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78)
78화
제온이 스테이크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고란의 말처럼 진짜 소고기로 만든 것이 분명했다.
조금씩 흘러나오는 육즙과 향기는 배양육이나 마수의 고기에선 느낄 수 없는 진한 풍미가 느껴졌다.
제온의 입안에 절로 침이 고였다.
고란이 스테이크를 썰며 말했다.
“사양하지 말라니까. 이거 진짜 맛있는 거니까.”
그는 크게 썬 고기를 입안에 넣고 씹었다.
그의 입가를 따라 육즙이 흘러내렸다.
고란은 손가락으로 육즙을 닦은 후 쪽 빨아먹었다.
순식간에 스테이크 한 덩이가 그의 배 속으로 사라졌다.
고란이 제온의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가리켰다.
“안 먹을 건가?”
“딱히 당기진 않네요.”
“쯧! 젊을 땐 아무거나 다 잘 먹어야 하는데.”
“입이 좀 짧아서 말입니다.”
“아직 배가 고프지는 않은 모양이군. 그럼 여자는 어떤가?”
딱!
고란이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기자 한쪽 문이 열렸다.
문 너머엔 아슬아슬한 옷차림을 한 여자 십여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화려한 옷차림의 중년 여자가 그녀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제온은 중년 여자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봤다.
에이바.
제온이 빈사 상태로 몰았던 이튼의 연인이자 사창가의 대모였다.
에이바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또 보네요, 도련님!”
“남자 친구는 괜찮은지 모르겠네요. 조금 심하게 두들겨 팼는데.”
“걱정해 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정도는 금방 훌훌 털고 일어날 테니까.”
“다행이네요.”
“정말 마음 착한 도련님이라니까.”
에이바가 눈웃음을 쳤다.
제온은 에이바가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연인을 죽일 뻔한 사람을 앞에 두고도 웃을 수 있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에이바가 양쪽에 있는 창녀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떻게,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나요? 제가 데리고 있는 아이들 중에서도 에이스만 추려 왔는데…….”
창녀들이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에이바가 데리고 있는 창녀들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이들이었다. 그녀들이 몸에 뿌린 향수 냄새가 제온의 후각을 자극했다.
제온은 그녀들을 하나하나 훑어봤다.
창녀들은 제온에게 어필하기 위해 육감적인 표정을 짓거나 가슴을 부각시키는 몸짓을 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제온의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제온이 말했다.
“제 취향은 아닌 것 같군요.”
“아직 여자를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일단 품에 안고 뒹굴다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예요.”
에이바가 고갯짓을 하자 창녀들이 제온을 둘러쌌다.
어떤 창녀는 제온의 무릎에 앉았고, 또 어떤 창녀는 제온의 가슴에 손을 집어넣고 어루만졌다.
남자라면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고란이 창녀들에게 둘러싸인 제온을 보며 말했다.
“한마디만 하면 돼. 그럼 그 여자들이 다 네 거야.”
“무슨 말을 하라는 겁니까?”
“나를 따르겠다는 말.”
“그러니까…….”
“그래! 난 지금 네게 스카웃 제안을 하는 거야. 그러니까 거절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거절당하는 데 익숙하지 않거든.”
말은 부드러운데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선글라스 너머 무서운 눈빛이 그대로 느껴졌다.
제온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도 거절하면요?”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 그리고 그 대가는 혹독할 거야.”
“원래 영입하려는 사람에게 이렇게 협박질을 하나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지.”
그가 제온에게 보냈던 이튼이 큰 부상을 입고 돌아왔다.
이튼은 돌칸, 태오, 에이바와 함께 그가 가장 믿는 심복이었다.
제온은 그런 이튼을 별로 힘들이지 않고 제압했다.
이튼과 에이바의 말에 따르면 그의 등급은 C급이 아닌 최소 B급으로 추정된다.
빈민가에서 B급 이상의 각성자는 극히 귀했다.
네오 서울 안으로 들어가도 귀족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이가 바로 B급 각성자다.
B급 각성자를 영입할 수 있다면 그까짓 사적인 감정이나 원한 따윈 얼마든지 잊을 수 있다.
제온이 말했다.
“저를 그렇게 높이 평가해 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대답하기 전에 한 가지만 물어보죠. 악어들에게 마력 발전기에 대한 정보 흘린 거 당신 맞죠?”
“비즈니스였어. 사적인 감정은 없으니까 오해 말라고.”
“역시 그렇군요.”
“참고로 말하면 나는 이 사실이 도깨비 시장에 알려지는 것이 싫어. 그러니까 신중하게 생각해서 대답해야 할 거야.”
고란이 하얀 이를 드러낸 채 웃었다.
새까만 피부와 대조되어 더 섬뜩하게 느껴지는 미소였다.
고란의 말뜻을 못 알아들을 제온이 아니었다.
이곳은 고란의 안마당이었다.
투기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고란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고란의 명령 한마디면 투기장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신촌 전체가 제온의 적이 되어 공격할 것이다.
신촌의 지배자라는 것은 단지 허울뿐만이 아니었다.
제온이 말했다.
“애초 내겐 선택지 자체가 없었군요.”
“계속 신촌에서 발 붙이고 살고 싶다면 내 밑으로 들어와. 그렇게 혹독하게 굴리지는 않을 테니까.”
“악어들은요?”
“마력 발전기만 내놓으면 돼. 그러면 아무 문제 없을 거야.”
“에이! 그게 무슨 해결책입니까? 결국 나만 손해 보는 짓인데.”
“원래 세상이 그런 거야. 약자는 모든 불합리한 조건을 감수해야 하지. 억울하면 네가 나보다 강자 입장이 되면 돼.”
“정말 그거면 됩니까?”
“자신 있어?”
고란이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고 제온을 바라봤다.
“세상 일이 꼭 자신감만 가지고 해결되진 않더라구요.”
“그런 경험이 많은 것처럼 말하는군.”
“적지는 않습니다.”
“하아!”
말꼬리를 잡는 제온의 태도에 고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의 얼굴엔 짜증이 어려 있었다.
“그럼 협상은 결렬되었군.”
“협상이란 것은 서로가 조금씩 양보할 무언가가 있을 때나 성립하죠.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손해 보는 협상을 누가 할까요?”
“그렇군! 내가 너무 너의 희생만 강요했군. 하지만 어쩌겠어? 그게 이 세상의 법칙인데. 지배자가 모든 것을 갖지. 난 이곳 신촌의 지배자야. 신촌에 있는 모든 것은 다 내 거야. 이 안에 있는 그 어떤 것도 내 손을 벗어날 수 없어.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고란의 광오 한 말에 제온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는 누구의 물건도, 소유도 아닙니다.”
“내 구역에 있으면 내 거야.”
“정신이 어떻게 되셨나 봅니다. 어떻게 해야 그런 정신 상태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네요.”
“말 가려 하는 게 좋을 거야. 내 인내심은 그렇게 강하지 않으니까.”
“그러는 그쪽이야말로 말 가려 하시죠.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와 쉬고 있는 사람 귀찮게 하지 말고.”
제온이 에워싼 창녀들을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란이 그런 제온을 노려봤다.
“앉아!”
“협상 결렬되었습니다.”
“내 말 안 끝났어. 앉아!”
“난 끝났습니다.”
“이후에 일어날 일 감당할 수 있겠어?”
“얼마든지요.”
“아직 어려서 그런가 겁이 없군.”
“누구처럼 보호막 안에 꼭꼭 숨어 있진 않죠.”
제온의 이죽거림에 고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실제로 보호막을 펼친 것은 아니지만, 공격을 받으면 보호막을 펼치는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었다.
바로 그의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였다.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으로 어렵게 구한 물건이었다.
하루에 딱 한 번, 불의의 공격을 받았을 때 자동으로 발동된다.
고란은 이 반지를 수호의 반지라고 불렀다.
수호의 반지가 없었다면 절대 제온을 가까이 두지 않았을 것이다.
제온이 수호의 반지 존재를 눈치채고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고란을 찔리게 하기 충분했다.
“큭큭!”
고란이 웃었다.
그는 더 이상 제온을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제온이 탐나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자존심이 상하면서 얻고 싶지는 않았다.
고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제온보다 머리 두 개는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말했다.
“오늘은 손님으로 초대했으니 보내 주마.”
“감사합니다. 그럼…….”
제온이 살짝 고개를 숙인 후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멀어져 가는 제온의 뒷모습을 보며 돌칸이 입을 열었다.
“정말 보내 주는 겁니까?”
“그럴 리가…….”
고란이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제온은 계단 아래 투기장까지 거의 내려간 상태였다.
투기장 안은 싸움이 끝났는지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그 순간 고란이 외쳤다.
“이제부터 새로운 대결을 하겠다.”
“와아아!”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새로운 싸움을 기다리던 사람들의 얼굴이 흥분으로 붉게 물들었다.
고란이 손가락으로 제온을 가리켰다.
“상대는 제온, 누구든 제온을 쓰러트리는 자에게 일만 솔을 주겠다.”
“와아아!”
투기장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 고란에게 빚을 갚지 못하고 잡혀 온 일반인들이었다.
그들의 손엔 도끼나 검 같은 냉병기가 들려 있었다.
일만 솔을 준다는 고란의 선언에 그들은 이성을 잃었다.
일만 솔이면 빚을 모두 갚고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
제온이 한숨을 내쉬며 고란을 올려다봤다.
고란은 그런 제온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저들은 아무 능력도 없는 일반인이다. 과연 일반인을 상대로 네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지켜보마.”
“하! 정말…….”
제온이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어지간하면 조용히 살고 싶어 예의 있게 행동했는데, 상대에겐 그런 제온의 모습이 호구로 보였나 보다.
“씨발! 죽어!”
“일만 솔이다.”
“내 돈 내놔.”
투기장에 잡혀 온 일반인들이 제온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그들의 목소리와 눈빛엔 절박함이 가득했다.
그들에게 제온은 오래전에 사라진 복권 같은 존재였다. 잡으면 이 지옥 같은 현실을 벗어나게 만들어 주는.
거기에 관중들의 환호성이 더해졌다.
“와아아!”
“싸워라!”
그들의 환호가 무기를 든 자들의 남은 이성마저 마비시켰다.
쉬익!
검과 도끼 등이 제온의 목과 가슴을 노리고 날아왔다.
자기들 딴에는 최선을 다한 공격이었지만, 제온의 눈에는 너무 느리게 보였다.
제온이 움직였다.
파바바박!
격타음과 함께 제온에게 달려들던 자들이 모두 뒤로 날아갔다.
그들이 휘두르던 무기는 제온의 몸에 터럭만큼의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제온이 고란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소용없다니까요.”
“아니, 그들은 이미 맡은 바 임무를 훌륭히 해냈다.”
고란이 씨익 웃었다.
그의 태도에서 이상한 조짐을 감지한 제온이 바닥에 쓰러진 자들을 바라봤다.
그중 한 명의 몸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제기랄!”
제온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뒤로 몸을 날렸다.
뻐엉!
순간 붉게 빛나던 자의 몸이 폭발했다.
제온이 미처 전권에서 벗어나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결국 제온도 폭발에 휩쓸려 투기장 벽에 처박히고 말았다.
각성자인 제온이 겨우 이 정도에 목숨을 잃을 리 없었다.
제온이 먼지를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제까지 수많은 경험을 했지만, 단 한 번도 인간이 폭탄처럼 터지는 광경은 본 적이 없었다.
자연적으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제온의 시선이 고란을 향했다.
“인간의 몸에 폭탄을 심다니, 제정신이 아니네요. 아저씨!”
“겨우 그 정도에 놀라긴…….”
고란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가 투기장의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소리쳤다.
“십만 솔이다. 제온의 몸에 상처를 입히면 십만 솔을 주겠다.”
“십만…… 솔?”
“미친!”
관객들의 얼굴에 광기가 어렸다.
십만 솔이라는 거액이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킨 것이다.
눈앞에서 제온에게 달려들던 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았음에도 말이다.
“내 거야! 아무도 건들지 마.”
“씨발! 내가 죽인다.”
관객들이 적으로 돌변해 제온에게 달려들었다.
제온이 짜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선 쎄게 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