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64)
64화
네오 서울은 마치 섬처럼 사막이라는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었다.
그 옛날 존재했던 라스베이거스처럼 사막 한가운데 존재하는 도시가 바로 네오 서울이었다.
네오 서울이 특별한 것은 바로 산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옛 서울의 허파 역할을 하던 북한산이 무슨 이유에선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덕분에 네오 서울 안쪽에 사는 시민들은 북한산의 녹음과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북쪽으로는 북한산을 방벽 삼고, 남쪽으로는 거대한 성벽을 세워 도시를 보호했다.
이렇게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네오 서울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마법과 과학이 결합하면서 예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수백 층짜리 고층 빌딩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이는 네오 서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안전한 땅은 한정되어 있는데, 사람들은 계속 늘어났기 때문이다. 대멸망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안전한 곳을 찾아 네오 서울로 몰려들었다.
그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지하로 공간을 확장하고, 하늘을 향해 건물을 끝없이 올렸다. 그래도 사람들을 수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네오 서울은 문을 걸어 잠갔다.
이 이상 사람들을 받아들이게 되면 도시를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렇게 네오 서울은 폐쇄되었지만, 생존자들은 계속 모여들었다. 그들은 네오 서울의 성벽 밑에 거처를 마련했다.
처음엔 마을 규모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네오 서울에 못지않은 규모로 커졌다.
기존에 있던 집에 또 집을 올리고, 그 위에 다시 증축하면서 빈민가는 그 옛날 홍콩의 구룡성채처럼 변해 갔다.
개미굴을 방불케 하는 미로와 제멋대로 쌓아 올린 건축물 때문에 대낮에도 햇볕이 제대로 들지 않을 정도였다.
무슨 이유에선지 네오 서울에는 마수들이 얼씬도 하지 않았고, 덕분에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빈민가는 네오 서울 못지않은 규모로 커졌다.
네오 서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빈민가의 중앙을 관통하는 도로를 거쳐야 했다.
빈민가 사람들은 이 도로를 천국의 길이라 불렀다.
네오 서울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국의 길은 이름처럼 아름답거나 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처절하고, 음산했다.
천국의 길을 따라 네오 서울로 들어가려던 자들이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천국의 길을 통해 네오 서울에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네오 서울 시민이거나, 통행권을 발부받은 사람들이었다.
그 외의 사람들은 성문에 접근 즉시 공격받는다.
드르릉!
천국의 길에 넝마처럼 너덜너덜해진 장갑 버스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르릉!
굴러가는 것이 용할 정도로 망가진 장갑 버스의 엔진이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사람처럼 가쁜 숨소리를 토해 냈다.
천국의 길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장갑 버스를 바라봤다.
장갑 버스가 이 정도까지 망가져서 돌아온 것은 오랜만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 장갑 버스가 멈추고, 누군가 내렸다.
검붉은 로브를 눌러쓴 남자였다.
남자는 버스 안의 누군가 몇 마디 대화하더니 뒤돌아섰다.
버스가 네오 서울로 떠나고, 혼자 남은 남자는 천국의 길을 벗어나 빈민가로 들어왔다.
“저 새끼 뭐야?”
“저것 좀 털면 돈이 나올 것 같은데?”
빈민가 한쪽에 모여 있던 남자들이 눈빛을 교환했다.
남자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불량한 눈빛과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건들거리며 장갑 버스에서 내린 남자에게 다가갔다.
“이봐!”
“잠깐 대화 좀 할까?”
남자들은 장갑 버스에서 내린 남자를 포위한 채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말이 대화였지, 사실은 협박하는 분위기였다.
“무슨 일입니까? 난 그쪽들과 대화할 생각이 없는데요.”
“건방지게. 너, 마정석 광산에서 돌아온 거지? 얼마 벌었어?”
“번 돈 다 내놓고 가면 보내 줄게. 흐흐!”
남자들이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꺼내 상대에게 겨눴다.
그때 장갑 버스에서 내린 남자가 깊이 눌러쓰고 있던 모자를 뒤로 넘겼다. 그러자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어깨까지 늘어트린 긴 머리카락과 햇볕에 갈색으로 그을린 피부. 제법 잘생긴 외모에 싱그러운 미소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검은 보석을 박아넣은 것처럼 깊은 눈동자였다.
그는 바로 제온이었다.
제온이 웃으며 말했다.
“돌아오자마자 환대라니. 역시 고향이 최고군요.”
“뭐라는 거야?”
“이 새끼가 대가리에 총 맞았나?”
남자들의 인상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보통 사람에겐 큰 위협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제온에겐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진짜 고향에 돌아온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빈민가는 이런 곳이었다.
법도 없고, 질서도 없다.
힘 있는 놈이 모든 것을 빼앗고, 약자는 모든 것을 빼앗겨도 억울함을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강한 자가 모든 것을 가지는 야만의 세계.
빈민가는 그런 곳이었다.
아주 오래전 이곳에서 제온은 가장 밑바닥 존재였다.
숨을 크게 쉴 수도 없었고, 강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서도 안 됐다. 그렇게 버러지처럼 십팔 년을 이곳에서 살았다.
그때는 이곳이 그렇게 지옥처럼 느껴질 수 없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돌아와 이렇게 환대를 받자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칼을 든 남자들이 더욱 인상을 썼다.
“이 개새끼가 실실 쪼개?”
“그냥 죽이고 다 빼앗자.”
남자들은 그대로 제온의 복부에 칼을 쑤셔 박았다.
능숙하게 칼질하는 것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칼은 제온의 몸에 상처 하나 남기지 못했다.
칼날이 로브에 막힌 것이다.
“뭐야? 아이템?”
“각……성자?”
남자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제아무리 세상 무서운 것 없는 밑바닥 인생이라지만, 각성자 무서운 것은 안다.
최하급인 F급 각성자만 해도 새끼손가락 하나로 그들을 전멸시킬 수 있었다.
‘씨발! 좆 됐다.’
‘튀자!’
남자들이 눈빛을 교환할 때였다.
제온이 바로 앞에 있던 남자의 정강이를 살짝 걷어찼다. 하지만 그 여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퍽!
“크악!”
남자의 정강이가 부러지며 기괴한 방향으로 꺾인 것이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남자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도주했다.
그들에게 동료에 대한 의리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채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모두 제온에게 따라잡혔다.
제온은 마치 분신술을 펼친 것처럼 순식간에 남자들을 모조로 따라잡아 일격을 날렸다.
“크악!”
“켁!”
남자들의 비명이 거리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와 보지 않았다.
남자들이 부러진 다리와 팔을 붙잡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제온이 그중 한 사람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자 남자가 고통도 잊고 사정했다.
“으으! 사, 살려 주십시오.”
“고향에 돌아온 첫날인데, 함부로 사람을 죽일 수야 없죠.”
“감사합니다.”
“대신 있는 거 다 내놔요.”
“네?”
“못 들었어요? 가진 거 다 내놓으라구요.”
제온의 협박에 남자가 고통도 잊고 멍하니 바라봤다.
“괜히 숨길 생각하지 마요? 뒤져서 나오면 다른 팔도 부러트릴 테니까.”
“크윽!”
결국 남자는 눈물 콧물 흘리며 가진 것을 모두 다 제온에게 줬다.
제온은 그런 식으로 다른 남자들에게서도 가진 것을 모두 빼앗았다.
죄책감 따윈 없었다.
이곳에선 당연한 일이었다.
상대의 수준을 알아보지 못하고 덤볐으니 죽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목숨은 빼앗지 않았으니 알아서 잘 살아갈 것이다.
제온은 남자들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빈민가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햇빛도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과 힘없이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전력이 부족해 대다수의 집에 불이 꺼져 있었다.
불 꺼진 집 창문으로 자신을 훔쳐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른 냄새를 귀신같이 맡는 재주가 있었다.
빈민가 특유의 꿉꿉한 냄새가 배 있지 않은 사람들을 알아보는 것이다.
제온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빈민가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
그래서 경계하는 것이다.
제온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미 이럴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제온은 고향의 분위기를 만끽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한 곳은 빈민가 서쪽 구역 신촌이었다.
네오 서울에는 옛 서울의 지명을 그대로 이어받은 곳이 다수 있었는데, 신촌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름만 똑같을 뿐 예전의 신촌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신촌의 또 다른 이름은 개미굴이었다.
개미굴은 빈민가 최악의 지역 중 하나였다.
빈민가에서도 막장 인생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빈민가의 사람들조차 이곳에는 잘 접근하지 않았다.
이곳이 제온의 고향이었다.
태어난 것까진 모르겠지만, 기억이 있는 순간부터 늘 이곳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제온은 한 허름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삼십 층이 넘는 높은 건물이었다.
도대체 증축을 몇 번이나 한 건지 몰라도 건물 외벽이 층마다 달라 누더기를 연상시켰다.
네오 서울 초창기에 지어져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오래된 건물. 이곳이 바로 제온이 살던 곳이었다.
잠시 건물을 올려다보던 제온이 안으로 들어갔다.
삼십 층이 넘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제온은 계단을 걸어 위로 올라갔다.
한 계단, 한 계단 걸어 도착한 곳은 십팔 층이었다.
예전에는 이 계단을 올라다니면서 욕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호흡 하나 가빠지지 않았다.
마침내 목적했던 층에 도착한 제온이 복도 끝 방으로 걸어갔다.
1820호.
예전에 제온이 살던 곳이었다.
이곳에 살던 중 우연히 마정석을 얻었다.
마정석을 노리고 침입한 이웃집 주민을 죽였고, 그 때문에 마정석 광산으로 도주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버렸지만, 그래도 이곳이 제온의 집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제온이 손잡이를 돌렸다. 하지만 돌아가지 않았다.
안에서부터 잠겨 있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문을 두들겼다.
쾅쾅!
“뭐야? 어떤 새끼야?”
잠시 후 안에서 누군가 씩씩거리며 문을 열었다.
이 미터가 넘는 거구에 온갖 문신으로 도배한 남자였다.
그가 인상을 쓰며 제온을 노려봤다.
“애새끼가 겁도 없이 남의 집 문은 왜 두들기는 거야?”
“그러는 댁은 남의 집에서 뭐 하는 겁니까?”
“뭐?”
“여긴 내가 살던 집입니다.”
“미친 새끼가 무슨 헛소리야? 개미굴에 네 집, 내 집이 어딨어? 빈집 있으면 들어와 살면 그만이지.”
거구의 남자가 인상을 썼다.
그가 이 집을 차지한 것은 불과 삼 년 전이었다.
그 전에 살던 사람은 마약을 밀매하다가 죽임을 당했다.
그 후 남자가 이곳에 들어와 쭉 살고 있었다.
제온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이렇게 집주인이 돌아왔으니 최대한 빨리 퇴거해 줬으면 좋겠네요.”
“이 개새끼가…….”
갑자기 남자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제온의 전신을 훑어봤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고, 눈에는 음탕한 빛이 떠올라 있었다.
“너, 좀 생겼는데. 알았어! 그냥 들어와.”
“집을 비워 주는 겁니까?”
“일단 들어오라니까.”
남자가 제온의 손을 잡아끈 후 방문을 잠갔다.
그가 문을 가로막고 말했다.
“흐흐! 바지 까고 뒤돌아서라. 그럼 살려 줄 테니까.”
“쯧! 문을 고쳐야겠군.”
“뭐?”
쾅!
그 순간 제온의 주먹이 남자의 복부에 작렬했다.
남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밖으로 튕겨 나갔다.
그 때문에 경첩이 부서져 문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제온은 그나마 문이 완전히 부서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는 배를 부여잡은 채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 냈다.
숨쉬는 것이 한결 편해지자 남자가 입을 닦으며 일어섰다.
“너, 죽었어. 내가 누군지 알아?”
남자가 씩씩거리며 다가오려는 순간 제온의 신형이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바로 남자의 옆이었다.
남자의 시력으로 따라갈 수 없는 엄청난 속도로 제온이 이동한 것이다.
제온은 남자의 머리를 잡아 그대로 벽에 처박았다.
쾅!
폭음과 함께 벽이 흔들리고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끄으으!”
엄청난 고통에 남자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신음만 흘렸다.
제온이 조용히 말했다.
“당신의 정체 따위 하나도 궁금하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것은 당신이 이대로 집을 비워 주는 것뿐이에요.”
“으으!”
“대답!”
“네!”
그제야 제온이 남자를 풀어 줬다.
남자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제온이 웃으며 뒤돌아섰다.
그가 위태롭게 매달린 문을 닫으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집에 돌아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