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68)
68화
상인이 제온을 유심히 바라봤다.
제온은 삼천 솔 가치의 물건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가치가 없는 물건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귀신같이 값어치 나가는 물건만 살폈다.
제온이 상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건 뭡니까?”
“그거? 일종의 경보 장치일세. 쉘터나 집에 허락받지 않은 자가 침입하면 알려 주는 장치지.”
내친김에 상인이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보여 줬다.
감지기 비슷한 물건과 목걸이가 한 쌍으로 들어 있었다.
“네오 서울 안에선 보편화된 물건이지.”
“그렇습니까?”
“이 정도면 오천 솔은 받아야 하는데, 특별히 삼천 솔에 넘겨줄게. 어때?”
“뭐, 제가 손해 보는 것 같지만 받아들이죠.”
“흐흐! 잘 선택했네. 그럼 물건은 직접 가져갈 텐가? 아니면 이쪽에서 배송해 줄까?”
“배송비는 얼맙니까?”
“이천 솔!”
터무니없는 배송비에 제온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아공간에 직접 담아 가져가면 배송비 없이도 운송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제온이 아공간을 가진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아공간은 굉장히 희귀한 아이템이었다.
네오 서울 안에서도 가진 자가 몇 없는 아이템으로 누구나 욕심냈다.
제온이 아공간을 가진 사실을 알게 되면 귀찮아질 것이 분명했다.
“쯧! 안전 배송 약속하시는 겁니까?”
“물론일세!”
“좋습니다.”
제온은 품속에서 조그만 마정석 하나를 더 꺼내 상인에게 던져 줬다.
상인이 마정석을 살피며 감탄했다.
“허! 이것도 마수에게서 얻은 것이군. 어디 사냥팀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이럴 게 아니라 아예 우리와 정기적으로 마정석 공급 계약을 맺는 게 어떤가?”
“가진 마정석은 그게 답니다.”
“그러지 말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도깨비 시장에서 우리만큼 마정석 값을 잘 치러 주는 곳은 없을 테니까.”
상인은 제온이 사냥팀을 가지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렇게 질 좋은 마정석을 연거푸 내놓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수에게서 얻은 마정석이 광산에서 캔 마정석 보다 효율이 월등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이런 질 좋은 마정석을 주기적으로 공급받으면 도깨비 시장에서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제온이 딱 잘라 말했다.
“더 이상 마정석은 없습니다. 괜한 상상하지 마시고, 이 주소로 물건들을 보내 주십시오.”
“쯧!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 말하게. 내 가게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으니까.”
“그럴 일 없다니까요.”
“오늘 중으로 물건 보내지.”
“장난치지 않을 거라 믿겠습니다.”
“도깨비 시장의 상인에겐 신용이 생명이라네. 내가 직접 운송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게.”
“그럼 다시 보죠.”
제온이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밖으로 나왔다.
그 후로도 제온은 도깨비 시장을 한참이나 돌아다녔다.
도깨비 시장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거대했다. 덕분에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제온이 한참 도깨비 시장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쾅!
갑자기 저 안쪽에서부터 폭음이 터져 나왔다.
뒤이어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싸움이다.”
“미친 새끼들! 도깨비 시장에서 싸운다고?”
도깨비 시장에서는 어떤 분쟁이나 싸움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게 도깨비 시장의 규율이다.
규율을 어긴 자들이 빈민가에서 발 붙일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싸움을 벌였다는 것은 도깨비 시장이 두렵지 않을 만큼 강한 힘을 가진 존재거나, 아예 그런 지식 자체가 없는 자일 수도 있었다.
제온은 소란이 일어난 곳으로 걸어갔다.
수많은 사람이 둘러싸고 있는 그곳에 두 사람이 대치하고 있었다.
한 명은 얼음처럼 차가운 인상에 보통 체구의 남자였고, 다른 한 명은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중갑주를 입은 거대한 체구의 남자였다.
두 사람의 대치에 일대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인상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겁대가리를 상실한 모양이구나, 브릭스턴!”
“혓바닥이 길구나, 태오! 쫄리면 그냥 혀 깨물고 자살이나 하시지.”
브릭스턴이라 불린 거인이 등 뒤에 매고 있던 거대한 해머를 꺼내 들었다.
그의 전신에선 살기가 깃든 광기가 발산됐다.
순간 태오라고 불린 남자의 눈빛이 더 날카롭게 변했다.
“건방진!”
그가 꺼내 든 것은 삼각형의 검신에 연꽃 문양이 새겨진 조그만 단검이었다.
고대 종교에서 주로 수행의 도구로 사용된 금강저라고 불리는 무기였다.
태오가 들고 있는 금강저에선 섬뜩한 예기가 발산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듯 살기 어린 눈으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태오가 금강저를 가슴 앞쪽으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제부터 일어나는 일은 동대문의 책임이다. 미친 광전사 새끼야!”
“고란 밑에 있더니 혓바닥만 길어졌군. 언젠가는 이 해머로 고란의 머리통을 깨부숴 주마.”
“건방진…….”
분노한 태오의 금강저에서 붉은 기운이 폭출해 나왔다.
고위 각성자만 운용 가능하다는 오러를 발출한 것이다.
브릭스턴이 들고 있는 해머에서도 새하얀 빛이 흘러나왔다.
통상적인 오러와는 다른 기운이었다.
극히 소수의 각성자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신성력이었다.
브릭스턴이 소속된 동대문의 지배자는 요한이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특이하게 신성력을 각성했는데, 자신의 능력으로 심복들에게도 비슷한 능력을 각성하게 만들었다.
그중 한 명이 광전사 브릭스턴이었다.
브릭스턴은 요한의 적을 쳐부수는 첫 번째 무기였다.
그와 대치하고 있는 태오는 신촌의 지배자인 고란의 심복이었다.
고란 역시 네 명의 각성자를 수하로 뒀는데, 태오는 그중 하나로 얼음처럼 차가운 이성의 소유자였다.
브릭스턴과 태오는 유명한 앙숙이었고, 이미 몇 번이나 싸웠다.
서로의 실력이 대등했기에 아직 승부를 내지 못했다.
그런 그들이 하필 도깨비 시장에서 마주쳤다.
두 사람은 도깨비 시장의 불문율도 잊고 서로에 대한 적의를 불태웠다.
“네놈의 머리를 흔적도 남기지 않고 으깨 주마.”
“이 금강저로 네놈의 심장을 도려내 주지.”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앙!
금강저와 해머가 격돌하기 직전 그들 사이에 한 줄기 벼락이 떨어졌다.
“큭!”
“제기랄!”
두 사람이 당황한 기색과 함께 뒤로 튕겨 나갔다.
“두 분 모두 그만하죠. 이 이상 소란을 피우면 정식으로 고란 님과 요한 님께 항의를 하겠습니다. 그럼 겨우 두 분의 문책만으로 일이 끝나진 않을 겁니다.”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몸매가 드러나는 가죽옷을 입은 여인이 걸어 나왔다.
하얀 가죽옷과 대비되는 홍염처럼 붉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녀의 뒤에는 마치 사자처럼 강렬한 기세를 발산하는 남자가 따르고 있었다. 남자는 코와 입 부분을 검은 천으로 가렸다. 하지만 헝클어진 머리카락 아래 드러난 두 눈만으로도 좌중을 압도했다.
두 사람이 나타나자 거리가 일순간 고요해졌다.
태오와 브릭스턴조차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못하고 침묵했다.
그만큼 지금 나타난 두 사람의 신분과 존재감은 특별했다.
홍염처럼 붉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여인은 바로 도깨비 시장의 주인이었다.
그녀가 시장에 직접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만큼 태오와 브릭스턴의 충돌이 도깨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신촌 가까운 연남로에 위치했지만, 도깨비 시장은 기본적으로 중립 지대였다.
이곳에선 어떤 세력의 충돌도 용납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세력의 편도 들지 않는다.
그러지 않았다면 아직까지 도깨비 시장이 유지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태오와 브릭스턴이 소속된 신촌과 동대문은 빈민가에서도 손에 꼽히는 세력들이었다.
두 사람은 그런 거대 세력에서도 중추에 있는 인물들이었다.
밖에서 싸우는 것은 상관없지만, 도깨비 시장에서 싸웠다가 사상자라도 나오면 유세희만 골치 아파진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유세희의 등 뒤에 있는 남자는 그녀의 가드이자 도깨비 시장 최강자인 흑사자였다.
흑사자의 본명은 오직 유세희만 알고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흑사자의 무력이 동대문과 신촌의 주인들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등장에 태오와 브릭스턴도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했다.
뇌전 마법을 날린 유세희도 껄끄러웠지만, 무엇보다 흑사자의 강렬한 존재감이 그들을 짓누르는 것이다.
유세희가 붉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두 사람 사이에 섰다.
“여기서 부서진 물건들만 배상하면 문제 삼지 않을게요. 그러니 이쯤에서 끝내요.”
그녀의 얼굴에는 화사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과 어우러진 미소는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남자를 홀릴 만큼 아름다웠다. 하지만 태오와 브릭스턴은 그녀의 겉모습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유세희가 단순히 외모만 아름다운 여자였으면 도깨비 시장을 이제까지 이끌고 오지도 못했다.
도깨비 시장이 지금의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은 오롯이 유세희 덕분이었다.
때문에 요한과 고란도 그녀를 우습게 보지 못했다.
먼저 물러선 이는 태오였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부서진 물건값은 따로 배상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역시 태오 님이네요.”
유세희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 태오는 미련 없이 그대로 자리를 떴다.
잠시 그 모습을 보던 브릭스턴이 유세희에게 말했다.
“언제고 바깥에서 유세희 님을 뵙고 싶군요.”
“어머? 데이트 신청을 하시는 건가요? 그런데 어쩌죠? 전 도깨비 시장이 좋은데. 이 안에서 데이트하는 거라면 한번 생각해 볼게요.”
“요한 님이 뵙고 싶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 안에서 데이트해야죠. 저도 요한 님은 무섭거든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하나도 겁먹은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롱기가 담겨 있었다.
브릭스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화를 내거나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이 이상 유세희의 심기를 건드리면 동대문의 사람들은 영원히 도깨비 시장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상황은 동대문의 지배자인 요한도 원치 않았다.
브릭스턴은 유세희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물러났다.
“배상 목록을 보내 주면 내일 중에 모두 갚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죠.”
“호호! 조심히 가세요.”
유세희가 손을 흔들었다.
브릭스턴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유세희의 얼굴에 어려 있던 미소가 완전히 사라졌다.
“씨발 새끼들! 왜 남의 영업장에 와서 싸우고 지랄이야. 부서진 목록들 꼼꼼하게 정리해서 올려.”
“네!”
상인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순간 유세희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소리쳤다.
“뭐해? 오늘 장사 안 할 거야? 장사 다 끝났어?”
“예!”
“합니다. 해요.”
“어서 정리해.”
놀란 상인들이 바퀴벌레들처럼 흩어져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지럽던 시장은 순식간에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장사를 재개했다.
유세희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하여간 다들 싸움 구경하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서. 하나라도 더 팔아야 돈 벌지. 이 모자란 새끼들아!”
“그쯤 하면 알아들었을 겁니다.”
보다 못한 흑사자가 나서서 그녀를 진정시켰다.
“알았어. 이제 진정됐어.”
“밖에서는 성질 좀 죽이시죠. 보는 눈도 많은데.”
“됐어. 언제는 남의 시선 신경 쓰고 살았나? 괜히 신비스러운 이미지 입혀지면 운신의 폭만 좁아져.”
유세희가 투덜거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의외였기에 제온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풋!”
“누구야? 아직도 장사 안 하고 구경하는 놈 있었어?”
하필 유세희가 제온의 웃음을 듣고 눈에 쌍심지를 켰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유세희는 이내 멀뚱히 서 있는 제온을 발견했다.
그녀가 제온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너야? 네가 웃었어?”
“죄송합니다.”
그제야 제온이 실수를 깨닫고 사과했다.
유세희가 그런 제온의 전신을 유심히 살폈다.
“이곳 상인이 아니네. 손님?”
“네!”
“못 보던 얼굴인데, 누구 소개로 왔어?”
“클렉시 영감의 소개로 왔습니다.”
순간 유세희가 얼굴을 제온의 얼굴 가까이 들이밀었다.
“클렉시? 그 망할 영감탱이가 카드를 준 게 너였어?”
예상치 못한 그녀의 반응에 제온이 눈을 끔뻑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