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109)
바다새와 늑대 (108)화(109/347)
#108화
우투그루는 급하게 뱃머리를 돌려두고 선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에 선원들은 모두 무장을 하고 명령을 기다렸다. 나를 묘하게 쳐다보는 선원들의 거북한 시선을 뒤로하고 가까이 온 도멤이 물었다.
“무슨 괴물이 있다는 거야?”
“나도 몰라. 거기까진 말 안 해주고 갔어.”
도멤은 으으, 하고 질린 기색으로 몸을 떨었다. 오늘도 거친 바다에서 살아남게 해 주소서. 나는 대충 동감의 표시로 주먹을 쥐어 보이고 허리춤에 패검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란이 전해준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되새겼다.
‘파도의 근원이 너를 부른다. 지느러미 달린 나의 친우를 부른다.’
파도의 근원이라는 것이 바다의 주인일까?
왜 바다의 주인이 죽은 자와 연관된 일을 하고 있지? 무슨 상관이라고? 나는 작게 혀를 찼다. 이래서 전설이니 미신이니 믿을 것이 못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나는 정말로 오로라에서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지 않았던가…….
나는 잠시 아버지를 생각했다가 서둘러 그것을 떨쳐냈다. 한번 한눈파는 생각을 하게 되면 거기서 헤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그때 키이엘로가 옆에서 나를 툭 건들었다.
“아까…… 인어가 말한 저주가 뭐야?”
“아.”
도멤도 고개를 번뜩 들고 나를 보았다. 저주? 우리의 쫄보는 하얗게 질린 얼굴이었다. 나는 손을 내저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별것 아냐. 고향에서 내쫓기면서 받은 거야.”
그러나 태연한 내 말을 들은 키이엘로의 얼굴이 이상하게 뒤틀렸다. 그는 나를 보며 몇 번 입을 달싹이다가 발카를 보았다. 그러더니 키이엘로는 내게 말했다.
“그때…… 피를 토했던 게 그거지?”
나는 왠지 야단맞는 꼬맹이가 된 기분으로 눈을 굴리다가 어깨를 들썩였다. 아, 뭐, 그렇긴 한데……. 그렇게 웅얼거리자 도멤이 당장에 엄한 얼굴을 하고 나를 돌아보았다.
‘이게 무슨 소리야?’ 그렇게 묻는 것 같은 얼굴에 나는 훠이 손을 휘두르고 서둘러 입을 열었다.
“정말로 생각보다 별것 아냐. 전에 에르노리를 만났을 때 약 비슷한 것도 받아왔거든…….”
“그럼 그걸 먹고 저주가 없어졌어?”
“아니.”
도멤이 다시 심통 난 얼굴을 했다. 왜 사람의 괜찮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질 않는단 말인가? 그렇다고 무시하기엔 이 둘이 걱정이라는 이름의 성가심을 불러올 것을 알았기 때문에 뭐든 말해야 했다. 하지만 그냥 괜찮다고 해도 안 들어먹을 게 분명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도멤과 키이엘로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물론 에르노리가 준 건 진통제에 가깝지…….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까지 걱정할 문제는 아냐. 나 지금 멀쩡하게 움직이잖아.”
“생각해보니 그렇네.”
“그렇지?”
키이엘로의 수긍에 나는 가뿐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패검한 허리끈의 매듭을 단단히 묶었다. 그러나 키이엘로가 내 어깨를 살포시 잡고 웃었다. 매우 아름다운 동시에 보고 있자니 어딘가 떨떠름해지는 미소였다.
“로트, 너 팔도 안 나았고 몸이 회복된 지 얼마 안 됐잖아. 우투그루에게 말해서 전투에선 빠지는 게 낫겠다.”
“그렇게 따지면 너희도 등이 쓰라리지 않니?”
“좋아, 로트에 관해서는 내가 우투그루한테 말할게!”
“내 말 좀 듣지?”
그러나 도멤과 키이엘로는 도통 들어먹을 생각을 하질 않았다. 나는 오른팔을 움직여보다가 통증이 남아있는 것을 느끼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다 결국 도멤과 키이엘로 사이에서도 너는 들어가라, 아니, 네가 들어가라 하며 투닥거리기 시작하자 텐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멍청이 삼총사…….』
“말조심해. 쟤네랑 엮지 마.”
“그거 정말 상처받는 발언이다, 로트…….”
어쨌든 셋 다 순순히 들어가지 않을 심산인 걸 깨달은 우리는 이젠 머리를 맞대고 웅얼웅얼 떠들었다. 이렇게 서로 선두에 서려고 하다니, 우리 남들이 보면 이 배에 엄청난 충성심이 있는 거로 보이겠어. 그것보단 모험에 목마른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다른 것보다 그냥 꼴값 떤다고 생각하겠지…….
“웬일로 현실을 잘 직시하고 있군. 꼴값 떨지 마.”
우리는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고 돌아보았다. 그곳엔 언제 나온 건지 우투그루가 서 있었다. 클루스도와 디겔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나온 건지 뭔지, 우투그루는 매우 언짢은 표정으로 키이엘로를 노려보았다가 내게로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디겔 아저씨가 급하게 수정할 항로를 찾아보고 있지만 마땅치 않아. 네 바다새가 항로를 살필 수도 있나?”
나는 그의 말에 발카를 바라보았다. 발카는 우투그루의 부탁에 내가 응하는 모습이 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았지만 잠시 바다를 살피다가 말했다.
『뒤는 눈물의 바다, 여기는 유성우의 바다……. 어느 쪽으로 가도 이미 유성우의 바다에 들어선 이상 어느 정도 바다를 가로지를 각오는 해야 해.』
“항로가 있기는 해?”
『유성우의 바다 변두리를 가로질러 간다면……. 가장 가깝고 안전한 길로 거인의 바다를 향하는 항로가 있어.』
내가 발카의 말을 전해주자 우투그루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나와 발카를 보았다가 흠, 하고 소리를 냈다. 거인의 바다라…….
거인의 바다라면 제국과 근접한 방향이었다. 무인도 지대 부근의 바다들을 잘 알지 못하는 나도 제국 근방의 바다는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육지에 상륙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키이엘로와 처음 만났을 때와 시간이 꽤 지난 상태였다. 그때 키이엘로가 가져온 물자를 아직 사용하고 있는 걸까? 많던 식재료를 떠올리자 마장석 회로가 발명된 게 정말 천만다행이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우투그루는 잠시 바다에 시선을 두며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더니 말했다.
“그 항로로 가면 괴물을 마주치지 않을 수 있는 건가?”
“확답은 못 해, 발카는 뱃길을 여는 거지 괴물 탐지 동물이 아니거든.”
“거인의 바다라.”
우투그루는 짧게 중얼거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그렇게 전하지, 하고 뒤돌아 다시 선장실로 향하던 그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돌아보았다. 그에 의아한 얼굴을 하자, 우투그루는 나를 할 말 많은 얼굴로 보더니 말했다.
“너희 전부 꼴값 떨고 있지 마. 그리고 너는 문제가 생긴 것 같으면 아무 데서나 피 토하지 말고 세운에게 가서 검사나 받아.”
“이런 젠장.”
사람을 피 토하는 인형 취급이라니. 애초에 그게 내 맘대로 되냐? 나는 따지고 싶은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드물게도 도멤과 키이엘로가 우투그루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얼굴을 하고 나를 쳐다보았기에 꾹 삼켜냈다. 어디 두고 보자. 내가 피를 토하기 전에 에르노리가 준 나뭇잎부터 씹어 먹어버린다.
하지만 그들의 말마따나 쉬는 것이 내 몸 상태에는 나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아프다는 핑계로 쉰다면……. 나는 주변의 선원들을 일별하고 작게 혀를 찼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평판에 더 누를 끼쳐서 좋을 게 없었다.
어차피 랄티아만 구한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내릴 배에서 선원들과 친하게 지낼 생각인 것은 아니지만, 굳이 미움을 살 필요도 없으니까.
우투그루가 선장실로 들어가자 도멤이 내게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이렇게 널 써먹을 생각이었나 봐.”
“바다새를 데리고 있는 사람을 굳이 안 죽인다면 무슨 생각이겠어.”
“그건 그런데 막상 정말로 써먹는 걸 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러게, 감회가 새롭네……. 나는 입안으로 웅얼거리고 발카를 보았다. 발카는 뚱한 얼굴로 우투그루가 간 방향을 바라보다가 나를 돌아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인간들은 너무 복잡하게 살아.』
“그러게. 그냥 나한테 선장직이나 항해사 직을 넘기면 되는데. 그렇지?”
천연덕스럽게 말하자 그것을 들은 키이엘로가 짧게 웃다가 헛기침을 하고는 고갯짓했다. 주변에 들릴까 싶은 모양이었다. 다른 선원들이 듣지는 못한 것 같으니 나는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 어깨만 으쓱여 주었다.
내가 뭐 틀린 말 했는가? 바다새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 선장이라니, 전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 아닌가. 하긴, 지금이야 내가 갑자기 항해사가 되거나 선장이 된다면 선원들이 내 말을 안 들었겠지. 선상 반란으로 끝날 결말이 눈에 훤했다.
곧 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카가 말해준 항로로 움직이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나는 어쩐지 내가 발카의 말을 전해주기만 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 되었다. 다시금 나를 바다새가 가린 것 같은 기분이…….
딴생각을 의식적으로 밀어둔 나는 클루스도나 디겔이 별달리 밖으로 나오지 않고 함저 구역에 말을 전한 것이 신기해서 키이엘로에게 물었다.
“전에는 함저구역으로 선원을 보내지 않았던가?”
“다른 곳에는 없지만, 선장실에는 소리 파이프가 있어. 말을 쉽게 전달할 수 있지. 선장실로 갈 여유가 안 될 때면 사람을 보내는 수밖에 없지만.”
“흐음. 그런 거 선실에서는 본 적 없는데.”
“물론 설비가 꽤 복잡한 편이라 우리 배에는 함저 구역과 선장실, 주방만 연결되어 있어. 그것도 일방통행으로. 근데 가끔 요한은 막무가내로 파이프에 대고 소리를 질러서 전달할 때도 있긴 해…….”
“거참 우악스런 작자야…….”
요한의 무시무시한 잔소리와 더불어 그가 파이프에 대고 클루스도에게 뭐라 소리 지르는 것을 떠올리자 당장에라도 수탉 울음소리를 귀에 대고 듣는 것 같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러고 보면 함저 구역도 참 눈에 안 띄는 장소였다. 거기서 지낸다는 간부진은 아직까지 얼굴을 본 기억이 없고.
뭐, 어차피 선원 얼굴을 다 본다고 내가 따로 외우기라도 하겠는가. 청명한 하늘을 머리 위에 이고 나아가는 와중에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계속해서 일은 생기는데 어쩐지 모두 지금과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져서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사실 내가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했던 때도 그 이후의 삶이 상상되지 않았지만 어떻게 손댈 생각은 못 하고 하릴없는 나날만 보냈었지. 원래 장기적인 계획이란 다 이런 건가? 항상 일을 미뤄놓고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랄티아를 구한 이후는 구체적으로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저 어디로든 가서 살거나 저주 탓에 죽게 되겠지. 어느 쪽이든 현실감이 없었다. 바다를 보고 있으면 그런 건 다 쓸데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역시 랄티아를 구하기 전에 죽는 건 안 될 말이지. 섬이 망하는 것도 내 눈으로 보고 싶어. 그러고 보니 혼인예정자를 내쫓은 마을인데 해군 중장이라는 양반이 가만히 있었을까? 어쨌든 난 오늘도 꿈만 야무진 사람이었다.
항로를 따라 운행하기 시작하며 경계가 느슨해졌다. 갑판에서 바람이나 쐴 겸 들어가지 않은 우리 셋은 한참을 시답잖은 잡담을 나누거나 간단한 내기 게임을 하며 시간을 때웠다. 몇몇 선원들이 돌아가며 망을 보고 바다를 주시했지만 푸른 바다는 걱정과 달리 잠잠했다.
나는 오른팔을 느리게 움직이며 통증에 익숙해진 뒤 키이엘로와 도멤을 돌아보았다. 키이엘로는 등의 상처가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움직였지만 도멤은 아직 아픈 듯 때때로 끙끙거렸다. 나는 도멤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찌르며 말했다.
“역시 들어가서 쉬라니까?”
“싫어……. 바람도 쐬고 좋잖아. 태평하게 갑판에 나와 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 그리고 만약 전투가 일어나면 우리 셋이 합도 잘 맞으니까 이왕이면 서로서로 엄호해주는 게 낫지.”
“그냥 괴물을 안 만나길 바라자.”
“그래, 그게 제일 좋겠다.”
나와 도멤은 키이엘로의 말에 수긍하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도멤의 말마따나 음침한 바다와 검은 배의 선실만 보다가 새파란 색을 보고 있자니 속이 개운한 것도 사실이었다. 문득 나는 우투그루를 떠올리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투그루는 나한테 별말 안 하네. 딱히 대화할 건이 없어서 그런 걸까?”
“뭐? 언제 누가 너보고 뭐라고 했어?”
“아니, 그건 아냐.”
도멤이 기겁하는 것에 눈을 굴린 나는 옅게 한숨을 쉬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다른 선원들과 마주치고 말 섞을 일이 없었던 것이지. 어느 정도 미래가 저절로 그려졌다. 아니, 굳이 먼저 생각하진 말자. 나는 돌연 피곤해지는 기분을 느끼다가 키이엘로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우투그루 녀석은 네가 어떤 사람이든 우홉피아주가 아니라면 신경 쓰지 않을걸. 게다가 우리 선원이고, 선장님이나 디겔 아저씨가 네 능력을 필요로 하는 이상 우투그루는 정말로 아무런 말도 안 할 거야. 물론 관찰은 하겠지. 속 모를 놈이니까.”
“걔는 진짜 가끔 일 중독자가 아닐까 의심스러워.”
그리고 너의 밑도 끝도 없는 우투그루를 향한 유감도 새삼스럽군……. 나와 키이엘로가 태연하게 떠드는 것에 잠시 혼란스러워하던 도멤이 어색한 얼굴을 하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그, 그게. 물론 로트 네가 무슨 일을 생각하는지는 알겠지만, 모두가 너에 대해 반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비약이 아닐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그렇게만 생각하다간 반겨주려던 사람도 멀어질 거야.”
“물론 모두가 그러진 않았지. 너나 키이엘로나 우투그루……. 아, 요한도. 딱히 날 불쾌하게 하진 않았어. 걱정하지 마.”
그게 아니라. 도멤은 눈을 굴리다가 잠시 선원들 방향을 보고 나를 바라보더니 미묘한 얼굴을 했다. 네가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그래. 나는 도멤의 말을 듣고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아챘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무어라 대꾸하는 대신 입꼬리를 올려 씩 웃어주기만 했다.
도멤에겐 유감이지만 이건 내 경험이 증명한 수순이었다. 물론 도멤이나 키이엘로는 내 어느 부분을 갖고 판단하는 녀석들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그들처럼 굴어 주리라 기대할 만큼 내 머릿속이나 과거의 경험이 꽃밭이었던 것도 아니다. 도멤은 내 웃음에 영문을 몰라 당황한 것 같았다.
나는 별다른 말 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대신 키이엘로가 재빨리 화두를 바꿨다.
“그나저나 유성우의 바다에 자리 잡은 괴물은 무슨 종류일까?”
“글쎄다. 바다 괴물이 워낙 종류가 다양해야지.”
내가 얼른 그의 말에 장단을 맞추는 중에도 혼자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던 도멤이 순간 어? 하는 소리를 냈다. 그에 나와 키이엘로의 시선이 모이자 도멤은 난간 너머를 가리켰다. 청명한 하늘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수면 부근이었다.
“뭔가 검은 게 지나갔어…….”
“오…….”
이런……. 우리 셋은 잠시 얼빠진 얼굴로 바다를 멀거니 바라보다가 눈을 끔벅거리며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그때 내내 낮잠 자듯 늘어져 눈을 감고 있던 텐이 고개를 들더니 코를 킁, 하고 찡긋거리고는 말했다.
『짠물과 파충류의 냄새가 난다.』
“아니라고 해줘.”
『작은놈은 아니군.』
텐의 말에 키이엘로가 탄식했다. 그래, 정말로 ‘아니’라고는 해줬구나, 고맙다……. 바다를 바라보던 도멤은 이내 얼굴이 창백해졌다. 수면 위로 무언가가 점점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정찰대에서도 발견한 듯, 종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선원들이 소리쳤다.
“괴물이 나타났다!”
그리고 동시에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지느러미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느러미의 너비가 사람 팔 하나만 했다. 이윽고 드러난 몸체가 검보랏빛으로 형형하게 빛나며 물결 위를 매끄럽게 움직였다. 길쭉한 몸체는 뱀처럼 생겼으나 군데군데 뾰족한 지느러미가 나 있어 완전한 뱀의 모습이던 케찰코와틀과는 상당히 달랐다.
날카로운 이빨로 가득 찬 입이 수면 밖으로 드러나더니 쩍 벌어졌다.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것을 본 발카가 날카롭게 외쳤다.
『해룡이다!』
그 순간, 바다 밖으로 완전히 고개를 뺀 괴물이 연두색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검은바다를 눈에 담았다. 그르르 목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이빨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그것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해룡이 유성우의 바다에 터를 잡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