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84)
84화
유세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흑사자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지금 고란이 죽었다고?”
“정황상 그런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믿으라고?”
“…….”
“진짜란 말이야?”
유세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보고하는 흑사자도 믿기 힘든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고란은 행방불명이 되었고, 그와 싸웠던 제온은 집으로 귀환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제온이 승리한 것이다.
“그럼 제온이 신촌을 다스리는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이야?”
“그가 이튼을 만났습니다. 직후 이튼이 고란의 영업장을 돌아다니면서 수습하고 있습니다.”
“전쟁에선 승리했지만, 다스리지는 않는다?”
“그런 것 같습니다.”
“하아! 골치 아픈 남자네.”
유세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고란 같은 자가 다루기 쉬웠다.
그에겐 욕망이 가득했고, 자신이 가진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기에 모든 것이 선명했다.
고란의 목표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만 행동하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제온은 달랐다.
모든 것이 불분명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하나도 파악된 것이 없다.
그는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 같았다.
도깨비 시장을 맡은 후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제온 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유세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외출하시렵니까?”
“할아버지 좀 만나야겠어요.”
“모시겠습니다.”
흑사자의 호위 아래 유세희가 도깨비 시장을 나섰다.
그녀가 향한 곳은 상점들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유세희는 그중 한 곳으로 걸어갔다.
“네가 여긴 웬일이냐?”
한참 장사 준비를 하던 노인이 유세희를 발견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유세희가 새초롬한 표정을 지었다.
“손녀가 할아버지를 보러 오는 게 이상한가요?”
“이상하지. 수상하지.”
“할아버지!”
노인의 반응에 유세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귀 떨어지겠다. 어떻게 나이를 먹어도 그 성격은 변하지 않냐? 자리에 앉아라.”
유세희에게 자리를 권하는 노인은 바로 클렉시 영감이었다.
자리에 앉은 유세희가 말했다.
“손녀에게 골치 아픈 자리 물려주고 즐겁게 사시네요.”
“네 눈엔 이게 재밌게 사는 거로 보이느냐?”
“네!”
“딱히 부정은 못 하겠구나. 뭐, 어느 때보다 즐겁게 사는 건 사실이지.”
“쳇!”
유세희가 입술을 삐죽였다.
클렉시 영감과 유세희는 조손지간이었다.
그녀가 다스리는 도깨비 시장은 애초 클렉시 영감이 만든 것이었다.
물론 지금 규모로 확장시킨 것은 오롯이 유세희의 공이었지만, 시작은 클렉시 영감이 했다.
무슨 이유에선지 클렉시 영감은 유세희에게 도깨비 시장을 맡겨 두고 자신은 노점상을 하며 지냈다.
“그래! 뭐가 우리 손녀를 그렇게 골치 아프게 하는 거냐?”
“그게 보이나요?”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느냐? 절대 속내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런데 왜 내 눈에 읽힐까?”
“그거야 할아버지가…….”
“제온 때문이지?”
“…….”
정곡을 찌르는 클렉시 영감의 말에 유세희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녀도 나름 많이 성장했다고 자부했지만, 클렉시 영감 앞에선 모든 것이 읽혔다.
“그렇게 낙심할 필요 없다. 제온은 나도 아직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으니까.”
“그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겠어요. 아는 것 모두 말해 줘요.”
“사실 나도 아는 게 거의 없어. 그 녀석을 이곳에서 다시 본 게 팔 년 만이니까.”
“처음 만났을 땐 어땠는데요?”
“그땐 조금 어리바리했거든. 본인 딴에는 독심을 품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래서 더 등쳐 먹기 쉬웠어.”
“그를 등쳐 먹었어요?”
“흐흐! 당연하지.”
“진짜 못됐다니까.”
손녀의 타박에도 클렉시 영감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분명 그때는 놈의 속내를 알기 쉬웠거든. 그런데 지금은 능구렁이가 됐어.”
“할아버지도 그의 머릿속을 모르겠다는 건가요?”
“인정하긴 싫지만 그렇다. 지난 팔 년 동안 어떤 경험을 했는지 모르지만, 놈은 자신의 속내를 철저히 숨길 줄 알아. 조심해라. 잘못하면 너라도 놈에게 잡아먹힐 수 있으니까.”
“진심인가요?”
“진심이다. 내가 만난 팔 년 전의 제온과 지금의 제온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그래서 나 역시 원점에서 놈을 다시 파악하고 있다.”
“으음!”
“고란은 놈에게 당한 것이 분명해. 아르고스의 눈을 총동원해도 고란의 행방을 찾을 수 없어.”
아르고스의 눈은 클렉시 영감이 도깨비 시장과 함께 만든 조직 중 하나다.
도깨비 시장을 지키기 위해 만든 정보 조직인데, 빈민가 전체에 눈이 쫙 퍼져 있었다.
클렉시 영감은 아직 아르고스의 눈을 유세희에게 물려주지 않았다.
아르고스의 눈까지 운영하기엔 유세희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더 큰 후에 아르고스의 눈을 물려줄 생각이었다.
유세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대체 그의 정체가 뭘까요?”
“글쎄! 나도 알고 싶구나.”
***
제온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소파를 내려다봤다.
소파에는 브리엘이 널브러져 있었다.
고깔모자는 바닥에 떨어져 있어 뾰족한 귀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브리엘은 초점 없는 눈동자로 멍하니 제온을 바라봤다.
제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 약에 취한 하이 엘프라니.”
불과 한 시간 전 브리엘은 몸 상태가 급속도로 안 좋아졌다.
결국 그녀는 각성제를 복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가 지금 이 모습이었다.
각성제에 취해 해롱거리는 꼬마 엘프를 보는 것은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엘프라고 해도 어린아이였다.
종족을 떠나 어린아이가 약에 의지해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불쌍했다.
아마 데이오든이 살아 이 광경을 봤다면 잘됐다고 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온은 데이오든과 달랐다.
가치관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모두 달랐다.
문득 데이오든이 보고 싶었다.
그야말로 불꽃처럼 산화해 이 세상에 어떤 흔적도 남겨 두지 않았다.
데이오든다운 최후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제온이 데이오든을 추억하고 있을 때 약에 취해 있던 브리엘이 서서히 제정신을 차렸다.
“하아! 씨발!”
소파에서 일어난 브리엘이 욕부터 내뱉었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고깔모자부터 챙겼다.
고깔모자를 깊이 눌러쓴 브리엘이 제온을 바라봤다.
“싸구려 재료로 만든 거라서 부작용이 심해. 꼴 보기 싫어도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그럼 재료가 좋으면 상태가 조금은 좋아지냐?”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
“나가자!”
“어디를?”
“따라오기나 해.”
제온이 로브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브리엘이 서둘러 그의 뒤를 따랐다.
건물을 나선 두 사람은 거리를 걸었다.
제온이 브리엘을 데리고 간 곳은 바로 도깨비 시장이었다.
“와아!”
생전 처음 보는 도깨비 시장의 모습에 브리엘이 탄성을 내뱉었다.
지하의 음습한 곳에만 있었던 그녀에게 도깨비 시장은 신세계였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좌판에 깔린 물건들, 그리고 시장 특유의 활기찬 공기가 그녀의 넋을 빼앗았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브리엘이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제온이 그녀에게 말했다.
“괜찮은 재료 있으면 사.”
“마음껏 사도 돼?”
“그래!”
“고마워!”
브리엘이 신이 나서 상점으로 달려갔다.
제온이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를 때였다.
“예쁜 아이네. 누구야?”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온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차렸다.
“도깨비 시장의 주인이 이곳엔 어쩐 일입니까?”
“보다시피 순찰하고 있어.”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이는 바로 유세희였다.
그녀가 흑사자와 함께 나타난 것이다.
유세희가 다시 한번 물었다.
“그래서 저 아이는?”
“악어 소굴에 납치되어 있었더군요.”
“흠!”
“갈 곳이 없다고 해서 데리고 있어요.”
“보기보다 인정이 넘치네.”
“제가 한 인정 하죠.”
“우리 대화 좀 해.”
“지금 하고 있지 않습니까?”
“조용한 곳에서.”
“보다시피 저 아이를 봐야 해서요.”
“이 사람이 대신 지켜볼 거야.”
유세희가 흑사자를 가리켰다.
도깨비 시장에서 흑사자를 모르는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흑사자가 지켜보는 아이에게 바가지를 씌우려는 상인은 없었다.
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죠.”
“따라와!”
제온은 브리엘에게 마음껏 쇼핑하라고 말한 후 유세희와 함께 그녀의 사무실로 갔다.
“뭐 마실래?”
“그냥 물 한 잔이면 충분해요.”
제온의 대답에 유세희가 물을 컵에 따라 건네줬다.
“여기.”
“고맙습니다.”
“참 신기한 남자네.”
“그런가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고란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됐을 거 같아요?”
“죽인 거야?”
“네!”
“어떻게?”
“그냥요.”
제온의 짤막한 대답에 유세희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뚫어져라 제온을 노려봤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녀의 눈빛을 감히 마주 보지 못했을 테지만, 제온에겐 통하지 않았다.
“비밀이라는 거지?”
“남자에게도 숨기고 싶은 비밀은 있으니까요.”
“좋아! 인정. 그럼 한 가지 제안을 할게.”
“뭐죠?”
“도깨비 시장에 들어와.”
“거절할게요.”
“야!”
단칼에 거절하는 제온의 대답에 유세희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하지만 제온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내가 도깨비 시장에 들어갈 것 같으면 굳이 번거롭게 고란을 처리했을 필요가 없죠. 도깨비 시장에만 들어와도 고란이 쉽게 건드리지 못했을 텐데.”
“끄응!”
유세희의 인상이 구겨졌다.
그녀 역시 제온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굳이 도깨비 시장에 몸을 의탁할 생각이었다면 번거롭게 일 처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유세희는 제온이 탐났다.
제온을 도깨비 시장에만 들일 수 있으면 지금보다 든든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본인이 저렇게 명확하게 거부 의사를 밝힌 이상 강요할 수도 없었다.
정도 이상의 강요는 분명 상대의 반발만 불러올 테니까.
“오케이! 좋아. 네 의사를 존중할게. 대신…….”
“대신?”
“네 도깨비 시장 이용 등급을 상향 조정해 줄게. 대신 너도 우리 의뢰가 있을 때 긍정적으로 생각해 줘.”
“등급이 상향되면 뭐가 좋죠?”
“도깨비 시장 비밀 경매장을 이용할 수 있어.”
“경매장?”
“그래! 네오 서울에서 처분하기 힘든 물건이 간혹 나오기도 하거든.”
“그래요?”
“어떡할래?”
“좋아요. 그렇게 하죠.”
두 사람이 손을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