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ior of crazy sword masters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광마들의 파라다이스 (1부 완)
영지를 정비하는 건 생각보다 신경 쓸 일이 많았다.
나 혼자서 그 모든 것을 처리해야 한다고 했으면 그냥 영지 버리고 도망갈 뻔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영지 경영 전문가인 디노사가 있었다.
왕국의 후계자였던 디노사에게 후작령 정도를 관리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후작 각하. 자금 지출 현황 입니다. 승인 부탁 드립니다.”
디노사가 건네준 문서에는 여러가지 영지 사업에 대한 지출이 일목요연하게 적혀 있었다.
영지를 새로 만드는 것은 정말 돈 먹는 하마나 다름없었다.
수입은 없는 상태에서 지출만 나가니 정말 천문학적인 자금이 매일같이 빠져나갔다.
그래도 골든브로의 레어에서 가져온 금이 풍족했기에 다행이다.
그게 없었으면 정말 영지 개발 같은 것은 꿈에도 꾸지 못하고, 돈을 벌기 위해 용병으로 뛰어다녀야 했을 것이다.
“보급품을 가지고 상인이 온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데이지 볼튼 상단주가 이번 물품 운송에는 직접 온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 볼튼 상단주가 오면 연락줘. 만나볼 테니.”
“알겠습니다.”
디노사가 나간 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앉아서 서류와 씨름을 하는 것은 영 내키지 않았다.
좀이 쑤신다고 할까.
천상 몸을 쓰는 것이 더 편하게 느껴졌다.
어디서 전쟁이라도 안 벌어지나 싶었는데, 대륙은 조용했다.
분명 로날드 제국에서 무슨 짓을 벌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조용했다.
“분명 가만히 있을 놈들이 아닌데.”
로날드 제국의 찰스 황제는 전생에서도 전쟁광이었다.
그놈은 특히 광마를 싫어했다.
광마한테 사기라도 당한 적이 있나.
분명 이완 공작이 찰스 황제에게 실로니아 왕국에서 광마를 이용한다는 정보를 제공했다고 들었는데, 지금까지 아무 행동이 없는 것이 오히려 더 불안했다.
폭풍전야의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도 그 사이 영지는 굉장히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폐허와 같던 마을은 번듯한 집이 곳곳에 들어섰다.
댐퍼스가 생각보다 공사를 잘했다.
댐퍼스는 건축 기술 보유자였다.
생각지도 못한 인재의 등장에 디노사는 굉장히 기뻐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댐퍼스가 건설 도면을 그리고, 노예를 이용해 공사 진두지휘까지 하니 영지 건설 속도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었다.
창문 바깥으로 지어지는 건물들을 보고 있으니, 이곳이 정말 내 영지라는 자부심이 들 정도다.
이곳을 바탕으로 조금씩 세력을 키워나가면, 언젠가는 광마도 편하게 살 수 있는 파라다이스를 건설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전까지 찰스 황제가 지랄만 하지 않는다면···.
***
데이지가 영지에 도착했다.
그녀가 보급품을 가지고 들어오자 영지에는 활기가 도는 것 같다.
군대에서도 황금마차가 오면 병사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것과 같아 보였다.
“오시느라 고생했습니다.”
“많이 발전했네요. 전에 왔을 때는 폐허나 다름 없었는데.”
“그렇죠. 앞으로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할 것입니다.”
“그렇겠죠. 영지민들의 얼굴에 그늘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이런 영지에서 살고 싶어지는데요.”
데이지는 자신도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뜻을 넌지시 말했다.
나중에 이곳에 볼튼 상단 지부를 개설하게 되면 자주 올 수 있을 것이라 말해주니, 왠지 모르게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요즘 정세는 어떻습니까?”
데이지의 근황에 대해서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나는 드디어 그녀를 기다렸던 질문을 했다.
전생에서와 다르게 진행된 부분이 많다 보니,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영지에 틀어박혀 있는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정보 조직이라도 구축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기에는 인력이 너무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데이지에게 정보를 부탁했다.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요즘 다른 국가들이 굉장히 조용해요. 제국 역시 마찬가지고요.”
“특별한 움직임이 없다는 겁니까?”
“네. 분명 실로니아 왕국을 향해 제국에서 무슨 행동을 취할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아직은 너무 조용해요. 마치 폭풍전야처럼······.”
폭풍전야라는 그녀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확실히 이대로 가만히 있을 제국이 아니다.
전생에서도 광마들이 활동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고, 대륙 연합군을 결성해서 광혈단을 치려고 했던 제국이다.
그런 로날드 제국의 황제가 이대로 손 놓고 가만히 있을까?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소문은 들었어요. 로날드 제국의 사신이 다른 왕국을 방문하는 일이 잦아졌어요.”
역시 가만있을 곳이 아니었다.
다른 왕국에 사신을 보냈다는 것은 대륙 연합군을 다시 만들겠다는 것이다.
제국 혼자의 힘으로도 실로니아 왕국 정도는 충분히 정벌할 수 있을 텐데도, 전생에서도 그들은 연합군을 결성했다.
자국의 군사력을 최대한 보존하겠다는 생각이다.
“무슨 일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까?”
“안 그래도 그게 이상해서 카렛에게 조사해달라고 했어요. 그녀가 돌아오면, 좀 더 자세한 사항을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렇군요.”
정보를 얻은 후 카렛은 바로 우리 영지로 오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그녀가 이곳에 머물기로 예정한 날짜는 일주일.
그 안에 카렛이 과연 돌아올 수 있을까.
***
카렛은 데이지가 돌아가기 하루 전에야 영지에 도착했다.
은밀하게 내 집무실로 들어온 그녀는 나를 보며 말했다.
“아무 일도 없어요.”
“네? 아무 일도 없다니요?”
“제국의 사신은 별다른 이유 없이 왕국을 방문했어요. 이곳을 침공하려는 움직임은 전혀 없었고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제국이 이대로 가만있을 곳이 아닌데.
“제국의 사신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각 왕국으로 퍼진 사신들은 국왕과 만난 후 바로 제국으로 돌아갔어요.”
“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군요. 과연 사신들이 무슨 소식을 전달한 것일까요.”
“죄송해요. 알아보려고 노력했지만, 쉐도우의 정보력으로도 전혀 알아낼 수가 없었어요.”
“아닙니다.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면, 분명 왕국이나 제국에서 움직임이 있을 겁니다. 우리는 그 움직임을 확인하여 대응하면 됩니다.”
“조직원을 총동원해서 지속적으로 확인할게요.”
어차피 실로니아 왕국을 침공하려면 소수 정예가 아닌 대규모 군대를 파견해야 한다.
우리 존재를 알아챘다면, 소수 정예로 움직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 제국에서 우리의 존재는 모른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만큼 광마의 특징은 최대한 나타내지 않도록 노력했으니까.
“별일 없길 바래보죠.”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
대수림 안쪽의 중심지에서는 드래곤의 시체를 깔고 앉은 무우드나가 살점을 맛나게 뜯어먹고 있었다.
“무우드나님, 고르도입니다.”
“고르도, 내가 식사할 때는 방해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죄송합니다. 급한 소식이 들어왔기에 무우드나님께 보고를 드려야 했습니다.”
“무슨 일인데?”
“샤지그가 소멸했습니다.”
“샤지그가? 그놈이 누구지?”
“무우드나님께서 인간들의 영역을 개척하라고 보낸 최상급 마족입니다.”
“아···. 그놈이군. 어쭙잖은 정신 공격만 할 줄 아는 허약한 놈.”
고르도는 허약한 건 아니라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입을 닫았다.
여기서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간, 저 입에 드래곤의 살점이 아닌 자신의 살점이 들어갈 것 같았다.
“아무리 허약하다고 해도 최상급 마족인데, 인간들 중에서 샤지그를 상대할 놈이 있다는 건가···. 재미있군.”
무우드나의 표정이 굉장히 흥미롭다는 미소를 지었다.
고르도는 그 미소를 보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저 미소 이후에는 항상 커다란 사고를 치는 무우드나였다.
‘제발 이번에는 조용히 넘어가자.’
무우드나는 마신의 명령을 받고 대수림에서 마계와의 통로를 여는 임무를 수행 중이다.
만약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이곳을 벗어나면 마신의 분노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분노는 자신에게도 미칠 것이다.
“무우드나님, 아직 마계와의 통로를 열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누가 뭐래?”
말과는 다르게 그녀의 엉덩이는 당장이라도 움직일 듯 움찔거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참으시지요.”
“알았어. 알았다고. 잔소리는. 자꾸 그러다가 마생 하직하는 수가 있다.”
“죄송합니다.”
“용건 끝났으면 가봐. 나는 별미나 더 먹을 테니까.”
고르도가 고개를 숙인 후 그곳을 벗어나자 무우드나는 대수림 저 너머 인간들이 사는 영역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나를 재밌게 해줄 놈들이 꼭 있었으면 좋겠어.”
무우드나 그녀는 싸움을 좋아하는 마족 중에서도 유별나게 싸움을 좋아하는 쌈닭이었다.
***
괜한 우려였나 보다.
영지를 뒤집어 새로 만들기 시작한 지 벌써 삼 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꾸준히 영지민을 늘려나가 어느새 내 영지는 십만명의 영지민이 살고 있다.
허트 국왕의 꾸준한 지원과 대수림 인근의 마물을 주기적으로 소탕하여 안전을 꾀한 결과였다.
처음에는 대수림 인근에 산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던 영지민은 이곳이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하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고는 폭 눌러살았다.
“영주님, 나오셨습니까?”
“그래.”
내가 나의 영지를 걸어가자 나를 본 영지민들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다른 곳의 귀족이 나타난다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내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게 정상이겠지만, 내 영지에서는 다르다.
나는 영지민들에게 가볍게 허리를 숙이는 정도로만 인사를 하라고 했다.
처음에는 영지민들도 어색해했지만, 삼년이 지난 지금은 이들도 자연스러웠다.
디노사가 내가 나온 것을 어찌 알았는지 내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성벽에 가시는 것이옵니까?”
“그래. 오랜만에 성벽 위에 올라가 보려고 한다.”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우리는 천천히 걸어 영지를 감싸는 거대한 성벽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성벽이 필요한가 싶었다.
어차피 마물이나 적이 오면, 광마들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디노사는 성벽은 무조건 필요하다고 하면서 무리한 일정임에도 성벽을 건설했다.
그야말로 대공사였지만, 일꾼들은 많았다.
광마들까지 다 성벽을 건설하는데 투입한 것이다.
그리고 우뚝 선 영지를 지키는 성벽을 본 나는 디노사가 왜 그렇게 성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는지 이해했다.
경계를 설 때도 큰 도움이 되었고, 성벽으로 인해서 보호받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성벽에 올라 어느 영지 못지않게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나만의 영지를 한눈에 담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벌써 삼 년이군.”
“그렇습니다.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디노사가 더 고생했지. 실질적으로 영지의 모든 대소사를 관장한 건 디노사잖아.”
“저야, 일이 재미있으니까요.”
누가 일 중독자 아니랄까 봐.
대수림에서 살때는 이런 모습이 아니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사람 사는 곳으로 나온 이후에는 너무 열정적으로 일을 했다.
그 열정이 과도해서 주위 사람들이 치를 떠는 게 문제였지.
“지금까지는 다행스럽게도 시간을 벌었지만, 언제까지 이러지는 않겠지?”
“맞습니다. 조금씩 대륙에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고 하니, 큰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국의 공격을 우려해 지난 삼 년간 꾸준히 준비했다.
영지를 지킬 군사력을 늘리고, 기사들도 늘려갔다.
광마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한달음에 달려가 데려왔다.
그렇게 늘어난 광마의 수만 100명.
그야말로 삼 년 전보다 최소 두 배 이상의 전력 상승을 이루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제국의 공격에도 무턱대고 당하지 않을 자신감이 생겼다.
“영주님, 그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마족이 나타났다는 거?”
“맞습니다. 루이에 왕국은 마족의 등장으로 굉장한 피해를 봤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 마족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맞습니다. 한순간에 자취를 감추었다고 합니다.”
그 마족이 설마 샤지그의 복수를 하겠다고 우리를 찾아오는 건 아니겠지?
제국도 걱정인데 마족까지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았다.
뭐 무서운 건 아니다.
눈앞에 나타난다면, 단번에 죽여 줄 것이다.
마족과 상대할 때는 우리 광마들은 더욱 큰 힘을 발휘하니까.
“바람이 찹니다. 이제 들어가시죠.”
디노사의 말에 나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사방을 둘러보았다.
광마들의 보금자리.
광마들이 자유롭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파라다이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기틀을 갖추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이 파라다이스를 파괴하기 위해 많은 적이 나타나겠지만.
나는 이겨낼 것이다.
광마들과 함께.
–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