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72)
72화
빈민가에서 제온의 삶은 무위도식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어떤 생각도 하지 않았다.
멍하니 자리에 앉아 하루 종일 창밖을 바라보거나, 침대에 누워 잠만 잤다.
지난 팔 년 동안 늘 긴장 속에서 살았기에 이런 시간이 간절했다.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고, 오직 자신만을 위한 시간.
지금 제온은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끝이 없는 휴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거의 보름이나 집에 처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니 바깥 공기가 마시고 싶어졌다.
제온은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처음 집에 돌아왔을 때만 해도 악취와 오물이 가득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꽤나 깨끗하게 변해 있었다.
제온은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철컥!
그가 나오자 지켜보는 눈이 문을 잠갔다.
이제 집이 털릴까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지켜보는 눈이 완벽하게 지켜 줄 테니까.
급할 것도 없기에 제온은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십오 층 정도 내려갔을 때였다.
“어, 못 보던 형이네.”
계단으로 나오던 아이가 제온을 보고 말을 걸었다.
열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그 나이대치곤 체구가 그리 커 보이지 않았다.
약간은 맹해 보이는 얼굴에 초점 없는 눈동자. 축 늘어진 어깨에 어딘지 모르게 나른한 분위기.
머리는 반삭을 했고, 화려한 귀걸이와 피어싱이 눈에 들어왔다.
빈민가의 아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남자아이 역시 의욕이 없는 모습이었다.
꿈도 희망도 없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도 벅찬 아이들에게 의욕이 있을 리 없었다.
제온이 물었다.
“여기에 사냐?”
“네! 십오 층 끝 집이에요.”
“그렇구나.”
“형은요?”
“십팔 층 끝 집.”
“끝 집인 건 똑같네요.”
“그런가 보다.”
제온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제 이름은 레빈이에요. 형은요?”
“제온!”
“멋있는 이름이네요.”
“그런 소리 많이 들어.”
레빈은 꽤 수다쟁이였다.
처음 보는 제온이 무섭지도 않은지 조잘조잘 떠들었다.
“형도 갱단이에요?”
“아니.”
“그럼 뭐 해서 먹고살아요?”
“당분간은 일 안 해도 될 정도의 돈은 있어.”
“부럽네요. 우리 집은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냐?”
“엄마랑 저, 동생들이 사는데,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해요.”
“걱정이 많겠네.”
“그래서 말인데 형 돈 많으면 저 빌려주면 안 돼요? 제가 열심히 일해서 갚을게요.”
“응! 안 돼.”
“거, 너무 단호히 말하는 거 아니에요?”
“너는 너무 염치없는 거 아니냐?”
“쳇! 안 통하네.”
레빈이 코를 찡그렸다.
그렇다고 기분 나쁜 표정은 아니었다.
빈민가에 산다고 해서 이웃 간의 정이 돈독한 일은 없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기 전엔 간혹 그런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최소한 레빈이 아는 세상은 그랬다.
인간 생태계 제일 밑바닥에 있는 빈민가에서는 이웃끼리 서로 등쳐 먹는 게 흔하디흔한 일이었다.
이곳에서 정은 호구의 또 다른 말이기도 했다.
정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뜯어먹히는 것이 당연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일 층에 도착했다.
밖에는 레빈의 친구로 보이는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내려오냐? 느림보 새끼!”
“씨발! 이 새끼는 맨날 기다리게 해. 하는 일도 없으면서.”
이 나이대 남자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그들 역시 욕으로 레빈을 맞이했다.
레빈은 그런 친구들의 반응이 익숙한 듯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미안! 이웃에 새로운 형이 이사 와서 이야기하느라 늦었어.”
“저 새끼?”
“돈 좀 있어 보이는데?”
아이들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레빈은 그런 아이들의 어깨에 양팔을 걸치고 힘을 줬다.
“새끼들아! 아무리 돈에 눈이 멀었어도 사람은 가려라. 저 형 건들면 너희는 죽어.”
“뭐야? 또 신기가 발동했냐?”
“몰라! 아무튼 저 형은 건들지 않는 게 신상에 좋아.”
“씨발! 아까워라.”
레빈의 말에 아이들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들은 이내 제온에게서 신경을 껐다.
레빈의 별명은 ‘무당’이었다.
정말 신기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가 하는 말은 대부분 맞아떨어졌다.
그 때문에 친구들은 레빈의 말을 무시하지 않았다.
레빈이 친구들을 잡아끌며 말했다.
“가자!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아.”
“왜?”
“몰라! 그냥 안 좋아. 어서 다른 곳에 가고 싶어.”
“그럼 동대문으로 가자.”
“동대문은 왜?”
“요즘 거기가 핫하잖아. 흐흐!”
레빈의 친구 하나가 코로 무언가를 흡입하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레빈이 그런 친구들에게 말했다.
“그렇게 약하다가 일찍 뒈진다.”
“씨발! 이따구로 오래 살아서 뭐 하는데?”
“약이라도 해야 미치지 않지. 가자! 신촌으로.”
레빈과 친구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제온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약을 접한 지 오래된 모양이군.”
저들이 말하는 약은 싸구려 마약이 분명했다.
흡입했을 땐 극도의 쾌락을 주지만, 결국은 인체를 망가트린다.
그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마약을 찾았다.
당장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는 데 마약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레빈은 아직 마약을 하지 않은 것 같지만, 다른 친구들은 중독된 기색이 역력했다.
이곳에는 저런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말린다고 듣는 것도 아니었고, 타인의 인생에 함부로 개입할 만큼 제온이 오지랖 넓은 성격도 아니었다.
어차피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었다.
마약을 해서 망가지든, 열심히 살아서 돈을 많이 벌든지 말이다.
제온은 곧 레빈과 친구들에 관한 생각을 떨쳐 버리고 시장으로 걸어갔다.
꽤 오랜만에 나왔지만, 시장의 분위기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어라? 아직 살아 있네.”
클렉시 영감이 제온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온이 클렉시 영감의 좌판에 앉으며 말했다.
“제가 죽기라도 했답니까? 뭘 그리 놀랍니까?”
“하도 안 보여서 뒈진 줄 알았지.”
“그냥 집에서 쉬었습니다.”
“보름이 넘는 시간 동안 집에 처박혀 있었단 말이냐?”
“네!”
“너도 참 징하구나.”
클렉시 영감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온이 하도 나오지 않아 감시하던 인원마저 철수시켰다.
더 이상 감시해 봐야 인력 낭비였기 때문이다.
클렉시 영감이 중간에 인원을 철수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참! 특이하다, 특이해.”
“뭐가요?”
“그냥 다.”
결국 제온에 관해서 알아낸 것은 하나도 없기에 클렉시 영감의 심기는 매우 불편했다.
그를 이렇게 불편하게 만든 것은 제온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 호기심이 동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식사는?”
“먹으러 왔죠. 아무거나 주세요.”
“쯧!”
클렉시 영감이 혀를 차며 식사를 준비했다.
식사가 나오길 기다리며 제온은 주위를 둘러봤다.
어딘지 모르게 시장 분위기가 착 가라앉은 것처럼 느껴졌다.
“뭔 일 있었나요?”
“왜?”
“그냥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서요.”
“요즘 독사 한 마리가 날뛰고 있어서 그런다.”
“독사요?”
“미꾸라지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교활하고 강력한 독을 가지고 있지.”
“그래서 무슨 일인데요?”
제온이 처음으로 호기심을 보였다.
“웬 정신병자 놈이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고 있다.”
“정신병자?”
“사람을 죽인 후 토막 내 예술 작품처럼 장식하고 다닌다더구나.”
“그런 놈이 있어요?”
“아무리 정상적인 놈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라지만, 이렇게 미친놈을 보는 것도 쉽지 않아.”
사람을 토막 내 죽인 후 피를 뽑아 그림을 그리고, 신체를 잘라 장식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행위였다.
“그런데도 고란이 그냥 놔두나요?”
고란은 신촌의 지배자였다.
그 역시 크게 보면 범죄자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신촌의 지배자를 자처하는 이상 질서를 어느 정도 관리할 책임이 있었다.
이런 엽기적인 살인마가 날뛰도록 내버려 둔다면 신촌의 사람들이 그를 불신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럴 리가 있나? 이미 해결사를 보냈지.”
“그럼 곧 잡히겠네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아닌가요?”
“내가 독사라고 했잖느냐? 미꾸라지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면 분명 큰코다칠 거다.”
“흠!”
“정 신경 쓰이면 네놈이 잡든가?”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아요.”
“정나미 없는 놈 같으니라구.”
“그러면 영감이 잡든가?”
“내가 무슨 힘이 있어 살인마를 잡아?”
클렉시 영감이 발끈했다.
“에이! 아직도 정정해 보이는데요.”
“겉보기에만 그렇지, 안 아픈 곳이 없어. 팔다리가 다 쑤신다고.”
“그 정도면 정정한 거죠. 뭘 발끈하고 그래요?”
“너도 내 나이가 돼 봐. 하루하루 사는 게 고통인 것을 알게 될 거다.”
“네네!”
제온이 건성으로 대답하며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적거렸다.
클렉시 영감이 자신도 모르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거리에서 자신을 이렇게 편하게 막 대하는 이는 제온이 처음이었다.
항상 굽신거리는 사람들만 만나다 제온을 보니 무언가 신선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 새끼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지?’
분명 평범한 삶을 살진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탕!
“옛다. 처먹어라.”
클렉시 영감이 신경질적으로 음식을 제온 앞에 내려놓았다.
국물이 사방으로 튀었지만, 이상하게도 제온의 몸에는 한 방울도 닿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약이 올랐다.
“운 좋은 놈!”
“제가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제온은 태연히 대답하며 클렉시 영감이 내준 정체불명의 요리를 먹었다.
비록 성격은 더럽지만 클렉시 영감의 실력은 확실했다.
한입 머금는 순간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새끼! 쪼개기는…….”
클렉시 영감도 그런 제온을 보며 피식 웃었다.
제온은 순식간에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잘 먹었습니다.”
“바로 집에 들어갈 생각이냐?”
“네!”
“매일 집에 처박혀 있는 것이 지겹지 않으냐? 젊은 놈이 어찌 그리 수도승처럼 사느냐?”
“집에 처박혀 있는 것이 어때서요?”
“젊음을 그렇게 허비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런다.”
“충분히 즐기며 살고 있습니다. 걱정해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쯧!”
말이 통하지 않자 클렉시 영감이 혀를 찼다.
무언가를 알아내고 싶어도 제온이 도통 밖으로 나오지 않으니 알아낼 도리가 없다.
완전 벽에 막힌 기분이었다.
클렉시 영감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온이 돈을 좌판에 놓고 일어섰다.
“다음에 또 올게요.”
“흥!”
클렉시 영감의 콧방귀를 뒤로 하고 제온이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반대로 빈민가에는 불이 하나둘씩 켜지고 있었다.
제온이 사는 건물에도 불이 들어왔다. 하지만 대부분 불안하게 전등이 깜빡이고 있는 것이 언제 전기가 끊어질지 몰랐다.
제온은 더 늦기 전에 마력 발전기를 사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계단을 올랐다.
그가 십 층 정도 올랐을 때였다.
“꺄악!”
“악!”
갑자기 위쪽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귀가 찢어질 듯한 날카로운 소리에 제온이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온 곳은 십오 층이었다.
십오 층 복도 끝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제온은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갔다.
활짝 문이 열려 있는 집 안을 보는 순간 제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곳에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