 비밀도 지켜야 했다.
다행히 김상식은 입이 꽤 무거운 사람이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비밀을 지킬 거라고 다짐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아니카와 펠릭스의 시신은 보이지도 않았다. 이미 샌드웜의 배 속에서 소화가 되고 있을 것이다.
잘못하면 자신도 그 꼴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때였다.
스르륵!
갑자기 모래가 치솟아 오르더니 샌드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샌드웜들은 잠시 제온과 맨디, 김상식 주위를 맴돌았다.
그 순간 제온이 슬쩍 발 구름을 했다.
쿵!
짧지만 강력한 진동이 모래를 타고 쭉 뻗어 나갔다.
샌드웜들은 제온이 만들어 낸 진동을 쫓아 저 멀리 사라졌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김상식이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이 남자는 도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