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66)
66화
제온이 집을 나왔다.
무려 십팔 층이나 걸어 내려와야 했지만, 제온에겐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집에서 본 것처럼 거리엔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녔다.
낮 동안 잠들어 있던 도시가 밤이 되자 깨어난 것 같았다.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던 거리엔 좌판이 깔리고 시장이 들어섰다.
어떤 이들은 식량을 팔았고, 어떤 이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수의 고기를 팔았다.
개중에는 빈민가에서 찾아보기 힘든 첨단 제품을 파는 이들도 있었다. 모두 네오 서울에서 빼돌린 것이 분명했다.
음습한 골목에선 마약으로 보이는 물건을 거래하는 자들도 보였다. 제온은 그 모든 광경을 눈에 담았다.
팔 년 전 모습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변한 것은 오직 제온뿐인 것 같았다.
빈민가를 떠날 때 제온은 어리고 힘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였다.
빈민가 사람들이 제온을 힐끗 바라봤다.
자신들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제온의 모습에 이질감을 느낀 것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제온이 자신들과 다른 부류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경계했다.
제온도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알아차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콜로니에 갔을 때도 이런 시선은 많이 받아 봤기 때문이다.
제온은 이방인이었다.
어디를 가도 환영을 받지 못했다.
고향인 빈민가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났다.
사막이나 다른 콜로니에서는 한 번도 맡아 보지 못한 냄새였다.
제온은 냄새가 나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가 도착한 곳에서는 사람들이 좌판을 깔고 음식을 팔고 있었다.
제온은 그중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가 하고많은 좌판 중에서 그곳을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가장 맛있는 냄새가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등을 돌린 채 노인이 고기를 굽고 있었다.
손님이 온 것을 알아차렸는지 노인이 뒤돌아섰다.
얼마나 나이를 먹었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주름살과 수염, 그리고 한쪽이 금이 간 안경이 인상적이었다.
노인이 제온에게 말했다.
“식사하러 왔냐?”
“…….”
제온은 대답하지 않고 뚫어져라 노인을 바라봤다.
어딘지 모르게 노인의 얼굴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제온은 노인의 정체를 기억해 냈다.
“혹시 클……렉시 영감?”
“나를 아냐?”
노인이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제온을 바라봤다.
이 거리에서도 그의 진짜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오늘 처음 보는 남자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당연히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네놈은 누군데 내 이름을 아는 거냐?”
“마정석 광산에서 보이지 않아 이상하다 했는데, 여기서 장사하고 있었군요.”
“아직도 네놈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안경 너머 클렉시 영감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허름한 좌판에서 음식 장사를 하는 노인의 것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제온이 웃으며 말했다.
“모습은 그대로인 것 같은데, 기억력은 감퇴한 모양이군요. 날 알아보지 못하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네놈 낯짝이 익숙하구나.”
클렉시 영감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기억을 더듬었다.
한참을 노력한 끝에 클렉시는 기어이 제온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마정석 광산이라? 그러고 보니 너 그때 그 꼬마구나.”
“아직 기억하나 보군요.”
“네놈이 좀 별났어야지. 꼬맹이 주제에 마정석을 가지고 있지 않나, 광산에 들어간 지 하루 만에 실종되지 않나? 그래서 뒈졌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살아 있었구나. 어떻게 된 거냐?”
“뭐가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냔 말이다.”
클렉시 영감의 눈은 호기심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제온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찌어찌 지냈습니다.”
“그러니까 어찌 지냈냔 말이다?”
“그게 뭐 중요합니까? 이렇게 살아서 다시 영감님을 만났다는 게 중요하죠.”
“허! 그놈 참 능글맞아졌구나. 그때는 순진했던 것 같은데.”
“비싼 수업료를 치렀으니까요.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됐다.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말거라. 누가 궁금하다냐?”
클렉시 영감이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제온은 흔들리지 않았다.
제온은 클렉시 영감이 얼마나 음흉하고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다.
상대는 거친 마정석 광산에서 평생을 굴러먹은 노인이었다. 거친 광부와 각성자 들을 상대해 온 노인을 만만하게 봤다간 큰코다친다.
“배고픕니다. 먹을 것 좀 주십시오.”
“돈은 가지고 있느냐?”
“음식값을 치를 정도는 됩니다.”
“그래?”
클렉시 영감은 굽고 있던 고기를 접시에 담아 줬다.
제온이 젓가락을 들며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
네오 서울에 들어온 후 처음 먹는 음식이었다.
제온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기 한 점을 입안에 넣었다.
입안에서 고기가 살살 녹았다.
어떻게 양념했는지 모르지만, 입안에서 맛이 폭발했다.
제온은 인간의 문명을 나누는 기준이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문명이 발전한 곳은 음식도 발전하지만, 낙후된 곳의 음식은 원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제온이 이제까지 들른 콜로니 대부분이 중세 수준의 문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수의 위협에서 살아남기 급급할 뿐 문명을 발전시킬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네오 서울은 특별했다.
이렇게 빈민가에서조차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제온은 고기를 한 점씩 음미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클렉시 영감이 술병을 하나 꺼냈다.
“술도 마실 테냐?”
“됐습니다.”
“왜?”
“그냥 입에 맞지 않더라구요.”
“흐흐! 키만 컸지, 입맛은 어린애구나. 자고로 어른이라면 술 한잔 정도는 할 줄 알아야지.”
“됐습니다. 술이 기준이라면 어른 안 되고 말렵니다.”
“고놈 참 능글맞아졌구나.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을꼬?”
클렉시 영감이 마치 해부하듯 제온의 전신을 샅샅이 훑어봤다. 하지만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제온은 정말 맛있게 고기를 먹었다.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만든 당사자인 클렉시 영감도 먹고 싶어졌을 정도였다.
“빈민가엔 언제 들어온 거냐?”
“오늘 낮에 들어왔습니다.”
“잘 곳은 있고?”
“다행히 옛날 집이 그대로 남아 있더라구요.”
“그래? 그것참 신기하구나. 빈집이 절대 있을 수 없는 게 이곳 생리인데.”
“제가 운이 좋은 모양입니다.”
“그 운 나에게도 나눠 주려무나.”
“왜요? 안 좋은 일 있습니까?”
“꼭 안 좋은 일이 있어야만 운이 필요한 게 아니지. 그냥 이 나이가 되면 운을 기대하게 돼. 더 오래 살 수 있게, 더 돈을 벌 수 있게 말이야.”
“그렇게 오래 살고도 더 살고 싶으신 겁니까?”
제온의 말에 클렉시 영감이 활짝 웃었다. 그러자 얼마 남지 않은 이빨들이 보였다.
“이 친구야! 살면 살수록 더 오래 살고 싶어진다고. 할 수만 있다면 드래곤과 거래를 해서라도 영생을 얻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야.”
“드래곤이 영생도 줍니까?”
“혹시 아나? 놈의 피를 마시면 영원히 살지. 그래서 저 벽 너머의 놈들도 그렇게 집착하는지 모르지.”
클렉시 영감의 시선이 저 멀리 보이는 장벽으로 향했다.
네오 서울과 빈민가를 가르는 장벽이었다.
저 장벽 하나로 시민과 빈민이 나누어진다.
안쪽에 있는 사람들은 온갖 문명의 혜택을 받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온갖 위험에 노출되어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간다.
그 모든 것이 저 장벽 하나 차이로 나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저 벽을 절망의 벽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평범한 이들은 평생을 노력해도 절대 넘을 수 없는 벽.
오직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만이 극히 드문 확률로 저 벽을 넘을 수 있다.
제온이 물었다.
“그들도 드래곤의 피를 탐냅니까?”
“어디 그들뿐이겠나? 흐흐!”
“쯧!”
제온이 혀를 찼다.
드래곤도 생명체였다.
한낱 생명체의 피가 영생을 줄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웃겼다.
클렉시 영감이 갑자기 눈을 빛냈다.
“그 로브 꽤 좋아 보이는군. 어디서 얻었느냐?”
“그냥 우연히 얻었습니다.”
“우연히?”
“네!”
“그걸 믿으라고?”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운이 제법 좋다고.”
“흠!”
“이제 가 봐야겠네요. 잘 먹었습니다. 얼마입니까?”
“됐어. 오랜만에 만났으니 오늘은 공짜로 주지.”
“그건 제가 됐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죠?”
제온이 품에서 돈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순간 클렉시 영감의 얼굴에 어이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제온이 내놓은 금액은 정확히 십 솔이었다.
클렉시 영감이 마정석 광산에서 제온에게 받았던 금액이다.
십 솔을 내놓은 제온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정확히 셈을 치렀으니 나중에 딴말하기 없깁니다.”
제온은 웃으며 자리를 떴다.
클렉시 영감은 멀어지는 제온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날 일을 잊지 않았다는 건가? 생각보다 뒤끝 있는 녀석이군.”
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클렉시 영감이 좌판을 나서며 말했다.
“오늘 장사는 그만해야겠다. 좌판 접어라.”
“예!”
바로 옆에서 장사하던 덩치 큰 상인들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클렉시 영감의 좌판을 거둬 뒤를 따랐다. 그러자 거리에 있던 사람들이 분분히 길을 비켜 줬다.
클렉시 영감이 조용히 말했다.
“저 녀석에게 감시를 붙여라.”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자입니까?”
“가치라.”
클렉시 영감의 얼굴에 주름이 더욱 깊게 팼다.
웃고 있는 것이다.
“마정석 광산에 들어간 날 실종된 녀석이다. 모두 죽었을 거라 생각했지. 그런데 살아 돌아왔어. 그것만으로도 놈의 가치는 충분해.”
마정석 광산은 미로나 다름없었다.
길을 잘못 들면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다가 굶어 죽었다.
단 그런 경우에도 시신은 발견됐다.
그런데 제온의 시신은 끝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금세 잊어버렸다.
당시 제온은 별 볼 일 없는 소년이었고, 그런 소년의 죽음에 신경 쓸 정도로 그는 한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모두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소년은 무사히 살아 돌아왔다. 그것도 무려 팔 년 만에 말이다.
팔 년 동안의 행적이 미치도록 궁금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클렉시 영감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네오 서울과 마정석 광산 밖에서 일어난 일은 그의 힘으로도 알 수 없었다.
사막에서 일어난 일을 알아낼 재주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빈민가에서 일어나는 일은 손금 보듯 알아낼 수 있는 재주가 있었다.
“각성한 것이 분명해. 놈의 스킬이 무엇인지, 다시 네오 서울로 들어온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도 빼놓지 말고 알아내.”
“알겠습니다.”
상인이 대답과 함께 사라졌다.
클렉시 영감이 손바닥을 바라봤다.
그의 손안에는 제온이 놓고 간 십 솔이 들려 있었다.
“거참! 신기한 놈이 굴러들어 왔네.”
***
제온이 중얼거렸다.
“역시 보통 영감이 아니라니까.”
클렉시 영감의 좌판에 앉는 순간 느껴졌던 은밀한 시선들.
마치 시장 전체가 제온을 주목하는 것 같았다.
클렉시 영감을 따르는 자들이 분명했다.
대부분은 보통 사람이었지만, 개중엔 분명히 특별한 느낌을 주는 이들도 있었다.
오직 각성자만이 그런 느낌을 준다는 것을 제온은 알고 있었다.
각성자를 휘하에 두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클렉시 영감이 거물임을 의미했다.
그런 거물이 무엇 때문에 시장에서 음식 장사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네오 서울에 들어온 첫날부터 꽤나 흥미 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재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