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90)
90화
요한과 김재경이 찾아온 지 며칠이 지났지만, 동대문에서는 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언뜻 보면 제온의 무력에 겁을 먹은 것 같았지만, 그게 아니란 것을 제온은 잘 알고 있었다.
“꽤 신중한 성격인가 보군.”
좋게 말하면 신중한 거고, 안 좋게 말하면 음흉한 성격이다.
김재경을 보내 시험해 봤는데 제온이 만만치 않은 것 같으니 간을 보는 게 분명했다.
그가 완벽히 간 보는 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빠른 시간 내에 움직일 것 같지는 않았다.
“덕분에 이쪽도 시간을 벌었으니 준비를 해야겠군.”
제온이 로브를 걸치자, 브리엘이 후다닥 뛰어왔다.
“어디 가려고?”
“도깨비 시장.”
“나도 갈래.”
“너도?”
“응! 살 게 있어.”
“돈은 있고?”
“없어!”
브리엘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가진 건 쥐뿔도 없는 주제에 욕심은 많아서 제온이 도깨비 시장에 가면 악착같이 따라나섰다.
물론 계산은 모두 제온이 했다.
브리엘이 발작적으로 고개를 들어 제온을 바라봤다.
“투자한다고 생각해.”
“투자? 너에게?”
“응! 내가 연금술로 대박 물건 하나 만들면 제온도 대박 나는 거야.”
“그래서 성공한 건 있고?”
“그, 금방 성공할 거야. 거의 다 왔어.”
브리엘이 변명하듯이 말했다.
제온을 올려다보는 브리엘의 표정은 무척이나 간절했다.
제온이 하는 수 없이 허락했다.
“알았어. 같이 가자.”
“고마워!”
비로소 브리엘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녀는 급히 고깔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왔다.
그래도 도깨비 시장에 한번 가 봤다고 앞장서 걸었다.
“히히! 이번엔 귀신 잠자리 날개를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 또 뭐가 필요하지? 샌드웜에게서 나온 마정석은 없으려나? 그리고…….”
광기 어린 브리엘의 목소리에 제온이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어쩌다가 이런 미친 꼬마 엘프가 걸려서…….’
아마 데이오든이었다면 맹약이고 뭐고 단숨에 브리엘을 베어 버렸을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이종족을 증오했으니까.
하지만 제온은 데이오든이 아니었다.
딱히 이종족을 싫어하지도 않지만, 좋아하지도 않는다.
자신에게 직접적인 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그들을 굳이 배척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도깨비 시장에 도착했다.
“와!”
브리엘의 흐리멍텅한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오나 싶더니 곧바로 앞에 있는 가게로 달려갔다.
한번 와 봤다고 흥정까지 능숙하게 한다.
“하이 엘프가 인간이 다 됐군.”
제온도 하이 엘프를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일반 엘프는 수없이 만나 보고 또 싸우기도 했다. 그 때문에 그들이 얼마나 자존심이 높고 긍지가 강한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보다 더 윗급의 엘프들이라면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때였다.
“제온 님!”
누군가 제온을 불렀다.
고개를 돌리니 도깨비 시장의 상인 하나가 제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저, 조합장님께서 제온 님을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
“조합장?”
“유세희 님을 저희끼리는 조합장이라고 부릅니다.”
“아! 그렇군요.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왜?”
“이유는 저도 모릅니다. 다만 제온 님이 도깨비 시장에 들어왔다는 것을 아시자마자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제온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상인을 따라갔다.
한참을 걸어 집무실 앞에 도착하자 상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온 님을 모셔 왔습니다.”
“어서 와.”
집무실에서 유세희가 제온을 맞이했다.
그러나 제온의 시선은 유세희가 아닌 그녀의 옆에 서 있는 남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훤칠한 키에 몸에 딱 맞는 슈트, 목을 조이는 넥타이와 하얀 와이셔츠. 거기에 단정하게 벗어넘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네오 서울에서 왔군.’
빈민가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복장이었다.
저런 옷은 사막의 모래바람을 막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직 높은 담과 마법으로 모래바람을 막아 주는 네오 서울의 사람들이나 저런 옷을 입는다.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제 이름은 타지크라고 합니다. 아마도 짐작하셨겠지만 네오 서울에서 왔습니다.”
“제온입니다.”
“반갑습니다. 제온!”
“저도 반갑습니다.”
제온도 웃으며 인사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이질적인 인간이 있으면 문제가 터지기 마련이지.’
지난 칠 년 동안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상황을 겪었다. 그중엔 이런 상황도 다수였다.
제온은 그런 경험을 통해 성장했기에 미소로 속내를 감출 수 있었다.
유세희가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잘 지내지?”
“보다시피요.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른 겁니까?”
“부탁할 게 있어서…….”
“네?”
“지금 시간 돼?”
“무슨 말입니까?”
“던전 하나만 들어가 줘.”
유세희는 사전 설명 하나 없이 본론부터 말했다.
제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모습은 평소의 유세희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던전요?”
“그래! 던전. 너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거야. 잘하면 아이템을 얻을 수도 있을 테니까.”
“아이템이라…….”
“그래! 어때?”
“…….”
유세희의 기대 어린 눈빛에도 제온이 쉽게 대답하지 않자 이제까지 가만히 있던 타지크가 나섰다.
“아! 제가 대신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사흘 전 네오 서울에서 이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미확인 던전이 발견됐습니다.”
“미확인 던전?”
“네! 그런데 탐사하는 데 인원이 부족해서 세희 님께서 제온 님에게 도움을 청하는 겁니다.”
“각성자가 부족할 일이 있습니까? 네오 서울에 넘치는 게 각성자일 텐데.”
“그것도 그렇습니다만 하필 같은 시기에 다른 곳에서도 던전이 발견됐습니다. 그것도 매우 큰 던전이…….”
“당연히 네오 서울의 각성자들은 큰 던전에 몰리겠군요.”
“맞습니다.”
큰 던전일수록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의 가치도 높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기에 네오 서울 각성자들은 큰 던전 공략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네오 서울은 많은 각성자를 동원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이번 미확인 던전은 도깨비 시장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제가 던전에 들어가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혹시 동대문 때문입니까?”
“제 사정을 잘 아시는군요.”
“하하! 제온 님 때문이 아니라 동대문이 주의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제가 왜 들어갈 수 없는지도 잘 알겠군요?”
“제가 중재해 드리면 어떨까요?”
“네?”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동대문이 조금은 자제할 겁니다.”
“그런 것도 가능합니까?”
“제가 요한 님과는 조금 친분이 있습니다. 아마 제가 부탁하면 들어주실 겁니다.”
“대단하네요. 동대문에 그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니.”
제온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가 판단한 요한은 쉽게 남에게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타인의 말을 들을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 요한이 타지크의 말을 들어준다는 것은 그만큼 타지크가 버겁거나 대단한 존재라는 의미였다.
“이 정도면 들어갈 마음이 생기실까요?”
“나도 부탁할게. 제온!”
제온이 대답하기도 전에 유세희가 나섰다.
어쩐지 그녀의 표정은 매우 다급해 보였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하기도 힘들었다.
“알겠습니다. 공략대는 언제 출발합니까?”
“내일 아침이야.”
“알겠습니다. 내일 아침 합류하죠.”
“무리한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대신 이 빚은 반드시 갚을게.”
“알겠습니다.”
유세희에게 빚 하나를 지워 두는 것은 제온에게도 나쁜 일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제온이 신촌에 사는 이상 계속 도깨비 시장과 얽힐 수밖에 없을 테니까.
문제는 타지크라는 남자였다.
유세희를 대하는 태도, 동대문에까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
타지크는 거물이거나 혹은 거물을 배경으로 둔 것이 분명했다.
그 말은 곧 네오 서울에서도 제온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생각을 정리한 제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먼저 나가 보겠습니다. 준비할 것들이 조금 있어서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마음껏 사. 상인들한테 말해 놨으니까 뭐든 내줄 거야.”
“알겠습니다.”
제온은 타지크에게도 살짝 목례한 후 밖으로 나갔다.
그가 사라지자 타지크가 입을 열었다.
“굉장히 침착한 사람이군요.”
“누구? 제온?”
“네! 제가 이제까지 만나 본 사람 중 가장 마음을 읽기 힘든 사람이네요.”
“그 정도야?”
유세희가 놀란 눈으로 타지크를 바라봤다.
그녀도 타지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샤오룬의 신임을 받는 남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네오 서울 남부의 패자 샤오룬.
그 이름값은 결코 가볍지 않다.
네오 서울에서 최소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권력자라는 의미였으니까.
타지크는 그런 샤오룬이 신뢰하는 자였다.
그만큼 대단한 능력과 수완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 자가 인정할 정도라면 제온의 가치가 더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기를 조금 꺾어 두면 악어들 대신 활용할 수도 있으려나?”
타지크가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금 뭐라고 그랬어?”
“아닙니다. 그냥 혼잣말이었습니다.”
대답하는 타지크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
제온은 잠시 멈춰서 유세희의 집무실을 뒤돌아봤다.
‘타지크라……. 썩은 내가 나는군.’
사람마다 풍기는 냄새가 다 다르다.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도 있었지만, 어떤 삶을 살아왔느냐에 따라 냄새가 달라진다.
피를 많이 묻히는 자는 혈향이 나고, 궂은일을 도맡아 한 자는 습한 냄새가 난다.
저렇게 썩은 내가 많이 난다는 것은 그만큼 더러운 일을 많이 했을 확률이 높다.
‘이번 일도 오물이 많이 묻었을 확률이 높겠군.’
제온이 고개를 저었다.
이게 문제다.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다.
예전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확실히 아니다.
인간이 사는 영역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을 마수들이 장악하고 있다.
지상길은 물론이고 하늘길까지 막혔기에 각 콜로니 간의 연락도 시원찮았다.
그렇다면 각 콜로니 간의 통신망을 회복해 힘을 모아야 하는데, 콜로니의 수뇌부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이 오직 이전투구에만 몰두한다.
이래서 언제 마수들을 모두 토벌하고 다시 인간들의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제온은 영원히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어디 갔었어? 한참 찾았잖아.”
브리엘이 제온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무얼 그렇게 많이 샀는지 등엔 짐을 바리바리 쌓은 채로 말이다.
“무얼 그렇게 많이 샀냐?”
“귀신 잠자리 날개, 샌드웜에게서 나온 마정석, 그리고 화염 늑대의 갈기털. 귀신 잠자리 날개는 여왕이 갓 탈피했을 때 사냥한 것이 가장 좋은데. 이게 중력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 쓸모가 많거든.”
“그렇게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돼.”
“그래?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계산은 어떻게 하고?”
“제온 이름을 말하니까 외상으로 주던데.”
브리엘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제온의 미간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이놈의 하이 엘프는 생각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인간 세상에 물들고 있었다.
결국 제온이 한마디 했다.
“다음부터는 네가 벌어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