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98)
98화
순간 클렉시 영감은 전신의 피가 싸늘히 식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오한이 느껴지고, 머릿속에서 경종이 연신 울려 퍼졌다.
그는 제온의 짧은 말속에 담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다. 하지만 그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조금 전에 정신을 차렸다.”
“다행이네요.”
“너도 공략대에 참여했다며?”
“유세희 조합장이 부탁해서요.”
“어쨌거나 고맙다. 덕분에 살아나올 수 있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제온이 웃었다.
그 웃음이 목에 들이댄 칼날처럼 소름 끼치게 느껴졌다.
클렉시 영감이 말을 돌렸다.
“던전에선…… 혼자 나온 거냐?”
“네!”
“이나즈마 공략대는?”
“빠져나오지 못했나 보네요.”
“같이 있던 것 아니었나?”
“있었죠.”
“그런데?”
“나오는 길을 찾지 못한 모양이네요.”
“음!”
클렉시 영감이 자신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이나즈마 공략대의 대장인 코우지는 B급 각성자였다.
수하인 유리, 바이룬, 코메인은 C급, 슈한은 D급이다.
결코 우습게 볼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다.
이 정도 전력이라면 빈민가의 공략대 따위는 순식간에 지워 버릴 수 있었다.
그런 전력이 길을 잃어 던전에서 나오지 못했다?
누가 들어도 믿지 않을 이야기다.
‘혼자서 이나즈마 공략대를 전멸시켰다는 건가?’
자세히 봐야 알겠지만, 제온의 전신엔 흔한 생채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고란에 이어 이나즈마 공략대까지…….’
꿀꺽!
클렉시 영감이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 정도면 인정해야 한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남자가 엄청난 능력자라는 것을 말이다.
저 잘생긴 외모 뒤에 상상치도 못할 흉포함과 잔인함을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던전은 완전히 소멸했나?”
“네!”
“그렇군.”
던전이 소멸하면 당연히 그 안에 있던 모든 것도 사라진다.
이나즈마 공략대 역시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진 셈이다.
제온이 말했다.
“불행한 일이에요.”
“뭐가…… 말이냐?”
“이나즈마 공략대 같은 고급 인력이 던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 말이에요.”
“그렇지.”
“별문제는 없겠죠?”
“아마 없을…… 거다.”
“다행이네요. 귀찮은 건 딱 질색이거든요.”
“음!”
클렉시 영감은 자신이 어느새 주먹을 꽉 쥐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꽉 쥔 손바닥엔 땀이 촉촉이 배 있었다.
그런 클렉시 영감에게 제온이 말했다.
“그럼 이제 돌아가죠.”
“그러자꾸나.”
클렉시 영감이 어렵게 대답했다.
제온은 마치 산책을 나온 사람처럼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추를 단 것처럼 무거웠다.
***
클렉시 영감의 귀환 소식에 유세희가 맨발로 달려 나왔다.
“할아버지!”
“세희야!”
“괜찮아요?”
“기력이 조금 없긴 하지만 괜찮다.”
“하아! 다행이다.”
유세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시켜 미안하구나.”
“그러게 왜 던전을 들어가냐고요? 던전 공략은 젊은 사람들한테 맡길 것이지…….”
“쩝!”
“하여간 두 번 다시 던전에 들어가면 나 못 볼 줄 알아요? 알았어요?”
“나도 그 고생은 하기 싫다. 두 번 다시 내가 직접 들어갈 일은 없을 거다.”
“약속한 거예요?”
“약속하마.”
“알았어요. 피곤할 텐데 오늘은 이쯤에서 넘어갈게요.”
“고맙다.”
클렉시 영감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들어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이 이상 잔소리를 들었다가는 쓰러질지도 몰랐다.
그때였다.
“이거 조손간의 해후를 제가 방해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낯선 음성이 클렉시 영감의 고막을 자극했다.
순간 클렉시 영감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목소리 주인의 정체를 직감했기 때문이다.
“타지크?”
“오랜만입니다.”
미소 지으며 클렉시 영감에게 인사하는 남자는 바로 타지크였다.
그의 등장에 클렉시 영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사히 귀환하셔서 다행입니다.”
“덕분일세.”
“그런데 이나즈마 공략대가 보이지 않네요. 먼저 네오 서울로 돌아간 겁니까?”
“그들은 던전을 빠져나오지 못했네.”
“무슨 말씀입니까?”
순간 타지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클렉시 영감은 건조한 타지크의 얼굴이 진짜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설마 이나즈마 공략대가 전멸했다는 말입니까?”
“불행히도 이 늙은이를 탈출시킨 후 던전 안에서 길을 잃은 모양일세. 제 시간에 빠져나오지 못했어.”
“그 말을 저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그게 사실인 걸 어떡하나?”
클렉시 영감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태연히 말했다.
타지크는 그런 클렉시 영감을 무서운 눈으로 노려봤다. 하지만 그의 눈빛으로는 클렉시 영감을 흔들 수 없었다.
“제온은요?”
“그는 집으로 돌아갔다네.”
“무사하다는 겁니까?”
“상처 하나 없이…….”
“…….”
타지크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클렉시 영감이 은밀히 미소 지었다.
‘저 녀석의 당황한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군.’
하지만 공과 사는 구별해야 했다.
어쨌거나 자신은 타지크에게 신세를 졌다.
이 빚은 갚아야 했다.
클렉시 영감이 타지크에게 말했다.
“샤오룬에게 이 마정석을 갖다주게. 구해 준 대가일세.”
“…….”
클렉시 영감이 마정석 하나를 타지크에게 건넸다.
그가 보관하고 있던 최상급 마정석 중 하나였다. 보스급 마수에게서 나온 마정석으로 시중에선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검은 광택이 나는 마정석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았다. 하지만 타지크는 그런 마정석 따윈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쥔 것이 그가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하지. 이나즈마 공략대라면 타지크 선에서 부릴 수 있는 최고의 패였을 테니까.’
네오 서울 남부의 패자 샤오룬의 심복이라지만, 그가 부릴 수 있는 병력엔 한계가 있다.
샤오룬은 결코 자신의 권력을 한 사람에게 집중시켜 주지 않는다.
중요한 모든 것은 꽉 쥔 채 나머지 부스러기만 심복들에게 던져 준다.
이나즈마 공략대는 타지크가 부릴 수 있는 최고의 패였다.
그런 최고의 패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으니 타지크가 분노하는 것도 당연했다.
‘한동안 광분하겠군.’
이 정도가 그가 수습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후 타지크가 어떻게 나오든, 또 제온이 어떻게 대응하든 그의 손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좌시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후우!”
무의식중에 흘러나오는 무거운 한숨이 그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
“왔어?”
제온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브리엘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밤을 새웠는지 브리엘의 얼굴이 퀭했다.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눈가엔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제온이 물었다.
“왜 그러냐?”
“실패……했어.”
“응?”
“실패했다고. 이틀이나 밤을 새우면서 집중했는데…….”
브리엘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제온이 없는 동안 연금술에만 몰두했다.
도깨비 시장에서 사 온 모든 재료를 투입했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사 온 재료들을 모두 소진했고, 남은 것은 지독한 피로와 무력감뿐이었다.
“히잉!”
브리엘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제온이 그녀에게 물었다.
“도대체 뭘 만들려는 건데?”
예전부터 궁금했었다.
몇 번 지나가는 말로 물어봤지만, 브리엘은 절대로 자신이 만들려는 물건을 말해 주지 않았다.
“마나 증폭 포션.”
“증폭 포션?”
“응! 마나 용량을 순간적으로 늘려 주는 약물.”
“혹시 그거 마약 아니냐?”
“그거랑은 달라.”
브리엘이 발끈했다.
마약의 폐해는 누구보다 그녀가 잘 알고 있었다.
마약을 만들다가 몸이 망가졌으니까.
그녀가 만드는 마나 증폭제는 마약을 만들 때 힌트를 얻었다.
그때는 꼭꼭 숨겼지만, 자유가 된 지금은 달랐다.
“히잉! 어떡하지? 반드시 만들고 싶은데.”
브리엘이 제온의 눈치를 살폈다.
저번에 사 온 재료를 모두 소진했으니 다시 재료를 사야 했다. 그런데 다시 사려면 돈이 필요했다.
현재로서는 돈 나올 구석이 제온밖에 없기에 눈치를 보는 것이다.
제온이 품에서 보석 하나를 꺼내 들었다.
순간 브리엘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마정석이라는 것을 알아본 것이다.
그것도 매우 귀한.
저 정도 크기와 윤기라면 보스를 잡고 나온 것이 분명했다.
“마정석?”
“갖고 싶냐?”
“응! 응!”
브리엘의 고개가 정신없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럼 말해 봐. 여왕 귀신 잠자리의 날개로 뭘 만들 수 있는지.”
“혹시 그거 여왕 귀신 잠자리의 마정석이야?”
“맞아!”
“그런데 날개는 왜?”
“이유는 묻지 말고. 참고로 여왕 귀신 잠자리가 강제로 탈피한 상태였어.”
“강제로?”
브리엘이 미간을 찌푸렸다.
여왕 귀신 잠자리를 강제로 탈피시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S급 테이머나 혹은 S급 아이템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이미 일어난 일이야. 그러니까 가능성 유무를 따지지 말고, 날개로 무얼 할 수 있는지나 말해.”
“할 수 있는 것은 많아. 일단 중력에 영향을 받지 않으니까 비행 아이템을 만들 수 있지.”
“어느 정도까지 중력 영향을 받지 않는데?”
“이론상으로는 끝없이 올라갈 수 있어.”
“고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응! 여왕 귀신 잠자리 날개라면 아마 수백 킬로까지도 하늘로 띄울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의미가 있나?”
“왜?”
“하늘엔 비행형 마수들이 있잖아. 놈들이 인간이 띄워 올린 물건을 그냥 두고 볼 리 없잖아.”
“음!”
“누가 한 짓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봤을 땐 괜히 헛심 쓴 것 같은데.”
제온은 브리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보스가 둘인 던전을 찾아내서 정확히 여왕 귀신 잠자리만 탈피시킨 자가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어. 분명 비행형 마수들을 무력화시킬 자신이 있거나, 방해를 받아도 상관없을 정도로 대비책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 분명해.’
어디까지나 제온의 추측이었다.
하지만 제온은 자신의 추측이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제온이 브리엘에게 말했다.
“너라면 여왕 귀신 잠자리의 날개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정리해서 내게 줘.”
“알았어.”
“받아!”
제온이 브리엘에게 마정석을 건네줬다.
브리엘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앗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