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95)
95화
통로는 어두웠다. 하지만 제온의 눈엔 대낮처럼 밝게 보였다.
그의 눈은 벽에 생긴 흠집, 바닥에 팬 구덩이 하나까지 놓치지 않았다.
바사삭!
그의 발에 밟힌 무언가가 힘없이 부스러졌다.
제온이 손을 뻗어 부서진 물체를 잡았다.
“유충의 껍질? 벌써 탈피한 녀석들이 있나 보군.”
어느 마수나 그렇듯 귀신 잠자리 역시 성충일수록 위험도가 높아진다.
바닥엔 유충의 껍질이 가득했다.
벌써 많은 놈들이 탈피한 것이 분명했다.
“이건 너무 빠른데.”
제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에겐 타임라인이 존재한다.
인간이 태어나 성인이 되고, 또 늙어 가는 시간.
인종이나 타고난 DNA는 다르지만, 성장하고 늙어 가는 시간은 거의 비슷하다.
마수 역시 마찬가지다.
종마다 다르지만, 같은 종의 타임라인은 거의 비슷하다.
귀신 잠자리 역시 마찬가지다.
알에서 깨어나 유충이 되고, 유충이 다시 성충이 될 때까지의 시간은 항상 일정하다.
당연히 탈피할 때 유충의 크기 역시 비슷하다.
그런데 지금 바닥에 널려 있는 껍질들의 크기는 제각기다.
태어난 시기가 다 다르다는 뜻이다.
그런데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일제히 탈피했다.
자연적으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무언가 이들의 탈피를 강제로 조장한 것이 분명해.”
마수들의 생리를 잘 아는 제온이기에 할 수 있는 추측이었다.
제온은 유충의 껍질을 밟으며 계속 걸어갔다.
갈수록 동굴의 크기가 커졌다.
폭도, 높이도 눈에 띄게 넓어지는 것이다.
자연적으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제온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 던전 자체가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테라포밍의 실패로 쿠라얀의 잔재가 던전화됐다.
차원의 틈에 끼여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숨을 이어 가는 망령.
어떤 던전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제멋대로 변화하기도 한다.
제온이 아는 던전은 그런 곳이었다.
그러니 갑자기 확 트인 공간이 나타나도 절대 이상하지 않았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분명 조금 전까지 답답한 동굴 속이었는데, 제온은 지금 하늘이 보이는 넓은 대지에 서 있었다.
한순간 공간이 바뀐 것이다.
우우웅!
그런 제온을 맞아 준 것은 수많은 귀신 잠자리들이었다.
귀신 잠자리 무리가 하늘을 새까맣게 메우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귀신 잠자리 무리는 제온도 본 적이 없었다.
“이것 봐라.”
제온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그가 주목한 것은 바로 제자리 비행하는 귀신 잠자리들의 눈과 날개였다.
눈은 피처럼 새빨갛고, 투명한 날개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양이 빛나고 있었다.
“인위적인 광폭화. 역시 누군가 손을 댔군.”
어쩐지 처음 던전에 들어왔을 때부터 싸하다 했다.
클렉시 영감이 지옥 두더지에 잡혀 있는 것도 그렇고, 절대 어울릴 수 없는 두 개체가 공존하는 던전도 그랬다.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그때였다.
후우웅!
제자리 비행하던 귀신 잠자리들이 일제히 제온을 향해 날아들었다.
마치 유성처럼 쏟아져 내리는 귀신 잠자리 무리.
제온이 모래 걸음을 펼쳐 귀신 잠자리의 공격을 피했다.
콰콰쾅!
조금 전까지 제온이 있던 곳이 폭탄 맞은 것처럼 터져 나갔다.
자폭 공격이었다.
귀신 잠자리도 생명체였다.
당연히 자신의 목숨 아까운 줄 안다.
그런데 이렇게 거침없이 목숨을 버려 자폭하는 경우는 단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여왕에게 문제가 생겼군.”
우우웅!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이 귀신 잠자리들이 연이어 공격했다.
비처럼 쏟아지는 귀신 잠자리 무리.
그들이 날갯짓하는 소리가 다 공포스러울 지경이었다.
콰콰콰쾅!
폭발이 연이어 일어났다.
제온은 간발의 차이로 그 모든 폭발을 피했다.
화염이 해일처럼 밀려오고, 엄청난 압력이 전신을 짓눌렀다. 하지만 그 모든 위협 속에서도 제온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귀신 잠자리가 아무리 많아도 사막에 널려 있는 모래 알갱이보다 많지 않았다.
이 던전에도 모래가 널려 있었다.
“크레모아!”
제온이 입을 여는 순간 근처에 있던 모래들이 폭발했다.
마치 그 옛날 살상 병기인 크레모아처럼 터져 나가는 모래.
조그만 알갱이 하나하나가 크레모아의 쇠구슬에 필적하는 위력을 지녔다.
셀 수 없이 많은 모래 알갱이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귀신 잠자리들이 부딪혔다.
퍼버버벅!
모래 알갱이는 귀신 잠자리의 날개에 구멍을 뚫고, 거대한 눈과 몸체를 관통했다.
귀신 잠자리들은 부서지고, 찢기고, 해체됐다.
크레모아가 폭발한 곳 허공에 큰 구멍이 뻥 뚫렸다. 그곳을 가득 채웠던 귀신 잠자리 무리가 지워진 것이다.
아마 이 광경을 다른 각성자가 봤다면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엄청난 위력이었다.
쾅! 콰앙!
제온이 연이어 크레모아를 펼쳤다.
그때마다 한 무더기의 귀신 잠자리들이 세상에서 지워졌다.
크레모아는 마나의 소모가 무척이나 큰 스킬이었다. 그런 스킬들을 제온은 아무렇지 않게 연속으로 펼쳤다.
날개를 잃고, 몸체가 찢긴 귀신 잠자리들이 추락했다.
힘없이 추락하는 귀신 잠자리들의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하지만 제온은 추락하는 귀신 잠자리들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걸었다.
이제 그의 앞을 가로막는 귀신 잠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제온은 귀신 잠자리들의 잔해를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에 유독 거대한 귀신 잠자리가 있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길이가 이십 미터는 될 것 같은 괴물 귀신 잠자리.
“여왕!”
괴물 귀신 잠자리는 바로 여왕이었다.
그런데 놈의 상태가 처참했다.
아름답고 투명하던 날개는 마치 강제로 뜯겨 나간 것처럼 사라져 보이지 않았고, 길고 아름다운 꼬리도 반으로 꺾여서 나뒹굴고 있었다.
바닥엔 반투명한 껍질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여왕 귀신 잠자리는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다리를 파르르 떨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제온은 그런 여왕 귀신 잠자리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여왕 귀신 잠자리의 등에 꽂혀 있는 일곱 개의 정이 보였다.
정은 마치 북두칠성처럼 배열되어 있었다.
제온은 정 하나를 뽑아 들었다.
그래도 여왕 귀신 잠자리는 반항하지 못했다.
이미 기력이 다했기 때문이다.
제온은 정을 자세히 살폈다.
표면에 마법진이 새겨져 있는 것이 아이템이 분명했다.
“마력의 잔향이……. 이건 테이머의 짓이군. 강제로 탈피를 촉진시켰어.”
곤충형 마수들은 일생에 몇 번이나 탈피한다.
탈피할 때마다 몸집이 더 커지고, 더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
하지만 아무 때나 탈피하는 것이 아니다.
그만한 마나가 쌓이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완성이 되어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제온이 보기에 여왕 귀신 잠자리는 아직 탈피할 시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정체 모를 테이머가 강제로 여왕 귀신 잠자리의 탈피를 촉진시켰다.
“강제로 탈피시킬 이유가…… 날개 때문인가?”
제온은 브리엘의 말을 떠올렸다.
갓 탈피한 여왕 귀신 잠자리의 날개는 중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만일 테이머가 여왕 귀신 잠자리의 날개를 욕심냈다면 충분히 할 만한 일이었다.
대단한 테이머라면 귀신 잠자리를 강제로 탈피하게 할 능력을 갖추고 있을 것이 분명하니까.
“그런데 이게 테이머 혼자 힘으로 가능한 일인가?”
제온은 주위를 둘러봤다.
보스가 두 마리인 이중 던전이었다.
제아무리 강력한 테이머라도 이 모든 마수들을 제압하고 뜻대로 부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조력자가 분명 존재했다.
문제는 조력자가 개인이냐, 혹은 세력이냐였다.
“아무래도 세력일 확률이 높겠군.”
사막에서 발생한 던전을 발견한 것도 모자라 감시자들을 피해 침투했다.
세력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제온이 살짝 고개를 저으며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엄청난 불길이 일어나 여왕 귀신 잠자리를 집어삼켰다.
여왕 귀신 잠자리는 순식간에 한 줌의 재가 되었다.
***
인적 없는 사막을 일 남 일 녀가 걷고 있었다.
펑퍼짐한 로브를 입은 여자와 마찬가지로 품이 넓은 겉옷을 입은 남자였다.
둘 다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
여자가 갑자기 멈춰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왜 그러지?”
“여왕이 죽었어요.”
“그래? 이제 숨이 끊어졌나 보군.”
“아직 죽을 때가 아닌데…….”
여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정확히 계산해서 손을 썼다.
강제로 탈피시켜 날개를 뜯어냈지만, 시간이 흐르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의 예상과 달리 여왕의 숨이 끊어졌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한 것 같아요.”
“그럴 수도 있겠군.”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크게 고민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의 임무는 테이머인 여자를 보호하는 일.
이제 네오 서울로 들어가면 그의 임무는 끝난다.
그는 임무 외의 일엔 신경 쓰는 일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심드렁한 남자의 태도에 여자가 살짝 인상을 썼다 풀었다.
‘뭐, 이 이상은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 무사히 의뢰를 끝마쳤으니까.’
그녀는 B급 테이머다.
테이머라고 하지만 모든 마수를 테이밍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이 사막의 지배자는 마수가 아닌 그녀가 되었을 것이다.
테이밍할 수 있는 마수의 수는 극히 제한적이었고, 그녀의 등급보다 높은 마수를 테이밍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특히 한 던전의 보스는 등급과 상관없이 테이밍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던전의 보스는 확실한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강한 자아를 가진 마수는 인간에게 복속당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여왕 귀신 잠자리도 마찬가지였다.
한 무리의 정점인 여왕은 강한 자아를 가지고 있어 그녀의 능력으로는 절대 복속시킬 수 없었다.
그런 그녀가 여왕 귀신 잠자리를 복속시키고, 강제로 탈피까지 시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아이템 덕분이었다.
그녀의 목에 걸려 있는 보석 목걸이.
중앙에 박힌 보석이 일곱 가지 빛을 사방으로 뿌리고 있었다.
일명 레인보우 잼이라 불리는 보석이다.
그래서 목걸이의 이름도 레인보우 팬던트다.
‘S급 아이템이라니…….’
목걸이를 어루만지는 그녀의 손길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물건이 아니었다.
바로 곁에 있는 남자가 잠시 빌려준 S급 아이템이었다.
S급 아이템의 위력은 실로 가공했다.
B급에 불과한 그녀의 능력을 일시적이지만 S급으로 상승시킨 것이다.
덕분에 여왕 귀신 잠자리와 군단을 일시적으로 복속시킬 수 있었다.
덕분에 성장을 강제로 촉진시켜 탈피까지 시킬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여왕 귀신 잠자리의 날개를 얻기 위해 한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하게 공략대가 들어와서 지옥 두더지에게 유인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곁에서 보좌해 준 남자 덕분에 모든 문제가 수월하게 해결됐다.
‘대체 누구일까?’
그녀는 남자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눌러쓴 모자를 벗지 않았다.
다만 그가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던전 안에서 보여 준 남자의 능력 때문이었다.
그가 마음먹으면 자신은 순식간에 고깃덩이로 변하고 말 것이다.
말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네오 서울에 도착했다.
그들은 빈민가가 아닌 네오 서울로 직접 들어가는 문에 도착했다.
문 앞에서 남자가 말했다.
“이쯤에서 헤어지지.”
그가 여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잠시 빌려준 레인보우 팬던트를 돌려달라는 의미였다.
여자가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정말 돌려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려줘야 했다.
그녀는 억지로 레인보우 팬던트를 풀어 남자에게 돌려줬다.
남자는 레인보우 팬던트와 여왕 귀신 잠자리의 날개를 아공간에 수납하며 말했다.
“다음 의뢰에 다시 만나지. 클레어.”
“다음 의뢰는 언제쯤인가요?”
“그건 그때 통보하지. 그때까지 푹 쉬고 있도록.”
“네!”
클레어라고 불린 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오 서울로 들어오자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걸었다.
번화가를 지나 남자가 향한 곳은 네오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시청이었다.
시청을 지키고 있던 각성자가 남자를 공손히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시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