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96)
96화
남자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마법으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는 소리도 없이 그를 시청사 최고층인 오십 층으로 이동시켰다.
얼핏 듣기로는 그리스라는 마법에 과학을 접목시켜 만들었다는데, 자세한 원리까지는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네오 서울의 모든 기물은 이런 식으로 움직였다.
마법과 과학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최대의 효율을 뽑아낸다.
자원이 부족한 시대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대부분의 땅이 모래로 변했기에 콘크리트는 물론이고, 돌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지금 네오 서울을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재료들은 백 년 전 파괴되고 남은 서울의 잔재였다.
옛 재료로 건물을 올리고, 인챈터와 같은 각성자들이 구조를 강화시켰다. 그리고 마법을 쓰는 각성자들이 각종 편의 시설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청사는 네오 서울의 중추가 됐다.
엘리베이터는 남자를 순식간에 시청 최고층인 오십 층으로 이동시켰다.
오십 층에서 내린 남자는 깊이 눌러썼던 모자를 벗었다. 그러자 사십 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표정 하나 없는 냉막한 얼굴에 초점 없는 눈동자.
남자는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모자를 벗은 남자는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저, 이정호입니다.”
“들어오게.”
잠시 후 안에서 중후한 음성과 함께 문이 열렸다.
이정호가 안으로 들어가자 광활한 공간이 나타났다.
네오 서울의 전경이 환히 보이는 통창과 중앙에 놓인 커다란 책상,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책장들엔 책이 가득 꽂혀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통창 앞에 서 있는 남자였다.
뒷짐을 진 채 네오 서울을 내려다보는 중년의 남자.
양복을 입고 있는 남자의 뒤에선 여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정호가 남자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왔습니다.”
“수고했네.”
중년 남자가 뒤돌아섰다.
그러자 중년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푸른 눈, 단정히 빗어넘긴 머리와 턱과 코에 멋스럽게 나 있는 수염이 인상적이었다.
남자의 이름은 진금호.
그가 바로 네오 서울의 시장이었다.
진금호가 물었다.
“힘들지 않았는가?”
“마침 조건이 딱 맞아떨어져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행이군.”
“여기 여왕 귀신 잠자리의 날개와 레인보우 팬던트입니다.”
이정호가 아공간에서 두 개의 물건을 꺼내 진금호에게 건넸다.
진금호는 레인보우 팬던트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직 여왕 귀신 잠자리의 날개만 바라봤다.
여왕 귀신 잠자리의 날개는 마치 민들레 꽃씨처럼 저 스스로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중력을 거스르는 것을 보니 진품이 확실하군.”
진금호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실망시키지 않아 다행입니다.”
“자네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날 실망시킨 적이 없지. 그래서 어떤 일이든 믿고 맡길 수 있어.”
“감사합니다.”
“별다른 문제는 없었고?”
“생각보다 빨리 이차 공략대가 들어왔었지만, 마주쳤어도 별문제는 없었을 겁니다.”
“그렇겠지.”
진금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정호의 자신감이 절대 과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진금호에겐 넘버즈라고 불리는 처형 부대가 존재했다.
오직 진금호의 명령에만 목숨을 거는 살인 기계들.
이정호는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무투계 각성자, 그중에서도 검을 다루는 검객이었다.
등급은 A급.
일반적인 각성자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는 S급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평범한 방법으로는 S급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의 눈을 멀게 했다.
심안이라는 스킬을 얻기 위해서였다.
심안과 검술의 조화는 그를 더 높은 등급으로 인도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S급에 도달하지 못했다.
A급과 S급 사이의 그 어디쯤.
확실한 S급에 도달하려면 다른 계기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이정호도 확실히 알지 못했다.
진금호가 말했다.
“고생했으니 푹 쉬게.”
“아닙니다. 새로운 임무가 있으면 내려 주십시오.”
“당분간 자네가 움직일 일은 없을 걸세.”
“알겠습니다. 필요하면 언제든 다시 불러 주십시오,”
“그러지.”
이정호가 나가고 진금호가 혼자 남았다.
진금호가 네오 서울을 굽어보며 중얼거렸다.
“천벌, 그 첫걸음이 이렇게 시작되는군.”
***
“허억! 허억!”
“제기랄!”
제온이 지옥 두더지의 보스 룸으로 돌아와서 제일 먼저 본 광경은 바로 널브러져 있는 각성자들이었다.
이나즈마 공략대와 잭 공략대가 모두 바닥에 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제온이 귀신 잠자리들을 상대하는 동안 이들은 지옥 두더지 보스를 공략했고, 결국은 잡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치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나즈마 공략대와 잭 공략대 모두 부상자가 나왔다. 하지만 빈민가의 각성자에 비하면 나았다.
빈민가의 각성자들은 태반이 죽거나 부상당했다.
그래도 살아남은 자들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어쨌거나 지옥 두더지 보스를 잡았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죽은 자들의 몫까지 보상받을 것이다.
그게 공략대의 생존자들이 누리는 특권이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코우지가 제온을 발견했다.
“어디 갔던 거야? 보이지 않던데.”
“마나가 모두 떨어져 잠시 물러나 있었습니다.”
제온의 대답에 코우지가 미간을 찌푸렸다.
지옥 두더지 보스를 잡을 수 있었던 데는 제온의 공이 컸다.
그가 파이어 레인을 펼치지 않았다면 지금도 귀신 잠자리 유충을 상대하느라 진을 빼고 있었을 것이다.
끝없이 몰려오던 귀신 잠자리 유충을 일거에 불태워 버릴 정도의 스킬을 펼쳤으니 마나가 모두 고갈되었던 것도 이해가 됐다.
하지만 이빨 사이에 낀 음식 찌꺼기처럼 영 개운치 않은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코우지가 억지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일단 보스에게서 마정석 회수하고, 이 석관들 좀 어떻게 해 봐. 안에 갇힌 사람들 구해야 하니까.”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슈한이 단검을 들고 나섰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지옥 두더지 보스의 배를 가르고 마정석을 찾아냈다.
“이 정도면 충분한 보상이 되겠는데.”
지옥 두더지 보스에게서 나온 마정석에선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잘하면 스킬이 나올 수도 있었다.
그럼 가치가 천정부지로 뛴다.
잭이 석관을 깨며 소리쳤다.
“조합장님!”
그가 흔들었지만, 클렉시 영감은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숨소리가 안정적인 것이 금방 어떻게 될 것 같진 않았다.
코우지가 잭에게 말했다.
“우리의 거래가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약속대로 마정석은 우리가 갖는다. 이의 있나?”
“없다.”
“그럼 먼저 나가도록.”
코우지의 말에 잭이 어쩐 일인지 제온의 눈치를 봤다.
잭의 공략대는 제온의 시선을 피하며 구출한 사람들을 둘러업었다.
제온은 말없이 그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의 입가엔 어느새 차가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역시 믿을 놈 하나 없군.”
그의 비웃음에 잭이 움찔했다. 하지만 반박하거나 발끈하지 않았다.
지은 죄가 있기 때문이다.
원래 이 던전을 발견한 것은 클렉시 영감의 수하들이었다.
우연히 지옥 두더지가 주인으로 있는 던전을 발견한 클렉시 영감은 직접 공략하러 왔다가 그만 실종되고 말았다.
유세희는 클렉시 영감을 구하기 위해 구조대를 파견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때 접근해 온 사람이 타지크였다.
그는 이나즈마 공략대를 지원해 주겠다면서 대신 반드시 제온을 합류시켜 달라고 했다.
유세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클렉시 영감은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혈육.
아직은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잭 공략대와 빈민가 각성자들은 클렉시 영감 등을 데리고 던전을 빠져나갔다.
제온은 우두커니 서서 그 광경을 말없이 바라봤다.
코우지가 제온에게 물었다.
“놀랐나?”
“딱히!”
“보기보다 심장이 튼튼한 모양이군.”
“그런 소리 자주 들었습니다.”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데.”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닙니다.”
“한마디도 지지 않는군.”
“꿀릴 게 없어서요.”
“그러다 혀 잘린 놈들 여러 명 봤지.”
“그런가요? 무섭네요.”
제온이 과장되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에 코우지의 눈빛이 더욱 살벌하게 변했다.
이곳에 오기 전 타지크의 당부가 떠올랐다.
―시험해 봐. 쓸모 있는 놈이라면 악어 대신 굴리면 되니까.
―기대에 못 미치면 어떡합니까?
―그때는 뭐…….
타지크는 확실한 대답 대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코우지는 그의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제온이 주위를 둘러봤다.
어느새 이나즈마 공략대가 그를 포위하고 있었다.
유리, 바이룬, 슈한, 코메인은 무기를 든 채 제온을 노려봤다.
그러나 정작 제온은 그들을 신경도 쓰지 않고 코우지를 바라봤다.
“이게 타지크라는 자의 뜻인가요?”
“그분은 네가 함부로 입에 올릴 분이 아니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요?”
“최소한 네놈 입에 오르내릴 분은 아니다.”
“그의 정체가 점점 더 궁금해지네요. 그런데 쉽게 말해 주진 않겠죠?”
“네놈은 궁금증 해결보다 네 목숨 보전하는 거나 신경 써야 할 거다.”
코우지는 제온을 향한 적의를 감추지 않았다.
스릉!
그가 카타나를 뽑아 들었다.
날이 시퍼렇게 벼려진 카타나는 제온을 가리켰다.
“증명해 보여라. 네가 쓸 만한 놈인지. 그게 너의 생명을 구할 유일한 방법이다.”
“뭐, 열심히 발버둥 쳐 보죠. 그게 내가 제일 잘하는 거니까.”
제온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 모습이 코우지의 신경을 자극했다.
“시작해!”
“네! 대장.”
풍술사인 유리가 대답과 함께 부채를 휘둘렀다.
바이룬은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들었고, 코메인은 블링크를 펼쳐 제온의 뒤로 이동했다.
슈한은 한발 물러나 제온을 관찰했다.
‘네놈의 모든 것을 샅샅이 파헤쳐 주마.’
유리가 날린 바람의 칼날과 바이룬의 도끼가 동시에 제온의 숨통을 노렸다. 거기에 코우지의 카타나까지 더해졌다.
제온의 숨이 끊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하지만 슈한의 예상과 다르게 제온은 숨이 끊어지지도, 수세에 몰리지도 않았다.
화르륵!
엄청난 불의 벽이 그의 전신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크윽!”
“핫! 뜨거.”
엄청난 열기에 바이룬이 뒤로 물러났고, 풍술사인 유리가 기겁했다.
제온이 그들을 향해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파이러 레인.
귀신 잠자리 유충을 몰살시켰던 스킬이 다시 한번 펼쳐졌다.
“흥! 어림없다.”
그 순간 코우지가 나서며 카타나를 휘둘렀다.
서거걱!
이나즈마 공략대에게 쏟아지던 불비가 그의 카타나에 모조리 잘려 나갔다.
그의 카타나에는 붉은 기운이 어려 있었다.
오러 소드를 펼친 것이다.
제온이 다시 손을 휘둘렀다.
파이어 레인이 또다시 던전 안을 가득 채웠다.
이번엔 유리가 나섰다.
“어림없다. 토네이도 실드.”
바람이 토네이도가 되고, 토네이도가 거대한 벽을 만들어 제온이 만들어 낸 불비를 가뒀다.
토네이도 막에 갇힌 불은 순식간에 소멸했다.
코우지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법계, 화염 계열 각성자 맞지? 하지만 보다시피 너의 스킬은 더 이상 우리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런 것 같네요.”
더 강한 스킬을 쓸 수 있었지만, 제온은 굳이 변명하지 않았다.
변명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 나갔군.‘
그의 감각에 잭과 다른 각성자들이 모두 던전을 빠져나간 것이 느껴졌다.
이제 이 던전엔 오롯이 이나즈마와 그뿐이었다.
코우지의 검에서 붉은 오러가 더욱 강렬하게 치솟아 올랐다.
“장난은 여기까지다. 이제 숨통을 끊어 주마.”
“저도 이제 장난은 그만하려고요. 오 대 오 정도면 대충 대등하려나?”
“뭐?”
그 순간 제온의 주위에 있던 모래들이 움직였다.
스르륵!
“샌드 솔저.”
모래 속에서 다섯 명의 병사들이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