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75)
75화
“하여간 방심할 수 없다니까.”
제온이 슬쩍 뒤를 돌아봤다.
아직도 미련 가득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클렉시 영감이 보였다.
그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으면 분명 그대로 코를 꿰였을 것이다.
저런 늙은 여우들은 약간의 빈틈만 보여도 독사처럼 헤집고 들어와 빠져나갈 수 없게 옥죈다.
가장 좋은 것은 엮이지 않는 것이지만, 이미 엮인 이상 적절한 거리를 둬야 했다.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이런 관계였다.
마수와 싸우는 것은 차라리 나았다.
피아가 분명했으니까.
인간 세상에 섞여 살려면 생각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제온이 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주위에서 느껴지는 낯선 시선들 때문이었다.
“후!”
제온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귀찮은 혹을 하나 떼어냈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혹이 달라붙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온이 아무 움직임도 없자, 누군가 다가왔다.
빈민가에서 보기 힘든 말쑥한 양복 차림에 꽁지 머리를 한 남자는 바로 이튼이었다.
이튼이 입을 열었다.
“제온 맞지?”
“그러는 댁은 누굽니까?”
“맞다는 말이군.”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만?”
“내 이름은 이튼이다.”
“이튼?”
“고란 님을 모시고 있지.”
이튼의 대답에 제온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튼은 모르지만, 고란은 알고 있었다.
신촌에 살고 있는데, 신촌의 지배자를 모르는 것이 더 이상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요?”
“마력 발전기.”
“네?”
“어디 있나?”
“무슨 말입니까?”
“마력 발전기 회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디에 있나?”
“…….”
제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마력 발전기를 소유한 것을 아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마력 발전기를 팔았던 상인과 탈취했던 자들.
상인은 이미 죽었으니 남은 것은 마력 발전기를 탈취했던 자들 뿐이다.
“당신들이 악어들에게 정보를 흘렸군요.”
제온의 말에 이튼이 흠칫 놀랐다.
마력 발전기라는 단어 하나로 거기까지 유추해 낸 제온의 추리력에 놀란 것이다.
추정 무력 C급 이상.
거기에 두뇌까지 뛰어나다.
빈민가에서 찾아보기 힘든 인재가 분명했다.
이튼의 머릿속에 포섭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너, 마력 발전기를 넘기고 우리 밑으로 들어와라. 그럼 충분히 대우해 주지.”
“마력 발전기도 넘기고, 당신들의 개가 되란 말이군요.”
“개도 어떤 주인을 두느냐에 따라 팔자가 달라지지. 고란 님은 능력 있는 자를 후하게 대우한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다.”
“사양하겠습니다.”
“단호하군.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나을 거다.”
“몇 번을 물어도 제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그러면 마력 발전기만이라도 넘기도록. 마력 발전기만 넘기면 조용히 물러가지.”
그때였다.
찌르르!
아공간 속의 알람이 울렸다.
그의 집에 누군가 무단 침입하려 한다는 신호였다.
“벌써 내 집으로 사람을 보낸 겁니까?”
“알람을 설치해 뒀나?”
“기본이죠.”
“그렇다면 대화가 더 잘되겠군. 어차피 네가 허락하지 않아도 우리 아이들이 마력 발전기를 가지고 나올 거야. 그러니까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여.”
“운명이라…….”
“그게 너를 위해 좋을 거야. 제아무리 C급 각성자라고 해도, 이 거리에서 고란 님의 눈 밖에 나고도 살 수는 없으니까. 그냥 조용히 살아. 없는 사람처럼…….”
이튼은 마치 마력 발전기가 자신의 소유인 것처럼 말했다.
그는 제온의 집에 수하들 몇 명을 보냈다.
그중 두 명은 각성자였다.
비록 등급은 F급밖에 되지 않지만, 그 정도 능력만으로도 허름한 건물의 문 따윈 손쉽게 부술 수 있었다.
제온이 굳이 문을 열어 주지 않더라도 마력 발전기를 손에 넣는 것은 금방이었다.
“진심으로 하는 충고니까 받아들이는 게 좋을 거야. 모두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그게 어떻게 나를 위한 일이란 건지 모르겠네요.”
“말했잖아. 마력 발전기는 이미 우리 손에 넘어온 거나 다름없다고. 네가 발버둥 쳐 봐야 소용없어.”
“그럴까요? 내 생각엔 아닌 것 같은데.”
“뭐?”
그때였다.
제온의 집이 있는 건물에서 몇몇 사내들이 뛰어나왔다.
마력 발전기를 가지러 갔던 이튼의 수하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엔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튼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왜 그러느냐?”
“그게, 문을 못 열겠습니다.”
“뭐?”
“문이 뭐로 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열리지 않습니다.”
“부수면 되잖아. 병신들아!”
“부서지지도 않습니다. 문뿐만 아니라 벽, 창 모두 저희 공격이 통하지 않습니다. 저 새끼가 무슨 수단을 쓴 것이 분명합니다.”
부하의 말에 이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처음엔 부하가 거짓말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가 자신에게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었다.
이튼이 제온을 노려봤다.
“네놈 짓이냐?”
“문단속을 하는 건 기본 아닙니까?”
“순순히 문을 열어 주는 게 좋을 거다. 죽고 싶지 않으면…….”
“도깨비 시장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뭐?”
“당신들이 자신들의 정보를 빼낸 거 말입니다. 그쪽이 알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
순간 이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들이 도깨비 시장의 정보를 빼돌린 것은 극비였다.
도깨비 시장의 신뢰와 관련된 일이기에 그들이 알면 분명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도깨비 시장과의 전쟁.
못 할 것도 없었지만, 그렇게 되면 이쪽도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다.
“네가 도깨비 시장에 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어느새 이튼의 수하들이 제온을 완벽하게 포위하고 있었다.
“고분고분 마력 발전기를 넘겨줬으면 좋았을 텐데, 쓸데없이 일을 크게 만드는군.”
제온을 바라보는 이튼의 눈빛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그의 부하들 손에는 어느새 무기가 들려 있었다.
마수 도축용 칼.
이 거리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무기였다.
마수를 해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칼은 인간의 연약한 육신 따윈 순식간에 조각낼 수 있었다.
이튼이 명령을 내렸다.
“죽여라!”
“이야아!”
“죽엇!”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하들이 제온에게 도축칼을 휘둘렀다.
쉬아악!
소름 끼치는 파공음과 함께 날아드는 도축칼.
순간 제온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
상대의 공격이 그의 휴식이 끝나는 신호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꼴사납게 가만히 당해 줄 생각도 없었다.
화르르!
그의 몸 주위에 불덩이 수십 개가 동시에 떠올랐다.
초열의 건틀렛으로 만들어 낸 화염구였다.
화염구는 그대로 도축칼을 휘두르던 남자들의 몸에 격중했다.
“크악!”
“뜨, 뜨거워!”
“살려 줘!”
몸에 불이 붙은 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하지만 그들 몸에 붙은 불은 꺼질 줄 몰랐다.
불이 붙은 자들 중에는 각성자들도 존재했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불을 끄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불길은 오히려 맹렬하게 타올라 그들을 불태웠다.
“끄으으!”
“물, 무우울!”
그들의 처절한 비명이 거리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누구 한 명 나서지 않았다.
“제기랄!”
이튼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제온이 C급 이상의 힘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 정도로 화염구를 다룰 줄은 몰랐다.
이튼이 제온에게 말했다.
“불을 거둬라.”
“네?”
“화염계 각성자라면 불을 마음대로 끌 수도 있을 터. 내 부하들에게 붙은 불을 꺼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 주지.”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네요. 당신이 제게 명령을 내릴 처지가 아닌데.”
“쥐꼬리만 한 능력을 믿고 날뛰는구나.”
“쥐꼬리라뇨? 그래도 드래곤 꼬리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는데.”
“애송이가 감히 나를 놀려?”
이튼의 눈빛이 바뀌었다.
순간 제온이 몸을 비틀었다.
슈와악!
간발의 차이로 무언가 그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회피가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머리가 그대로 꿰뚫릴 뻔했다.
제온을 스치고 지나간 것은 쇠구슬이었다.
저 멀리 날아갔던 쇠구슬이 서서히 날아와 이튼의 몸 주위를 위성처럼 맴돌았다.
쇠구슬의 출처는 바로 이튼의 주머니였다.
제온이 말했다.
“염동력자입니까? 흔치 않은 능력인데.”
“그래! 내 능력은 염동력이다.”
이튼의 주머니에서 쇠구슬 십여 개가 둥실 떠올랐다.
특수한 금속으로 만든 쇠구슬이었다.
같은 크기의 다른 금속보다 몇 배는 무겁고 단단했다.
염동력으로 날린 쇠구슬에 맞으며 근육이 파열되고, 뼈가 과자처럼 부서져 나간다.
이튼은 이제까지 이 능력으로 고란의 경쟁자 수십 명을 골로 보냈다.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봐라. 애송아!”
슈슈슈슝!
쇠구슬들이 마치 총으로 쏜 것처럼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목표는 당연히 제온이었다.
이튼의 눈에는 제온의 몸에 커다란 구멍이 뻥뻥 뚫리는 환상이 보였다.
어떤 능력이든 상극이 존재했다.
화염계 마법이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하지만, 그렇다고 어마어마한 속도로 쏘아진 쇠구슬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따다다다당!
쇠구슬이 무서운 속도로 제온의 몸에 격중하면서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쇳소리?’
순간 이튼은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살에 구멍이 뚫리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그의 짐작대로 쇠구슬은 제온의 몸을 뚫지 못했다.
제온의 몸에 부딪히기 무섭게 사방으로 튕겨 나간 것이다.
그가 입은 로브는 레비아탄의 가죽으로 만든 것이었다.
겨우 이 정도 공격엔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당연히 제온의 몸에도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이익!”
이튼이 바닥에 떨어진 쇠구슬을 다시 움직이려 했다.
이번 목표는 제온의 머리였다.
머리엔 아무런 보호구도 없으니 단숨에 뚫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눈을 부릅떠야 했다.
화르륵!
마치 용광로에서 쇳물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자신의 쇠구슬들이 녹아 흘러내리고 있었다.
뚝뚝!
쇳물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미친!”
이튼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겨우 C급 각성자가 그의 쇠구슬을 단숨에 녹일 정도의 화력을 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상대는 그 이상이었다.
“제기랄!”
이튼은 급히 뒤로 물러났다.
상대의 전력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일단 물러나 고란에게 알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제온은 이튼이 순순히 물러나도록 봐줄 생각이 없었다.
이튼이 물러나는 속도보다 몇 배는 빨리 제온이 쇄도했다.
모래 걸음을 펼친 거지만, 이튼은 그런 사실도 알지 못했다.
마치 블링크를 펼친 것처럼 순식간에 이튼 앞에 나타난 제온이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화염구 수십 개가 나타나 이튼에게 쏘아졌다.
이튼이 날렸던 쇠구슬보다 빠른 속도로 화염구들이 날아와 이튼에게 작렬했다.
퍼버버버벙!
화염이 연이어 폭발했다.
“크아악!”
새빨갛게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이튼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