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77)
77화
쿵쿵!
아침부터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제온이 눈을 떴다.
제온이 로브를 걸치면서 문으로 걸어갔다.
“누굽니까?”
“저예요, 형!”
고란 패거리가 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레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온이 문을 열자 레빈이 보였다.
레빈이 제온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무사하네요?”
“웬일이냐?”
“고란의 수하와 시비가 붙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어요.”
“도와주려고?”
“알려 주려고요.”
“뭘?”
“안에 들어가도 될까요?”
제온이 비켜서자, 레빈이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역시 여기가 제일 좋네요. 아지트 같아요.”
“복수는?”
“애들 풀어서 찾고 있는데 쉽지 않네요. 우리 가족을 죽인 것을 마지막으로 꼭꼭 숨었어요.”
“그래?”
“개새끼가 냄새를 맡았나 봐요.”
레빈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그날 이후 그는 살인마를 찾아서 온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친구들이 그를 돕겠다고 나섰고, 빈민가 거리에 그의 눈과 귀가 쫙 깔렸다. 그런데도 살인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거짓말처럼 살인 행각을 멈추고 사라진 것이다.
“그래도 반드시 찾아낼 거예요. 개가 똥을 끊지, 언제까지 그렇게 살인을 멈추고 조용히 살 수는 없을 거예요.”
“그렇겠지. 그건 그렇고 뭘 알려 주겠다고 아침부터 찾아온 거냐?”
“고란 말이에요.”
“고란이 왜?”
“형,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뭐가?”
“고란의 능력 말이에요.”
“뭐 아는 것 있냐?”
“저도 자세히는 알지 못해요. 하지만 들은 건 있죠.”
그제야 제온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데?”
“고란이 신촌의 지배자가 되었을 때 유독 많은 폭발 사고가 있었대요.”
“폭발?”
“잘은 모르지만, 그 때문에 건물 여러 채가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더군요.”
고란이 신촌을 장악한 게 벌써 이십 년 전 일이다.
당시 그가 어떻게 신촌을 장악했는지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전설만큼은 아직도 사람들 뇌리에 공포로 각인되어 있었다.
“정확히 어떤 능력인지 모르지만, 폭발에 관련된 것만은 분명해요. 그러니까 조심해요.”
“고맙다. 많은 도움이 되겠어.”
“형,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요.”
레빈은 고란과 척을 지고 싶지 않았다.
특별한 능력을 각성했다고 하지만 그는 아직 애송이에 불과했다.
등급도 낮고 자신의 능력을 백 퍼센트 활용할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그에겐 가족의 원수를 갚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원수를 갚기 전에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
제온이 피식 웃었다.
“그 정도면 충분해.”
“진심으로 살아남길 빌게요.”
“너도 반드시 원수를 갚길 바라마.”
“네! 우리 힘내요. 이만 갈게요.”
레빈은 누가 볼세라 은밀히 제온의 집을 빠져나갔다.
혼자 남은 제온이 중얼거렸다.
“폭발에 관계된 능력이라…….”
흔히들 각성자 하면 마법계, 무투계, 주술계, 기계와 결합한 자들까지 네 계통만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이나 레빈의 경우처럼 간혹 다른 계통을 각성하기도 한다.
어쩌면 고란도 그런 자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궁금하긴 하네.”
어쨌거나 직접 부딪혀 보면 알게 될 일이었다.
벌써부터 대비한다고 난리 피우고 싶지는 않았다.
제온은 간단하게 식사한 후 물을 끓였다.
그가 아공간에서 꺼내 든 것은 식물의 잎이었다.
그냥 식물의 잎이 아니라 식물형 마수의 잎이었다.
이놈은 선인장 형태를 취하고 있었는데, 근처를 지나가는 다른 마수들을 유인해 잡아먹었다.
이놈의 전신에는 특이하게 잎이 나 있었는데, 잎을 우려먹으면 맛이 기가 막혔다.
제온도 처음엔 멋모르고 놈에게 다가갔다가 잡아먹힐 뻔했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놈을 쓰러트리고 목숨을 구했다.
죽은 마수를 연구한 끝에 놈의 잎이 차로 우려먹으면 효능이 매우 좋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놈의 잎을 모두 따 아공간에 넣고 다녔다.
제온은 끓는 물을 컵에 따른 후 마수의 잎을 우렸다. 그러자 짙은 차향이 방을 가득 채웠다.
제온은 컵을 들고 창가로 다가갔다.
차를 한 모금씩 마시며 거리를 내려다봤다.
마수의 잎으로 만든 차는 심신을 안정시키며 마나를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제온은 시간이 날 때마다 마수의 잎으로 차를 끓여 마셨다.
이젠 얼마 남지 않은 것이 그저 아쉬울 뿐이었다.
그때 제온의 시야에 사거리 한가운데 서 있는 남자가 들어왔다.
마치 고릴라 같은 체형을 가진 대머리 남자였다.
대머리 남자는 정확히 제온을 보며 웃고 있었다.
제온은 본능적으로 대머리 남자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머리 남자가 주먹으로 제온이 있는 곳을 겨눴다.
남자의 주먹은 특이하게 금속으로 되어 있었다.
‘기계?’
그때였다.
퍼엉!
제온의 집을 겨눈 남자의 주먹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뒤이어 건물 전체가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흔들렸다.
쿠르르!
제온은 미간을 찌푸린 채 남자를 바라봤다.
“쇼크 웨이브군.”
남자가 기계 의수로 날린 것은 충격파, 쇼크 웨이브였다.
쇼크 웨이브가 남자 본연의 스킬인지, 아니면 기계 의수의 위력인지 모르지만 제온을 노린 것이 분명했다.
다만 남자가 몰랐던 것은 제온의 집에 결계가 쳐져 있다는 것이다.
지켜보는 눈이 만든 결계는 외부의 충격에서 제온의 집을 완벽하게 지켜 줬다.
퍼엉!
남자가 다시 한번 쇼크 웨이브를 날렸다. 하지만 그의 공격은 또다시 지켜보는 눈에 막혔다.
아마 몇 번을 더 공격을 날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자의 쇼크 웨이브로는 지켜보는 눈을 뚫을 수 없다. 남자도 분명 그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이어 쇼크 웨이브를 날렸다.
콰르르!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제온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남자의 노림수를 알아차린 것이다.
“대머리가 제법 머리를 쓰네.”
제온의 집이야 지켜보는 눈의 보호를 받지만, 다른 집들은 아니었다.
제온의 위, 아래, 옆집들은 난리가 났다.
벽이 무너지고, 기둥에 균열이 갔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라 비명을 질렀다.
이대로 쇼크 웨이브가 몇 번 쏘아지면 제온의 집이 있는 건물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
건물 자체가 무너지면 제아무리 지켜보는 눈의 보호를 받는 제온의 집이라도 버틸 수 없었다.
그래서 대머리 남자도 제온의 집에 결계가 쳐져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자마자 공략 방법을 바꾼 것이 분명했다.
“쯧! 귀찮게시리…….”
제온이 창문을 열었다.
그의 집은 십팔 층. 바닥에서부터 무려 오십 미터 이상 높은 곳에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내려다보는 것만으로 정신이 아찔해질 높이였다. 하지만 제온은 어떤 망설임도 없이 몸을 날렸다.
그의 몸이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바닥에 닿기 직전 제온의 속도가 급속도로 느려졌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모래 입자가 제온의 몸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머리 남자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제온이 바닥에 착지하기도 전에 모습을 감췄기 때문이다.
무사히 바닥에 도착한 제온은 곧장 대머리 남자를 추적했다.
대머리 남자를 추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겨 놨기 때문이다.
제온은 머지않아 대머리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대머리 남자는 콜로세움을 닮은 건물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마치 제온에게 따라오라는 듯이 고갯짓을 하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제온은 잠시 콜로세움을 바라봤다.
처음 와 보는 곳이었지만, 제온은 콜로세움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신초의 지배자 고란이 운영하는 투기장이 바로 이곳이었다.
“역시 고란의 수하였군.”
처음부터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제온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투기장으로 들어갔다.
“와아아!”
“죽여!”
투기장 안에 들어가자마자 엄청난 열기와 고함이 제온을 맞아 줬다.
수많은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켠 채 고함을 지르고 있었고, 투기장 한가운데서는 두 사람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아무런 능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은 낫을, 또 한 사람은 도끼를 들고 서로를 향해 휘두르고 있었다.
이미 그들의 전신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서로를 미친 듯이 공격하고 있었다.
지면 끝장이라는 절박한 감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절벽 끝에 몰아넣었는지 제온은 잘 알고 있었다.
제온의 시선이 투기장 가장 높은 곳을 향했다.
그곳에서 대머리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온은 곧장 대머리 남자가 있는 곳으로 걸어 올라갔다.
“왔군.”
대머리 남자가 있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중저음의 목소리가 그를 반겨 줬다.
제온이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봤다.
야구 모자, 가죽 점퍼를 입고 있는 거구의 흑인이었다.
그의 등 뒤로 제온을 유인해 온 대머리 남자가 보였다.
흑인이 제온에게 말했다.
“드디어 만나는군. 이름이…….”
“제온!”
“그래! 제온. 우리 초면이지?”
“그럴 겁니다.”
“나를 알고 있나 보군?”
“고란 아닙니까?”
“정확히 알고 있군.”
흑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어렸다.
그는 바로 신촌의 지배자인 고란이었다.
고란이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대머리 남자를 소개했다.
“이쪽은 내 친구인 돌칸이라고 한다.”
“따로 소개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 덕분에 집이 무너질 뻔했으니까요.”
“안 무너졌나?”
“다행히.”
“꽤 튼튼한 모양이군.”
“아쉬운 모양입니다?”
“사실은 그래. 원래는 무너트리라고 했거든.”
고란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돌칸이 변명하듯 말했다.
“집에 결계가 쳐져 있더군요. 쇼크 웨이브를 몇 방이나 날렸는데 멀쩡했습니다.”
“그래? 제법 능력이 있는 친구군. 난 능력 있는 친구를 좋아하지.”
고란의 뜨거운 시선이 선글라스를 뚫고 느껴졌다.
제온이 피식 웃었다.
“인정받으니 기쁘네요.”
“일단 자리에 좀 앉아.”
고란이 고갯짓을 하자 수하 하나가 의자를 내왔다.
제온은 거절하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고란이 손가락으로 투기장에서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을 가리켰다.
“보이나?”
“네!”
“절벽 끝에 내몰린 자들이야. 그들이 내뿜는 공포와 절박함이 느껴지지?”
“그렇네요.”
“난 저들이 발산하는 공포의 향기가 좋아. 사람을 흥분하게 만들거든.”
“악취미네요.”
“악취미?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너도 익숙해지면 헤어 나오지 못할걸.”
“글쎄요. 저는 이런 쪽에 관심이 없어서.”
“장담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인간의 가치관은 쉽게 변하는 법이니까.”
고란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들기며 웃었다.
제온은 그런 고란을 말없이 바라봤다. 그러자 고란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분위기가 경직됐군. 일단 식사부터 하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음식을 내왔다.
금세 탁자 위에 그럴싸한 음식들이 차려졌다.
고란이 포크와 나이프를 들며 말했다.
“스테이크야. 배양육이 아닌 진짜 소로 만든 진짜 스테이크. 먹을 만할 거야.”
그래도 제온이 포크를 들지 않자 고란이 창 너머로 보이는 네오 서울의 장벽을 바라봤다.
“네오 서울에 있는 놈들은 이런 것을 먹지. 너도 나를 따르면 이런 것을 매일 먹을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