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88)
88화
“후암!”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던 제온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엔 브리엘이 있었다.
밤을 꼬박 새웠는지 브리엘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녀는 충혈된 눈으로 은색 솥을 노려보고 있었다.
은색 솥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브리엘은 조그만 두 주먹을 꽉 쥐며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선 짙은 광기가 느껴졌다.
제온이 고개를 저었다.
“또 밤을 새운 모양이군.”
브리엘은 야행성이었다.
낮에는 흐리멍덩하다가도 밤만 되면 정신이 명료하게 깨어났다.
그녀의 연구는 그때부터였다.
지하에 갇혀 있으며 억눌렸던 탐구욕이 광적으로 발산됐다.
마치 낮에 모은 에너지를 밤에 폭발시키는 것 같았다.
지금도 그녀는 광기 어린 눈빛으로 밤새 만든 액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의 다 됐어. 조금만 더…….”
퍼엉!
그 순간 솥 안의 액체가 폭발했다.
“꺄악!”
브리엘은 고스란히 액체를 뒤집어썼다.
액체는 브리엘뿐만 아니라 집안 전체에 튀었다.
난장판이 된 집 안을 둘러보며 제온이 혀를 찼다.
“쯧!”
“어디가 잘못된 거지? 조합식은 분명 완벽했는데…….”
브리엘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제온이 그녀에게 말했다.
“깨끗이 치워 놔라.”
“으으! 왜 실패한 거지? 어디가 잘못돼서?”
“휴!”
브리엘의 귀엔 제온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자신의 몸에 붙은 액체를 찍어 먹으며 실패 요인을 분석하려 했다.
“으아아! 도대체 어디가 문젠 거야?”
발광하는 브리엘을 놔두고 제온은 집을 나왔다.
브리엘이 발작하면 적어도 서너 시간은 제정신이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저러다가 제정신을 차리면 알아서 집 안을 정리해 둔다.
그때까지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차라리 나았다.
제온은 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채 거리를 걸었다.
“응?”
제온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어제까지 보지 못했던 허름한 노점이 보였기 때문이다.
꼬치를 파는 노점이었는데, 풍기는 냄새가 매우 유혹적이었다.
노점에는 제온 말고도 손님들이 있었다.
그런데 손님들 대부분이 남자였다.
제온은 그 이유를 금방 알아차렸다.
노점의 주인은 여자였다.
그것도 제법 예쁜 여자.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빈민가 남자들의 이목을 끌기엔 충분했다.
“못 보던 얼굴인데?”
“어디에 살고 있어?”
남자들은 꼬치 하나씩을 입에 물고선 여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들의 질문은 모두 여자의 신변잡기에 관련된 것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되었어도 예쁜 여자를 향한 남자들의 욕망은 그대로였다.
남자들의 추근거림이 부담스러울 만도 한데 여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태연히 대꾸했다.
“당연히 신촌에 살고 있죠. 다만 장사가 처음이라서 낯설어 보일 거예요.”
“그런가?”
“그럼요.”
“장사는 언제 끝나? 조금 일찍 끝내면 안 되나? 내가 좋은 곳을 알고 있는데 같이 가자고.”
“호호! 말씀만으로도 고마워요. 하지만 먹고살려면 오래 장사해야 해요.”
“하루 매상이 얼만데? 내가 다 줄게.”
“어머! 정말요?”
“그럼!”
“호호! 말씀만으로도 고마워요. 어쩜 이렇게 듬직하실까?”
“헤헤!”
여자는 어떻게 해야 남자들을 다룰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의 칭찬과 사탕발림에 남자들의 표정이 풀어졌다.
제온은 그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꼬치 하나에 얼만가요?”
“어머! 잘생긴 오빠네? 꼬치 열 개에 일 솔.”
“일 솔?”
“이거 네오 서울에서 만든 배양육이거든. 다른 마수 고기들하고 맛 자체가 달라요.”
“그래요?”
제온이 호기심을 보이자 여자가 꼬치 하나를 손에 쥐어 줬다.
“한번 먹어 봐요. 맛보면 다른 고기는 두 번 다시 먹지 못할 테니까.”
제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꼬치 하나를 입에 물었다.
여자의 장담처럼 꼬치는 무척 맛있었다.
이 정도 맛이라면 자랑할 만했다.
빈민가에서 이 정도 솜씨를 가진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으니까.
제온은 다시 꼬치를 한입 물었다.
두 번째 씹어도 역시 맛있었다.
여자가 미소 지으며 물었다.
“맛있죠?”
“맛있네요.”
“그쵸? 그럴 줄 알았다니까. 미남 오빠!”
“저보다 그쪽이 훨씬 연상인 것 같은데요?”
“호호! 잘생기면 오빠지. 정말 잘생기셨네.”
“고맙습니다.”
“오빠도 여기 살아요?”
“네!”
“어디?”
“개미굴요.”
“어머! 험한 곳에 사네. 무섭지 않아요?”
“별로!”
여자의 호들갑에 제온이 덤덤히 대답했다.
“근데 우리 오빠 입은 옷이 범상치 않아 보이는데 아이템이에요?”
“별거 아니에요.”
“왜 별거 아냐? 이렇게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데.”
여자가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제온의 로브를 어루만졌다.
순간 그녀의 손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의 행동은 매우 자연스러워 누가 보면 연인이라고 오해할 만했다.
당장 노점에 먼저 온 남자 손님들의 얼굴에 질투의 빛이 떠올랐다.
“뭐야? 왜 저 새끼한테 잘해 줘?”
“얼굴 보고 차별 대우하는 거야?”
남자들의 발작에도 여자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다들 조용. 누가 차별 대우했다는 거야?”
“어?”
“아닌가?”
갑자기 남자들의 표정이 멍해졌다.
마치 홀린 것처럼 여자의 말을 수긍한 것이다.
그것은 매우 이상한 광경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노점 주위에 있는 남자들 중 그 사실을 깨달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여자가 싱긋 웃으며 제온을 바라봤다.
“이제 조용히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그쵸?”
“재밌는 스킬을 쓰시네요. 정신을 조작하는 스킬이라니.”
“어머? 눈썰미까지 있는 오빠네. 점점 마음에 들어.”
여자가 손뼉을 치며 웃었다.
정말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반면 제온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이미 여자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이 거리에 여자 노점상이 없는 것은 그만큼 험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빈민가는 조금만 반반해도 납치당하거나 강간당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무법지대였다.
현시대의 여자 가치란 딱 그 정도였다.
각성하거나 든든한 백이 없는 이상 밖을 나돌아다니는 것조차 조심해야 했다.
그런데 누가 봐도 예쁜 여자가 떡하니 노점상을 한다? 그것도 어느 날 갑자기?
절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제온이 물었다.
“혹시 나를 노리고 온 건가요?”
“노린 것은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만나기 위해서?”
“그게 그거 아닌가요?”
“둘은 확실히 달라요. 어감부터 차이가 나잖아.”
“말을 참 재밌게 하네요.”
“재밌어요? 그럼 다행이고.”
“이렇게 어렵게 접근한 이유가 뭔가요?”
“그쪽이 마음에 들어서죠.”
여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여자의 말을 바로 믿을 만큼 제온은 순수하지 않았다.
“누구의 지시를 받고 온 건가요?”
“정말 당신이 마음에 들어서 온 거라니까요.”
여자가 싱긋 웃었다.
그러자 그녀가 더 아름답게 보였다.
마치 그녀의 머리 뒤에 후광이 비치는 듯했다.
“쯧!”
제온이 혀를 차며 들고 있던 꼬치를 내려놓았다.
“왜요? 꼬치가 맛없어요?”
“계속 그렇게 저에게 세뇌 스킬을 쓰니까 입맛이 뚝 떨어져서요.”
제온의 말에 여자의 얼굴에 가득했던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하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언제 세뇌 스킬을 썼다는 거예요?”
“어디예요? 혹시 동대문에서 보낸 건가요?”
“…….”
“맞나 보네.”
“정말 재수 없는 오빠네. 잘생긴 주제에 왜 이렇게 눈치는 빠른 거야? 정신 방벽은 왜 또 단단한 거고?”
이젠 여자도 더 이상 부인하지 못했다.
여자의 이름은 김재경.
바로 요한의 심복이었다.
그녀의 특기가 바로 세뇌 같은 정신계 스킬이었다.
수수한 외모로 상대의 경계심을 무너트린 후 접촉해 스킬을 펼치면 열이면 열 모두 그녀에게 호감을 품는다.
그 후 지속적으로 스킬을 펼치면 비로소 그녀에게 완전히 복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이제까지 이 같은 방법으로 수많은 이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특히 남자라면 백발백중으로 넘어왔다.
당연히 김재경은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제온 같은 애송이를 세뇌하는 것은 그녀에게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온에겐 그녀의 세뇌 스킬이 통하지 않았다.
생각 이상으로 정신 방벽이 단단한 것이 분명했다.
“우리 오빠가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분이었네.”
“요한의 명령인가요?”
“님!”
“네?”
“‘님’ 자를 붙이라고. 그분은 감히 너 같은 사람이 함부로 부를 분이 아니니까.”
요한의 이름이 언급되자 김재경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녀의 눈빛엔 광기마저 담겨 있었다.
제온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쯧! 좀 전엔 브리엘이 저런 눈빛을 하더니, 이번엔 다른 여자가 광기를 발산하는군.’
아침부터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제온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래요. 요‧한‧님. 그분이 보낸 건가요?”
“맞아! 좋은 말로 그쪽을 설득해 보라더군.”
“세뇌를 시키는 것이 좋은 말인가요?”
“그럼! 나같이 아름다운 여자에게 세뇌당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데.”
“저는 당신보다 예쁜 여자들을 꽤 많이 알고 있습니다.”
“뭐?”
“제 기준으로 보면 그렇게 예쁜 편이 아니란 거죠.”
“이익!”
“그러니까 주제 좀 파악하시길.”
“씨발! 좋은 말로 하려 했더니. 복속하라!”
순간 큰 외침과 동시에 그녀의 전신에서 강렬한 빛이 발산됐다.
C급 스킬인 복속.
엄청난 마나가 소모되지만 그만큼 효과는 확실하다.
김재경은 제온의 전신을 두어 번 어루만지면서 자신의 마나를 주입했다.
이미 사전 작업을 해 놓은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스킬이 확실히 통하리라고 확신했다.
그때였다.
“흥!”
제온의 콧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그녀의 뇌에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큰 충격이 찾아왔다.
쾅!
“아악!”
김재경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런 그녀의 코와 귀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온이 김재경을 보며 말했다.
“쯧! 정신계 스킬도 상대를 봐 가면서 써야죠. 함부로 쓰다가는 오히려 자신이 해를 입는 것도 몰라요?”
“너,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보다시피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
김재경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까지 그녀의 스킬이 통하지 않은 상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니, 딱 한 명 있었다.
바로 그녀가 신이라고 생각하는 요한이었다.
요한의 정신 방벽은 너무 높고 굳건해 그녀의 스킬이 통하지 않았다.
‘설마 이 남자의 정신이 요한 님만큼이나 굳건하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