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118)
바다새와 늑대 (117)화(118/347)
#117화
테드는 숨이 막히는지 내 팔을 때리며 거칠게 외쳤다.
“이, 이거 놔, 놓고 말해, 로트렐리!”
“당장 말해!”
“네, 네 동생이 살아있다고! 정말이야! 왜 이래?”
테드가 버럭 분개하며 내게 소리쳤다. 그거 말고! 새되게 외친 나는 거의 그의 목을 졸라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랄티아가 이 녀석의 탈출을 도왔다니 무슨 소리란 말인가?
살아있다면야 다행이지만 이놈을 탈출시킬 여력은 어디에 있으며, 그런 눈에 띄는 행동을 할 수나 있었다는 게 말이 되는가? 왜 탈출을 시켜도 이딴 놈을? 왜 이 바다에서 갑자기 나타난 건데? 묻고 싶은 것과 혹한 같은 분노가 틀어 막힌 냄비에서 끓어오르는 듯 속에서 부풀었다.
그때 누군가 내 팔을 억세게 쥐었다. 퍼뜩 고개를 들자 우투그루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선원들이 술렁이며 나를 흘끔대는 것을 깨달았다. 우투그루는 내 손을 테드에게서 떼고는 안도한 듯 자신의 뒤로 피하려는 테드의 팔을 잡아 등 뒤로 꺾어 쥐었다.
테드가 다시 비명을 질렀으나 아랑곳하지 않은 우투그루가 내게 고갯짓했다.
“너도 잠깐 따라와.”
내가 얼굴을 굳히고 테드를 노려보고만 있자, 우투그루가 다시 말했다. 얘기가 필요할 것 같은데, 아닌가? 그 말에 나는 미간을 일그러뜨리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키이엘로가 내 어깨를 짚었다.
“……괜찮아?”
“저 개새끼가 아가리에서 무슨 말을 꺼낼지에 따라 달려있겠지.”
내 거친 말에 우투그루에게 끌려가던 테드는 몸을 흠칫 떨었다. 그때 헤더가 나와 키이엘로의 등을 밀었다. 더 떠들지 말고 얼른 다녀와. 도멤의 말에 우리는 우투그루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디겔과 클루스도가 있던 곳까지 가자 디겔 역시 우리 뒤를 따라 선장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요한은 주방 일을 마저 하겠다며 몸을 뒤로 뺐다. 말이 주방 일이지 선원들의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서일 것이다.
발을 내딛는 뒤로 클루스도가 선원들에게 외치는 소리가 울렸다.
“다들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급한 명령이 새로 나오지 않는 한 대기하도록.”
설탕에 꼬였던 개미들처럼 모여 있던 선원들이 선장 명령에 우르르 해산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미약한 의심과 불신이 맡아졌다. 얼핏 뒤를 돌아본 나는 골칫덩이라도 보는 것 같은 선원들의 시선에 도로 고개를 돌렸다. 어금니를 꽉 문 턱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네깟 놈들 생각이 어떻든 상관없어. 난 너희를 속인 적 없고,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다른 것도 아닌 랄티아야.
정말로, 네까짓 놈들이 뭐라고 하든……. 눈을 질끈 감는 순간 선장실의 문이 쿵 닫히는 소리가 났다.
연신 우투그루에게 무어라 웅얼거리며 자신의 변호를 하던 테드가 겁에 질린 상태로 말했다.
“저, 저는 아무 잘못 없어요.”
그의 말을 가뿐히 무시한 채 선장실의 자리에 앉은 클루스도는 우리에게 손짓했다. 디겔과 나, 키이엘로가 벽 쪽에 있던 의자를 대충 챙겨와 앉았고, 그사이 우투그루는 솜씨 좋게도 테드를 밧줄로 묶어 대충 바닥에 내던졌다. 헐레벌떡 말을 늘어놓으려는 그에게 입 닥치라고 일갈한 우투그루도 의자를 가져다 앉자, 그때에야 클루스도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로트. 이 녀석은 누구냐?”
“……같은 섬 출신이에요. 우홉피아주가 섬을 습격했을 때 잡혀갔던 이들이 있었다는 걸 들은 기억이 있으니 그들 중 하나겠죠.”
“그리고 ‘로트렐리 아피나’는?”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클루스도를 보았다. 능글맞은 노친네. 짐작하고 있으면서 입으로 굳이 답을 받아내려는 게 짜증 났다. 나는 테드를 노려보다가 말했다.
“제 이름이에요.”
“그래, 뭐. 성씨도 모르고 그냥 ‘로트’로만 알려줬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아직도 숨기는 게 있었다는 건 복기할만하군.”
“왜 저를 취조하는 것처럼 구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이 녀석보다 제가 더 신뢰가 없나 보죠?”
클루스도의 말에 내가 날카롭게 대꾸하자 디겔은 혀를 세차게 찼다.
“싹바가지 하고는. 너희 둘 다 문제야. 우홉피아주와 대체 무슨 연관인 거냐?”
“제가 더 묻고 싶네요. 그 망할 놈들이 왜 하필 그때 섬 주변에 있어서 저와 마주쳤는지.”
나는 주먹을 움켜쥐고 고개를 숙였다. 우홉피아주와 마주치지 않았다면 난 키이엘로나 도멤, 헤더 같은 사람들은 만나지 못했겠지. 그리고 아마 지금쯤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있었겠지만, 적어도 가족들은 문제없이 살아있었을 것이다. 차라리 그게 나았다. 우홉피아주가 내 가족을 죽이고 내 삶을 뒤바꿔놓았다. 고작 인간 백정질이나 업으로 삼는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
그때 우투그루가 발로 바닥을 두어 번 두드렸다.
“로트 녀석에 대한 건 아무래도 좋아요. 그간 보던 것도 있으니 우선순위에서 밀어둬도 좋죠. 문제는 새로 등장한 문제아인데……. 이놈의 이름은?”
“테드.”
“테, 테드 허건트! 테드 허건트입니다.”
클루스도는 선장 의자에 등을 파묻고 관전하는 태도로 우투그루와 테드를 바라보았다. 키이엘로 역시 무릎 위로 손을 모아쥐고 테드를 응시하고 있었다. 바닥에 볼품없이 주저앉아 있던 테드는 키이엘로의 시선과 그 옆에 앉아 있는 무시무시한 늑대의 모습에 다시 겁을 집어먹은 모양이었다.
나는 초조함에 손가락으로 다리를 두드리다가 말했다.
“내 동생에 관한 것부터 물어보면 안 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로트 녀석 동생에 대해 한 말은 뭐야?”
“랄, 랄티아? 로트렐리, 너 알지? 랄티아도 우홉피아주에게 잡혀갔다는 거.”
테드가 화색을 띠며 나를 보았다. 랄티아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호의를 보이리라 예상한 모양이었다. 내가 말없이 자신을 쳐다보고만 있자 테드는 당황하더니 횡설수설하며 말을 늘어놓았다.
“랄티아가, 그러니까, 우리는 우홉피아주 해적선의 함저 구역에 잡혀 있었어. 그리고…… 그리고 어쩌다 한 명씩 잡혀서 갑판으로 올라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어.”
알만했다. 우홉피아주야 이미 악명이 높은 해적이었으니 딱히 포로를 거래를 위해 사용하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작은 섬마을 사람들을 인질로 거래를 해봐야 얼마나 쓸모가 있겠는가? 말하자면 그들에게 남은 쓸모란 그저…… 우홉피아주 놈들의 유흥거리로 소비될 가축 같은 쓰임새뿐이리라.
우투그루가 계속 말하라는 것처럼 고개를 까딱였다. 테드는 벌벌 떨며 입을 열었다.
“그, 그런데 네 동생만은 그놈들이 밥도 꼬박꼬박 주고, 때리지도 않고……. 그래서…… 이상하게 생각했단 말이야. 그런데 그,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안 거지. 우홉피아주는 로트렐리 너를 노리고 있다는 걸……. 그래서 랄티아를 잡아둔 거라고, 그놈들이 그랬어. 그리고 랄티아도 그걸 들었지.”
“……우홉피아주가 나를 노리고 있다는 건 이미 알아. 다른 걸 말해. 내 동생이 어떻게 널 탈출시켰다는 거야?”
“사실 나도, 반쯤은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랄티아는, 랄티아는 그러니까. 우홉피아주의 배가 알라프라리에 닿았을 때 뭔가를…… 했어.”
테드의 말에 키이엘로가 미간을 좁혔다.
“알라프라리라고?”
“거긴 제국령이잖아. 심지어 수도와 근접한 큰 항구 도시라고. 우홉피아주가 암만 간 큰 미친놈들 집단이라지만 제국을 건드릴 리는 없는데.”
디겔 역시 의아한 듯 턱을 괸 채로 눈썹을 휘었다. 클루스도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기다가 물었다.
“뭔가를 했다는 건 무슨 뜻이지?”
“저, 저도 모릅니다, 어르신. 그러니까…… 만에 닿아서 배가 멈춰야 하는데 갑자기 속력을 낸 것처럼 움직였어요. 그래서 배가 항구와 부딪혔고…….”
우투그루가 나직하게 읊조렸다. 배에 구멍이 났겠군. 그 말에 테드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랄티아가 나에게 그곳을 통해 나가라고 했어.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탈출했는데, 다들 헤엄쳐서 나가다가 몇은 도로 붙잡히고 몇은 뿔뿔이 흩어져서……. 나는 다른 섬으로 가는 배에 밀항했다가 들켜서 구명정을 타고 도망친 신세였어. 그, 그러다가 이 배를 발견한 거야.”
테드의 말이 끝나자 선장실에는 잠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우투그루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물었다.
“그럼 왜 이 녀석의 동생은 도주하지 않았지?”
“나도…… 몰라요. 그냥 걔는 나한테 도망치라고만 했어요.”
그 말에 다시 한번 침묵이 깔렸다. 풀리지 않은 의문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나는 랄티아의 선택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그런 기회가 있었음에도 스스로는 탈출하지 않았지? 왜 다른 사람을 내보낸 거야?
그때 누군가 내 등을 두드렸다. 키이엘로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키이엘로는 어딘가 서투르지만 굳건하게 굳힌 얼굴로 내게 작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네 동생은 똑똑하다며. 뭔가 생각이 있었겠지.”
“…….”
나는 그의 말에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디겔이 물었다. 알라프라리에 닿았던 때가 언제지? 테드가 답했다. 이삼 주쯤 전이에요. 그 말에 디겔이 오만상을 썼다.
배가 망가졌을 테니 수리를 거쳤겠지만, 그럼에도 우홉피아주를 쫓아가기엔 늦은 때였다. 좀 더 빨리 정보를 얻었다면 최고 속력으로 달려가 뒤를 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하는 디겔에게 클루스도가 말했다.
“제국령에서 해적들이 전쟁을 일으킨다고? 제국의 해군들이나 반가워하겠군. 잡아야 할 놈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니 전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남은 해적을 덮쳐 일망타진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그건 그렇군. 해군들만 좋을 짓이긴 하지.”
그래도 아까운 건 아까운 것이라며 디겔이 꿍얼거리는데, 키이엘로가 미미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우홉피아주는 알라프라리에서 붙잡히지 않았을까요? 아쉽네요. 육지라면 신문이나 소식통을 통해 알 수 있을 텐데.”
“그도 그렇군. 그놈들이야 워낙 미친놈들이니 행동을 종잡을 수 없지만, 제국 항구에 발을 들인 해적들을 가만히 뒀을 리는 없으니 우홉피아주도 피해를 입긴 했을 거다. 아마 항구에 부딪힌 일도 그와 관련된 게 아닐까 싶은데.”
로트 동생이 마장석 기기를 다뤄서 일어난 일도 아닌 것 같고 말이다. 디겔의 말에 나는 슬쩍 눈을 내리깔았다. 테드가 제대로 설명을 못 하는 것을 보면 디겔의 추측이 맞아떨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랄티아가 마장석 기구에 손을 대려는데 가만히 두고 있을 리도 만무하고.
물론 자세한 경위에 관한 생각은 다르지만 내가 굳이 입을 열 필요는 없었다. 여하간 우홉피아주가 크든 작든 타격을 입었을 것이란 예상에는 동의했다. 이마를 짚은 채 생각에 잠겨있던 내게 우투그루가 물었다.
“네 동생의 행동에 뭐 짐작되는 건 없나 보지?”
“……그것보단 우홉피아주에게 의혹이 있는데.”
“뭔데?”
우투그루가 가볍게 물었다. 나는 일전에 세운에게 들었던 정보를 기억해냈다. 분명 제국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홉피아주가 알라프라리에 닿고도 멀쩡할 수 있었다면? 그러니까 내 말은…… 제국에서 우홉피아주와 손을 잡았다면?”
“그건 또 뭔 소리야? 제국은 오히려 해적들을 잡지 못해 안달인데.”
디겔은 어이없단 어투로 꾸짖었다. 나는 상관하지 않고 마저 말했다.
“예전에 세운에게 들은 기억이 있어요. 제국이 해적을 몇몇 섭외하려 든다고. 물론 정확한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당시 육지에서 도피한 세운에게 들었던 말이니까 어느 정도 믿을만하다고 보는데.”
“하지만 신문에서는…….”
“신문? 무슨 신문? 내가 여태 읽은 신문 중에는 제국의 해군에 관한 이야기가 없었는데.”
내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키이엘로는 아차한 얼굴로 내 시선을 피했다. 그 대신 디겔이 말했다.
“네 녀석 정체가 들켰던 신문 말이다.”
“……아하?”
“뭐, 그래, 덮고 지나간 일이니 가타부타하지 말고. 거기에 제국의 ‘청정바다정책’에 대해 적혀있더란 말야. 우홉피아주가 요주의 해적으로 떡하니 이름도 올라있고. 물론 그때에는 제국 놈들 하는 꼴이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 말았지만……. 그럼 배는 왜 항구에 부딪히는데?”
간만에 우홉피아주에 관한 꽤 정확한 정보를 얻었다 싶었더니 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의문투성이였다. 방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가만히 고민에 빠져 있는데, 클루스도가 책상을 두드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멀뚱멀뚱 산만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테드의 뒷덜미를 쥐고 일으키더니 말했다.
“복잡한 것은 나중에 차차 끼워 맞춰보자고. 지금은 이 청년의 후속 조치가 문제인데…….”
‘후속 조치’라는 말에 테드가 숨을 들이켜며 클루스도를 힐끔힐끔 살폈다. 클루스도가 나를 보며 물었다. 로트,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는 순간 ‘왜 나한테 묻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마음대로 하세요.”
“로, 로트렐리! 나 그냥 두고 갈 거 아니지? 응?”
“전 저 녀석에게 좋은 감정도 없고, 정보도 얻을 만큼은 얻은 것 같으니 더 미련도 없네요. 선장님 좋을 대로 하십시오.”
어차피 내가 저 녀석을 살려달라고 말한대도 클루스도가 ‘아니? 싫은데?’ 하며 죽인다면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만약 그 대상이 랄티아나 다른 이들이었다면 클루스도에게 칼을 꽂는 한이 있어도 말렸겠지만 테드는 말 그대로 나와 악연이었다.
내 거리낄 것 없는 말에 테드의 얼굴이 흑색이 되었다. 그러더니 이를 갈며 나를 노려보았다.
“너! 네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애초에 내가 너와 친한 사이라도 됐나? 내가 널 굳이 살려 달라 읍소할 이유는 없어. 나한테 징징대지 마.”
클루스도는 나와 테드를 번갈아 보더니 알 수 없는 얼굴로 느긋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손을 내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일단 밖에 나가자꾸나. 그 말에 우리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클루스도의 뒤를 따라 선장실을 나섰다. 갑판에 모인 선원들은 아까보다 적었지만, 몇몇은 결과가 궁금했는지 난간에 기대거나 돛대 근처에 둘러앉아 있었다.
그 중엔 헤더와 도멤도 있었다. 그들과 눈이 마주친 나는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앞서 걸어 선미루로 나가는 클루스도의 뒤를 쫓았다. 만약 여기서 클루스도가 테드를 처형하겠다고 한다면 나는 나를 매달았던 원판을 다시 보게 될까? 아니면 저놈을 묶어다 선체에 매달아 긁어내는 꼴을 보게 될까?
어떤 것이든 별 유감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달갑지도 않았다. 그때 클루스도가 말했다.
“일단은 우홉피아주의 끄나풀은 아닌 것으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미심쩍은 점이 많은 만큼, 잡일꾼으로 쓰며 감시한다. 도멤!”
“네!”
느닷없는 부름에 도멤이 서둘러 선원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와 섰다. 이미 클루스도의 판단이 의외였던 나와 키이엘로의 얼굴은 미약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우투그루는 반쯤 예상한 듯 침착해 보였지만 테드를 흘기는 것을 멈추진 않았다.
클루스도는 도멤에게 말했다.
“일전의 로트 때처럼, 네가 이 녀석을 당분간 간수해줘야겠다.”
“아, 네에……. 네?!”
도멤이 경악했다. 나와 키이엘로 역시 별반 다를 것 없이 인상이 더 찡그려졌다. 그러나 클루스도는 못 박듯 한 번 더 말했다. 도멤이 잡일꾼의 사수가 된다, 나머지는 해산! 그러더니 클루스도는 밧줄로 묶인 테드를 도멤에게 건네주듯 던지고 손을 털더니 선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나와 키이엘로는 멍하니 그 뒷모습을 보다가 도멤을 돌아보았다. 테드를 붙든 도멤 역시 우리와 비슷한 얼굴이었다. 굳어 있는 우리를 향해 선미루를 내려가던 우투그루가 말했다.
“짬 처리 힘내라.”
나는 속으로 외쳤다. 이런 망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