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92)
92화
‘썩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네.’
제온은 공터에 흐르는 냉랭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그래도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저들에게 자신은 이방인에 불과하니까.
생각해 보면 어디에서도 자신은 이방인이었다.
꽤 많은 콜로니를 방문하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 봤지만, 그 누구도 처음부터 그를 환영해 주지 않았다.
경계하고 의심한다.
걸어 잠근 마음의 문을 쉽게 열어 주는 일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 요소였고,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처음 보는 타인은 일단 적으로 간주하고 적대적으로 대한다.
그것은 제온도 마찬가지였기에 절대 서운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잭이 제온에게 다가왔다.
“제온?”
“그쪽은?”
“잭이라고 한다. 내가 도깨비 시장의 공략대장이다. 앞으로 내 명령을 따르면 된다.”
“알겠습니다.”
“그쪽이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개별 행동은 용납되지 않는다. 던전을 공략하는 동안만큼은 내 명령을 따라 주길 바란다.”
“알겠습니다.”
제온은 군더더기 하나 달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그에 오히려 잭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 강한 각성자일수록 제멋대로 움직이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반에 규율을 잡으려고 조금 강하게 말한 건데, 제온이 순순히 받아들이니 오히려 당혹스러운 것이다.
잭은 제온의 표정을 자세히 살폈다. 하지만 로브의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있어 읽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이런 타입이 까다롭지. 제어하기 쉽지 않겠어.’
그는 속마음을 숨기며 이나즈마에 말했다.
“모두 왔으니 출발해도 됩니다.”
“그럼 출발하지.”
이나즈마의 대장인 코우지가 무심히 대답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한 곳엔 버기카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사막 전용으로 개조된 버기카엔 각종 짐들이 실려 있었다.
이나즈마 공략대, 잭의 공략대, 그리고 그 외 각성자들이 탄 버기카가 출발했다.
줄을 지어 사막을 가로지르는 버기카 행렬.
잭의 버기카에 탄 도수열이 입을 열었다.
“거, 드럽게 덥네. 형씨는 덥지 않수?”
그의 질문은 제온을 향한 것이었다.
제온은 사막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견딜 만합니다.”
“혹시 아이템?”
도수열의 시선이 제온의 로브를 향했다.
제온이 입고 있는 코트 형태의 로브는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귀해 보였다.
닳은 흔적 하나 없고, 윤기가 촤르르 흐른다.
모래바람을 상당히 맞았음에도 표면엔 먼지 하나 쌓이지 않았기에 그렇게 짐작한 것이다.
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클린 마법에 체온 조절 기능까지 달려 있나? 어느 공방 작품이우?”
네오 서울 안엔 꽤 많은 공방들이 존재한다.
각각의 공방마다 특색이 있기에, 제작 공방 이름만 알면 성능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런 조그만 정보들이 합쳐져 나중엔 큰 힘이 된다.
잭 공략대의 전위를 담당하기에 도수열은 이렇게 습관적으로 정보를 수집했다.
“아는 지인이 만들어 준 겁니다.”
“호! 개인 공방?”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어느 공방인데? 실력은 괜찮수? 잘하면 나도 이용하게.”
“그럭저럭 쓸 만합니다. 하지만 소개해 주긴 그렇군요. 이곳 사람이 아니라서.”
“외부?”
“너무 많이 말했더니 목이 칼칼하네요.”
제온은 대답 대신 물을 마셨다.
그의 행동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대답하기 싫다는 것이다.
도수열도 그 사실을 눈치챘다.
‘말을 돌릴 줄도 안다는 거지? 그래 봤자 나에게 모든 정보를 다 털어놓게 될 거다.’
지금은 경계하겠지만, 일단 던전에 들어가면 이쪽에 의지하게 될 거다. 의지하는 쪽이 심리적 부담을 느끼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많은 정보를 털어놓게 된다.
실제로 도수열은 그런 심리적인 우위를 이용해서 꽤 많은 정보를 얻어 냈다.
도수열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자신했다.
제온은 도수열에겐 신경도 쓰지 않고 사막을 바라봤다.
네오 서울에 들어온 이후 이렇게 먼 곳까지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불어오는 뜨거운 모래바람이 꽤 상쾌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일지 몰랐다.
바람에 담긴 모래가 다른 사람에겐 괴로움만 주겠지만, 제온에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
오히려 제온을 기분 좋게 어루만졌다.
문득 제온이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시선이 느껴진 곳은 이나즈마 공략대가 타고 있는 버기카였다.
그중에서도 슈한이라는 노인이 제온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코를 킁킁거리는 모습이 마치 제온에게서 정보를 수집하려는 것 같았다.
딱!
제온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순간 제온의 몸 주위에서 강렬한 섬광이 일었다.
“아이쿠!”
슈한이 갑자기 코를 붙잡고 비명을 질렀다.
섬광에 담긴 강렬한 열기가 그의 후각을 순간적으로 마비 시켰기 때문이다.
코우지가 슈한에게 물었다.
“뭐야?”
“냄새로 저자의 정보를 수집하려 했는데…….”
“했는데?”
“열기로 내 후각을 마비시켰네.”
“영구적 장애야?”
“일시적 현상일세.”
“그럼 됐어.”
“하지만…….”
“타지크 님이 주목한 대상이야.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거지.”
제온을 바라보는 코우지의 눈빛이 서늘했다.
그의 서늘한 눈빛 뒤엔 강한 살의가 숨겨져 있었다.
‘타지크 님은 놈을 가늠해 보라고 했지. 역량이 되면 포섭, 함량 미달이면 제거.’
그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타지크의 명령을 받아 처리한 자가 수십 명이 넘는다.
그들 모두 그의 품에 안겨 있는 카타나에 목숨을 고이 헌납했다.
코우지는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버기카 행렬은 매우 빠른 속도로 사막을 가로질렀다.
탈탈!
겨우 이십 킬로미터 거리를 움직였을 뿐인데 엔진 소리가 심상치 않다.
모래 때문에 벌써 엔진에 무리가 가는 것이다.
마법과 과학이 조화를 이뤄 기술력이 발달했지만, 그래도 사막의 모래를 극복하지 못했다.
차량으로 먼 거리를 가려면 반드시 매카닉이 함께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고장 나는 차량을 감당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특히 이런 소형 차량일수록 쉽게 고장 났다.
그 때문에 그들의 행동반경은 네오 서울 근처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나저나 새로운 던전이라니. 네오 서울 근처에서 던전이 발견된 것은 꽤 오랜만 아닌가?’
아무래도 모래 때문에 각성자들의 활동반경이 제한적이다 보니 네오 서울 주위에 발생한 던전 위주로 공략했다.
그 때문에 네오 서울 주위의 던전은 씨가 마른 지 오래였다.
코우지가 곁에 있던 유리에게 물었다.
“던전의 종류는?”
“일단 동굴형 던전인 것은 확인됐습니다.”
“동굴형? 미로일 가능성도 있겠군.”
“높은 확률로 그럴 거라 예상됩니다.”
“정말 미로형이라면 꽤 골치 아프겠군.”
“슈한 님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미로형 던전에선 길잡이의 능력이 절대적이니까요.”
유리의 대답에 코우지의 시선이 슈한을 향했다.
“믿어도 되겠지?”
“맡겨 주시게나. 대장!”
후각을 완벽히 회복한 슈한이 호언장담했다.
그들은 매우 조용하게 말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하나도 빠짐없이 제온에게 전달됐다.
‘미로형 던전이라. 내가 또 미로 찾기엔 일가견이 있지.’
아마 네오 서울에서 제온보다 많은 던전을 공략해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데이오든의 죽음 이후 제온은 수많은 던전을 들어갔다.
어떨 때는 자의로 들어가기도 했지만, 또 어떨 때는 어쩔 수 없이 들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수많은 던전을 공략하면서 얻은 경험은 제온의 자산이 됐다.
제온은 어떤 던전을 맞닥트려도 당황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때 버기카가 서서히 속도를 늦추는 것이 느껴졌다.
전방을 바라보니 큰 모래 언덕 아래 일단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발견된 던전을 지키고 있는 각성자들이었다.
코우지가 버기카에서 내려 그들에게 다가갔다.
“던전 동향은?”
“딱히 이상한 조짐은 보이지 않습니다. 발견 당시 그대로입니다.”
“그래? 그나마 다행이군.”
가끔 성향이 바뀌는 던전들이 있었다.
그런 던전들은 입구에서부터 표가 나서 변화를 감지하기 쉬웠다.
현재 던전 입구를 지키는 각성자들은 네오 서울에서 파견 나온 자들로, 경험이 꽤 많았다.
그들의 판단이니 믿어도 될 것이다.
코우지가 명령을 내렸다.
“좋아! 십 분 후 던전에 들어갈 테니 모두 다시 한번 장비를 점검하라.”
“예!”
이나즈마 공략대가 대답과 함께 장비를 점검했다.
잭의 공략대와 빈민가에서 차출된 각성자들도 자리에 주저앉아 장비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던전에 들어가는 일이었다.
안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몰랐다.
두 번 세 번 점검하고 확인해도 절대 과하지 않았다.
모두가 그렇게 부지런히 장비를 점검하고 있을 때 오직 제온만이 던전의 입구에서 서성거렸다.
“동굴형이라…….”
어쩐 일인지 그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 있었다.
그가 던전 입구를 지키고 있는 각성자에게 물었다.
“안에 들어간 사람은 없습니까?”
“당신들이 처음입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묻습니까?”
“그냥 개인적인 호기심입니다.”
그때였다.
“어이, 허여멀건 친구.”
걸걸한 목소리가 제온을 불렀다.
목소리의 주인은 이나즈마의 대원 중 한 명인 바이룬이었다.
바이룬은 도끼를 어깨에 척 걸친 채 제온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 말입니까?”
“여기에 허여멀건 놈이 너밖에 더 있느냐?”
“그래서 무슨 용건인가요?”
“너는 왜 장비를 점검하지 않느냐? 설마 그 모양 그 꼴로 던전에 들어갈 건 아니겠지?”
“이게 어때서요?”
제온이 양팔을 들며 대답했다.
그에 바이룬의 눈빛이 더 흉흉해졌다.
“방어구도 하나 없이 그렇게 들어간다고?”
“그러는 당신도 겨우 천 쪼가리 하나 걸치지 않았습니까?”
“나는 바바리안이다. 나에게 방어구 따윈 필요가 없다. 오직 이 도끼 한 자루면 충분하지.”
“저도 다른 방어구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마법사냐?”
“뭐 그런 것까지 궁금해하십니까? 던전 안에 들어가면 곧 알게 될 텐데.”
“큿! 건방진.”
대번에 바이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바바리안 특유의 막강한 기세가 흘러나와 제온을 압박했다. 하지만 그의 기세를 정면으로 맞는 제온의 얼굴엔 어떤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코우지가 바이룬의 어깨를 잡았다.
“그쯤 해라.”
“하지만 대장…….”
“힘은 던전 안에서 쓰고.”
“끄응! 알겠습니다.”
바이룬이 인상을 쓰며 물러났다.
코우지가 제온을 바라봤다.
“내 수하가 실례했군.”
“괜찮습니다.”
“하지만 아주 틀린 말을 한 건 아냐. 던전은 매우 위험하니까 만반의 준비를 해도 모자라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준비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말로 받아들여도 되지?”
“네!”
제온의 대답에 코우지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자신감이 대단하군. 그런데 말이야.”
“네?”
“던전 안에 들어가서는 부디 날 실망시키지 마라. 실망시키는 순간 넌 내 손에 죽을 테니까.”
코우지의 차가운 말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독한 냉기에 일대의 온도가 삼사 도쯤 내려간 기분이었다.
그것은 잭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이나즈마 대장의 기세? 과연 섬뜩하군.’
그는 제온도 자신과 같은 기분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본 제온의 얼굴엔 은은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