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67)
67화
제온은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처박혀 있었다.
가끔 일어나 식사를 하는 것을 제외하곤 정말 침대에 누워 잠만 잤다.
무려 팔 년 동안 쌓인 피로였다.
제온이 아무리 각성자라고 하지만 팔 년이나 세상을 떠돌며 쌓인 피로를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제온은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 흡혈목과 모래 아귀 가죽으로 만든 침대는 굉장히 편해 누워 지내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렇게 열흘 정도를 지낸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제온도 슬슬 은둔 생활이 지겨워졌다.
제온은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
밸브를 열자 물이 어린아이 오줌 줄기보다 약하게 흘러나왔다.
이 정도 물로는 샤워는 꿈도 꿀 수 없고, 겨우 고양이 세수 정도나 가능했다. 그래도 제온은 만족했다.
사막으로 나가면 이런 물조차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네오 서울에 붙어 있으니 이렇게나마 물이 공급된다. 다른 콜로니는 물을 구하는 것부터가 전쟁이었다.
제온은 간단하게 세수를 한 후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밖에 나오니 모래바람이 그를 맞아 줬다.
제아무리 높은 방벽을 세워도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빈민가 거리엔 항상 모래가 굴러다녔다.
네오 서울엔 강력한 마법 방어막이 펼쳐져 있어 모래바람마저 막아 낸다고 했다. 그래서 네오 서울 안에선 모래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제온에겐 최악의 환경이었다.
그가 굳이 빈민가에 거처를 정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네오 서울에 들어가면 몸이야 편하겠지만, 전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었다.
엑시온이 있으니 별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자신에게 최적의 환경에서 살고 싶었다.
그곳이 바로 빈민가였다.
빈민가엔 어느새 어둠이 내려 있었다.
싸구려 전광판에 불이 하나 둘 들어오고, 낮 동안 집에 처박혀 있던 사람들이 나왔다.
거리에 시장이 세워지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제온이 향한 곳은 바로 클렉시 영감이 장사하고 있는 거리였다.
거리엔 이미 음식을 파는 노점들이 들어서 있었고, 분주히 장사 준비를 하는 클렉시 영감도 보였다.
제온은 클렉시 영감의 좌판으로 다가가 앉았다.
“왔냐?”
클렉시 영감이 퉁명스럽게 맞아줬다.
제온은 피식 웃으며 음식을 주문했다.
“전에 먹었던 것 줘요.”
“며칠 안 보이더니만?”
“그냥 쉬었어요.”
“젊은 놈이 할 일이 없어 논단 말이야?”
“팔 년 동안 실컷 일했으니, 당분간은 그냥 놀 생각입니다.”
“팔 년 동안 뭘 그렇게 했는데?”
“뭐, 나름 열심히 살았습니다.”
“쯧! 능구렁이 같은 놈.”
유도 심문에도 절대 넘어가지 않는 제온을 보며 클렉시 영감이 혀를 찼다.
제온이 며칠 동안 두문불출했다는 것은 그가 잘 알고 있었다.
제온에게 붙여 놓은 수하가 보고했기 때문이다.
보고를 받고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에만 처박혀 있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혹시 수하의 감시를 따돌리고 몰래 빠져나간 것이 아닌지 의심했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제온이 사는 건물에 숨겨진 통로 따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제온에 대해 알아낸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때문에 클렉시 영감은 꽤 신경질이 난 상태였다.
클렉시 영감이 접시에 음식을 담아 주며 말했다.
“돈은 충분하고?”
“충분히 있습니다. 부족하면 가진 물건 좀 팔고요.”
“물건? 뭐, 좋은 거라도 숨겨 둔 모양이구나?”
“이것저것 잡동사니 좀 모았습니다.”
“어디다 팔려고?”
“글쎄요.”
“네놈 눈빛을 보니 나한테는 절대 팔지 않을 것 같고…….”
“…….”
“쯧! 젊은 놈이 꽁해 가지고는……. 좋다. 물건을 몰래 처분하고 싶으면 연남로 뒤쪽에 있는 검은 건물로 가거라. 가서 이걸 보여 주고 내가 보냈다고 하면 들여보낼 줄 것이다.”
클렉시 영감이 제온에게 준 것은 조그만 카드였다.
온통 시꺼먼 것이 특별한 문양이나 표식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제온이 로브 안에 카드를 넣으며 말했다.
“잘 쓸게요.”
“뭘 가졌는지 모르지만, 잘 보관하는 게 좋을 거다. 알지? 이 거리에서 사유 재산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럼요.”
제온이 웃으며 대답했다.
클렉시 영감은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고, 제온도 식사에 열중했다.
그사이 다른 손님들이 하나둘씩 찾아왔다.
제온은 식사를 모두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을 하고 거리를 나온 제온이 바로 연남로로 향했다.
이곳 신촌은 백 년 전 지명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연남로도 그중 하나였다
그때와는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지만, 이름만큼은 그대로 쓰이고 있었다.
연남로는 이름과 달리 분위기가 무척이나 어두웠다.
이곳엔 싸구려 전광판도 보이지 않았고, 호객 행위를 하는 창녀나 마약쟁이조차 보이지 않았다.
막장 인생들마저 접근하기 꺼릴 정도로 위험한 곳이라는 의미였다.
그런 연남로를 제온은 거리낌 없이 걸었다.
한참을 걷자 클렉시 영감이 말한 검은 건물이 나타났다.
“재밌네!”
제온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단지 건물이 시꺼메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건물 안쪽의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마법진이나 결계로 내 외부를 완벽하게 차단한 것이 분명했다.
이런 고난도의 결계는 절대 개인이 펼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엄청난 인력과 자금을 투입해야 겨우 구축할 수 있었다.
제온은 검은 건물 앞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갑자기 중무장을 한 남자들이 나타났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자는 한쪽 팔에 거대한 기관총을 달고 있는 덩치 큰 남자였다.
인간의 팔을 버리고 기계와 결합한 각성자였다.
그에게선 보기만 해도 살벌한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그가 총구를 제온에게 겨눴다.
“이곳은 접근 금지 구역이다. 애송이! 허락 없이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
“클렉시 영감의 소개로 왔습니다.”
제온은 당황하지 않고 검은 카드를 덩치 큰 남자에게 건넸다.
남자가 마나를 주입하자 비로소 검은 카드에 눈 문양이 떠올랐다.
순간 남자의 태도가 공손하게 변했다.
그가 검은 카드를 제온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귀빈이었군요. 안으로 들어가도 됩니다.”
“귀빈?”
“들어가십시오.”
남자가 건물 안쪽으로 고갯짓을 했다.
제온도 대답을 듣는 것을 포기하고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 쪽으로 다가갈수록 촘촘한 마나의 그물이 느껴졌다.
제온의 짐작처럼 결계가 펼쳐져 있는 것이다.
그가 도착하자 마나의 그물이 사라졌다.
다른 곳은 그대로인데 딱 제온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만 사라진 것이다.
제온이 들어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결계가 복구됐다.
결계를 넘어 건물 안에 들어가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바깥과는 차원이 다른 수많은 상점들이 건물 안에 꽉 차 있었다. 통로는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한눈에 봐도 평범한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전부 각성자 아니면 무기를 소지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신중한 표정으로 상인들과 거래를 하거나 물건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제야 제온은 이곳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도깨비 시장이군.”
빈민가에 떠도는 소문이 있었다.
도깨비 시장이라는 이름의 암시장이 존재하고, 빈민가에서 활동하는 각성자들이 물건을 사고판다는 것을 말이다.
제온도 소문은 들었지만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다.
하루하루 살아남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인가받지 않은 이는 절대 들어오지 못하는 곳.
도깨비 시장은 일종의 중립 지대였다.
빈민가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는 자들도 도깨비 시장의 법을 따라야 했다.
도깨비 시장의 법을 어기면 빈민가 모든 조직들의 적이 된다.
누가 도깨비 시장을 관리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엄청난 권력자인 것은 분명했다.
제온이라는 낯선 인물이 들어왔지만, 누구도 그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덕분에 제온은 마음 편히 도깨비 시장 안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제일 먼저 제온의 눈에 띈 것은 무기 상점이었다.
칼이나 창 같은 냉병기부터 총이나 대포 같은 물건들이 진열대에 늘어서 있었다.
총 같은 물건은 마수에게 잘 통하진 않지만, 같은 인간을 상대하는 데는 무척이나 효율적이었다.
그 때문에 레드 스컬파 같은 조직원들이 주로 구매했다.
각성자가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기에 일반인들을 총기로 무장시키는 것이다.
각성자들은 주로 냉병기를 선호했다.
기계와 결합하여 제 몸처럼 사용하는 각성자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제온은 무기 상점을 그냥 스쳐 지나갔다.
어차피 모래를 무기로 사용하는 그에게는 별 필요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무기 상점을 지나자 마수의 사체를 파는 상점이 나타났다.
밖에도 마수의 사체를 파는 자들이 있었지만, 이곳에서 파는 것들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제온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철갑 코뿔소 사체. 이곳에서 저걸 구했다고?’
작업대에 위에 놓여 있는 거대한 마수는 D급 마수인 철갑 코뿔소가 분명했다.
놈은 엄청난 방어력과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다.
저 거대한 덩치와 뿔로 들이받으면 장갑 버스도 종잇장처럼 찢겨 나갈 정도였다.
개인이 단독으로 잡기는 힘들기에 주로 파티를 이뤄 사냥했다.
제온이 놀란 것은 철갑 코뿔소의 서식지가 이 근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네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 사막에서나 볼 수 있는 철갑 코뿔소였다.
더군다나 덩치에 비해 값어치가 그리 큰 마수도 아니었다.
그런 마수를 굳이 먼 남쪽 사막까지 사냥할 이유가 없었다.
사냥 중 우연히 마주쳤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철갑 코뿔소가 네오 서울 근처까지 진출했다는 건데? 마수들의 서식지 변화가 이곳에까지 영향을 끼치는구나.’
네오 서울에 들어오기 직전 마주쳤던 화염 늑대 무리도 원래는 이 근처에선 볼 수 없는 마수였다.
서식지 연쇄 이동으로 마수들이 네오 서울 근처까지 영역을 넓힌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분명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하필 자신이 네오 서울에 들어온 시기에 맞춰 이런 일이 일어났기에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부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야 할 텐데.’
제온은 마수 사체를 파는 가게를 지나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상점에서 파는 물건들이 더욱 다양해졌다.
세상이 온통 사막으로 변했는데, 이렇게 다양한 물건들을 다 어디서 구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제온은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구경했다.
물건은 많았지만, 딱히 욕심나는 것은 없었다.
그의 아공간에는 이곳에 있는 물건들보다 귀한 것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그중 하나만 내놔도 도깨비 시장이 발칵 뒤집힐 것이다.
그때였다.
한 가지 물건이 유독 제온의 눈길을 끌었다.
어른 키만 한 크기의 금속 장치였다.
피라미드를 축소시켜 놓은 것 같은 모양이었는데, 묘한 마나장이 느껴졌다.
제온이 호기심에 가까이 접근하자 상점 주인으로 보이는 자가 다가왔다.
“좋은 물건일세. 하나 구매해 놓으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야.”
“이게 뭡니까?”
“소형 마력 발전기일세. 마정석의 마나를 전기로 변환시켜 주지.”
“그런 물건이 있습니까?”
“어디 다른 콜로니에서 살다 왔는가? 네오 서울도 마력 발전기로 유지되고 있지 않은가? 그와 똑같은 물건일세. 크기와 효율에서 차이가 조금 날 뿐이지.”
실제로 마력 발전기는 이미 상용화된 물건이었다.
네오 서울의 모든 기기들이 마정석 발전기에서 추출한 전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단 효율이 높지 않은 데다가 엄청 비싸서 마력 발전기를 찾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마력 발전기를 제대로 돌리려면 마정석 광산에서 캔 마정석을 무더기로 쏟아붓거나, 마수에게서 얻은 질 좋은 마정석을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빈민가에서 사는 이들에게 그만한 마정석이 존재할 리 없었다.
상인에게도 마력 발전기는 계륵 같은 존재였다.
네오 서울에서 힘들게 빼돌렸는데, 막상 사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계속 가지고 가기에도 부담이 가는 물건이었다.
그 때문에 호구 하나 잡아서 얼른 처리하고 싶었다.
“자네가 산다면 삼만 솔에 넘겨주지. 그 정도면 헐값이라고 할 수 있지. 어떤가?”
삼만 솔이면 무려 마정석 30kg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말이 좋아 마정석 30kg이지, 그 정도 금액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은 빈민가에 그리 많지 않았다.
적어도 한 조직 정도는 이끌어야 마력 발전기를 살 여력이 있을 것이다.
상인도 그 사실을 알면서 일단 제온에게 찔러 본 것이다.
잠시 마력 발전기를 보던 제온이 입을 열었다.
“일만 솔에 준다면 생각해 보죠.”
“뭐? 미쳤나? 이게 얼마나 귀한 물건인데 겨우 일만 솔에 팔아?”
“그럼 저도 사지 않겠습니다.”
제온은 미련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상인이 다급히 말했다.
“이만 오천 솔!”
“만 오천 솔.”
“안 돼! 그거면 운반해 온 인건비도 못 건져. 이만 삼천 솔.”
“만 칠천 솔. 저도 그 이상은 못 줍니다.”
“미치겠군. 돈은 있나?”
상인의 말에 제온이 웃으며 마정석을 하나 꺼내 들었다.
언젠가 이름 모를 마수 하나를 죽이고 얻은 마정석이었다.
영롱한 빛이 마정석 광산에서 캔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품고 있는 마나의 양과 질이 압도적인 것이다.
상인도 한눈에 마정석의 가치를 알아봤다.
‘적어도 이만 솔 이상의 가치가 있는 물건이다.’
이 정도면 손해는 아니었다.
자신이라면 웃돈을 붙여서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좋아! 마정석과 바꾸지.”
“어허! 알 만한 분이 왜 이럽니까? 이 정도 물건이면 적어도 이만 솔은 받을 수 있는데. 다른 물건 하나 끼워 주십시오.”
“자네, 진짜 장난 아니군. 독사야, 독사!”
상인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상인을 보며 제온이 웃었다.
“어떻게…… 딜?”
“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