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61)
61화
맨디와 김상식을 숙소로 안내해 준 후 차동석은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의 신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김상식의 출입 카드가 결정적이었다.
문제는 제온이었다.
빈민가 출신의 각성자를 어떻게 대우하느냐는 전적으로 그의 몫이었다.
“알아서 잘 길들여 놨겠지?”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 온 사이였다.
눈빛만 봐도 차동석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제온을 알아서 잘 다져 놨을 것이다.
특별히 제온에게 원한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네오 서울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특히 빈민가 출신의 각성자는 혹독하게 다뤄서 기를 죽여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설령 이 일로 인해 문제가 생겨도 위에선 추궁하지 않을 것이다.
제온을 데려간 허름한 숙소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설마 이 새끼들 죽인 건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에 차동석이 문을 벌컥 열었다.
숙소 내부의 전경을 본 순간 차동석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크흑! 대장.”
“끄으으!”
그의 부하들이 모두 바닥에 쓰러져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다들 팔이나 다리가 기괴한 방향으로 꺾인 채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제온이 있었다.
제온은 의자에 앉아 차동석을 바라봤다.
“어서 와요.”
“뭐야? 이들이 왜…….”
차동석이 깜짝 놀라 검을 빼 들었다.
드르륵!
제온이 의자에서 일어나 차동석에게 다가왔다.
차동석이 제온의 목에 검을 겨눴다.
“네가 이들을 이렇게 만든 거냐?”
“함부로 남의 계급장 보려고 하더군요.”
“겨우 그딴 이유로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이 개새끼가…….”
“그 검 휘두르면 당신의 팔목도 무사하지 못할 거예요.”
“이러고도 네가 네오 서울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어차피 네오 서울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상관없잖아요. 난 계속 빈민가에 머물 테니까.”
“이익!”
차동석이 이를 악물었다.
네오 서울과 빈민가는 붙어 있지만, 별개의 구역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지간해서는 네오 서울에서도 빈민가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
개입해 봐야 골치 아픈 일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자치권을 인정해 주고 있었다.
제온이 차동석 코앞으로 다가왔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였기에 차동석은 제온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유독 건조하게 느껴지는 깊고 검은 눈동자.
순간 차동석은 오싹하는 기분을 느꼈다.
제온의 눈동자를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정신이 아찔해졌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네오 서울의 고위 각성자들에게서도 이런 느낌은 받지 못했다.
비록 D급에 불과하지만, 그도 온갖 험한 일을 다 겪은 베테랑이었다.
즉각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닫자마자 급히 태세를 바꿨다.
“죄송합니다. 고위 각성자라고 이야기하지 그러셨습니까?”
“맨디와 김상식 씨가 보증해 줬는데, 벌써 잊어버렸나 봐요?”
“그건…… 죄송합니다.”
숙일 땐 확실히 숙여야 한다.
차동석은 더 이상 변명하지 않고 확실히 사과했다.
부하들의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다들 D급 아니면, E급 각성자였다.
그런 이들이 제온에게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하고 처참히 당했다.
자신이 나선다고 상황이 달라질 것이 아니라면, 모든 것을 이쯤에서 묻고 물러나는 것이 옳았다.
다행히 제온도 이 이상 문제를 크게 키울 생각이 없었다.
“그럼 우린 아무 문제 없는 거죠?”
“무슨 문제 있었습니까?”
“다행이네요. 그래도 말이 통하는 분이라서.”
“숙소를 옮겨 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해요.”
“그래도…….”
“그만 혼자 있고 싶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차동석이 제온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 후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야, 이 새끼들아! 어서 일어나지 못해? 다들 빨리 일어나.”
“크으!”
“윽!”
부하들이 바둥거리면서 일어났다.
차동석은 그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인기척이 사라지자 제온이 중얼거렸다.
“이제 좀 쉴 수 있겠군.”
어차피 해야 했던 신고식이었다.
겨우 이 정도로 넘어갈 수 있다면 그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제온은 의자에 앉아 숙소 내부를 둘러봤다.
그가 갑자기 피식 웃었다.
“그곳이네.”
팔 년 전 마정석 광산에 왔을 때 묵었던 숙소였다.
변한 게 하나도 없기에 금방 알아봤다.
이곳에서 하루 자고 바로 마정석 광산으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던전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팔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제 제온은 어린아이도 아니었고, 광산에서 일할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곳에 있자니 왠지 마정석 광산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그 영감도 여기 있었지?”
식사 한 끼에 무려 십 솔이나 받아 처먹고, 삼백 솔짜리 마정석을 겨우 백 솔에 강탈한 사기꾼 영감.
그 대가로 모래시계를 받아 엑시온을 얻었지만, 제온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의 얼굴이 생생히 기억났다.
“클렉시 영감이라고 했지? 오랜만에 얼굴이나 볼까.”
어차피 이 안에 있어 봤자 할 일도 없었다.
제온은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차동석이 미리 말해 놨는지 그에게 시비를 걸거나 막는 이는 없었다.
덕분에 제온은 편히 클렉시 영감이 장사하던 구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도 변한 것이 거의 없었다.
제온이 나타나자 곳곳에서 상인들이 나타났다.
“이쪽으로 와 보슈.”
“여기 좋은 물건 있수.”
“생초짜인 것 같은데 이곳에서 정비하고 가시오.”
상인들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제온을 초짜로 보고 어떻게든 벗겨 먹으려는 것이다.
이곳에선 이런 일이 일상이었다.
본인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잘못 휩쓸렸다가는 껍질째 홀라당 벗겨지고 만다.
제온은 그들의 부름을 무시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어디서도 클렉시 영감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자신을 유혹하는 상인 중 하나에게 다가갔다.
“뭐 하나 물읍시다.”
“열 개 물어도 상관없소. 내 물건을 사기만 하면…….”
“쓸 만한 게 있다면 사죠.”
“좋소! 물어보시오.”
“클렉시 영감은 어디 갔습니까? 분명 이곳에서 장사했는데.”
“아, 그 영감? 다 정리하고 얼마 전 네오 서울로 들어갔소.”
“죽은 건 아니네요?”
“그 영감이 죽으려면 수십 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이오. 얼마나 정정한데.”
“그렇군요.”
“자, 이제 물건을 골라 보시오. 싸게 줄 테니까.”
대충 대답한 상인이 양팔을 활짝 펼쳤다.
그의 등 뒤로 수많은 물건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제온은 혹시나 엑시온을 얻었던 모래시계 같은 물건이 있을까 해서 둘러봤지만,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제겐 필요 없는 물건들뿐이네요. 그냥 갈게요.”
“에이! 그러지 말고 하나 사라니까. 싸게 준다니까.”
상인이 제온의 어깨를 거칠게 잡았다.
이 구역에 들어온 자는 절대 빈손으로 나갈 수 없다.
무엇이라도 하나 사야 나갈 수 있는 암묵적인 규율이 있었다.
물론 상인들끼리 정한 규칙이었다.
하지만 제온은 그런 규율을 가볍게 무시했다.
“됐습니다. 쓰레기를 뭐하러 삽니까?”
“뭐, 쓰레기? 이 새끼가!”
상인이 눈알을 부라렸다.
그는 내심 잘됐다고 생각했다.
이걸 핑계로 제온에게서 왕창 뜯어내려는 것이다.
그는 제온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그 순간 제온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 함부로 상대 몸에 손대면 어떻게 되는지 배우지 못했어요?”
“뭐 이 새끼야?”
우두둑!
순간 섬뜩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크아아악!”
엄청난 고통에 상인은 팔목을 부여잡고 무너졌다.
그의 팔목이 부러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제온이 부러트린 것이다.
“그렇게 팔목 부러지는 거예요.”
“이 개새끼가!”
상인이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그러자 주위의 상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자연스럽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이 분위기 때문에 처음 온 사람들이 속옷까지 모조리 털리는 것이다.
예전의 제온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제온은 예전의 어설픈 초짜가 아니었다.
스윽!
제온이 건틀렛을 낀 주먹이 잘 보이게 소매를 걷었다. 그러자 접근하던 상인들이 움찔했다.
건틀렛 같은 무구를 일반인이 착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직 각성자만이 이 같은 무구를 착용한다.
그러니까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고 있는 이 청년은 각성자라는 의미였다.
“크흠! 생각해 보니 가게 문을 열어 놓고 왔네.”
“어, 불 위에 냄비를 올려 놓고 잊어버렸군.”
“어이쿠! 다리야.”
상인들이 딴짓을 하며 가게로 돌아갔다.
그에 팔목이 부러진 상인이 배신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었다.
일반인들이 수십 명 모여 있어 봐야 각성자 한 명을 당할 수 없었다.
탓하려면 각성자인 줄 모르고 벗겨 먹으려 한 자신의 경솔함을 탓해야 했다.
“제기랄!”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제온이 쭈그려 앉으며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럼 계산해야죠.”
“계산? 무슨 개소리야? 남의 팔을 부러트려 놓고.”
“에이! 왜 그러세요? 그쪽에서 먼저 저를 호구 취급한 거잖아요. 각성자 호구 취급하다가 당한 거면서 억울한 표정을 짓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
“크윽!”
“우리 간단하게 계산합시다. 백 솔! 딱 백 솔이면 오늘 있었던 모든 일 잊어 줄게요.”
예전에 클렉시 영감이 자신에게서 마정석을 강탈해 가면서 줬던 돈이 백 솔이었다.
적어도 삼백 솔은 받을 수 있는 물건이었는데, 겨우 백 솔에 강탈당한 것이다.
경험도 없는 데다가 갈 곳이 없기에 허무하게 당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제온은 싱글거리며 상인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미소가 상인에겐 큰 압박이 됐다.
‘제기랄! 호구가 아니라 저승사자였구나.’
어디 가서 억울함을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벗겨 먹지 못하면 홀라당 벗겨져도 할 말 없는 곳이 마정석 광산이었다.
당한 놈이 병신이었다.
그는 멀쩡한 손으로 백 솔을 꺼냈다.
제온에게 돈을 건네주는 손이 덜덜 떨렸다.
너무 아까워서 피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제온은 냉정히 돈을 받아 갔다.
“고마워요. 덕분에 당분간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어디 또 건드려 주는 사람 없나? 있으면 좋겠는데.”
제온이 돈을 품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그런 제온의 모습에 상인이 치를 떨었다.
‘이놈은 악마다. 나 같은 상인을 벗겨 먹다니.’
제온은 망연자실한 표정의 상인을 두고 유유히 시장 구역을 벗어났다.
마정석 광산에 들어온 첫날부터 꽤나 많은 일이 일어났다. 덕분에 심심하지 않아서 좋았다.
제온은 천천히 광산 도시를 거닐었다.
대부분의 광부들이 아직 갱도에서 나오지 않아 도시는 조용했다. 그래도 거리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제온은 아예 거리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문명의 세계 초입에 들어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