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85)
85화
네오 서울은 높은 방벽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
백 년 전에 만들어진 이 방벽은 요즘 세상에는 구하기 힘든 바위로 만들어졌다.
거대한 바위를 사각형으로 깎아서 빈틈 하나 없이 끼워 맞춰서 장성을 쌓고, 특수한 방법으로 강화했다.
그 때문에 어지간한 마수들은 감히 방벽을 뚫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 방벽 덕분에 네오 서울 안의 사람들은 마수의 공격을 걱정하지 않고 연구와 생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대멸망 이전의 과학 유산에 각성자들의 마법 능력이 더해지면서 네오 서울은 무섭게 발전했다.
비록 네오 서울 한정이긴 하지만, 옛 문명보다 뛰어난 신세계를 건설할 수 있었다.
네오 서울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중앙의 시청은 무려 오십 층이 넘어간다.
오십 층이 뭐 대수냐 할 수도 있겠지만, 건축 재료를 구하기 힘든 현시대에 오십 층이면 엄청난 투자를 한 것이다.
사실 재료가 충분했어도 그 이상 높이 짓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무 높으면 비행형 마수의 관심을 끌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높은 하늘 위에는 각종 비행형 마수들이 활공하고 있었다.
네오 서울에 형성된 항마력 때문에 접근하길 꺼리지만, 시청의 높이가 이보다 높아지면 놈들도 호기심에 접근할지 몰랐다.
현 지구에서 인류에게 허용된 영역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대멸망 이후 많은 발전을 이뤘다고 하지만 아직은 마수들을 조심해야 했다.
왜소한 체구의 남자가 창밖 너머로 시청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기랄! 멋지단 말이지.”
마법과 과학의 진수가 어우러진 시청은 네오 서울의 다른 건물들을 압도하는 멋이 있었다.
단지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가슴이 웅장해질 정도였다.
“어서 빨리 저 멋진 건물을 내 손안에 넣어야 할 텐데. 그놈의 늙은이는 하루빨리 뒈지지 않고 뭐 하는지 몰라.”
왜소한 체구의 남자가 혀를 차며 뒤돌아섰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더 선명히 보였다.
세월의 고단함을 말해 주듯 얼굴 가득 깊이 팬 주름과 입과 턱 주위로 난 하얀 수염이 그가 적잖은 풍파를 헤치고 살아남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노인은 머리에 금빛 실로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예전 세상이 멀쩡했을 때 아비의 고향에서 주로 사용하던 모자였다.
모자는 노인의 정체성이었다.
비록 단 한 번도 고향에 가 본 적은 없지만, 그는 자신의 핏줄이 시작된 기원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이 모자를 눌러썼고, 지금은 그의 상징과도 같이 됐다.
노인의 이름은 샤오룬.
네오 서울 남쪽을 지배하는 패자였다.
샤오룬의 등 뒤엔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늘씬한 체형에 얼음을 깎아 놓은 것처럼 냉막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샤오룬이 젊은 남자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 좀 전에 무어라고 했느냐? 이젠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한 번만 듣곤 기억하지 못해.”
“악어들에게서 연락이 끊겼다고 했습니다.”
“원인은 파악했느냐?”
“아무래도 빈민가의 생태계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그래?”
노인이 하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가 이렇게 흥미를 보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원하는 것은 거의 이뤘기 때문이다.
저 멋진 시청 건물의 주인이 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이는 쉽게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다.
저 건물을 차지하려면 이제까지 그가 네오 서울에 만들어 놓은 모든 것들이 송두리째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런 위험은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욕심은 있으나 감히 도전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할까?
가장 욕심나는 자리에 도전할 수 없으니, 권태로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확히 어디에 문제가 생긴 것이냐?”
“신촌입니다.”
“신촌? 거긴…….”
“고란이라는 자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래! 고란. 놈이 악어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했지?”
“맞습니다.”
“그런데?”
“놈과 악어들이 모두 죽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추측?”
“죽음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디서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으니 죽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젊은 남자의 말은 지극히 타당했다.
샤오룬이 물었다.
“누가 그랬는지는 알아냈느냐?”
“이제부터 알아내려 합니다.”
“그래! 너라면 잘하겠지.”
“겸사겸사 새로운 통로로 뚫어 보려 합니다.”
“네가 직접?”
샤오룬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젊은 남자의 이름은 타지크.
샤오룬이 가장 믿는 수하 중 하나였다.
“알았다. 모두 너에게 일임하마.”
“믿음에 보답하겠습니다.”
“가 보거라.”
샤오룬이 손을 휘두르자 타지크가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은 샤오룬이 다시 시청 청사로 시선을 돌렸다.
“이번엔 또 어떤 피라미가 물을 흐리는 걸까?”
빈민가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
제온이 코를 찡그렸다.
지독한 약 냄새가 집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흥흥흥!”
한쪽에서는 브리엘이 콧노래를 하며 솥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도깨비 시장에서 구한 조그만 솥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브리엘은 도깨비 시장에서 구한 온갖 재료를 본인만의 비법 배합으로 섞어서 끓이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재료들이 끓면서 지독한 악취가 흘러나왔다.
어지간해서는 인상을 찡그리는 법이 없는 제온이 인상을 썼을 정도로 냄새는 지독했다. 하지만 브리엘은 오히려 기대된다는 듯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브리엘은 거의 반나절 이상을 솥을 들여다보며 불 조절을 했다.
솥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액체는 대부분 졸아들어 얼마 남지 않았다.
순간 브리엘이 솥에 양손을 대고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의 능력인 연금술이 발휘된 것이다.
잠시 후 그녀의 손에서 빛이 사라지고, 솥 안엔 조그만 단환 십여 개가 남았다.
“완성이다.”
브리엘이 환호성을 질렀다.
제온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단환을 바라봤다.
“그게 금단 증상을 완화시켜 준다고?”
“하나에 열흘 정도…….”
“열 개면 백 일 정도인가?”
“그 후엔 더 좋은 재료를 구해서 만들어야 해.”
약을 오래 복용하면 몸에 내성이 생긴다.
효과가 강력한 약일수록 내성도 강해진다.
지금은 이 정도로 금단 증상을 약화시킬 수 있지만, 나중엔 더 강한 약을 만들어야 한다.
브리엘은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백 일이면 다른 대안을 찾기 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브리엘은 일단 한 알을 복용했다. 그러자 그녀의 혈색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힘들게 만든 약이 즉각 약효를 발휘하는 것이다.
약효가 도는 순간 그녀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졌다.
“어우! 씨……발!”
목소리마저 어눌해졌다.
약효가 너무 강하다 보니 마치 취한 것처럼 육체가 반응하는 것이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브리엘은 제정신을 차렸다. 여전히 눈에 초점이 잡히지 않았지만, 정신만은 또렷했다.
브리엘도 그 사실을 인지했기에 고깔모자를 깊이 눌러써 얼굴을 가렸다.
그런 그녀의 전신에서 강한 마나가 방출됐다.
눈에 띄게 마나가 상승하면서 일시적으로 일어난 현상이었다.
제온은 한눈에 그녀의 마나 상승을 눈치챘다.
“연금술로 마나도 상승시킬 수 있는 건가?”
“어느 정도는 가능해. 하지만 겨우 한두 번 정도 복용으로 드라마틱한 변화를 끌어내는 것은 내 수준으로는 불가능해.”
브리엘은 연금술사, 즉 알케미스트로 각성했다.
하지만 한창 성장할 시기에 인간들에게 잡혀 마약이나 만드는 바람에 성장이 정체됐다.
그녀가 제대로 된 알케미스트로 성장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제대로 성장한 후라면 마나를 비약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는 비약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성장하려면 망가진 몸부터 완벽하게 정상으로 돌려야 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일단 눈앞의 높은 벽 하나를 넘었으니, 다른 벽도 언젠가는 넘을 수 있을 것이다.
“호호! 두고 봐. 내가 S급이 되는 그 순간 네오 서울을 멸망시킬 테니까.”
브리엘이 양팔을 허리에 착 올린 채 웃음을 터트렸다.
꼭 주정뱅이가 술에 취해 헛소리하는 것 같았다.
브리엘에게 제온이 딱밤을 먹였다.
딱!
“무리다. 꼬맹이!”
“윽!”
브리엘이 빨갛게 부어오른 이마를 부여잡고 신음을 터트렸다.
“감히 고귀한 하이 엘프에게 딱밤을 때리다니.”
“그래 봤자 약에 중독된 꼬맹이에 불과하지.”
“두고 봐라! 내가 S급만 되면 가만 안 둘 테니까.”
“그러니까 S급 정도로는 안 된다니까 그러네.”
“웃기지 마!”
브리엘이 소리를 빽 질렀다.
엘프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각성하고, 손목에 계급장이 생겨난다.
F급부터 S급까지를 구분하는 일곱 개의 선.
그녀 역시 각성했고, 손에 계급장이 생겨났다.
그녀의 계급장엔 두 개의 줄이 빛나고 있었다.
E급 각성자라는 의미였다.
당장은 하급 각성자에 불과하지만, 경험이 쌓이고, 벽을 돌파하면 분명 성장할 것이다.
그녀는 S급이 되면 하이 엘프의 맹약을 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만 되면 이깟 인간들이 사는 도시 따윈 알케미스트의 능력으로 멸망시킬 것이다.
제온은 어린 하이 엘프를 보며 피식 웃었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확실히 자의식이 과했다.
그녀가 각성한 알케미스트는 전투에 적합하지 않다. 물론 연금술로 위험한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그 정도로 네오 서울을 무너트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S급이 각성자의 최고봉은 아니었다.
데이오든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계급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강함을 소유한 자들이 존재했다.
그런 자가 네오 서울에 있는 이상 브리엘의 야망이 실현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제온이 문득 네오 서울을 바라봤다.
저 멀리 솟아 있는 시청 건물이 보였다.
‘저기도 한번 가 보긴 해야 하는데.’
맨디를 통해 출입할 자격을 얻어 놓긴 했지만, 아직은 마음이 당기지 않는다.
그때였다.
“우오오! 영감이 떠오른다.”
갑자기 브리엘이 발광했다.
그야말로 미친년처럼 펄쩍펄쩍 뛰며 환호하는 것이다.
제온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브리엘은 혼자 분주히 움직였다.
“그래, 그러면 될 거 같아. 철갑 개미의 이빨, 샌드웜의 촉수, 그리고 또…….”
그녀는 곧 도깨비 시장에서 사온 각종 물건들을 탁자 위에 꺼내 놓았다. 이어 각종 도구를 꺼내 늘어놓았다.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실내 모습에 제온이 혀를 찼다.
“쯧! 괜히 미친 엘프를 주워 와서…….”
그놈의 하이 엘프의 맹약만 아니었어도 당장 쫓아내 버리는 건데, 그저 아쉽기만 했다.
브리엘의 광기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넘실거리는 광기에 제온조차 숨을 쉬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제온은 고개를 저으며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제온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 건물 십팔 층에 살았지만, 옥상에 올라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행히 옥상엔 아무도 살지 않았다.
제온은 옥상 난간에 앉아서 네오 서울을 바라봤다.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시청 청사가 유독 시야에 선명히 들어왔다.
제온은 그 모습이 이야기로만 듣던 등대 같다고 생각했다.
바다를 오가는 배들의 길잡이가 되어 주던 등대.
하지만 저 거대한 등대가 지금 시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제온은 데이오든보다 훨씬 많은 지역을 돌아다녔다.
현시대에 그보다 많은 곳을 가 본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만큼 많은 콜로니와 사람들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 어떤 콜로니도 네오 서울만큼 발전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콜로니는 그저 마수들의 습격에서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 급급할 뿐이었다.
그들에게 현시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의지나 역량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은 오직 네오 서울뿐이다.
그리고 네오 서울을 이끌어 가는 이는 시장 진금호다.
제온이 눈앞에 진금호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물었다.
“당신은 어떤 세상을 꿈꾸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