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73)
73화
날개를 활짝 펼친 새와 비슷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머리가 세 개, 날개가 세 쌍, 다리가 여섯 개인 이상한 새였다.
새라기보다는 키메라에 가까웠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림을 그린 사람의 취향이 특이할 수도 있으니까.
문제는 그림을 물감이 아닌 사람의 피로 그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의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실제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세 쌍의 날개 끝엔 사람의 팔이, 여섯 개의 다리 부위엔 실제 인간의 다리가 장식품처럼 놓여 있었다.
그러니까 누군가 사람들을 죽여, 그 피로 그림을 그리고, 신체로 장식을 한 것이다.
“악취미군.”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제온의 눈앞에서 벌어진 살육은 그것들과는 결이 달랐다.
생존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쾌락과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죽인 것이 분명했다.
“쯧!”
제온이 혀를 찼다.
지독한 피비린내가 후각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마수와 인간의 피는 달랐다.
똑같이 피비린내를 풍기지만, 인간의 피가 훨씬 더 자극적이었다. 그 때문에 마수들이 인간의 피를 그렇게 탐하는 것인지 몰랐다.
희생자는 모두 일가족인 듯했다.
중년의 여자와 자식으로 보이는 소년과 소녀의 머리.
부릅뜬 눈과 벌려진 입이 생전 얼마나 큰 공포를 느꼈는지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었다.
“그 정신병자의 짓이군.”
제온은 클렉시 영감이 말했던 자의 소행임을 직감했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의 집 삼 층 아래서 살육을 저지른 것이다.
생각할수록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신의 영역이 침범당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어, 엄마? 애들아!”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망연히 서 있는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제온은 그의 얼굴을 단숨에 알아봤다.
“레빈! 설마…….”
아까 집을 나설 때 만났던 소년인 레빈이 분명했다.
그제야 레빈의 집이 십오 층 끝 집, 바로 이곳이라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
레빈이 비칠거리면서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집 안에 펼쳐진 참혹한 광경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절망이 극에 달하면 머릿속이 텅 비게 된다.
지금 레빈처럼 말이다.
레빈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얼마 전 집을 나설 때까지만 하더라도 멀쩡했던 엄마와 동생들이었다. 아침부터 싸워 마음에도 없는 싫은 소리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죽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안 돼!”
뒤늦게 정신을 차린 레빈이 절규했다.
“어휴!”
“이게 무슨 일이야?”
구경을 하던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원래 남의 집안일에 무관심한 사람들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바로 자신들의 집 앞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잘못했으면 희생자가 자신들이 될 수도 있었다.
사람들은 몸서리를 치며 자신들이 저렇게 되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으어엉!”
레빈은 잘린 어미와 동생들의 머리통을 안고 대성통곡했다.
그 모습을 보고도 누구 하나 나서서 위로하지 않았다.
“뭐, 죽은 사람만 불쌍하지.”
“그나저나 피 냄새가 우리 집에까지 나겠는걸.”
“냄새나지 않게 깨끗이 치웠으면 좋겠는데, 저 아이가 그럴 정신이 있는지 모르겠군.”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시신을 제대로 치우지 못해 벌레가 들끓고, 냄새가 자신들의 집에까지 나는 것이었다.
제온은 그 모습을 무심히 바라봤다.
울다가 기력을 모두 소모했는지, 레빈은 몸조차 가누지 못했다.
그의 전신은 가족들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쩌면 그 모습조차 이런 짓을 저지른 정신병자가 원하던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군.”
쾅!
제온이 집 문을 닫아 사람들의 시선을 차단했다.
“어떤 새끼가 우리 가족을……. 죽일 거야. 반드시 찾아내서 죽일 거야.”
머리통을 껴안고 흐느끼던 레빈의 눈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눈꼬리가 찢어지면서 피가 흘러내린 것이다.
눈물과 핏물이 섞여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 레빈의 손목에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제온은 그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각성했군.’
레빈의 손목에 각성자의 징표인 계급장이 생겨난 것이 분명했다.
무투계는 붉은색.
마법계는 푸른색.
주술계는 회색.
기계와 결합한 자들은 검은색 계급장이 생겨난다.
대부분의 각성자는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간혹 예외의 경우도 존재했다.
제온이 대표적인 예였다.
그의 계급장은 타는 사막 같은 오렌지빛이었다.
각성한 능력도 기존의 계통이 아닌 모래술사였다.
레빈의 손목에서 흘러나오는 빛도 심상치 않았다.
선명한 보라색.
이제까지 제온이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색이었다.
제온은 레빈의 손목을 자세히 바라봤다.
마지막 일곱 번째 선에 보라색 빛이 들어와 있었다.
F급 각성자라는 의미였다.
각성 시점부터 F급이면 평범한 편이다.
많은 각성자가 F급부터 시작하니까.
제온 역시 F급으로 시작했다.
출발선이 앞선다고 해서 먼저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평생을 노력해도 성장이 더디고, 또 어떤 이는 F급으로 시작해도 빠른 속도로 등급이 올라간다.
사람마다, 또 각성 능력마다 성장 메커니즘이 다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등급이 아니라, 각성 능력이다.
보랏빛 계급장은 제온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레빈의 각성 능력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굉장히 희귀한 것이 분명했다.
그때였다.
복수를 다짐하던 레빈의 몸이 갑자기 투명해지면서 물결처럼 일렁였다.
그 모습이 마치 말로만 듣던 유령 같았다.
파바바박!
순간 유령처럼 변한 레빈의 몸에서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발산됐다.
에너지는 집 안의 모든 물건을 파괴했다.
***
한바탕 에너지를 방출한 후 레빈은 정신을 잃었다.
그러자 투명해졌던 육체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제온은 레빈을 한쪽으로 치운 후 시신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조각난 시신들은 실로 끔찍했다.
비위가 약한 이들은 감히 만질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제온은 별반 표정의 변화 없이 시신을 만졌다.
이보다 끔찍한 경험도 숱하게 했다.
이 정도론 제온에겐 어떤 동요도 일으킬 수 없었다.
시신을 한데 모은 제온이 중얼거렸다.
“좋은 곳으로 가길…….”
화륵!
순간 시신 조각들이 불길에 휩싸였다.
제온이 일으킨 불길이었다.
초고온의 불은 순식간에 시신들을 불태웠다.
이 정도 불이 났다면 집안이 모두 불탔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다른 부분은 멀쩡했다.
마치 공간을 도려낸 것처럼 시신이 있는 부분만 불타는 것이다.
화염계 마법사들이 봤다면 경악했을 광경이었다.
여러 마법 중에서 가장 제어하기 힘든 것이 바로 화염계 마법이었다.
매개체를 타고 번지는 불길의 특성상 정교하게 제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실내에서 불길을 일으키면서도 다른 부분은 타지 않게 정교하게 제어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화염계 특성을 타고난 마법사처럼 말이다.
불길은 딱 시신만 태우고 소멸했다.
제온은 창문을 열어 열기를 배출했다. 그 후 타고 남은 재를 긁어모았다.
세 사람을 태웠는데 나온 재는 겨우 두어 줌에 불과했다.
제온은 재를 빈 병에 넣었다.
잠시 빈집을 둘러보던 제온이 레빈을 둘러메고 밖으로 나왔다.
살인 현장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왔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들과 관계없는 일이었기에 관심을 끈 것이다.
이곳에서 이웃 간의 정이 얼마나 의미 없는 말인지 보여 주는 광경이었다.
제온은 레빈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레빈을 눕힌 후 제온은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아까 보았던 광경을 떠올렸다.
레빈은 마치 유령처럼 투명해진 상태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했다.
“유령화라……. 스펙터와 같은 능력인가?”
마수라고 모두 강력한 육체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제온이 얼마 전 손에 넣은 유령 연가시처럼 다른 마수에 기생해 조종하는 기생충 같은 형태도 존재했고, 아예 고정화된 육체 없이 상황에 따라 변하는 액체 형태의 마수도 있었다.
슬라임이 대표적인 마수였다.
스펙터도 이런 특이 개체 중 하나였다.
유령처럼 실체가 없이 부유하면서 정신 공격을 한다.
정신이 굳건하지 않은 사람은 스펙터에게 홀려 의지를 잃거나 조종당한다.
“거기에 에너지 방출이라.”
굳이 분류하자면 전기 에너지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레빈은 두 가지 특성을 한꺼번에 가진 것이 분명했다.
간혹 두 가지 특성을 가진 각성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레빈도 자신과 같은 이레귤러가 분명했다.
그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지만, 잘만 성장하면 엄청난 전력이 될 것이 분명했다.
레빈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미동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각성 직후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했기에 탈진한 것이다.
제온은 레빈을 놔두고 창밖을 바라봤다.
싸구려 네온사인이 시야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
레빈이 깨어난 것은 사건이 발생하고 무려 사흘이나 지난 후였다.
정신을 차린 레빈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홀쭉하게 들어간 양 뺨, 퀭하니 들어간 눈두덩이, 그리고 깊이 가라앉은 눈빛.
마치 십 년의 세월을 건너뛴 것 같았다.
잠시 멍하니 앉아 있던 레빈이 제온을 바라봤다.
“형 집이에요?”
“그래!”
“좋아 보이네요.”
“돈 좀 썼거든.”
“어쩐지 있어 보이더라.”
“먹고살 만큼은 있어.”
“저거, 혹시 마력 발전긴가요?”
“맞아!”
“와! 나 이야기만 들었지,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에요.”
“나도 직접 산 건 처음이야.”
“역시 부자 형! 우리 친하게 지내요.”
레빈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제온이 창가에 놓아 뒀던 유리병을 집어 들었다.
“그건?”
“받아!”
“…….”
“네 가족이다. 네 허락도 받지 않고 내가 화장했다.”
“고……마워요.”
애써 태연을 가장했던 레빈의 얼굴에 균열이 생겼다.
레빈은 품에 유리병을 깊이 껴안은 채 고개를 숙였다.
제온은 그런 레빈을 말없이 바라봤다.
때로는 섣부른 위로보다 말없이 지켜보는 게 낫다는 것을 제온은 알고 있었다.
레빈이 다시 고개를 든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그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형!”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집에 돌아가야죠. 그냥 놔두면 다른 놈들이 차지할 텐데.”
“그리고?”
“찾아내야죠. 울 엄마와 동생들을 죽인 놈을.”
레빈의 목소리는 섬뜩하리만큼 차가웠다.
복수는 그의 당연한 권리였다.
제온은 말릴 생각이 없었다.
다만 충고해 주고 싶은 것은 있었다.
“각성한 것은 알고 있지?”
“네!”
모를 수가 없었다.
각성하는 순간 누가 알려 주지 않아도 자신의 능력에 대해 알게 된다.
제온도 이미 경험해 봤기에 누구보다 잘 안다.
“네가 각성한 능력이 평범하지 않은 것도 알고 있지?”
“네!”
“잘 숨기는 게 좋을 거다. 자칫 눈에 띄면 험한 꼴 당할 수 있으니까.”
“그럴게요.”
레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온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말을 얼마나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결정과 그에 관한 책임은 온전히 레빈의 몫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