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76)
76화
시뻘건 화염 속에서 이튼이 튀어나왔다.
온몸에 화상을 입고, 머리카락이 불에 그슬려 곱슬머리가 되었다.
“이 개새끼가…….”
이튼이 무서운 눈빛으로 제온을 노려봤다.
제온이 레비아탄의 가죽으로 만든 로브를 입고 있는 것처럼 그 역시 비장의 한 수를 가지고 있었다.
완전히 타 버린 겉옷 안에 받쳐 입었던 검은 슈트.
방어력 하나만큼은 손에 꼽힌다는 철갑 코뿔소의 가죽에 네오 서울의 기술력이 더해 만들어진 방호 슈트였다.
정식 명칭은 콜레인 No―3.
어지간한 물리, 마법 공격에서 착용자를 보호해 주기에 수요가 많았다.
반면 철갑 코뿔소의 가죽을 구하는 것이 워낙 힘들어서 만들어지는 수량이 극히 적었다.
그 때문에 네오 서울에서도 콜레인 No―3를 가진 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귀한 물건을 이튼은 어렵게 구해 착용했다. 그리고 콜레인 No―3는 자신이 왜 그렇게 비싼지 증명했다.
쇠구슬마저 녹이는 초고열의 화염에서 이튼을 보호한 것이다.
콜레인 No―3가 아니었다면 이튼은 뼈째 녹았을 것이다.
제온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이튼이 입고 있는 콜레인 No―3를 바라봤다.
“이 정도 화염에도 멀쩡한 것을 보니 마수 가죽으로 만든 모양이네요?”
“이제 알겠느냐? 콜레인 No―3를 입은 이상 나에겐 네놈의 화염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
“콜레인 No―3? 네오 서울의 작품인가요? 역시 대단하네.”
제온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가 방금 전에 펼친 화염구는 어지간한 금속도 녹일 만큼 엄청난 고열을 발산했다. 그런 초고열 속에서 착장자를 완벽하게 보호했다는 것은 콜레인 No―3의 방어력이 그만큼 대단한 것을 의미했다.
“뒈졋!”
이튼이 다시 염동력을 펼쳤다.
그의 손짓에 가로등 하나가 뽑혀져 나왔다.
가로등은 순식간에 수천 조각으로 분열되어 제온에게 날아왔다.
“어디 이번에도 녹여 보시지.”
이튼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콰콰콰콰!
제온이 서 있던 자리에 쇳조각들이 꽂혔다.
이튼은 제온이 갈가리 찢겨 나갈 것을 기대했지만, 그 어디서도 제온의 것으로 짐작되는 육편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제온이 모래 걸음을 펼쳐 그의 공격을 피한 것이다.
이튼의 눈이 제온을 찾아 일대를 훑었다.
순간 그의 등골을 타고 소름이 올라왔다.
‘뒤?’
눈으로 확인한 것이 아니었다.
본능이 속삭인 것이다.
실제로 그의 뒤에선 제온이 서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씨발!”
이튼이 급히 뒤돌아서려는 순간 제온의 주먹이 그의 복부에 작렬했다.
쾅!
“커억!”
복부를 관통하는 충격에 이튼이 입을 떡 벌렸다.
콜레인 No―3 덕분에 외상은 입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충격까지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내장이 짓이겨지는 충격에 이튼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제온은 그런 이튼의 머리에 다시 한번 주먹을 날렸다.
콰직!
“헉!”
엄청난 충격에 이튼의 목이 부러질 것처럼 홱 돌아갔다.
이튼의 눈동자에서 초점은 이미 사라지고 존재하지 않았다. 연이은 충격에 정신이 저 멀리 날아간 것이다.
초열의 건틀렛이 없어도, 모래 권능을 사용하지 않아도 제온은 강했다.
데이오든에게 혹독하게 단련을 받은 데다가, 무려 팔 년이나 세상을 떠돌면서 수많은 전투를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제온의 무투 능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이튼 정도는 맨손으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제온은 계속 이튼의 상체를 공격했다.
쩌어억!
거듭된 그의 공격에 콜레인 No―3 표면에 균열이 일어났다.
이로써 콜레인 No―3의 방어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본래 철갑 코뿔소의 가죽보다 50% 정도 방어력이 향상됐군.’
철갑 코뿔소 자체도 막강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다.
육체의 순수 방어력만 따지면 사막에서 활동하는 마수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 만했다.
그런 철갑 코뿔소의 가죽을 이용해 방어력을 50% 이상 향상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기술력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온의 눈높이엔 한참이나 모자랐다.
만일 이와 똑같은 재료를 모트 일족의 케일리에게 줬다면 적어도 두 배 이상의 방어력 향상과 특수한 능력을 인챈트 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 이튼이 입고 있는 것은 양산형이니 케일리 같은 장인의 솜씨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이로써 네오 서울이 가지고 있는 기술력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가늠할 수 있었다.
물론 콜레인 No―3만 가지고 예단하긴 일렀지만, 그래도 기준점으로 삼을 수는 있었다.
이제 이튼에게 볼일은 모두 끝났다.
제온이 주먹을 힘껏 내리쳤다.
쾅!
콜레인 No―3가 산산이 부서지며 이튼이 죽기 직전의 마수처럼 크게 퍼득거렸다.
제온이 무방비 상태로 널브러진 이튼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알죠? 남의 것을 빼앗으려다가 실패하면 자신의 목숨을 내놔야 한다는 걸.”
“씨……발!”
이튼이 힘없이 욕을 내뱉었다.
모를 수가 없다.
그게 바로 빈민가의 법칙이었으니까.
약하면 죽는 거고, 살아남는 놈이 모든 것을 가진다.
제온의 주먹이 그대로 이튼의 면상에 내리꽂힐 때였다.
“어머나, 성급해라.”
웬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이튼이 사라졌다.
쾅!
덕분에 제온의 주먹은 애꿎은 바닥만 박살 내고 말았다.
제온이 뒤돌아보니 화려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여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어떤 수단을 쓴 건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품에는 이튼이 안겨 있었다.
제온이 웃었다.
“신기한 스킬이네요. 공간 이동 같은 건가? 공간 계열 스킬을 익힌 사람은 극히 드문 것으로 아는데.”
“많은 것을 알고 있네요. 내 스킬은 아니고, 그냥 아이템 덕분이라고 말할게요.”
“어떤 아이템인지 알 수 있을까요?”
“정말 호기심이 왕성한 도련님이시네. 알죠? 영업 비밀은 함부로 노출시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중년의 여자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이름은 에이바.
고란이 자랑하는 네 명의 심복 중 하나이자, 사창가의 대모였다.
그녀는 이튼과 연인 사이였다. 그래서 이튼의 동향에 누구보다 민감했다.
에이바가 기절한 이튼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나마 볼 건 얼굴밖에 없는 사람인데 이렇게 망가트려 놓다니. 후환이 두렵지 않은 모양이네.”
“죽는 것 이상으로 두려워해야 할 게 있나요?”
“겁이 없는 도련님이네. 하긴 그러니까 감히 이 사람을 죽이려 한 거겠지만…….”
그녀는 더 이상 웃지도, 고혹적인 표정을 짓지도 않았다.
마치 감정이 없는 인형 같은 얼굴로 제온을 바라봤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갈게요.”
“누가 보내 준답니까?”
“착각하지 마요. 당신에게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니니까.”
순간 에이바의 모습이 물결처럼 흔들렸다.
“미러 이미지?”
제온이 에이바가 펼친 마법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화염을 날렸다.
푸화하학!
엄청난 화염이 에이바와 이튼이 있던 자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곳엔 이미 두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미러 이미지로 현혹한 후 자리를 빠져나간 것이다.
제온이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이것 참, 휴식 좀 취했다고 긴장감마저 사라져 버렸나 보네.”
네오 서울에 들어오기 전이었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사막에서의 방심은 곧 생명과 직결된다.
그 때문에 그는 단 한 순간도 방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네오 서울에 들어와 휴식을 취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느슨해진 모양이었다.
겨우 미러 이미지 따위에 현혹된 자신을 탓하며 제온은 걸음을 옮겼다.
추적하자면 못 할 것도 없지만, 효율이 너무 좋지 않았다.
“사냥개를 두들겨 팼으니, 주인이 나서겠지.”
제온이 살짝 고개를 흔들며 건물로 들어갔다.
십팔 층 자신의 집 앞에 도착한 제온이 피식 웃었다.
문에 억지로 열려고 한 흔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각성자도 부수지 못한 문이 제온이 손을 대자 알아서 스르륵 열렸다.
오직 제온만이 이곳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 뿐, 다른 자들에겐 허락되지 않는다.
로브를 벗은 제온이 소파에 앉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붉은 네온사인이 눈을 자극했다.
제온은 한참이나 그 광경을 바라봤다.
***
유세희는 발을 꼰 채 의자에 몸을 깊이 묻고 있었다.
누구나 애착을 가지는 대상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녀에겐 지금 앉은 의자가 그랬다.
백 년도 전에 만들어진 의자였다.
지구가 모래로 변하기 전에 만들어졌던 골동품.
의자의 가죽은 해지고, 스프링도 녹이 슬어 삐걱거렸다. 하지만 유세희에겐 그 소리가 자장가처럼 편하게 들렸다.
붉은 머리카락에 새하얀 가죽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자가 발을 꼰 채 까닥거리는 장면은 누가 봐도 매혹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유세희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그녀가 감았던 눈을 뜬 것은 한참 후였다.
“어렵네, 어려워!”
유세희가 탄식을 토했다.
도깨비 시장의 주인은 고려해야 할 것이 무척이나 많은 자리였다.
수많은 상인들을 보호하고, 외부의 위협에 대응해야 하다 보니 절로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젯밤에도 도깨비 시장에서 사고가 났었다.
상인들끼리 벌인 가벼운 싸움이었지만, 유세희는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요즘 들어 이런 경우가 부쩍 늘었어. 무언가 스트레스 요인이 있는 것 같은데…….”
짐작 가는 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중해야 했다.
“아가씨!”
그때 검은 옷을 입은 커다란 남자가 나타났다.
유세희의 호위인 흑사자였다.
흑사자의 등장에 유세희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사색을 방해할 정도라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 무슨 일이야?”
“신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고란?”
“네! 이튼이 움직였습니다.”
“이튼이면 고란의 비서잖아?”
“그렇습니다.”
“그가 왜?”
“그 남자를 찾아갔습니다.”
“알아듣게 말해.”
“제온! 아가씨도 본 적이 있는 남자입니다.”
흑사자의 대답에 유세희가 미간을 찌푸렸다.
기억을 더듬기 위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마력 발전기를 찾으러 악어 소굴에 들어갔던 그 남자 맞지? 그 남자에게 고란이 왜?”
유세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두 사람 사이에 접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란이 신촌의 지배자이긴 하지만, 아무 이유 없이 시비를 걸지는 않는다.
“뭐야?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는 거야? 고란이 왜 그를……. 그래서 결과는?”
“이튼이 죽을 뻔했습니다.”
“확실해?”
“제온에게 죽을 뻔한 것을 에이바가 나서서 겨우 구했다고 합니다.”
“그게 진짜야?”
“확실합니다.”
“미쳤네! 이튼이면 그래도 빈민가에서 강자라고 할 수 있는 자인데…….”
유세희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같은 신촌 안에 있기에 고란과 심복들의 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튼이 당했다는 소식이 더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유세희가 흑사자에게 물었다.
“고란이 어떻게 나올 것 같아?”
“아직 심복들이 남아 있으니 직접 움직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직접 움직이면 또다시 지옥이 펼쳐지겠지.”
유세희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수많은 조직이 난립하던 시기, 고란은 혼자 힘으로 수많은 경쟁자를 제압하고 신촌의 지배자가 됐다.
그때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지 유세희는 잘 알고 있었다.
“왜 하필 그와 엮여서…….”
유세희는 진심으로 제온의 처지가 안타깝게 여겨졌다.
그녀의 눈엔 그의 잔혹한 최후가 환히 보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