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mancer of the Scorched Desert RAW novel - Chapter (99)
99화
제온은 빈민가 거리에 앉아 있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떤 건물 계단 앞에 쭈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에게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덕분에 제온은 오랜만에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 텁텁한 공기까지 모두 좋았다.
그렇게 제온이 한낮의 여유를 한창 즐기고 있을 때 평화를 깨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서둘러!”
“사체가 썩기 전에 처리해야 해.”
“비켜! 비켜! 이 거지 새끼들아.”
수십 명의 각성자들이 네오 서울로 통하는 대로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치열한 전투라도 치르고 왔는지 다들 모래와 마수의 체액을 뒤집어쓴 채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제온의 눈길을 끈 것은 그들이 끌고 있는 커다란 트럭이었다.
트럭 짐칸엔 거대한 마수의 사체가 실려 있었다.
“크라운 베어? 쉽게 보기 힘든 놈인데.”
크라운 베어는 머리에 왕관 모양의 뿔이 나 있는 거대 마수였다.
곰처럼 사족 보행과 이족 보행이 가능한 데다가 앞발을 사람처럼 사용할 줄 알아 상대하는 것이 매우 까다로웠다.
성체의 가죽은 어지간한 무기로는 상처 하나 입힐 수 없을 만큼 단단한 데다가 마법에도 강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어지간한 각성자들은 크라운 베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크라운 베어를 사냥하려면 무투가 각성자와 마법계 각성자가 골고루 조화를 이룬 파티, 혹은 공략대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무리를 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성체가 된 크라운 베어는 그 자체로 엄청난 보물이었으니까.
흔히 웅담이라 불리는 쓸개는 마나를 증가시켜 주고, 내장 부위는 각종 포션의 중요 재료가 됐다.
살과 뼈 역시 연금술의 재료가 되는 만큼 한 마리만 잡아도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크라운 베어의 사체는 엄청나게 빨리 부패하기에 서둘러 처리해야 했다.
그 때문에 크라운 베어를 사냥한 이들이 저렇게 서두르는 것이다.
“비켜! 이 거렁뱅이 새끼들아.”
그들은 크게 소리 지르며 미친 듯이 네오 서울로 달려갔다.
거리를 걷던 사람들은 알아서 피했다.
걷다가 트럭에 치여도 누구 하나 신경 써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저들에게 빈민가의 사람들은 길가의 돌멩이만도 못한 존재였다.
돌멩이는 건물을 만들 때 쓰기라도 하지, 빈민가 사람들은 데려와도 쓸 곳이 없었다.
마치 사막의 모래 폭풍처럼 크라운 베어들을 사냥한 각성자들이 네오 서울로 순식간에 사라졌고, 거리는 난장판이 됐다.
“크라운 베어 정도면 얼마나 주려나?”
“숨겨 둔 크라운 베어라도 있습니까?”
그때 거리 한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온이 고개를 돌리자 빈민가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의 남자가 보였다.
말쑥한 정장 차림에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리가 인상적인 남자는 바로 타지크였다.
제온은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렇게 더러운 곳엔 웬일이십니까?”
“그쪽을 만나러 왔습니다.”
“저요?”
“네!”
“왜요?”
제온이 정말 이유를 모른다는 듯이 눈을 끔뻑거렸다.
타지크는 그런 제온의 모습이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애써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태연한 척 말을 이었다.
“이나즈마 공략대 때문입니다.”
“아! 이나즈마 공략대. 굉장히 유능했던 분들인데, 그렇게 돼서 유감입니다.”
“유감이라고요?”
“제가 능력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같이 나올 수 있었을 텐데. 미안합니다.”
제온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타지크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던전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당사자 외엔 알 수 없었다.
한번 소멸한 던전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존재했다는 그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는 것이다.
타지크로서는 던전 안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코우지는 호승심이 강하다. 거기에 내 명령을 절대 거역하지 않아. 분명 놈에게 싸움을 걸었을 거야.’
그는 이나즈마 공략대에게 제온의 등급을 알아보라고 명령을 내렸다.
상대의 수준을 파악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직접 싸우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코우지와 이나즈마 공략대는 제온과 싸웠을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이나즈마 공략대는 던전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제온 혼자 생환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나즈마 공략대가 뒤처져서 던전을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거군요?”
“안타까운 일이죠.”
제온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태연히 대꾸했다.
타지크는 제온의 미세 표정 변화를 살펴 진실을 파악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새끼가…….’
순간적으로 살기가 치솟아 올랐다.
그는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기를 억눌렀지만, 제온의 눈을 피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제온에게 속내를 파악당한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타지크가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면 이나즈마 공략대는 탈출을 하지 못해 던전과 함께 소멸했다. 이 말이군요?”
“네!”
“쉽게 믿기지 않는군요.”
“뭐가 말입니까?”
“이나즈마 공략대는 소멸하는 던전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만큼 얼간이들이 아니거든요.”
“그런가요? 그럼 운이 좋지 않았나 보죠. 던전 소멸이 갑작스럽게 일어나서.”
“하아!”
타지크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도무지 제온의 말에 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온의 수준은 파악하지 못하고, 이나즈마 공략대만 헛되이 잃은 꼴이었다.
‘그냥 솔직히 털어놓고 포섭할까?’
악어들을 대신할 자가 필요했다.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제온이 딱 적격이었다.
하지만 지금 제온과 대화하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아니, 놈은 누군가의 말을 들을 놈이 아니야. 이나즈마 공략대를 그렇게 처리한 것만 봐도 얼마나 치밀하고, 반골 기질을 가졌는지 알 수 있어. 누군가의 밑이 있을 사람도 아니고, 명령을 들을 놈은 더더욱 아니야.’
생각을 정리한 타지크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더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뵙죠. 그럼…….”
타지크가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사라졌다.
제온이 타지크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조용히 넘어가긴 그른 것 같군.”
제온은 타지크 같은 자들을 잘 알고 있었다.
야망과 자신감으로 가득 찬 눈빛을 가진 저런 남자들은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하지 못한다.
실패가 자존심과 연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 제온을 이용한다는 생각 따윈 없을 것이다.
남은 것은 자존심을 회복해야 한다는 집념뿐.
“아무래도 그냥 놔두면 계속 골치 아파지겠지?”
제온이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당할 것 같은 거대한 성벽.
이 성벽이 바로 네오 서울과 빈민가를 가르는 방벽이었다.
높이만 무려 오십 미터에 두께만 오 미터가 넘는 이 거대한 성벽은 온갖 마법진과 각종 무기로 도배되어 있다.
거대 마수에게서 네오 서울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이 거대한 성벽은 허가받지 않은 인간의 접근을 불허한다.
특히 빈민가와 연결된 거대한 성문엔 각성자들이 경계를 서고 있어 빈민들은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각성자들이 온종일 경계를 서도 이곳에 접근하는 빈민가 사람들은 겨우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들조차 호기심에 멀리서 구경만 할 뿐 가까이 접근하지는 않았다.
각성자들은 그런 빈민가 사람들을 조롱했다.
“하! 거지새끼들이 또 기웃거리네.”
“놔둬라. 안이 궁금한 모양이지.”
“궁금할 것도 많다.”
“어유! 냄새가…….”
각성자들이 코를 막는 시늉을 했다.
같은 인간이었지만, 그들은 빈민가의 사람들을 인간 취급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인간은 오직 네오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들뿐이다.
네오 서울에서도 신분이 갈린다.
각성자와 일반인으로.
하지만 일반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각성자보다 아래는 아니다.
일반인들 중에서도 성공한 자들이 있다.
도축 회사나 마정석 가공 회사 같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들, 혹은 각자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자들은 오히려 어지간한 각성자보다 나은 대접을 받는다.
어쨌거나 네오 서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역량에 맞는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백여 년 전에 무너진 인간 사회의 시스템이 이곳에선 멀쩡히 존재하는 것이다.
각성자들이 경멸하는 것은 이 시스템 밖의 사람들.
바로 빈민가의 인간들이었다.
이들이 없어도 네오 서울이 돌아가는데 하등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안위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낄낄 웃고 있는 각성자들의 시야에 정문으로 접근하는 남자가 보였다.
그는 로브에 달린 모자를 깊이 눌러쓴 채 휘적휘적 걸어왔다.
각성자가 일단 그를 제지했다.
“누구냐? 신분을 밝혀라.”
“저는 제온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바로 제온이었다.
“제온? 빈민가 출신인가?”
각성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오 서울에서 나간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제온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빈민가 출신이라고 짐작한 것이다.
“네!”
“빈민가 거지가 이곳엔 웬일이지? 네오 서울 출신이거나 출입증이 없으면 들어가지 못한다.”
“있습니다. 출입증.”
“있다고?”
“네!”
제온이 품에서 임시 출입증을 꺼내 각성자에게 던졌다.
예전에 맨디를 구해 주고 받은 것이었다.
한 달만 출입할 수 있는 임시 출입증을 꺼내 든 것이다.
각성자가 인상을 구긴 채 임시 출입증을 살폈다.
“발급자가 맨디 시스테인, 보증인이 매카닉 김상식? 이거 확인해 봐.”
옆에 있는 각성자에게 넘기자 판독기로 확인했다.
판독기에 파란 불이 들어왔다.
진품이라는 의미였다.
네오 서울의 출입증은 특수한 마법 처리를 해서 절대 위조할 수 없다. 그래도 각성자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제온을 바라봤다.
“네오 서울에 들어가려는 목적은?”
“맨디 시스테인을 만나러 왔습니다.”
“발급자 말인가?”
“네!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니다. 통과!”
발급자와 보증인의 신원이 확실하니 제지할 이유가 없었다.
정문을 지키던 각성자들은 제온을 통과시켰다.
그그긍!
둔중한 소리와 함께 두꺼운 출입문이 열렸다.
“들어가라. 네오 서울에서 머물 수 있는 기한은 한 달이다. 그때까지도 네오 서울에 남아 있으면 가드들이 너를 찾아내 죽일 것이다.”
제온이 받은 임시 출입증엔 추적 마법이 걸려 있었다. 허가 기간이 지났는데도 네오 서울에 남아 있으면 마법이 발동해 가드들이 찾아낼 수 있다.
“그렇게 오래 있지도 않을 겁니다. 용무만 마치면 바로 나올 거라서.”
제온은 웃으며 정문을 통과했다.
네오 서울에 들어서자 공기가 바뀌었다.
마치 공기 청정기를 틀어 놓은 것처럼 공기 자체가 산뜻하게 느껴졌다.
항상 텁텁한 바깥 공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폐 속 깊은 곳까지 깨끗해지는 느낌이었다.
거리엔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 없이 깨끗했고, 바깥엔 흔한 모래도 보이지 않았다.
세련된 건물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치솟아 있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복장 또한 깔끔하고 멋있었다.
소리도 없이 움직이는 자동차와 각종 이동 수단들.
제온이 이야기로만 듣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도시였다.
제온이 이제까지 봐 온 그 어떤 콜로니와도 비교를 불허하는 최첨단의 콜로니.
어쩌면 이곳이 현 인류 문명의 정점인지도 몰랐다.
그런 도시 속으로 제온이 첫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