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11)
바다새와 늑대 (10)화(11/347)
#10화
천둥보다 우렁우렁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각각 주먹과 발을 내지르려던 키이엘로와 우투그루가 동작을 멈췄다. 황급히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잔뜩 화가 난 클루스도가 있었다.
그러자 우투그루와 키이엘로는 서로의 멱살을 놓고 자세를 바로 했다. 도멤은 안심하면서도 둘이 잘 훈련된 군견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다 클루스도의 뒤에 있는 디겔과 로트를 본 도멤은 얼굴을 폈다. 로트는 조금 젖은 상태로 방수천을 뒤집어쓰고 눈썹을 치켜올린 채로 우투그루와 키이엘로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도멤은 반갑게 슬쩍 걸음을 옮겼다. 로트! 그러자 옆에 있던 디겔이 도멤의 정수리를 한쪽 팔의 후크로 딱 때렸다.
“아!”
“이놈이, 나는 안 보이냐?”
“아, 로트가 더 반가우니까 그러죠. 비가 와서 데리고 오신 거예요?”
“클루스도가 나섰지. 비가 오기 전에 데리러 오려고 했다. 아무리 봐도 비가 안 오진 않을 것 같았거든.”
디겔이 그렇게 말하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조금 늦었지만 말이다. 덕분에 나도 클루스도도 물에 젖은 생쥐 꼴이야. 도멤은 그를 따라서 어깨를 으쓱였다. 저도 그런데요, 뭘.
그 둘의 사이로 로트가 말을 걸었다.
“저 두 놈은 비를 맞더니 미쳤나, 이런 빗속에서 개싸움을 할 생각을 다 하네.”
“쟤네로 말하자면……. 말하기엔 좀 길어.”
“아니, 그냥 말하지 마. 관심 두고 싶지 않으니까.”
로트는 도멤을 흘겨봤지만, 그에 관한 것도 묻지는 않았다. 도멤은 역시 로트는 퍽 무관심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디겔이 꿍얼거렸다. 그래도 힘 조절 많이 했구만. 어디 부러진 곳은 없어 보이니.
로트는 그 말을 들으면서 이미 사람을 쳤는데 힘 조절을 했다고 감탄할 일인가, 하고 생각했다. 힘 조절 이전에 손 조절 좀 하지 그랬냐. 로트는 비아냥거리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그때 클루스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선장이라는 직책이 부끄럽지도 않으냐.”
키이엘로와 우투그루는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서 있었다. 도멤은 그들을 돌아보았다가 입을 꾹 다물고 손가락으로 그들을 가리켰다가 빙글 돌렸다. 비 오는데…….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에 디겔이 도멤에게 딴지를 걸쳤다. 그럼 선원들한테 부선장 둘이 비 오는 날 갑판 위에서 똥강아지처럼 싸웠다고 광고하는 꼴이잖느냐.
도멤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로트는 도멤과 디겔을 보았다가 선장 가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사이도 좋게 주고받은 것인지, 부선장 둘의 얼굴에 시퍼런 멍이 올라오고 있었다. 로트는 소소하게 안타까워했다. 저놈들 얼굴만은 봐줄 만했는데.
로트가 홀로 ‘아무래도 자신의 생각보다 둘의 사이는 상당히 좋지 않은 것 같다’라는 결론을 내리는데, 클루스도는 그 둘에게 엄하게 말했다.
“신입도 있는데 모범을 보이진 않을지언정 이렇게 개싸움을 해?!”
도멤이 작게 툴툴댔다. 저런 소린 또 처음이네. 신입 앞에서 싸우면 위력 좀 보여줬다고 좋아하시던데. 디겔이 팔꿈치로 도멤의 옆구리를 찔렀다. 로트는 도멤의 말에 내심 동감했다. 해적이 뭔 모범이야…….
그러다 로트는 기묘한 점을 발견했다.
클루스도는 일의 전모 같은 것은 묻지 않았다. 그저 둘 모두를 혼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둘의 잘잘못을 가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보통 아버지들은 자식들이 싸우면 왜 싸우냐고 묻고 친하게 지내라 어쩌고저쩌고, 하지 않나?
비는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 빗속에 있었던 모양인지 도멤이 몸을 으슬으슬 떨기 시작했다. 여전히 혼나고 있는 우투그루도 조금씩 떨고 있었지만, 키이엘로는 멀쩡해 보였다.
로트는 자신도 슬슬 추워졌기 때문에 방수천을 좀 더 단단히 둘러 여몄다.
디겔은 더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푹 젖은 자신의 수염을 후크로 요령 있게 물을 짜내고 말했다.
“이러다 감기 환자가 나오겠군. 우린 먼저 들어가자고.”
“으, 그 말을 기다렸어요.”
도멤은 얼른 디겔을 따라 갑판 아래로 들어갔다. 로트도 그들을 따라가면서 조용히 물었다. 쟤네는? 도멤이 대꾸했다. 그러게, 걱정되는데. 선장님께 말할까? 그러나 로트는 도멤의 말에 가타부타 않고 ‘알아서 하라 그래’하며 매정하다시피 디겔을 따라 갑판 아래로 내려갈 뿐이었다.
도멤은 그걸 보며 다시금 생각했다. 로트는 우리를 신뢰하지 않아. 관심도 갖지 않아.
그는 어쩐지 얼마간 친근해졌던 로트가 멀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 * *
겨우 들어오게 된 갑판 아래에서 도멤은 내가 지낼 해먹을 설치하겠다며 젖은 상태로도 어디론가 사라졌었다. 씻고 나오자 나는 곧장 돌아온 도멤과 마주쳤다. 나는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꾹 눌러 물기를 없애며 물었다.
“이제야 씻게?”
“응, 너는 다 씻었어?”
나는 대꾸는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피곤한 얼굴로 도멤을 돌아보자 멀뚱멀뚱하던 도멤이 아, 하고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쪽 구석 쪽에 키이엘로랑 내가 지내는 곳이 있어. 그 근처에 새로운 해먹을 걸어뒀으니까 가서 자. 텐도 있으니까 금방 찾을 수 있을걸.”
나는 그의 말에 조금 떨떠름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 나는 발카를 한 번 올려다보았다. 발카도 그다지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고맙다고 말했다. 도멤이 샤워실로 들어가자 나는 한숨을 쉬었다.
텐에게 가까이 가지 않겠다고 말한 지 이제 한나절이 지났을 뿐이다. 그렇다고 젖은 채로 고생하며 해먹을 건 도멤에게 그 자리가 싫으니 다른 곳에 설치하겠다고 하는 것도 좋진 않았다.
무엇보다 도멤은 거의 유일하게 꾸준히 내게 잘해주고 있었고, 나쁜 녀석 같아 보이진 않았으니까. 다른 놈들 사이에서 치이느니 도멤이 낫지. 나는 샤워실 앞에서 우두커니 서서 생각하다가 결국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내키지 않는데……. 텐이 이걸 빌미로 무슨 짓을 하려 들지도 모르고……. 아니, 늑대가 해봤자 뭘 하겠냐마는.
무엇보다 늑대는 갯과다. 후각이 발달해 있으니 위험했다. 달거리 할 때 피 냄새라도 맡고 수상하게 여긴다면 정말로 최악이었다.
나는 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진한 환멸감이 드는 것을 느꼈다. 애초에 난 내가 남자라고 한 적 없는데……. 내가 남자 취급을 받는 것은 아무렴 상관없지만, 그렇다고 인제 와서 내가 여자였다고 말한다면……. 저절로 피곤한 미래가 그려졌다.
여태 이 배에서 지내며 여자 선원이라곤 본 적도 없었다. 모든 선원은 남자였다. 어쩌면 여자를 태우지 않는 해적선……. 정말이지 성가셨다.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 마저 걸음을 옮겼다. 도멤의 말대로 구석 쪽에 해먹이 세 개 걸려있었다.
하나는 선체 벽에 가까이 붙어 걸려있었고, 그에 맞붙어 기둥에 다른 쪽을 연결한 해먹과 기둥과 창고 쪽 벽에 걸어둔 해먹까지 세 개가 삼각형과 비슷한 모양을 그리며 걸려있었다.
옆이 바로 창고인 모양이었다. 확실히 사람이 자주 오고 가진 않는 곳이군.
가운데 빈 바닥에는 작은 러그가 깔려있었는데, 그 위에 텐이 엎드려 누워있었다. 나는 늑대와 눈이 마주치고 어색하게 멈춰 섰다. 텐은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나와 발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텐은 조용히 고갯짓할 뿐이었다.
『네놈 해먹은 이쪽이다.』
텐이 가리킨 해먹은 선체 벽에 붙어 걸린 해먹이었다. 내가 눈을 깜빡이자 텐은 느리게 일어나 바로 옆, 선체 벽과 기둥에 엮어둔 해먹 아래로 가 다시 엎드렸다. 나는 잠시 텐의 눈치를 보다가 텐이 알려준 해먹으로 갔다.
해먹 아래엔 각각 상자가 있었는데, 내 해먹 아래에도 새로운 것으로 보이는 상자가 있었다.
나는 도멤에게 좀 더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방금 준비한 것이었을 텐데, 상자 안에는 깨끗한 셔츠와 바지, 허리띠 등이 들어있었다. 그 외에도 잡다한 물건들이 있었다. 이런 걸 준비하려면 세심함이 필요하단 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때 불쑥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도멤이 준비한 거야?”
키이엘로였다. 나는 불쑥 다가온 그를 힐끔 보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이제야 갑판 아래로 내려온 모양이었는지 아직도 몸에서 빗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텐이 떨어지는 물을 피해 몸을 굴렸다. 나는 그걸 보고 개가 아니라 고양이 같다고 생각하며 가볍게 말했다.
“다 혼났나 보네.”
“음, 못 볼 꼴을 보여서 미안해.”
“어차피 꽤 오래 이 배에 타고 있게 될 것 같은데 그 정도쯤이야.”
내 말에 키이엘로가 민망한 얼굴을 했다가 맞은 곳이 욱신거렸는지 인상을 썼다. 나는 혀를 차며 살피고 있던 상자를 닫고 해먹에 발카를 올려뒀다.
너 볼 건 얼굴밖에 없는데 거길 때리냐. 내 말에 키이엘로가 기묘한 얼굴을 했다. 그러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얼굴은 볼 만하구나. 나는 눈썹을 치켜뜰 뿐이었다.
그럼 아니라고 생각했나? 이 녀석도 자기가 잘생겼단 것 정도는 알지 않을까.
어쨌거나 나는 다 쓴 수건을 대충 빨랫감을 모아둔 바구니에 던져 집어넣고 텐에게 손짓했다.
“너도 씻어야 할 텐데 지금은 도멤이 샤워실에 가 있거든. 내 말은, 잠시만 대화하자는 거지. 도멤이 없는 틈에.”
그러자 키이엘로는 무슨 대화인지 가늠하려다 텐을 가리키는 내 손짓에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텐은 나랑 발카가 가까이 있는 게 싫다고 했잖아. 그런데 해먹이 이 위치여서야 너무 친근하지 않아?
내 말에 키이엘로가 다시 기묘한 표정을 했다.
저게 대체 무슨 얼굴인지 모르겠다. 어색한 것도 같고, 약간의 자조적인 표정이기도 했다. 키이엘로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는데, 키이엘로가 대뜸 말했다.
“텐은 아마 괜찮을 거야. 음, 몇 시간 전에도 눈감아준 거 아니었어?”
그리고는 텐을 한 번 보았다. 나는 키이엘로를 따라 텐을 보았다. 텐은 나와 발카가 아니라 키이엘로를 보고 있었는데, 우리 쪽을 볼 땐 떨떠름했던 얼굴이 키이엘로를 보자 약간의 유감을 담은 얼굴이 되었다. 천덕꾸러기 학생을 보는 선생님의 눈 같기도 했다.
잠시 후, 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서 지내도 좋아. 별수 없지. 실망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거든. 내가 좀 참으면 돼.』
확실히, 기껏 이렇게 준비했는데 내가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한다면 도멤을 보기에 조금은 양심이 찔릴 것 같았다. 텐의 말대로 도멤도 실망하겠지. 이 늑대가 도멤까지 살필 줄은 몰랐지만. 키이엘로는 약간 당황한 얼굴로 텐을 보고 있었다. 텐은 그런 키이엘로를 보다가 흥, 하고 콧김을 뿜었다.
늑대는 심드렁하게 잠을 자려는 듯 편하게 엎드려 눈을 감았다. 키이엘로는 대화가 끝나자 자신의 옷가지를 챙겨 샤워실로 가기 위해 준비를 했고, 나는 해먹에 앉아 있다가 몰려오는 피곤에 몸을 뉘었다.
과연, 마스트의 장루보단 해먹이 백배는 더 편했다. 배가 느리게 흔들리며 위협적인 비바람의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 정도야 요람을 흔들며 자장가를 불러주는 수준이었다.
키이엘로가 샤워실로 가려는 때에 선수교체라도 하듯 도멤이 돌아왔다. 도멤은 누운 나를 보더니, 피곤하냐고 물어왔다. 나는 순순히 그렇다고 대꾸하면서도 미묘하게 도멤이 더 조심스러워진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도멤은 키이엘로에게 이것저것 말하기 시작했다. 키이엘로는 축축하게 젖어 찝찝할 것이 분명하면서도 꿋꿋이 도멤의 말을 듣고 적당한 대꾸를 해주고 있었다.
나는 문득 떠올라 그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까 갑판 위에 나와 있던 이유가 뭐야?”
“……당연히 너 갑판 아래로 데려오자고 간부진한테 말하려고 한 거지.”
“그것치곤 간부끼리 싸우고 있던데…….”
내 말에 키이엘로가 헛기침했다. 도멤은 어깨를 으쓱였다. 하필 우투그루를 만나서 그렇지, 뭐……. 나는 그에 가볍게 웃고는 모포를 끌어 덮었다. 마음이라도 고맙기는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