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120)
바다새와 늑대 (119)화(120/347)
#119화
“이 새끼 이거 미친 거 아냐?”
도멤이 진저리를 치며 윽박질렀다. 그러나 나는 잠시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테드를 바라보았다. 얻어맞은 얼굴을 부여잡고 휘청이던 테드가 화난 얼굴의 도멤을 보더니, 기가 꺾여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러나 테드는 이내 이를 갈며 나에게 쏘아붙였다.
“너도 진짜 웃긴다. 언제는 계집 혼자 뭐든 할 수 있다는 듯이 굴더니 결국엔 남자한테 둘러싸여 있네, 로트렐리?”
“그 이름 부르지 말라고!”
도멤이 무어라 욕지거릴 짓씹으며 몸을 움직였지만, 그보다 먼저 내가 날카롭게 소리치며 테드를 걷어찼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내 발에 차인 테드는 갑판을 한 번 나뒹굴더니 욕을 꿍얼대며 내 쪽으로 침을 뱉고는 서둘러 선실로 도망갔다. 아주 잠깐, 쫓아가서 당장 모가지에 칼이라도 꽂아줄까 생각했지만 어쩐지 대거리할 기운이 모두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경악과 혐오를 담아 테드의 자취를 쫓던 도멤이 퍼뜩, 내 쪽을 보고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아, 로트?”
“……개자식이!”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비어있는 물고기 통을 걷어찼다. 내가 화를 삭이며 씩씩거리자 키이엘로는 조용히 낚싯대들을 정리하며 말했다. 들어가자. 괜히 나왔네. 그렇게 말하며 낚싯대를 들던 키이엘로의 손에 낚싯대가 젓가락 꺾이듯 꺾이자 도멤이 한숨을 쉬며 손을 내밀었다. 나한테 줘.
어색한 얼굴로 도멤에게 낚싯대들을 맡기던 키이엘로는 음, 하며 나를 보았다.
“말려서 미안해.”
“됐어, 벌레 같은 놈 피 안 묻히고 잘됐지.”
“이번만큼 로트를 말린 게 후회되는 때가 없었어…….”
중얼대듯 말한 도멤이 다시 한번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눈가를 가리는 앞머리를 대충 쓸어 올려 치우던 나와 도멤의 눈이 마주치자 도멤은 찌뿌드드한 얼굴로 갑판 주변을 눈짓했다. 노상 갑판에 나와 있던 선원 중 몇몇이 우리 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바다에 뛰어들고 싶어졌다.
“아……. 흥미진진한 연극 하나 구경시켜줬군.”
“어째 들으면 안 될 것까지 들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어…….”
도멤이 맥없이 웃으며 꿍얼댔다. 키이엘로도 별반 다르지 않은 얼굴이었다. 나는 할 말 많은 얼굴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수그렸다가 한숨만 푹 내쉬었다. 내 곁으로 온 키이엘로가 가볍게 내 등을 두드렸다. 우리는 말없이 선실로 느리게 향했다. 얻어맞은 것은 분명 테드였는데 나는 누군가 내 머리를 후려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선실에 도착해, 해먹에 누워 키이엘로와 도멤이 대화하는 것을 듣던 나는 모포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속이 뒤틀렸다. 그 바다에서 죽은 아버지가 지금만큼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왜 저런 놈을 살리고 아버지가 죽어야 했던 거지? 아버지가 살았어야죠, 다른 누구도 아닌 아버지가……. 그랬다면 내가 누구보다도 반겨줬을 텐데…….
애초에 발카가 폭풍을 미리 알려줬다면, 애초에 내가 바다에 나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내가 이렇게 고집불통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모포를 뒤집어쓰고 안에서 느리게 눈을 깜빡이던 나는 이내 그냥 눈을 감아버리는 것을 택했다.
그 이후로 테드는 내게 더 말을 걸지 않았다. 다만 여전히 섬으로 돌아가기 위해 선원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 같다며 도멤이 전해줬다. 그야 그놈은 제 한 몸 건사하는 것이 가장 급할 테니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다.
하필 내 신경을 죄다 북북박박 긁어댄 것이 굉장히 짜증 났지만, 차라리 한 번 대판 싸우고 얼굴 맞대지 않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테드는 도멤에게 얻어맞은 뒤로 도멤에게 징징거리는 것도 멈췄다.
굉장히 복잡해 보이는 도멤의 얼굴에 나는 실없이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저런 놈은 매가 약이야.”
“뭐든 폭력으로 해결하려 하시는 로트 씨, 진정하세요…….”
도멤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꿍얼거렸다. 키이엘로와 도멤은 딱히 내게 테드와 말한 내용에 대해 자세히 묻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선원들이 지나가다 내가 보이면 이것저것 물어댔다. 당연히 나는 꺼지라고 대답했고, 선원들은 혀를 차며 자리를 떴다.
이름처럼 드넓은 거인의 바다는 며칠을 항해하고 있었음에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도멤은 ‘그 미친놈이 안 보이는 곳에서 뭘 하고 있을지 불안하니 이왕 내가 도맡은 겸 지켜보고 있겠다’라며 과하게 의욕적인 태도로 테드를 찾아갔다. 테드가 사고를 칠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 걸려 봐라, 하는 심보인 게 분명했다.
그렇게까지 테드를 신경 쓰고 싶은 생각이 없는 나와 키이엘로는 도멤을 방생해주고 노상 갑판으로 올라왔다. 어제의 낚시가 시원찮았던 덕에 잔뜩 기대하던 요한이 지나치게 실망했기 때문이었다. 난간에 걸터앉은 우리의 뒤로 텐이 드러눕고 발카가 낚시찌를 물고 내 옆에 앉았다.
헤더는 디겔과 함께 한참 수다를 떠는 중이었기에 결국 키이엘로와 나만 낚시를 하기 위해 나왔다. 나는 차라리 키이엘로보다 도멤 쪽이 물고기를 낚는 데는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지만, 어차피 대부분의 물고기는 내가 잡을 것이었으니 사실 큰 차이는 없었다.
키이엘로도 그것을 아는지 낚싯바늘에 찌를 끼우며 어색하게 말했다.
“최대한 힘내볼게.”
『아서라, 기대를 크게 가지면 안 되는 법이야.』
“맞아, 물에 빠지지만 마. 빠지면 낚싯대로 건져줄 거니까.”
“나 정도면 월척이겠네.”
“잔치 감이지.”
내 말에 키이엘로가 가분하게 웃었다. 월척을 내어줄 수는 없지. 나는 낄낄 웃으며 그를 난간 너머로 밀어내려는 시늉을 하다가 이내 바다를 향해 낚싯대를 휘둘렀다. 발카가 그러다 떨어진다며 잔소리를 했다. 그렇게 시답잖은 한담을 나누며 낚시를 하는데, 두어 마리 잡았을 즈음 우투그루가 와서 내게 말을 걸었다.
한바탕했다며? 대뜸 그렇게 말하는 것에 나는 우투그루를 멀뚱하게 보다가 아, 하고 눈을 굴렸다. 어제의 테드와의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떫은 감을 입 안 가득 넣은 기분이 되어 우투그루를 보며 바늘에 찌를 끼우고 대충 휘둘러 낚싯대를 드리웠다.
“벌써 네 귀까지 들어갔냐? 하여간 입은 오지게 싼 놈들이야.”
“다른 말은 됐고. 그것 때문에 또 선원들 분위기가 영 뒤숭숭하다고.”
“뒤숭숭할 건 또 뭐야. 내가 지들을 죽인댔나? 빡 타게 하는 테드 놈만 죽인댔지.”
그러나 내 말에 곧잘 침착하지만 날카롭게 쏘아붙이던 우투그루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내 옆에서 없는 셈 치라는 듯 조용히 낚시찌만 응시하던 키이엘로를 일별하고 낮게 말했다.
“너 혼인 얘기도 나왔다며?”
“…….”
나는 잠시간 말문이 막혔다. 아닌 척 낚싯대를 흔들던 키이엘로의 손이 뚝 멎었다. 우투그루는 한숨을 쉬더니 갈대 빛의 금발 머리를 헤집으며 입을 열었다.
“그거 때문이야. 나도 이 배의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남의 연애사에 관심이 많은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다들 새삼 네가 어느 마을의 여자애였다는 걸 상기한 모양이더라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그냥 알아두라고. 미리 말하지만, 아무리 불쾌한 일이 있다고 해도 일전의 네토르 때처럼 서로 치고받고 싸우거나 일방적으로 해치는 경우엔 징계야. 불쾌한 말 한다고 그 잡일꾼을 함부로 해치는 것도 간부진의 허가가 없다면 안 된다는 뜻이야.”
나는 인상을 찡그리고, 우투그루를 보았다. 그렇게 말하는 우투그루야말로 일전에 키이엘로와 치고받고 싸워대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요즘엔 키이엘로와 우투그루도 잘 안 싸우고 있긴 했다. 뭣보다 이 둘이 싸우기 시작하면 도멤과 내가 기겁을 하니 키이엘로 쪽에서 슬슬 피하고 있었다.
새삼 키이엘로가 최근 우리와 잘 어울리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났다. 하기야 그러니 간부진에서도 키이엘로가 마음을 고쳐먹었다며 사사건건 부른댔나. 어쨌든 우투그루를 사돈 남 말 하는 녀석 봐주듯 쳐다본 나는 혀를 쯧 차고 고개를 돌렸다.
“그냥 싸우지 말라고만 해도 됐을 텐데.”
“네가 무슨 소리가 나도는지는 알아둬야지. 면역 없이 어디서 주워듣고 주먹부터 날리기 전에 알려주는 거야.”
“…….”
발카와 나는 어처구니없단 얼굴로 우투그루를 다시 돌아봤다. 뭐 이런 현명한 새끼가 다 있지…….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우투그루는 이어서 말했다.
“그래도 네가 우홉피아주의 끄나풀일지 모른다는 의혹은 쏙 들어간 것 같으니 잘됐지, 아냐?”
나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역시 아랑곳하지 않은 우투그루는 자기 할 말을 모두 끝낸 건지 용건은 이게 다야, 하고 말하더니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난간에 걸터앉은 채로 수면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나는 문득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 자식한테 배를 내주고 방류할 생각은 없어?”
그 말에 발을 옮기던 우투그루가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보았다. 그는 시큰둥한 얼굴로 한쪽 눈썹을 휙 올리더니 말했다.
“우리가 땅 파고 물 길면 돈 나오나? 고작 민간인 하나 원하는 대로 해주자고 배를 내주라고? 손해야. 우린 봉사단체가 아니라고.”
그리고 너무 억울하게 생각 마, 그놈은 선원도 아니니 사고라도 크게 치면 너처럼 자숙이 아니라 처형이야. 우투그루는 단조롭게 말하고는 마저 걸음을 내디뎠다.
우투그루가 멀어지자 옆에서 조용히 있던 키이엘로가 꿍얼거렸다. 사고 치길 기대해야 하나. 나는 우투그루의 뒷모습을 보던 몸을 돌려 낚싯대를 느리게 까딱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테드가 제 주제를 모른다면 가능성이 있는 얘기였다.
나는 다리를 접어 앉고 턱을 괴었다.
“오늘 낚시도 파투 난 것 같은데.”
“요한이 또 실망하겠네. 좀 더 힘내보자.”
키이엘로는 일견 느긋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했지만 나는 그가 내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나는 턱을 돌려 그를 보다가 대뜸 말했다. 왜 그래? 내 말에 키이엘로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기에 나는 신경을 거두고 다시 낚시에 열중했다. 물결치는 바다 위로 능소화 빛깔의 구름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실상 낚시는 뒷전이 된 채로 주홍빛 덩굴이 드리워지는 수평선을 멀거니 응시하던 나는 별안간 무기력한 감각이 뒷덜미에 내려앉는 걸 느꼈다. 바닷바람이 서늘해서 오한이 도는 것일지도 몰랐다. 기껏 그 섬을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계속 도망만 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대단한 사람도 뭣도 아니니까. 나는 그저 계속 나라는 사람의 그림자에서 도피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른 것들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조금이라도 그 그림자와 겹쳐질 빌미를 주고 싶지 않아. 하지만 혼자서는 갈 곳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그러니까 랄티아를 구하는 일에만 집중해야 해…….
그래서 결국 나는 랄티아를 구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목적지를 잃은 배처럼 표류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랄티아가 날 도와주지 않을까? 태평하다 못해 나태하기까지 한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섬을 나와 랄티아는 가슴에 묻고 다른 마을에서 평범하게 살 수 있었음에도 사지로 뛰어든 것은 그만한 생각이 있었다.
실상 나는 평범하게 살 자신도 없었고, 전혀 모르는 곳에서 새 삶을 살 방법도 몰랐고, 돈도 능력도 없는 여자애였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못 해 절벽에 내던지는 선택이어도 우홉피아주를 찾아가는 쪽을 택한 이유는 어머니 탓이다.
어머니가 내게 마지막으로 가르쳐 준 것은 명예로운 죽음뿐이었기에.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