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107)
바다새와 늑대 (106)화(107/347)
#106화
‘메흐’? 나는 낯선 이름에 눈썹을 휘었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근데 애초에 대부분의 이름들은 들으면 다들 어디선가 들어본 기분이 들지 않던가……. 어쨌든 굉장히 뜬금없는 제안이었다. 이 인어가 나를 소원 이뤄주는 램프 속 요정 같은 거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나는 이마를 짚다가 다시 인어를 보았다. 날개옷처럼 지느러미를 늘어뜨린 어깨가 한껏 움츠러들어 있어 왠지 주눅 든 것처럼 보이는 인어였다. 도멤이 옆에서 고개를 기울였다. 뭐래?
나는 어깨를 들썩이고는 고개를 저었다.
“메흐인가 뭔가를 만나게 해달래.”
“그게 누군데?”
“난들 알아?”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발카가 돌연 헛기침을 했다. 로트, 기억 안 나? 나는 발카를 보며 눈썹을 휘었다. 그러자 발카는 떨떠름한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바다의 주인 이름이 메흐잖아.』
“뭐어? 그런 걸 언제 나한테 알려준 적 있었어?”
“애초에 바다의 주인을 왜 여기서 찾는 거지?”
발카는 묘하게 할 말 많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나와의 대화를 잊느냐 따질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아무렴 나는 그렇게 대단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나와 키이엘로가 당황하든 말든, 인어는 난간을 끌어안은 그대로 다시 말했다. ‘메흐를 만나게 해줘.’
아니, 이미 죽은 바다의 주인을 왜 여기서 찾냐고! 하늘나라 가서 찾아야지! 나는 어이없는 기분을 숨기지 않은 채로 인어를 돌아보았다.
“네가 말하는 메흐가 바다의 주인이야?”
『맞아. 그를 잊지 않았어. 우린 그가 필요해.』
“저기, 미안한데. 그 사람…… 아니, 사람은 아닌가……? 여하튼, 그 바다의 주인은 죽었어.”
『나도 알아.』
아, 그래? 안다니 정말 다행이군. 나는 겉도는 것 같은 대화에 이마를 부여잡았다. 이건 또 무슨 생뚱맞은 소리야? 이미 죽은 바다의 주인을 찾아 나에게 말을 거는 인어라. 내가 아무 특징도 없는 일개 인간인 점만 아니라면 전설 속 현자를 찾아온 인어 이야기가 되는 건가? 나는 별달리 할 말을 찾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인어에게 밝게 웃어주었다.
“사람을 잘못 찾아오셨습니다. 난 일개 인간이야, 초월자 사정은 몰라. 그럼 이만.”
그렇게 뒤돌아 이 비일상적인 존재에게서 멀어지려는데, 그럼 그렇지, 하고 허허롭게 웃던 키이엘로가 대뜸 나를 밀쳤다. 깜짝 놀라 홱 몸을 돌리자 언제 다가온 것인지, 난간을 넘어 갑판으로 올라온 인어가 키이엘로에게 팔을 붙잡혀 있었다. 인어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키이엘로에게 이를 드러내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나는 재빨리 키이엘로의 허리춤에 걸린 단도를 뽑아 키이엘로의 팔뚝을 물어뜯으려는 인어의 잇새에 끼워 넣었다. 그러자 그 틈에 도멤이 인어의 목을 뒤에서 팔로 끌어안고 잡아 눌렀다. 인어는 도멤의 팔을 할퀴려다 날 보고 우우, 하고 소리를 내더니 비죽 튀어나오던 손톱을 다시 집어넣었다. 마치 고양이의 발톱을 보는 것 같았다.
『그를 만나게 해줘.』
“너 뭐야? 그러니까 ‘그’를 왜 나한테서 찾냐니까?”
나는 도멤이 붙들고 있는 인어에게 겨눈 단도를 거두지 않고 딱딱하게 물었다. 그러자 인어는 눈을 대굴대굴 굴리다가 어깨와 팔을 늘어뜨리며 힘을 풀었다. 그에 잠시 경계하던 도멤이 나를 보았다. 놓을지 말지 묻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간 인어를 보다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돌발행동을 할지 모르는 상황에 도멤이 계속 붙들고 있는다면 그가 다칠 확률이 높았다. 도멤은 천천히 인어의 목을 감싼 팔을 풀었다.
다행히 인어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설명하자면 길어.』
“그래도 설명해.”
“무슨 대화가 오가는 거야?”
도멤이 키이엘로 쪽으로 가 팔을 문지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어는 축축하고 차갑구나. 난 날생선 잡는 거 싫어한단 말이야. 도멤의 시답잖은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데, 잠시 도멤을 쳐다본 인어가 대뜸 입을 열었다.
“나는 그가 다스린 최초의 인어야.”
“헉.”
도멤이 입을 틀어막았다. 말, 말을…… 하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인어를 보며 물었다.
“그게 뭐 어쨌다고?”
“내 이름은 사란이야. 메흐는 바다를 씻어내다가 우리를 건져냈어. 내가 그에게 처음으로 발견되었고, 그는 우리를 없애지 않고 받아들여 주었어.”
나는 눈을 끔뻑였다. ‘바다를 씻어냈다’라고? 전설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내 기억을 뒤져도 바다의 주인은 그저 바다를 지배했다고만 말하지, 바다를 씻어내니, 뭐하니 하는 내용은 없었다.
키이엘로와 도멤 역시 얼떨떨한 얼굴로 인어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아 그들도 처음 듣는 내용인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인어 앞에 앉았다. 그러자 사란은 밤하늘에 걸린 구름 같은 지느러미를 천 옷처럼 늘어뜨린 채 나를 보았다.
“그는 우리에게 역할을 주었어. 세이렌과 인어들 말이야. 우리는 노래를 해서 곧 그가 어디론가 인도해야 할 죽은 자와, 곧 죽을 자를 불러들이지. 뱃사람들이 나타나면 우린 노래를 불러. 그들 중 곧 죽을 사람들을 데려가기 위해서…….”
“그래서 항해 중에 인어나 세이렌을 보면 그 배는 망한다고 하는 거로군.”
나를 따라 옆에 앉은 키이엘로가 신기하다는 듯 말하자 사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인간들의 이야기까지는 몰라. 하지만 우리는 그에게 구해진 이후로 항상 그를 도왔어. 우리의 일을 해왔지. 바다의 모든 것들은 그때 그가 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니까……. 하지만 그가 죽었어.”
사란은 마지막 말을 하며 음울한 얼굴을 했다. 바다의 주인이 죽은 지는 까마득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인어는 마치 그 순간에 박제된 듯 공허한 낯을 하고 있었다. 발카도 사란의 얼굴을 보더니 우울한 얼굴을 했다.
“그가 죽은 것을 느낄 수 있었지. 그가 가꾼 바다, 그가 아끼던 세상이 모조리 뒤집혔어. 다시금 끔찍한 세상으로 변해가는 게 느껴졌지. 그래, 그는 죽은 거야.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손안에 파묻은 인어는 처연하게 잠시 흐느끼다가 고개를 들었다. 투명한 수정구슬 같은 눈물이 떨어져 갑판 위를 굴렀다. 까만 바닥을 구르던 반짝이는 조각들은 이내 모래알처럼 부서져 사라졌다.
“메흐의 죽음은 느리지만 천천히 영향을 끼쳤어. 지금도 우린 그 영향 아래 살고 있지. 정말로 느리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세상은 그대로인 것처럼 보여. 하지만 아냐. 가장 먼저 바다의 깊은 곳이 망가졌어…….”
사란은 느리고 음울하게 말을 이었다. 이전과 지금의 바다에 얽힌 이야기였다.
시작은 심해였다. 그곳은 공존하기엔 지나치게 위험한 괴물들에게 메흐가 따로 마련한 터였다. 다행히도, 괴물들은 그 어두운 환경과 차가운 온도를 달가워했다. 그랬기에 괴물들은 다른 하잘것없는 것들과 공존하지 못한다고 내쫓긴 서글픔 없이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메흐가 죽자 심해는 돌연 용암이 들끓고, 온도가 변죽 끓듯 하고, 쉴 새 없이 흔들려댔다.
그러자 괴물들은 메흐와의 약속을 더는 지키지 못하고 심해를 벗어나 바다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바다의 얕은 곳이 망가져 갔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괴물들이 자신의 구역을 정하기 위해 몸을 움직일 때면 파도가 거칠게 일었고, 당시 지금보다 작은 편이던 바다는 점점 자리가 부족해져 갔다. 그러자 몇몇 괴물들은 아예 멋대로 땅을 헤집었고, 때때로 심해가 진동해 땅이 가라앉을 때면, 그 위를 바다가 뒤덮어갔다.
그것을 막고자 초월자들이 괴물들을 자신의 수하로 데려가거나 사냥하기도 했으나, 그것 역시 한계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초월자들은 괴물들을 해치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그들을 모두 데려가기엔 버거웠던 탓이다. 심지어는 메흐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인지, 혹은 다른 이유인지 세상이 어떻게 되든 상관도 않는 초월자 역시 있었다.
그렇게 넓어진 바다는 너무 광활해서 죽은 자들이 길을 잃기 쉬웠다. 그러나 그런 이들을 인도해줄 메흐는 죽어버렸고, 그를 돕던 인어와 세이렌들은 망가진 균형 탓에 메흐와 만나기 이전과 같이 변해갔다. 퇴화였다.
그렇게 인어와 세이렌이 망가지자, 메흐가 어린 것들을 달래기 위해 만든 요람인 오로라는 어린 것들만 품을 수 없게 되었다. 오로라는 길 잃은 모든 것들을 담기 시작했으나, 결국 그것도 곧 포화상태가 되어 비틀릴 것은 자명했다.
메흐가 하던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초월자들 역시 나설 수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바다의 존재들이 항의할 때마다 슬픈 듯 즐거운 듯 알 수 없는 모호한 얼굴로 웃기만 했다.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같기도 했고, 오히려 모든 것을 아등바등 끌어안은 채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게 무엇일까. 메흐의 부활? 혹은 세계의 종말?
“…….”
우리 셋은 사란의 이야기에 잠시 말을 잃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망해가는 끝물이었다니……. 젠장, 운도 지지리 없지! 좀 더 일찍 태어나서 바다의 주인이 살아있던 태평성대 시절이나 아니면 그가 죽고 시간도 좀 흘렀지만, 영향은 크게 일어나지 않은 시간대에 태어나 살다 죽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도멤이 옆에서 제 머리를 짚었다.
“나 늙어 죽기 전엔 세상이 안 망했으면 싶다…….”
“인간 입장에선 그렇게 코앞에 닥친 일이 아냐.”
“아, 그래요?”
사란이 태연하게 말하자 도멤은 곧장 낯빛을 바꾸고 활짝 웃었다. 다행이다~! 나는 그 바보 같은 얼굴을 뒤로하고 어깨를 으쓱였다. 늙어 죽을 수나 있을지는 두고 봐야지. 내 말에 어색하게 웃던 키이엘로가 사란을 보며 물었다.
“근데 이게 로트에게 메흐를 보게 해달라는 것과 무슨 상관이에요?”
“헉, 그러게.”
갑자기 나온 스케일 큰 이야기에 본론에서 엇나가 버렸다……. 나와 도멤이 이마를 탁, 치고 있자 키이엘로 옆에서 태평스럽게 뒹굴던 텐은 혀를 찼다. 나는 문득 다시 생각나 중얼거렸다. 그리고 어떻게 이 인어는 멀쩡하지? 그러거나 말거나 사란은 나를 보며 우리의 물음에 답했다.
“나는 메흐가 처음으로 그 검은 시취에서 건져낸 인어야. 그는 내게 가장 먼저 힘을 주었고……. 모르겠어, 그가 힘 조절에 실수한 걸까? 나는 다른 동족들보다 그의 권능을 많이 갖고 있었어. 그래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지. 그 오염된 바다에서 말이야.”
“그 바다는 왜 오염되어 있던…… 아니, 아니지. 그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고. 그런데 이미 죽은 초월자를 왜 나한테 찾아?”
“최근 나는 남은 초월자들이 뭘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알아냈어.”
오……. 굉장히 실감 안 나고 환상적인 이야기가 또 나올 것 같은데. 나는 불안하다는 표정으로 사란을 보았다. 환상은 환상 속에 있을 때나 환상이지 내가 겪으면 환장밖에 더 되나. 나는 슬슬 어찌 됐든 난 모르쇠, 하며 넘어가자고 다짐하고 있었다.
내 속내를 모른 채로 사란이 말을 이었다.
“그들은 메흐의 현신을 만들려는 것 같아.”
“……‘현신’?”
“메흐의 힘을 모아서……. 그의 분신을 만드는 거지.”
나는 다시 이상하게 돌아가는 이야기에 고개를 기울였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도멤이 내게 속닥였다. 이 이야기, 좀 설정 구멍 많은 엉성한 신화 듣는 기분이야. 나는 ‘나도 그래.’하고 짧게 대꾸하고 다시 물었다.
“그, 메흐의 힘이 남아있으면 애초에 세상이 이렇게 망해가진 않을 거 아냐?”
“나도 자세히는 몰라. 그가 죽는 순간에, 그의 힘은 산산이 조각나서 세상 곳곳으로 흩어졌어. 초월자들은 그것을 모으려는 것 같아. 그렇게 그의 힘이 모인다면, 그를 부활시킬 수 있을 거야…….”
그것참……. 나는 떨떠름해진 기분으로 사란을 보았다. 초월자도 그렇고 바다의 존재들도 그렇고 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이미 죽은 사람―은 아니고, 초월자―을 굳이 다시 되살린다고 세상 곳곳의 조각을 모아다 부활 의식을 치른다…….
굉장히…… 오컬트적이군. 실행하면 저주받는다는 소환술 괴담 같잖아.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새벽 네 시에 거울을 보며 초를 켜고 마법진을 그린 다음에 피를 낸다든가 사람이나 동물을 제물 삼아 악마를 소환하는……. 나는 괴담과 미신에 관심이 없었지만 랄티아는 그런 것을 좋아하곤 했다.
나는 한숨을 쉬고 다시 물었다.
“그래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 답은 간단해.”
사란은 외려 이렇게까지 설명했는데 내가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 신기한 듯 고개를 기울이며 내게 말했다.
“네게 그 메흐의 힘이 있거든.”
아, 그렇구나. 나는 침착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란은 내가 미소 짓자 만면에 화색을 띠며 기대하는 얼굴을 했다. 그러나 나는 대번에 버럭 소리 지르며 손에 쥐고 있던 단도를 바닥에 내던졌다.
“돌았냐! 나더러 인신 공양 희생자가 되란 거야?!”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