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91)
91화
“그러니까 네 능력이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고?”
“죄송합니다.”
김재경은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요한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요한의 눈빛은 서늘하기만 했다.
요한이 제일 싫어하는 부류가 바로 무능력한 자였다.
그의 눈 밖에 난 자는 동대문에서 금방 도태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김재경이 몸을 떨었다.
“어떤 느낌이었느냐?”
“정신 방벽이 굳건했습니다.”
“굳건하다?”
“도저히 뚫을 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세뇌를 시도하니 오히려 엄청난 반동에 제가 타격을 입었습니다.”
“흠!”
“죄송합니다.”
김재경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요한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나가거라.”
“예!”
김재경이 대답과 함께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은 요한은 차가운 눈으로 동대문의 전경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놈이었군. 재경이 모자란 게 아니라 놈이 대단한 거였어. 하긴 천하의 고란을 흔적 없이 제거한 놈인데…….”
동대문이 신촌에 들어오지 못했던 것은 고란이 굳건하게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도하고 싶어도 고란이라는 벽에 막혀 그의 신도들이 신촌에 들어오지 못했다.
그렇기에 고란이 사라진 지금을 전도할 절호의 기회로 봤다.
다른 놈들이 신촌에 욕심을 내기 전에 장악하려다 보니 서둘러 김재경을 보냈고,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이로써 제온은 그에게 더 큰 경각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차라리 회유를 더 할걸 그랬나?”
“확실히 이번엔 성급했습니다. 요한 님!”
그 순간 요한의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한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요한이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자 정장 차림의 남자가 보였다.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고 정갈히 빗어 넘긴 남자였다.
요한은 단번에 남자의 정체를 알아봤다.
“타지크?”
“오랜만입니다. 요한 님!”
“샤오룬의 개가 이곳엔 웬일이지? 그가 보낸 건가?”
“설마요! 샤오룬 님은 네오 서울 내의 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바쁘십니다. 이런 빈민가에 관심을 가지실 만큼 한가하지 않습니다.”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고?”
요한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그런 요한의 눈빛에 겁을 집어먹겠지만, 타지크는 아니었다.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믿지 않으시는 것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 말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네가 왜 여기에 온 거지? 네 말처럼 샤오룬이 빈민가에 관심이 없다면 심복인 네가 이곳에 올 이유가 없지 않은가?”
“개인적인 볼일이 있거든요.”
“네가?”
“예!”
“혹시 그게 제온인가?”
“역시 요한 님입니다. 겨우 한마디 했을 뿐인데 바로 알아차리시다니.”
타지크의 대답에 요한의 미간이 절로 찌푸렸다.
“왜지?”
“그냥 개인적인 관심입니다.”
“그러니까 왜 개인적인 관심을 가지냔 말이다.”
“요한 님과 마찬가지 이유 아닐까요?”
타지크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반면 요한의 얼굴은 더욱 딱딱하게 굳었다.
“그래서?”
“신촌을 공략하는 일을 조금만 미뤄 주십사 합니다.”
“그것도 샤오룬의 뜻인가?”
“일단 제 뜻입니다만 샤오룬 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내가 거절하면?”
“네오 서울 안에 여기저기 신도들을 많이 심어 놓으셨더군요. 그중에서도 동 구역 세든 님이 운영하는 부대에…….”
“그만!”
요한이 타지크의 말을 끊었다.
그런 그의 얼굴엔 노기가 가득했다.
동 구역의 패자 세든 프라이스.
암속성의 힘을 사용하는 마법사다.
암속성은 극히 희귀한데, 특히 어두운 밤일수록 위력이 극대화된다고 했다.
세든은 그중에서도 최강을 자랑한다.
요한은 그런 세든의 휘하에 자신의 신도를 집어넣었고, 그로부터 많은 내부 정보를 받고 있었다.
‘그걸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지?’
요한의 볼살이 푸들푸들 떨렸다.
같은 서울의 패자였지만, 세든은 샤오룬과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샤오룬이 늙은 여우라면, 세든은 냉혹한 전략가다.
양쪽 다 상대하기 까다롭지만, 요한의 입장에선 세든이 더 버겁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상성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세든이 이끄는 동 구역은 주로 백인과 흑인 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에 주둔했던 미군과 유학생의 후손들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전투의 스페셜리스트였고, 마법과 전술 병기를 조화롭게 사용한다.
세든의 수하들은 전부 군인이라 할 수 있었다.
동대문의 전력도 강하지만, 세든이 이끄는 동 구역에 비할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샤오룬도 동 구역에 심복을 심어 그들의 동향을 감시하고 있었다.
타지크가 말했다.
“아예 제온에게서 손을 떼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얼마나?”
“한 보름 정도?”
“좋다. 그 정도라면…….”
“감사합니다. 요한 님! 역시 말이 통할 줄 알았습니다.”
타지크가 요한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요한도 타지크를 보며 미소 지었다.
‘언젠가 네놈을 마수의 밥으로 던져 주마.’
***
빈민가의 남쪽에는 제법 큰 공터가 존재한다.
속칭 사냥꾼의 광장이라 불리는 넓은 공터는 사실 별거 없었다.
그냥 널찍한 공터에 햇볕을 막는 허름한 그늘막이 시설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 공터는 빈민가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 중 하나였다.
외부로 사냥을 나가는 빈민가의 각성자들이 모두 이곳에서 모여 장비를 점검하거나 정보를 교류하기 때문이다.
빈민가에는 동대문이나 신촌을 비롯해 여러 세력이 있었다. 그런 세력들은 음으로 양으로 치열하게 싸운다.
그들은 결코 주인이 없는 곳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남의 손에 있는 것조차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이들이 공터를 내버려 두는 것은 다른 세력들 때문이다.
이곳은 일종의 중립 지대였다.
어떤 세력도 이곳을 다른 세력이 관리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는다.
이곳에 욕심을 내는 순간 공공의 적이 되어 합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사냥꾼의 광장은 빈민가의 각성자들이 사냥하기 위해 모일 때를 제외하곤 거의 비어 있다시피 했다.
아침부터 사냥꾼의 광장엔 꽤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오늘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모인 각성자들이었다.
타지크가 부른 공략대도 있고, 유세희가 구성한 공략대도 있었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각성자들도 있었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각성자들은 경외 어린 시선으로 타지크가 부른 공략대를 바라봤다.
“이나즈마다.”
“맙소사! 이나즈마라니.”
타지크가 부른 공략대의 정체는 이나즈마.
네오 서울에 즐비한 공략대 중에서도 꽤 유명한 존재들이었다.
이나즈마의 대장은 코우지다.
일본계 혈통을 이은 자로서 무투가, 그중에서도 검객으로 각성했다.
등급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제까지 그의 행적으로 미뤄 보아 최소 C급이나 B급이란 것이 중론이었다.
코우지 밑으로 유리, 바이룬, 슈한, 코메인, 네 명이 있었다.
그들 모두 뛰어난 각성자들로 코우지의 명령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코우지가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카타나를 품에 안은 채 서 있었고, 그 주위에 네 사람이 포진해 강력한 존재감을 발산했다.
그런 이나즈마를 보며 전의를 불태우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도깨비 시장에서 파견 나온 각성자들이었다.
이들의 대장은 잭이라는 남자였다.
잭의 주위엔 도수열, 폭렬 형제라 불리는 데클란과 커너가 포진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 도깨비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각성자들로 특별히 파견됐다.
도수열이 인상을 쓰며 잭에게 말했다.
“이나즈마 애들이 그렇게 던전을 잘 공략한다면서요?”
“잘 조직된 공략대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코우지와 슈한이다.”
“코우지라면 모르겠지만, 슈한이라뇨? 저 노인 아닌가요? 겉보기엔 별 볼 일이 없는 것 같은데.”
잭이 지목한 슈한이라는 노인은 허름한 옷차림에 지팡이까지 짚고 있었다.
겉모습만 봐서는 도저히 각성자라고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잭의 눈빛은 매우 신중했다.
“매우 뛰어난 길잡이다. 듣기로는 위험한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다고 하더구나.”
“냄새로 위험을 판별한다고요? 그 정도면 거의 개나 늑대 아닙니까?”
도수열의 눈빛도 변했다.
위험을 미리 감지할 수 있다면 던전의 공략이 한결 쉬워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도수열은 무투가 궁수 계열이다.
원래는 원거리에서 지원해야 하지만, 공략대 사정상 전위를 맡는 경우도 다수 있었다.
궁수의 스킬 중에 추적이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추적이란 스킬을 이용해 길을 찾고,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그의 임무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때 난쟁이 커너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벌써 쫄 필요 없어. 그래 봤자 놈들은 온실 속의 화초야. 샤오룬의 지원이 없었으면 그만큼 던전을 공략할 수도 없었을 거야. 여차하면 우리 형제가 놈들을 쓸어버릴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맞다. 우리가 쓸어버린다.”
동생인 데클란이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터너의 말에 동조했다.
데클란은 키가 거의 삼 미터에 달하는 거인이었고, 반대로 형인 커너는 키가 백이십 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난쟁이었다.
평소엔 데클란이 어깨에 커너를 얹고 다닌다.
잭이 말했다.
“두 사람의 실력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 방심하면 안 됩니다. 어쨌거나 놈들은 네오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실력자들이니까요.”
“흥! 그깟 성벽 속에 사는 놈들이 뭐가 두렵다고.”
커너는 끝까지 이나즈마를 인정하지 않았다.
잭은 그런 커너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제발 사고 치면 안 되는데.’
커너는 뛰어난 각성자이고, 팀에 필수 불가결한 존재였다. 하지만 급한 성질 때문에 간혹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그가 일으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잭의 몫이었다.
커너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그나저나 조합장이 추가로 보낸다는 각성자는 뭐야? 우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건가?”
그의 얼굴엔 불만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그것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도깨비 시장의 조합장 유세희는 그들을 이번 공략대로 보내면서 또 한 명이 합류할 거라고 말했다.
그에 모두의 기분이 매우 상한 상태였다.
유세희의 말이 꼭 자신들을 못 믿는다고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지원을 거부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만큼 도깨비 시장에서 유세희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더군다나 이번 임무는 매우 중요했기에 한 치의 실수도 용납이 안 됐다.
그래서 유세희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도수열이 잭에게 물었다.
“대장은 합류한다는 자가 누군지 압니까?”
“안다.”
“누굽니까?”
“그가 합류하면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지금처럼 함부로 입을 놀리다가는 너도 죽을지 모르니까.”
“에이! 설마?”
“고란을 제거한 자다.”
잭의 말에 도수열과 폭렬 형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고란? 소문이 사실이었습니까?”
“그렇다.”
“음!”
도수열이 침음성을 흘렸다.
신촌과 도깨비 시장에 몸을 담고 있는 자들은 모두 안다.
고란이 누군가에 의해서 지워졌다는 것을 말이다.
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이 있는 고란은 유세희와 요한조차 꺼림칙하게 여기는 무서운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누군가에 의해서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는 것은 그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그때였다.
“왔다.”
“놈이다.”
이나즈마가 누군가를 보고 웅성였다.
자연 도수열과 폭렬 형제도 그들의 시선이 고정된 곳을 향했다.
그곳에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로브에 달린 모자를 깊이 눌러쓴 채 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걸어오는 남자는 바로 제온이었다.
제온의 등장에 이나즈마와 잭이 이끄는 공략대의 눈빛이 바뀌었다.
‘저자가…… 제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