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87)
87화
요한이 사라지자 브리엘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 기분 나빠.”
마치 온몸에 벌레라도 기는 것처럼 브리엘은 호들갑을 떨었다.
제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가만히 놔두질 않는구만. 무슨 욕심들이 그리 많아서…….”
옛날 제온이 빈민가를 떠나기 전에도 요한은 동대문의 지배자였다.
그때 잠깐 동대문에 넘어갔던 제온은 학을 떼고 돌아왔다.
요한이 지배하는 동대문에 광신도들이 득실거렸기 때문이다.
요한을 좇아 정체도 모를 신을 추앙하는 이들이 가득했다.
대화도 잘 통하지 않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은 더 힘들었다.
그 때문에 제온은 동대문에서의 적응을 포기하고 다시 신촌으로 돌아왔다.
그 후 한동안 제온은 동대문 쪽으로 발길도 얼씬하지 않았다.
“고란이 사라지자마자 바로 신촌을 노리다니. 생각보다 훨씬 더 움직임이 빠르군.”
빈민가는 각 지역의 패자들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뤄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고란도 그중 하나였다.
그가 사라지자 요한이 제일 먼저 이를 드러냈다.
“과연 이튼이 동대문을 막아 낼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제온이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어떻게 보면 이 모든 일이 그가 고란을 제거했기 때문에 연쇄적으로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책임이 아예 없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온이 이 사태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빈민가는 원래 그런 곳이었다.
조금이라도 약점을 드러내면 사정없이 물어뜯고 흔들어 댄다.
순박한 얼굴을 한 어린아이조차 맹수나 다름없다.
이런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어설픈 배려나 정의감 따윈 버려야 했다.
브리엘이 물었다.
“인간이 모시는 신은 어떤 신이야?”
“글쎄! 나도 모르겠다. 왜?”
“신을 모시는 자의 눈에 탐욕이 가득해서…….”
“엘프도 마찬가지잖아.”
“무슨 소리야? 엘프는 순수하다고.”
“내가 만나 본 엘프들 중에 순수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어. 아마 엘프도 요한에게 걸리면 금세 타락할걸.”
“아니거든. 엘프는 정신력이 강하거든.”
브리엘이 강하게 부정했다.
“정신력 따윈 상관없어. 마음속에 탐욕이 존재하는 이상 언제든 타락할 수 있어.”
쿠라얀의 엘프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지구로 넘어왔다.
한 세계에 살 수 있는 생명체의 개수는 정해져 있다.
다른 세계의 생명체가 들어오면 그만큼 이곳의 생명체가 줄어야 한다.
엘프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생존이 곧 지구인의 죽음을 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구로 넘어왔다.
비록 예상치 못하게 테라포밍의 부작용으로 지구가 사막화되었지만 말이다.
생존을 위해서 그들도 독하게 변했다.
그 순간 그들의 마음속에 탐욕이 뿌리를 내렸다.
현재 지구에 있는 엘프들은 쿠라얀의 엘프들과는 전혀 다른 생명체라고 봐야 했다.
그들 자신은 끝까지 부정하겠지만 말이다.
브리엘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제온을 노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온은 무심히 걸음을 옮겼다.
결국 브리엘도 제온의 뒤를 따랐다.
***
동대문에 있는 건물들은 유독 크고 복잡했다.
빈민가의 건물들이 대부분 그렇듯 무작정 증축하다 보니 기형적으로 커진 것이다.
다만 동대문은 도가 지나쳤다.
건물의 강도와 안정성은 생각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사람을 수용하려다 보니 다른 구역의 건물들보다 규모가 커진 것이다.
때문에 동대문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공포심을 누르고 살아야 했다.
미로처럼 얽혀 있는 동대문 건물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다 보면 유독 크고 높은 건물이 나온다.
마치 오래전 이 땅에서 사라진 교회를 연상케 하는 건물이었다.
건물 외관에 십자가가 없는 것을 제외하면 교회를 꼭 닮아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도 이곳을 교회라고 불렀다.
교회 가장 높은 첨탑 안에는 큰 방이 존재했다.
이곳이 바로 동대문의 지배자 요한의 거처였다.
요한은 뒷짐을 지고 서서 동대문을 내려다봤다.
그가 동대문의 지배자가 되기 전 이곳은 약육강식의 전장이었다.
다 같이 네오 서울에 들어가지 못하는 빈민들 주제에 계급을 나눠 약탈했던 것이다.
“규율이 없는 인간은 마수와 다를 바 없지. 가장 강력한 규율은 신이 정한 규칙이다.”
요한은 신의 말이라는 핑계로 빈민가를 정비하고, 동대문만의 강력한 명령 체계를 만들었다.
그 후 분쟁은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자잘한 분란과 사건은 계속 일어나지만, 적어도 한 번에 수많은 이들이 죽어 나가는 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요한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리고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제이, 제삼의 동대문을 계속 만들어야 해.”
모든 질서를 배제하고, 단 하나의 강력한 질서만 남겨 둠으로써 세상의 혼란을 잠재운다.
그것이 요한의 최종 목적이었다.
그의 시선이 저 멀리 네오 서울의 장벽으로 향했다.
“궁극적으로는 저 벽 너머에 있는 우매한 인간들에게 신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
“모든 것이 요한 님의 뜻대로 되실 겁니다.”
그때 요한의 등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요한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나타난 여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재경이구나. 그렇지 않아도 너를 부르려 했는데 잘됐다.”
“그럴 줄 알고 찾아왔습니다.”
“너의 영민함이 나를 기쁘게 하는구나.”
요한이 웃으며 뒤돌아섰다.
그러자 수녀복을 입고 있는 수수한 외모의 여인이 보였다.
눈을 살짝 내리깔고 있는 여인에게선 왠지 모를 성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녀의 이름은 김재경.
김재경은 고아였다.
정처 없이 떠돌던 그녀를 요한이 거둬서 지금까지 키웠다.
김재경은 누구보다 신실한 신자로 자라났다.
김재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신촌에 가 줘야겠다.”
“신촌 말입니까?”
“그렇다. 너의 능력으로 불신자 하나를 회개시켜야겠다.”
“불신자가 요한 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군요. 그게 누굽니까?”
“제온이라고 한다.”
“제온? 알겠습니다. 제가 그를 만나 설득하겠습니다.”
“조심해야 한다. 제법 정신력이 단단한 거 같으니까.”
“아시잖습니까? 제아무리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도 제 앞에선 무기력해진다는 것을.”
김재경이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수줍은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며 웃는 그녀의 모습에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시절부터 거둬 키웠기에 김재경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라면 훌륭히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조심히 다녀오거라.”
“네!”
대답과 함께 김재경이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은 요한이 무릎을 꿇으며 중얼거렸다.
“모든 것이 당신의 뜻대로 될 겁니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바람이 강하게 불어왔다.
브리엘이 인상을 쓰며 두 손으로 고깔모자를 눌렀다.
“에이! 이놈의 모래바람. 정말 징글징글하다.”
사막의 바람은 필연적으로 모래를 몰고 온다.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고운 모래들이 바람에 섞여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더위를 식혀 주는 바람이 불어와도 그렇게 반갑지 않았다.
브리엘은 고개를 깊숙이 숙여 모래바람을 최대한 피했다.
반면 제온은 고개를 꼿꼿이 들고 모래바람을 정면으로 맞았다.
다른 사람에겐 달갑지 않은 모래바람이지만, 그에겐 기억에도 없는 엄마 손길처럼 포근했다.
모래는 그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주위를 맴돌며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제온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모래를 만끽했다.
어떻게 보면 모래들이 그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브리엘은 고개를 숙이고 있느라 그 광경을 미처 보지 못했다.
잠시 후 바람이 멈췄고, 모래도 멀리 날려 사라졌다.
브리엘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고깔모자에 가득 쌓인 모래를 탁탁 털었다.
“으으! 모래, 정말 싫어.”
진저리를 치는 브리엘의 모습에 제온이 슬쩍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제온을 따라 걸음을 옮기던 브리엘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제온의 어깨엔 왜 모래가 없어? 벌써 턴 거야?”
“응!”
“보기보다 빠르네. 하긴 제온도 모래는 싫겠다. 그치?”
“아니! 난 모래를 좋아해.”
“하긴 모래를 다루니 그럴 수도…….”
“쉿!”
“응? 왜?”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거든.”
“무슨?”
“입조심하란 이야기야. 그거 때문에 맹세해 놓고…….”
“아!”
브리엘은 그제야 제온이 모래를 다룬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모래술사인 제온이라면 당연히 모래 때문에 불쾌한 일은 없을 것이다.
제온이 브리엘에게 말했다.
“너 먼저 들어가.”
“제온은?”
“나는 어디 좀 들를 데가 있어.”
“어디? 도깨비 시장?”
“아니!”
“그럼 어디?”
“잔말 말고 들어가기나 해. 꼬맹아!”
“쳇!”
브리엘이 혀를 찼다.
더 졸라 봐야 말해 주지 않을 거란 것을 알기에 그녀는 미련 없이 혼자 집으로 향했다.
제온은 잠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한 곳은 바로 빈민가 바깥 사막지대였다.
브리엘은 느끼지 못했겠지만, 제온은 모래바람에 섞여 있는 냄새를 맡았다.
빈민가에서는 맡기 힘든 이질적인 냄새였다.
모래술사로 각성한 제온이니까 맡을 수 있지, 다른 각성자들은 결코 맡을 수 없었다.
빈민가 밖으로 나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네오 서울처럼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그리 높지도 않고 따로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네오 서울에 어려 있는 항마력은 마수들이 접근하기 꺼리게 했고, 실제로 지난 수십 년 동안 단 한 마리의 마수도 이 근처로 접근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네오 서울은 물론이고, 빈민가의 사람들조차도 마수의 접근을 걱정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같은 인간이지, 마수들은 아닌 것이다.
각성자들이야 주기적으로 밖에 나가 마수들을 토벌하니까 자주 마주치지만, 일반인들은 평생에 한 번 마수를 만나기도 힘들다.
제온은 성벽을 뒤로하고 모래 걸음을 펼쳤다.
스르륵!
모래가 움직여 제온을 앞으로 내보냈다.
“분명 이곳쯤인 것 같은데…….”
제온이 네오 서울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보이는 모든 것이 모래였다.
제온은 지배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지하 깊은 곳에서 무언가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흠!”
잠시 미간을 찌푸린 제온이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제온 발밑의 모래가 파도치듯 사방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제온의 발아래에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다.
깊이만 무려 삼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구덩이였다.
키에에!
구덩이 한가운데 어른만 한 크기의 애벌레 한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애벌레의 표면에는 귀신과 닮은 문양이 존재했다.
제온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역시 귀신 잠자리 유충이었군. 이 녀석이 왜 이곳에?”
귀신 잠자리는 비행형 마수다.
마수치곤 전투력이 높지 않아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
물론 제온 정도 되는 각성자에게 그렇단 이야기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귀신 잠자리의 서식지가 이곳이 아니란 것이다.
놈들은 주로 네오 서울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지형에서 서식한다.
특히 놈들의 새끼인 애벌레는 외부의 기운에 민감해 네오 서울처럼 항마력이 강한 곳엔 얼씬도 하지 않는다.
만일 네오 서울의 항마력이 멀쩡했다면, 놈이 이곳에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확실히 네오 서울의 항마력에 무슨 문제가 생긴 모양이군.”
키에에!
외부에 노출된 애벌레가 몸부림을 쳤다. 그러자 역한 냄새가 제온의 코를 찔렀다.
제온이 빈민가에서 맡은 냄새가 바로 귀신 잠자리의 애벌레 냄새였다.
놈들의 냄새는 너무 역하고 진해 한번 맡으면 도저히 잊혀지지가 않는다.
츄화학!
애벌레가 제온을 향해 산성 침을 내뱉었다.
한 방울이라도 몸에 닿으면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극독이었다.
“쯧!”
제온이 혀를 차며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시뻘건 불길이 일어나 애벌레를 침과 함께 순식간에 불태웠다.
화르륵!
제온은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지는 애벌레를 말없이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