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80)
80화
제온은 고란을 추적했다.
고란은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감춘 것도 아니었다.
도시에서의 이동은 필연적으로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벽이나 바닥, 혹은 사람들의 반응, 시선 이 모든 것이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흔적이 된다.
제온은 이런 식의 추적에 매우 능했다.
단지 주변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고란이 이동한 경로를 유추할 수 있었다.
문제는 고란의 추적을 방해하는 사람들이었다.
쾅!
제온 옆에 지나가던 사람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폭발했다.
다행히 제온은 폭발 직전 몸을 피해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하지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폭발에 휩쓸려 모두 목숨을 잃고 말았다.
“흐윽! 흐윽!”
“아파!”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도 공포에 질려 울거나 비명을 질렀다.
거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사람들은 메뚜기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제온을 노린 자살 테러는 연이어 일어났다.
일반적인 자살 테러와 다른 점이라면 폭사한 이들이 자의가 아니란 것이다.
자살하는 이들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지로 행하지만, 지금 폭사한 이들은 자신들이 폭발한 건지도 모르고 죽었다.
고란은 잔인하게도 빈민가의 사람들을 폭탄으로 활용했다. 희생자들은 자신들이 고란에 의해 폭탄으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콰아앙!
또 한번 폭발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근처에 있던 사람 둘이 한꺼번에 폭사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고, 거리는 아수라장이 됐다.
제온이 고란을 추격할수록 피해는 커졌다.
그제야 제온은 왜 사람들이 고란을 두려워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저 새끼 때문이야.”
“저놈이 있는 곳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있어.”
“개 같은 새끼!”
피해를 입은 자들은 제온에게 분노했다.
제온이 원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각성자도 아닌 일반인을 이용한 자폭 공격이었다.
폭발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남아도 죄책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고란은 공포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방법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상대에게 확실히 타격을 줄 수 있는지도 말이다.
고란은 이런 식으로 제온을 공공의 적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직접적인 공격보다도 더 무서웠다.
자신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입거나 죽는다면 누구라도 행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고란은 그런 인간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또 잘 이용했다.
적으로 만나면 가장 상대하기 힘든 부류였다.
제온이 고란을 추적하고 있다는 소문은 어느새 신촌 전역에 퍼졌다. 고란 측에서 일부러 정보를 흘린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메시지였다.
고란이 빈민가 주민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제온을 막지 못하면 너희가 죽는다.
그러니까 너희가 제온을 죽여라.
그의 메시지는 확실하게 빈민가의 주민들에게 전해졌다.
“씨발 새끼야!”
“네가 감히 고란 님을 쫓아?”
“죽엇!”
엄청난 적의가 제온에게 집중됐다.
이런 경우는 제온도 처음이었다.
사막에서는 모든 것이 선명했다.
적도, 아군도 확실하게 갈라졌다.
하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득을 좇아 움직였다.
그들에게 정의나 복수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지금 당장 자신의 이득과 안위가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제온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은 제온에게 통하지 않았다.
일반인들이 던지는 돌이나 칼 따위가 제온의 몸에 상처를 입힌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문제는 가까이 접근한 후 폭발하는 사람들이었다.
죽기 직전까지도 그들은 인간 폭탄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고란은 매우 오래전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단으로 빈민가의 주민들을 착실히 인간 폭탄으로 만들었다.
비록 마나 소모가 극심해서 한 번에 많은 이들을 만들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거리 곳곳에 자신을 위해 폭사할 이들을 충분히 배치해 놨다.
제온의 눈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훑었다.
그래도 몇 번이나 당하다 보니 이젠 상대의 몸 상태만 봐도 고란이 만든 인간 폭탄인지 구별할 수 있었다.
“너, 이 새끼! 고란 님을…….”
눈이 벌게져 목소리를 높이는 중년 남자.
제온은 그게 폭발 전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떠들고 있는 중년 남자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될지 모르겠지만…….’
제온이 중년 남자에게 몸을 날렸다.
중년 남자가 상황을 인지했을 때는 제온의 손바닥이 그의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뭐하는 짓…….”
“당신 살려 주는 거니까 가만있어요.”
투웅!
순간 중년 남자의 얼굴을 통해 제온의 마나가 주입됐다.
초열의 건틀렛을 이용해 화기를 침투시킨 것이다.
응축된 화기는 순식간에 중년 남자의 몸 안을 헤집고 다녔다. 그 과정에서 체내에 내재된 불순물들을 태워 버렸다.
불순물은 바로 고란이 침투시킨 마나와 피였다.
중년 남자의 몸에서 일종의 뇌관을 제거한 것이다.
“흐엑!”
중년 남자가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졌다.
그는 제온이 자신을 살려 줬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제온도 굳이 알려 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지금은 고란을 추적하는 게 더 급했다.
절대 고란에게 대비할 시간을 줘서는 안 됐다.
제온은 추적 속도를 더 높였다.
아예 자살 폭사 희망자들이 접근할 여지를 주지 않은 것이다.
끈질긴 추적 끝에 제온이 도착한 곳은 신촌 외곽 지역에 있는 조그만 창고였다.
창고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쪽에 지하로 통하는 입구가 존재했다.
제온이 중얼거렸다.
“구린 놈들은 하나같이 지하에 근거지를 마련해 놓는구나.”
물론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었어도 지하에 은신처를 마련해 놨을 테니까.
제온은 곧장 지하로 들어갔다.
이미 지하로 들어간 경험이 있기에 그의 움직임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비좁은 지하수로엔 악취가 가득했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냄새를 맡는 순간 정신을 잃을 정도로 지독했다. 하지만 제온은 코 한번 찡그리지 않고 지하수로를 내달렸다.
***
“놈이 추적해 오고 있습니다.”
에이바의 말에 고란이 살짝 인상을 썼다.
“끈질긴 놈이군. 여기까지 추적해 오다니.”
몇 번이나 인간 폭탄을 보내 놈에게 경고했다.
자신은 위험하니 이 이상 선을 넘지 말라고 말이다. 그런데 제온은 그의 경고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무서운 속도로 추적해 오고 있었다.
고란이 지나온 통로를 바라봤다.
“설마 한 놈 때문에 이 꼴이 될 줄 몰랐군.”
“강자입니다.”
“알고 있어. 최소 B급, 어쩌면 A급 이상일 수도 있어.”
“혹시 네오 서울에서 보낸 자가 아닐까요?”
“그럴 가능성도 있지.”
네오 서울은 빈민가의 세력들이 일정 이상으로 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 때문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빈민가의 세력들을 억압한다.
빈민가에서 새로운 각성자가 등장하면 귀신같이 나타나 스카우트해 가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제온은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갑자기 나타났다.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네오 서울에서 보냈다고 의심되는 부분이었다.
고란이 이를 악물었다.
진짜 제온이 그의 힘을 깎기 위해 네오 서울에서 보낸 자라면 전쟁을 각오해야 했다. 하지만 일단 제온을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가 굳이 냄새나고 더러운 지하 수로로 온 것은 제온이 무섭기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의 세력과 힘을 쓰지 않고도 처리할 방법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고란이 에이바에게 물었다.
“결자해지라는 말을 아나?”
“처음 들어 보는 말입니다.”
“흐흐! 나도 얼마 전에 배웠지. 대멸망 이전에 쓰이던 말인데, 원인을 제공한 자가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라더군.”
“그렇군요.”
에이바가 눈웃음을 쳤다.
그제야 고란이 무엇 때문에 굳이 이곳으로 왔는지 알아차린 것이다.
고란이 말했다.
“놈은 감히 나를 거역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거야.”
“역시 보스네요.”
“이 거리에서 나를 거역하고도 살아남을 자는 단 하나도 없어. 내 목표는 겨우 신촌의 지배자 따위가 아니야. 빈민가를 모두 통합하고, 언젠가는 저 성벽을 넘어서 네오 서울의 지배자가 될 것이다. 그게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자 운명이다.”
“그때까지 보스를 따를게요.”
“가자!”
“네!”
두 사람은 지하수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고 한참 후 제온이 나타났다.
제온은 그들이 서 있던 자리에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살폈다.
“이거 아무래도 그거 같네.”
제온은 바보가 아니었다.
고란의 의도를 눈치챘다.
이렇게 계속 지하수로 깊은 곳으로 유인하는데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더 이상했다.
고란의 의도를 눈치챘지만, 제온은 뒤돌아 나갈 생각이 없었다.
제온은 계속 걸음을 옮겼다.
언제부턴가 지하수로의 공기가 바뀌었다.
발밑의 축축하던 느낌이 사라지고 부드러운 모래가 쌓여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물이 흘러가는 지역을 빠져나온 것 같았다.
제온은 모래를 손으로 만졌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부드러운 모래.
제온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역시 깊은 곳엔 모래가 존재하는군.”
네오 서울은 모래 위에 지어진 도시였다.
수로에도 당연히 모래가 들어온다.
물과 함께 흘러내려온 모래는 이렇게 깊은 곳에 쌓일 수밖에 없었다.
제온은 모래 위를 걸어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에 고란과 에이바가 있었다.
문제는 두 사람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악어처럼 피부가 우둘투둘한 남자를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공터에 모여 있었다.
제온은 단번에 그들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악어들이군.”
역시 예상한 대로 이곳은 악어 소굴이었다.
우둘투둘한 피부의 남자는 악어들을 이끄는 크로커였다.
크로커는 제온 대신 고란을 노려보고 있었다.
“분명 내 부탁은 저자를 처리해 달라는 것이었을 텐데?”
“그랬지!”
“그런데 왜 저자를 이곳으로 끌어들인 거지?”
“흐흐! 생각보다 강하더라고. 감당하기 버거워서 말이지.”
고란이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반대로 크로커의 얼굴은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자신들이 제온을 처리할 거면 굳이 고란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었다. 불필요한 희생을 막기 위해 고란을 이용한 것이었는데, 고란은 오히려 이곳으로 재앙을 불러들였다.
이곳은 악어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이곳이 무너지면 지하수로에 사는 악어들이 큰 타격을 입는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고란은 제온을 이곳으로 유인했다.
고란이 태연히 말했다.
“같이 도우면서 살자고. 어차피 우린 공생 관계잖아.”
“개새끼가 진짜…….”
“진정하라고. 우리의 적은 저 자식이니까…….”
고란이 제온을 가리켰다.
이미 제온과 싸워 봤기에 그가 얼마나 강한지 안다.
결국 크로커는 고란의 멱살을 풀 수밖에 없었다.
분풀이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았다.
지금은 제온이라는 침입자를 처리해야 할 때였다.
크로커가 제온을 보며 말했다.
“겨우 마력 발전기 하나 때문에 일을 이렇게 키우다니. 너도 진짜 어지간하구나.”
“그러니까 왜 내 물건에 욕심내요? 그냥 다른 물건 찾았으면 됐잖아요.”
“다른 물건을 구할 수 있다면 욕심내지도 않았겠지.”
“그건 당신의 능력이 부족한 거구요.”
“잠시 후에도 주둥이를 나불댈 수 있을지 두고 보마.”
크로커가 쿵쿵거리며 제온에게 다가왔다.
그 뒤를 악어들이 따랐다.
고란은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흐흐! 드디어 내가 원하는 그림이 됐군.”
그의 눈은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이곳을 주목해 왔다.
크로커 딴에는 비밀을 지킨다고 노력했지만, 고란은 이곳을 진작 파악하고 있었다.
“흐흐! 싸워라. 싸워서 둘 다 뒈지면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