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74)
74화
신촌 거리를 깊숙이 들어가면 마치 콜로세움을 닮은 건물이 나타난다.
진짜 콜로세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작았지만, 적어도 겉모습만큼은 거의 흡사했다. 그래서 사람들도 이곳을 콜로세움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콜로세움 안에 투기장이 존재하는 것도 비슷했다.
“와아아!”
“죽여!”
투기장 안에서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수백 명의 사람이 투기장에 모여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씨발!”
“으아아!”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이 싸우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각성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악에 받쳐 서로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적잖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물러서지 않고 서로를 죽이려 했다.
투기장의 관객들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흥분했다.
관객석 맨 위쪽 독립된 자리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다 해진 야구 모자에 선글라스를 쓴 흑인이었다.
여자 몸통만큼 굵은 팔뚝에 통나무를 연상시키는 우람한 체구의 소유자였다.
그는 앞 좌석에 발을 올린 채 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그가 바로 신촌의 지배자인 고란이었다.
고란의 아버지는 백 년 전에 서울에 공부하러 온 유학생이었다.
공부를 모두 마치면 고향인 케냐로 돌아가려 했지만, 그때 하필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말았다.
고향인 케냐로 돌아갈 교통수단도 모두 사라졌다.
결국 그는 서울에 눌러앉을 수밖에 없었고, 늦둥이인 고란을 얻었다.
지금이야 많은 인종이 자연스럽게 섞였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인을 비롯해 아시아인들이 대다수였다.
자연 차별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고란의 아버지 역시 차별을 견디며 아들을 키웠다.
그런 아비를 보고 자란 고란도 자연스럽게 독기를 가졌다.
독기 가득한 소년은 커서 신촌의 지배자가 되었다.
고란이 크게 소리쳤다.
“어이, 힘내라고. 가족이 걸린 일이잖아. 지는 놈은 가족 모두 뒈지는 거야. 흐흐!”
그의 목소리를 들은 두 사람이 움찔했다.
두 사람 모두 고란에게 빚을 지고 갚지 못해 잡혀 왔다.
이 싸움에서 지는 사람의 가족까지 모두 죽게 된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은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이다.
고란은 두 사람이 처절하게 싸우는 것을 보며 웃었다.
“흐흐! 역시 구경하는 맛은 좆밥들 싸움이 제일이지.”
각성자나 전투에 능숙한 자들의 싸움은 순식간에 끝이 나서 구경하는 맛이 없다.
그것이 고란이 채무자들을 투기장에 집어넣는 이유였다.
가족의 목숨이 걸렸기에 제 몸이 어떻게 되든 죽기 살기로 싸운다. 그것이 사람들을 흥분하게 만든다.
“크억!”
패자의 비명을 끝으로 마침내 싸움이 끝이 났다.
패자의 가슴엔 칼이 꽂혀 있고, 승자는 엎어져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승자의 얼굴은 온통 눈물과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의 얼굴에 승자의 환희 따윈 보이지 않았다.
자신은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죽인 상대에 대한 죄책감이 어우러져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고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곁에 있던 수하에게 물었다.
“죽은 새끼 가족들 몇 명이지?”
“사내 둘에 계집 셋입니다.”
“사내새끼들은 모두 죽이고, 계집들은 사창가로 넘겨.”
“예!”
수하가 대답과 함께 물러났다.
그때였다.
말쑥한 양복 차림에 꽁지 머리를 한 남자가 고란에게 다가왔다.
고란의 심복 중 하나인 이튼이라는 남자였다.
그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대장!”
“뭐야?”
“손님이 왔습니다.”
“누구?”
“나다.”
그때 이튼의 등 뒤에서 고란 못지않은 거대한 덩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고란의 인상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악어처럼 우둘투둘한 피부, 얼굴에 가득 새긴 문신, 그리고 샛노란 눈동자.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특징들이었다.
빈민가에 이런 특징을 가진 남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크로커? 우리 두 번 다시 보지 않기로 하지 않았나?”
“그랬지.”
“그런데 왜 기어 나왔지?”
“상황이 변했으니까.”
“나를 납득시키지 못하면 두 번 다시 지하로 돌아갈 수 없을 거야.”
고란이 자리에서 일어나 크로커에게 다가갔다.
크로커에게 뒤지지 않는 체구와 엄청난 위압감이 자연스럽게 발산됐다.
두 사람은 상대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노려봤다.
크로커가 고란을 노려보며 말했다.
“마력 발전기가 필요하다.”
“며칠 전에 마력 발전기 정보를 준 것 같은데?”
“그랬지!”
“그런데?”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실패? 씨발! 이동 경로까지 친절하게 알려 줬는데 탈취하는 데 실패했다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
크로커가 변명 대신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고란과 크로커는 일종의 공생 관계였다.
크로커는 고란에게 마약을 공급하고, 고란은 크로커에게 돈이나 정보로 대가를 치른다.
크로커가 취급하는 마약은 매우 질이 좋아 수요가 많다. 그래서 돈이 된다.
그것이 고란이 크로커와 손을 잡은 이유였다.
고란이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마력 발전기의 주인이 직접 추적해 왔다.”
“주인 새끼가?”
“탈취 장소가 놈의 집 근처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주인 놈에게 맥없이 빼앗겼다?”
“최소 C급 이상의 강자다.”
“하!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거냐? C급이 아니라 B급이었어도 처리했어야지. 이러다가 우리 관계가 노출되면 어쩌려고?”
“그런 일은 없을 거다.”
“씨발! 멍청한 새끼!”
“말조심해라.”
“조심? 그게 실패한 새끼가 할 말이냐? 위험을 무릅쓰고 도깨비 시장의 정보를 빼낸 건데.”
“다시 정보를 주면 마약 공급을 두 배로 늘려 주지.”
“못 주면?”
“동대문으로 찾아가겠다.”
“하! 이젠 요한과 나를 저울질하겠다고?”
고란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크로커를 노려봤다. 하지만 크로커의 노란 눈동자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 의리나 지켜야 할 정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거래로 이어진 사이.
얻을 것이 없으면 거래처를 옮기면 그만이다.
“카악! 퉤! 이래서 지하에 있는 것들은 믿을 수 없다니까. 하! 의리 없는 새끼들!”
“네가 마력 발전기만 구해 주면 우리의 의리는 끈끈하게 이어질 것이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할 거다. 악어 새끼!”
“걱정 마라.”
크로커의 확답에 고란이 이튼을 바라봤다.
“마력 발전기 남는 거 있냐?”
“도깨비 시장에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씨발! 그럼 그 새끼 물건이 유일하다는 건데? 그 새끼가 그렇게 강하다고?”
그가 알기로 크로커는 C급 무투계 각성자다.
등급은 낮지만 무시할 수 없는 실력자다.
특히 햇볕 한 점 들지 않는 지하에서의 싸움에 익숙하다.
지하에서의 싸움만큼은 그조차도 한 수 접어줄 정도였다.
그런 크로커가 지하로 추적해 온 자에게 털렸다.
추적자의 실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증거였다.
“C급 이상이 확실하다.”
“그런 놈이 허락도 없이 내 구역에 똬리를 틀고 있었단 말이지?”
선글라스 안에 가려진 고란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C급 이상의 각성자는 희귀하다.
그런 놈들은 이런 추레한 빈민가보다 화려한 네오 서울을 거주지로 택한다.
깨끗한 도시에서 살 수 있는데, 굳이 빈민가를 택하는 자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빈민가를 택한 자들은 대부분 어떤 이유에서든 네오 서울에 들어갈 수 없는 자들이다.
고란이 그렇고, 밑에 있는 심복들도 자격이 없었다.
워낙 어려서부터 범죄를 많이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일찍이 네오 서울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빈민가 제패를 목표로 삼았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자본이 필요했다.
그중 상당수를 해결해 주는 것이 눈앞에 있는 크로커와 악어들이었다.
놈들이 공급하는 마약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구할 수 없는 귀한 것들이었다.
그걸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고란이 이튼에게 말했다.
“네가 그놈에게 가 줘야겠다.”
“협상입니까? 강탈입니까?”
“네가 만나 보고 판단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우리 쪽으로 끌어들여. C급이면 꽤 큰 전력이 될 테니까.”
“네!”
이튼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는 단순한 비서가 아니었다.
행동대장 격인 돌칸과 비슷한 무력을 지닌 강자였다. 거기에 꽤 머리가 좋았다.
이튼이라면 이번 일을 훌륭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
“후르륵!”
제온은 소리를 내며 국밥을 먹었다.
정체 모를 짐승의 고기로 만든 국밥은 무척이나 맛있었다.
오늘 그가 국밥을 먹는 곳은 클렉시 영감의 가게가 아니었다. 처음엔 주로 클렉시 영감의 가게를 찾았지만, 이제는 다른 가게를 더 많이 찾았다.
국밥 한 그릇을 모두 비운 제온이 탁자 위에 돈을 놓고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또 오슈.”
“네!”
주인의 퉁명스러운 대꾸에도 제온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에게 낙이 있다면 이렇게 밤에 시장에 나와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 외엔 하는 일 없이 집 안에서만 빈둥거렸다.
그래도 심심한지 몰랐다.
그의 인생에서 지금만큼 재밌는 시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치열하게 살아왔기에 지금의 고요함이 좋았다.
제온은 될 수 있으면 이런 평화가 오래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애송아!”
그때 갑자기 클렉시 영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기 좌판 앞을 지나가는 제온을 보고 부른 것이다.
제온이 멈춰서 클렉시 영감을 바라봤다.
“네?”
“요즘은 우리 가게 말고 다른 곳을 더 가는 것 같다?”
“한집에서만 먹으면 물리니까요.”
“내 음식이 맛없다는 것은 아니지?”
“그냥저냥 먹을 만해요.”
“이 정도면 훌륭한 거지. 아마 네오 서울 안쪽에 있는 놈들도 이런 맛을 못 낼걸.”
“그렇겠죠.”
“너, 그거 비웃음이지? 진짜라니까.”
“네네!”
건성으로 대답하는 제온의 모습에 클렉시 영감이 도끼눈을 떴다. 하지만 제온은 여전히 권태로운 표정이었다.
“거, 새끼! 사람 말하는데 김빠지게…….”
“이제 가도 될까요?”
“잠깐 앉아 봐. 이야기 좀 하게.”
“무슨 이야기요?”
“일단 앉으라니까.”
제온은 어쩔 수 없이 좌판 앞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인데요?”
“너 계속 그렇게 놀 거야?”
“왜요?”
“왜긴, 인마! 일이 있으니까 그러지.”
“무슨 일요?”
“관심은 있냐?”
“없으면 그냥 보내 주려구요?”
“거, 새끼! 김빠지게…….”
클렉시 영감이 제온을 흘겨봤다.
“그러니까 무슨 일인데요?”
“너, 알바 하나 할래?”
“무슨 알바요?”
“배달 일이야.”
“그러니까 무슨 배달요?”
“들으면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럼 안 할게요.”
제온은 더 들어 볼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클렉시 영감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에게 부하가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 부하들을 제쳐 두고 자신에게 의뢰한다는 것은 그만큼 극비를 요하는 일이거나, 클렉시 영감이 관련되었다는 것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이 잘못되면 토사구팽당할 확률이 높았다.
괜히 엮여서 좋을 것 하나 없었다.
제온이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시켜요.”
“야!”
“저 갑니다.”
제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클렉시 영감이 제온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눈치 더럽게 빠르네.”
자신이 관련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래서 제온을 골랐다.
제법 눈치도 있고, 실력도 있다.
더욱 좋은 것은 꼬리 자르기를 해도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넌지시 운을 뗀 것인데 눈치를 챈 제온이 단숨에 거절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