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65)
65화
집 내부는 겉에서 보는 것보다 꽤 넓었다.
제온의 집이 빈민가가 형성된 초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초기에 지어진 집은 낡은 대신 그만큼 넓었다.
최근에 만들어진 집은 어른 두어 명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비좁았다. 집을 지을 수 있는 대지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제온이 도주한 동안 집 주인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몰랐다. 그렇게 바뀐 주인들이 집 관리를 제대로 했을 리 없었다.
집 안에는 끔찍한 냄새가 가득 배어 있었다.
마약 냄새, 피비린내, 그 외에도 수많은 악취가 뒤섞여 후각을 자극했다.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지독한 냄새를 빼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제온은 일단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켰다. 그래도 냄새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제온은 아공간에서 외뿔 큰사슴의 사향낭을 꺼냈다.
외뿔 큰사슴은 체고만 삼 미터가 넘는 마수였다. 놈의 생식기 근처엔 특이한 향기를 내는 기관인 사향낭이 존재했다.
외뿔 큰사슴의 사향낭을 조금 잘라 물속에 넣어두면 눈에 보이지 않는 기체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온갖 잡냄새를 없애는 데 큰 효과가 있었다.
제온은 세숫대야에 물을 가득 받아 사향낭 삼 분의 일 정도를 넣었다. 그러자 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기체가 발생했다.
기체가 발생하는 동안 제온은 집안의 집기를 모두 아공간에 집어 넣었다.
온갖 오물이 묻고 해진 가구들은 재활용할 수 없었다. 차라리 버리고, 새로운 물건을 들이는 게 나았다.
다행히 제온의 아공간엔 그동안 사막을 돌아다니면서 얻은 잡동사니들이 꽤 많았다.
그중 하나가 레비아탄을 사냥한 호수 근처에서 얻은 흡혈목이다.
흡혈목은 나무이면서 마수이기도 했다.
근처에 지나가는 생명체가 있으면 가지를 뻗어 옭아맨 후 흡혈했다.
일단 흡혈목에 걸리면 죽을 때까지 피를 빨려야 했다.
제온은 흡혈목을 죽이고 본체인 나무를 꽤 챙겨 뒀다.
나무는 그 자체만으로도 귀한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흡혈목으로 뼈대를 세우고, 모래 아귀 가죽을 덧씌우자 금세 그럴듯한 침대와 소파가 만들어졌다.
남은 흡혈목과 모래 아귀 가죽으로는 부서진 문을 수리했다.
그사이 집 안의 공기가 모두 정화됐다.
코를 괴롭히던 지독한 냄새는 모두 사라지고 청량한 향기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좋군!”
아직 수리할 것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이 정도면 당분간 아무 생각하지 않고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온은 직접 만든 침대에 누웠다.
제법 푹신한 것이 잠이 솔솔 왔다.
제온은 수마에 저항하지 않고 몸을 맡겼다.
그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잤는지 몰랐다.
제온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바깥이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낮에는 쥐 죽은 듯 고요하던 빈민가가 밤이 되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건너편 건물 외벽 전광판에 불이 들어오는 것을 시작으로 빈민가 곳곳의 전광판이 허름한 뒷골목을 환하게 밝혔다.
총과 칼이 교차하는 모양이 그려진 전광판은 그곳에 무기상이 있다는 의미였고, 야한 그림이 그려진 빨간 전광판은 사창가가 들어서 있다는 의미였다.
유독 환하게 불을 밝힌 건물은 카지노였다.
거리엔 낮에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보였다.
대놓고 마약을 거래하는 약쟁이들, 싸구려 술집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는 사람들, 오가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창녀들.
쾅!
몇 블록 떨어진 거리에서는 큰 싸움이 벌어졌는지 폭음이 들려왔다. 그런데도 그 누구의 얼굴에서도 공포나 두려움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는 이런 일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빈민가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사람이 사는 곳엔 이권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이곳은 무려 천만 명이나 모여 사는 인구 초밀집 지역. 당연히 이권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었다.
이권을 쟁취하기 위한 조직들의 전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벌어졌다.
이곳에서 마수는 위협 대상이 아니다.
빈민가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는 바로 인간 그 자체였다.
그때였다.
쾅쾅!
누군가 제온의 집 문을 거칠게 두들기며 소리쳤다.
“안에 있는 것 다 알아. 어서 나와! 개새끼야!”
제온은 목소리의 주인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그가 내쫓은 남자였다.
남자는 혼자가 아니었다.
십여 명이 넘는 무리를 끌고 왔다.
남자는 레드 스컬파라는 조직에 속해 있었다.
레드 스컬파는 신촌을 기반으로 삼는 소규모 범죄 조직이었다.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독종들이 모여 있어 만만치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레드 스컬파의 두목은 조상혁.
무투계 F급 각성자였다.
조상혁은 팔짱을 낀 채 1820호를 바라봤다.
부하들이 거칠게 두드리는 데도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분명 겉보기엔 툭 치면 부서질 것 같은데 말이다.
조상혁이 남자에게 물었다.
“너, 문을 보강했냐? 왜 이래?”
“에이! 형님. 제가 그럴 돈이 어디 있습니까? 그냥 원래 있던 문입니다.”
남자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부술 각오로 문을 두들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은 멀쩡했고, 남자는 제 풀에 지쳐 헐떡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렇게 두들겨도 끄떡없던 문이 소리도 없이 열렸다. 그리고 제온이 모습을 드러냈다.
“뭡니까?”
“이 새끼입니다. 이 새끼가 다짜고짜 쳐들어와 자기 집이라고 저를 두들겨 팼습니다.”
남자가 제온을 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조상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고자질하는 남자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의 조직원이었다.
조직원이 맞고 왔는데 상대를 그냥 놔두면 위신이 살지 않는다.
자신과 조직원을 건드리면 피를 본다는 사실을 알려 줘야 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를 우습게 보지 못한다.
조상혁이 앞으로 나섰다.
“너, 뭐냐? 뭔데 우리 애를 건드린 거냐?”
“집주인입니다만.”
“뭐?”
“원래 제가 살던 곳에 무단 거주하더군요. 그래서 쫓아냈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냐?”
조상혁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제온은 진지했다.
“왜 말이 안 됩니까? 원주인이 돌아왔으면 불법 점거자가 당연히 나가 줘야지요.”
“여기가 네 집이라는 증거 있냐?”
“아뇨.”
“너, 지금 나한테 말장난하는 거냐? 증거도 없으면서 네 집이라고?”
“네!”
“이 개새끼가 정말…….”
결국 조상혁의 화가 폭발했다.
그의 분노에 동생들이 먼저 나섰다.
“이 새끼 무릎 꿇려.”
“좆만 한 새끼가…….”
그들이 우락부락한 근육을 부풀리며 제온을 포위할 때였다.
퍼버버벅!
갑자기 강렬한 타격음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
이어 제온을 포위했던 남자들이 마치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그들의 눈동자는 돌아가 있었고, 입에는 거품을 물고 있었다.
“너, 각성자였냐?”
조상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평범한 인간이 건장한 남자 십여 명을 단숨에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제온이 어깨를 으쓱했다.
“보다시피…….”
“하! 씨발. 쥐꼬리만 한 능력 믿고 그렇게 기고만장했구나?”
“기고만장한 적 없는데요?”
“너, 등급이 뭐야? 계급장 까, 개새끼야!”
“제가 계급장 까면 당신은 죽어요.”
“뭐?”
“죽는다고요.”
“이 새끼가 허풍을…….”
“허풍 같아요?”
제온이 웃었다.
순간 조상혁은 온몸이 으스스해지는 것을 느꼈다.
생명의 위기를 느낄 때나 나타나는 생체 반응이었다.
이런 느낌은 얼마 전 상대 조직과 목숨을 건 전쟁 이후 처음이었다.
조상혁은 본능적으로 제온의 수준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물러서고 싶었다.
하지만 물러날 수 없었다.
그에게도 자존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좆 까!”
조상혁이 커다란 주먹을 휘둘렀다.
무투계 각성자답게 그의 주먹엔 강력한 힘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제온의 눈엔 너무 미약해 보였다.
조상혁의 주먹을 피한 제온이 그의 가슴에 가벼운 일격을 날렸다. 하지만 그 여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콰아앙!
“꾸웨에엑!”
조상혁이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그런 그의 가슴은 움푹 패 있었다.
제온이 사정을 봐주지 않았으면 즉사했을 정도로 큰 상처였다.
그나마 각성자라서 살아 있는 거였다.
조상혁은 제온의 주먹 한 방에 온몸이 해체되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근육이 모두 풀려 나가고 내장이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
눈에 초점이 사라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감각이 돌아온 것은 한참 후였다.
“쿨럭!”
피를 거의 한 바가지 토하자 몸의 마비가 풀렸다.
그때 그의 눈에 제온이 보였다.
제온이 쪼그려 앉아 그와 시선을 맞춘 것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가 지그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제온의 눈을 마주 보는 순간 조상혁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제온의 눈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그의 뇌가 녹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격의 차이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조상혁은 그제야 깨달았다.
상대가 자신 따위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고위 각성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D급? 아니, 어쩌면 C급 이상일지도 몰라.’
그가 상상할 수 있는 최강의 등급이 C급이었다.
F급만 돼도 그처럼 조그만 조직을 만들 수 있었고, E급의 각성자는 조그만 조직 여러 개를 휘하에 두고 있다.
D급 이상부터는 네오 서울에 스카우트되어 들어갈 수도 있다.
조상혁의 최종 목표도 네오 서울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 거지 같은 곳을 떠나 화려한 문명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모든 빈민가 사람들의 꿈이었다.
제온은 충분히 네오 서울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존재였다. 그런 자가 왜 이런 거지 같은 곳에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자신이 대적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은 분명했다.
제온이 물었다.
“아직도 제가 이 집에 사는 것에 문제가 있나요?”
“무, 뭉제 업슴미다.”
“그럴 줄 알았어요. 당신이 무얼 하든 상관하지 않을게요. 다만 내가 조용히 살 수 있도록 협조만 해 주면 돼요. 약속할 수 있죠?”
“양속함미다.”
“그럼 됐어요.”
제온이 웃으며 일어섰다.
조상혁 정도는 새끼손가락만 움직여도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어차피 조상혁을 죽여 봐야 다른 놈들이 바퀴벌레처럼 나타나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차라리 자신의 무서움을 알고 있는 조상혁을 살려 두고 일대를 관리하게 하는 것이 편했다.
잠시 후 기력을 찾은 조상혁과 부하들이 일어났다.
제온이 자리를 뜨려는 그들에게 말했다.
“아무에게도 오늘 일은 떠벌리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입이 근질거릴 때면 이걸 떠올려요.”
순간 제온의 몸 주위에 커다란 불덩이가 만들어졌다.
“헉!”
조상혁과 부하들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떠졌다.
‘마법계, 그것도 화염 계열 각성자라니.’
같은 등급이라도 무투계보다 귀한 취급을 받는 것이 마법계 각성자다. 마법의 종류에 따라 또 세분되지만, 그중에서도 강한 축에 속하는 것이 화염 계열이다.
전격 계열과 더불어 최강의 파괴력을 자랑하는 마법이 바로 화염 계열이다.
그 때문에 화염 계열 마법 각성자는 네오 서울에서도 귀한 취급을 받는다.
“절때 입을 다물겡슴미다. 걱정하지 마십숑.”
조상혁이 뭉개진 발음으로 대답했다. 엄청난 충격에 마비된 혀가 아직도 풀리지 않은 것이다.
그제야 제온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불덩이를 없앴다.
“바쁠 텐데 주소 하나만 남기고 가 보세요.”
“주소용?”
“남기기 싫어요?”
“아닝니다.”
조상혁이 급히 주소를 적었다.
제온이 주소를 확인하며 말했다.
“이제 가요.”
“감사함미다.”
조상혁과 부하들은 제온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급히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밖으로 나온 조상혁이 부하 한 명을 마구 패기 시작했다. 그들을 데려온 부하였다.
“이 개새끼양! 뭐, 별겅 아닝 새끼? 저게 별거 아냥?”
“죄송합니다. 으악!”
“너 때문에 우리 모두 뒈질 뻔했엉. 근데 뭐?”
“잘못했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조상혁은 애원하는 부하를 잘근잘근 밟았다.
제온에게 받은 수모를 모두 부하에게 푼 것이다.
한때 제온의 집주인이었던 부하는 처참하게 짓이겨진 채 정신을 잃었다.
조상혁이 씩씩거리며 다른 부하들을 둘러봤다.
“오능 일 새어 나가지 않게 입 단쇽해. 밖에 알려지명 네놈들 죽고 나도 죽는 거야.”
“네!”
“알겠습니다.”
부하들이 급히 대답했다.
조상혁이 일그러진 얼굴로 제온이 사는 건물을 바라봤다.
‘씨팔! 하필 내 구역에 저런 괴물이 기어들어 와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