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62)
62화
제온이 마정석 광산 도시에 들어온 지도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 제온이 한 일은 별거 없었다.
거리를 거닐거나, 골목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
누가 봐도 할 일 없는 백수의 일상이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마정석 광산 도시의 풍경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처음엔 그런 제온을 고깝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차동석의 부하들이 제온에게 박살이 났다는 걸 알았기에 섣불리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나마 네오 서울은 최소한 규율이라도 있었지, 마정석 광산에는 그런 것도 통용되지 않았다.
강자가 약자를 짓밟고 모든 것을 빼앗아도 용납되는 곳이 바로 마정석 광산이었다.
제온은 사람들에게 강자로 인식되었다.
그의 진짜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차동석보다는 강자인 것만은 분명했다.
최소 D급 이상의 무투계 각성자.
D급이라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네오 서울 전체를 뒤져 봐도 천 명이 채 되지 않는 귀한 전력이었다.
마정석 광산에 파견 나온 각성자들 대부분이 E급이나 F급인 것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덕분에 제온은 편히 지낼 수 있었다.
“잘 쉬었어요?”
사흘째 되는 날 맨디가 찾아왔다.
그동안 푹 쉬고 잘 먹어서 그런지 맨디의 얼굴엔 활력이 가득했다.
“덕분에……. 그쪽도 좋아 보이는군요.”
“저도 덕분에요.”
“날 찾아온 것을 보니 떠날 때가 된 것 같군요.”
“정확해요. 삼십 분 후에 네오 서울로 가는 장갑 버스가 있어요. 우린 그 버스를 탈 거예요.”
“마정석을 싣고 가는 건가요?”
“네! 마침 마정석이 모두 모여 네오 서울에 보낸다고 하네요.”
마정석은 네오 서울의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다.
네오 서울의 모든 시설이 마정석에서 추출한 에너지로 돌아간다.
그 때문에 정기적으로 마정석을 공급해 줘야 했다.
마정석 공급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이곳 광산 도시였다. 광부들이 목숨을 걸고 채굴한 마정석이 일정량이 되면, 장갑 버스에 실어 네오 서울로 보낸다.
마침 오늘이 그동안 모은 마정석을 네오 서울에 보내는 날이었다.
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요.”
“타이밍이 맞지 않았으면 최소 일주일은 더 기다려야 했을 거예요. 우린 운이 좋은 편이에요.”
맨디는 설렘을 숨기지 못했다.
제온은 마정석 광산조차도 문명의 세계라고 생각했지만, 맨디에게는 아니었다.
네오 서울의 삶에 익숙한 그녀에게 마정석 광산은 시골 촌구석이나 다름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네오 서울에 들어가 문명의 이기를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
“이거 받아요.”
그녀가 제온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뭔가요?”
“임시 출입증이에요.”
“출입증? 그럼 네오 서울에 들어갈 수 있는 건가요?”
“네! 임시긴 하지만 출입은 가능해요. 단 한 달 뿐이에요. 그 후에는 정식으로 시민권을 얻든,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요.”
“뭐, 그 정도면 충분해요.”
제온이 출입증을 받아 자세히 살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금속으로 만든 출입증에는 마법이 각인되어 있었다.
엘로이가 마정석 광산의 총책임자를 압박해 받아 낸 물건이었다.
예의를 차리는 맨디에겐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무법자나 다름없는 엘로이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기력을 찾은 엘로이가 한바탕 난리를 폈고, 그에 질린 총책임자가 임시 출입증을 내줬다.
맨디가 웃으며 말했다.
“버스로 가죠.”
“그럽시다.”
제온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따랐다.
두 사람은 나란히 공터로 향했다.
공터에는 커다란 장갑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버스는 마수의 공격에서 보호하기 위해 온갖 장갑을 덕지덕지 붙여 누더기를 연상케 했다.
멋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안전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장갑 버스의 지붕에는 난간과 포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각성자 다섯 명이 타고 있었다.
마수와 스캐빈저의 습격에 대비해 각성자들을 태우는 것이다.
장갑 버스 뒤쪽에는 마정석이 담긴 상자가 가득 실려 있었고, 앞쪽에는 네오 서울로 돌아가려는 광부들이 타고 있었다.
오랜만에 네오 서울로 돌아가는 광부들의 얼굴엔 설렘의 빛이 가득했다.
“여기입니다.”
제온과 맨디가 버스에 타자 미리 앉아 있던 김상식이 손을 흔들었다.
김상식도 맨디처럼 얼굴에 혈색이 돌아와 있었다.
그가 빈자리 두 개를 두 사람에게 권했다.
“여기 앉으시면 됩니다.”
“고마워요.”
“잘 앉을게요.”
두 사람은 감사의 인사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제온이 창가, 맨디가 복도 쪽에 앉았다.
그들이 타자 장갑 버스가 서서히 움직였다.
마정석 광산 도시의 거대한 문이 열리고 마침내 장갑 버스가 사막으로 나왔다.
문을 나서는 순간 공기 자체가 달라졌다.
더 뜨겁고 텁텁한 공기가 차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에어컨조차 없는 장갑 버스 안은 금세 열기로 뜨거워졌다. 그래도 불평하는 사람 하나 없었다.
장갑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두 만족했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였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누리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힘과 돈을 가진 사람들만 누린다.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에게 에어컨은 상상 속의 물건이었다.
제온은 창에 머리를 기댄 채 밖을 바라봤다.
그때 맨디가 제온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지낼 곳은 있나요?”
“예전에 살던 집이 있어요.”
“오래 비웠으면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을지도 몰라요.”
빈민가에 빈집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자리를 비우는 순간 다른 이가 꿰차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해도 소용없었다.
땅 주인도 없고, 집문서도 없다.
애초 마구잡이로 지은 건물이 대다수였고, 사람들이 늘어날 때마다 안전은 무시하고 증축을 해서 개미굴을 연상시켰다. 그래도 집은 늘 모자랐다.
제온이 웃었다.
“상관없어요. 다시 찾으면 되니까.”
“그럴 필요 없이 그냥 네오 서울로 들어오는 것은 어때요? 일단 한 달 살면서 방법을 찾으면 될 텐데.”
“천천히 생각해 볼게요.”
“네!”
맨디는 제온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사막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번잡한 곳을 원하지 않는 모양이구나.’
어쩐지 제온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맨디는 제온을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고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어찌나 승차감이 좋지 않은지 바닥의 진동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래도 감지덕지했다.
이대로 아무 일 없이 간다면 저녁 무렵에는 네오 서울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맨디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 잠을 자려는 것이다.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깊은 잠이 들었다.
잠이 든 지 얼마나 됐는지 몰랐다.
두두두두!
맨디는 엉덩이와 등 쪽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진동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떴다.
‘뭐지?’
버스 진동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강했다.
그때 제온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일어났군요. 그렇지 않아도 깨우려고 했는데.”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저기 봐요.”
제온이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맨디가 눈을 크게 뜨고 제온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하지만 저 멀리 지평선만 펼쳐져 있을 뿐 딱히 이상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제온이 말했다.
“오 분만 기다리면 보일 거예요.”
“네?”
제온이 허튼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란 것을 잘 알기에 맨디는 인내심을 가지고 창밖을 바라봤다.
제온이 말한 대로 오 분이 지났을 때 맨디는 엉덩이와 등 쪽에서 느껴지던 진동의 실체를 알 수 있었다.
“저건?”
지평선 너머에서 엄청난 양의 먼지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먼지구름은 급속도로 장갑 버스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제온이 말했다.
“마수예요. 아무래도 화염 늑대 무리 같군요.”
“제기랄!”
맨디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온의 말대로 정말 저 먼지구름이 화염 늑대 무리가 일으키는 것이 맞다면 장갑 버스가 위험했다.
화염 늑대는 사막의 약탈자였다.
놈들은 늑대와 하이에나의 습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한번 먹이를 노리면 끝까지 따라붙고, 죽을 때까지 달라붙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놈들이 위험한 것은 무리 지어 몰려다닌다는 것이다.
일단 먹이를 포획하면 뼈까지 씹어먹기에 놈들에게 잡히면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때문에 고위 각성자들조차 상대하기 꺼리는 마수가 바로 화염 늑대들이다.
맨디가 소리쳤다.
“화염 늑대 무리다. 어서 대비해.”
그녀의 외침에 버스 지붕 위에 한가하게 늘어져 있던 각성자들이 놀라 일어났다.
“화염 늑대라고?”
“씨발!”
“진짜다. 화염 늑대 무리가 달려오고 있어.”
각성자들도 금방 화염 늑대 무리를 발견했다.
저 멀리서 화염 늑대 무리가 정말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너무 많아 미처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 정도면 족히 수천 마리는 될 듯싶었다.
이 정도 규모의 화염 늑대 무리를 보는 것은 맨디도 처음이었다.
광기마저 느껴지는 화염 늑대 무리의 질주에 각성자들이 절로 공포를 드러냈다.
“미친!”
“전속력으로 달려.”
“씨발!”
위험을 감지한 버스 기사가 풀 액셀을 밟았다.
장갑 버스는 엄청난 속도로 사막을 질주했다. 하지만 화염 늑대 무리와의 거리는 전혀 벌려지지 않고, 오히려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제온이 중얼거렸다.
“곧 따라잡히겠군.”
일단 장갑 버스를 먹잇감으로 찍은 이상 화염 늑대 무리가 스스로 포기할 일은 없을 것이다.
제온도 상대해 본 적이 있기에 얼마나 놈들이 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제기랄! 오랜만에 집에 가는데 마수라니?”
“으으!”
광부들이 패닉 상태에 빠지자 맨디가 소리쳤다.
“살고 싶으면 모두 곡괭이를 들어. 고개를 들이미는 놈들을 후려치란 말이야.”
그녀의 외침에도 광부들은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순간 맨디의 눈빛이 바뀌었다.
“쳇! 쓸모없는 것들.”
맨디의 또 다른 인격체인 엘로이가 튀어나왔다.
그녀가 제온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맨디에게 뭐라 하지 마. 지금은 위기 상황이니까. 꼬우면 당신이 나서라고.”
“누가 뭐라고 했나요?”
“쳇! 재수 없어.”
엘로이가 입술을 삐죽이며 허리 뒤쪽에 차고 있던 미친 구미호를 꺼내 들었다.
크와아앙!
그 순간 화염 늑대의 포효가 크게 들려왔다.
어느새 화염 늑대 무리가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화염 늑대의 주둥이와 꼬리에선 화염이 일렁이고 있었다. 화염 늑대라는 이름도 그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장갑 버스 후미까지 접근한 화염 늑대들이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자 화염 줄기가 날아왔다.
“막앗!”
“찻!”
장갑 버스 지붕 위에 타고 있던 각성자들이 스킬을 펼쳐 화염 늑대의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화염 늑대의 수가 워낙 많아 모든 공격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장갑 버스에 화염이 작렬했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장갑 버스가 크게 흔들렸다.
그나마 전체에 두꺼운 장갑을 덕지덕지 붙였기에 견뎠지, 보통 버스였다면 엄청난 고온에 벌써 녹아내렸을 것이다.
“이 개새끼들이…….”
“죽어!”
각성자들이 스킬을 퍼부었다.
깨갱!
크헝!
스킬에 격중당한 화염 늑대들이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하지만 빈자리가 생기기 무섭게 다른 화염 늑대들이 채웠다.
그때 엘로이가 버스 위로 올라왔다.
“개새끼들! 모조리 죽여 주마.”
그녀는 지체하지 않고 미친 구미호를 휘둘렀다.
콰아앙!
그녀의 공격 한 방에 수십 마리의 화염 늑대들이 죽어 나갔다. 하지만 워낙 화염 늑대들이 많아 티가 나지 않았다.
“제기랄! 화염 늑대들이 이렇게 무리 지을 때까지 네오 서울에선 뭐 한 거야? 이 병신 새끼들!”
엘로이가 네오 서울을 욕하면서도 미쳐 날뛰었다. 하지만 그녀와 각성자들만으로 모든 화염 늑대를 막아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화염 늑대들이 장갑 버스에 달라붙었다.
놈들은 조그만 창으로 머리를 집어넣고는 사람들을 물려고 했다. 실제로 몇몇 사람들은 어떻게 반항할 새도 없이 화염 늑대에게 물려 사라졌다.
“크악!”
“살려 줘!”
창밖에서 그들의 비명이 들리다가 금세 사라졌다.
제온이 앉아 있는 자리에도 화염 늑대의 머리가 들어왔다.
“쯧!”
쾅!
제온이 혀를 차며 가볍게 주먹을 휘둘렀다.
힘겹게 장갑 버스에 달라붙었던 화염 늑대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제온이 창밖을 바라봤다.
저 멀리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존재가 보였다.
화염 늑대 열 마리를 합쳐 놓은 것처럼 거대한 마수. 화염 늑대 우두머리가 분명했다.
놈은 다른 화염 늑대들과 차원이 다른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우두머리가 발산하는 가공할 열기에 일대의 공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놈의 어깨 위에서 피어나는 아지랑이가 그 사실을 증명해 줬다.
아우우우!
놈이 피어를 발산했다.
피어는 공간을 격하고 제온이 타고 있는 버스를 뒤흔들었다.
“크윽!”
“억!”
버스 안에 타고 있던 광부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들의 고막이 터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개새끼! 귀 아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