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131)
바다새와 늑대 (130)화(131/347)
#130화
내 말에 키이엘로와 도멤이 입을 꾹 다물었다. 도멤이 눈으로 ‘너 미쳤어?’라고 말하며 쳐다봤다. 나는 눈을 부라려 부정의 의미를 전해줬다. 유격대를 꾸릴 때 가장 걸리는 지점이 바로 유격대의 안전과 우홉피아주가 유격대에 속한 인원의 부재를 눈치채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홉피아주가 내가 검은바다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내 부재를 눈치챌 이유도 없다. 나는 잘 숨어 있다가 우홉피아주와 산하 해적의 시선이 검은바다로 모였을 때 은밀하게 그들의 본선으로 숨어들면 되는 것이었다. 한편 잠시 생각하던 키이엘로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너무 위험이 크잖아. 물론, 우홉피아주가 네 정보를 모르니까 네가 유용할 수는 있겠지만 혼자는 절대 안 돼. 선장님도 반대하실걸.”
“물론 나도 혼자 갈 생각은 없어. 적당히 실력도 좋고 존재감 없는 녀석 없나?”
“로트, 제정신이야? 왜 벌써부터 할 생각 만만인데?”
“아까 키이엘로도 말했잖아.”
뭘? 도멤이 황당해하는 것에 나는 침착하게 대꾸했다.
“랄티아를 안전하게 구할 확률이 높아질 거라고.”
“…….”
“생판 남한테 내 동생 좀 부탁한다, 이러지 말고 그냥 내가 직접 가는 게 피차 마음 편하지 않겠어? 우홉피아주에 잡힌 포로가 몇 명일지도 모르는데 그 안에서 내 동생을 어떻게 찾으며, 어느 누가 남의 동생을 목숨 걸고 지킬 기분이 들겠어?”
내 말에 도멤이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벙긋거렸다. 키이엘로 역시 할 말을 잊고 나를 쳐다봤다. 나로서는 이치에 맞는 말을 한 건데 그렇게 쳐다보는 이유를 알 수 없어 의아한 얼굴로 둘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자 도멤이 으으, 하며 머리를 헤집더니 대뜸 말했다.
“좋아, 건의해보자.”
“진심이야?”
키이엘로가 놀라서 도멤을 쳐다봤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누구보다 도멤이 먼저 동의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도멤은 손가락을 들어 올리더니 내게 따졌다.
“단, 절대 너 혼자는 안 돼. 너도 말했다시피, 너무 위험해. 이건 적어도 네다섯 정도는 모여야 하는 일이라고. 그리고 가장 큰 전력인 키이엘로는 우홉피아주 쪽에서도 주시하는 요주의 인물이고, 간부진이라 협력해주지 못할 거야. 이런, 벌써 위험 부담이 더 높아졌네!”
“그건 나도 알아.”
“그러니까 내가 같이 갈게. 앗싸, 키이엘로보다 먼저 로트 동생 만난다!”
“뭐?”
난데없는 말에 나는 당황해서 도멤을 보았다. 키이엘로보다 랄티아를 더 먼저 만나느니 하는 것은 정말 헛소리일 뿐이라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도멤이 나설 줄은 전혀 생각 못 한 나는 난데없이 동참 선언을 해온 그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도멤이 손뼉을 치며 말을 이었다.
“난 걱정 마, 나도 물론 아버지가 알려진 탓에 우홉피아주에게 어느 정도 인지도는 있지만, 빠져있어도 이상할 건 없는 선원1이거든. 내 이름은 알아도 얼굴은 잘 모를걸? 키이엘로와는 다르지. 자, 이제 적어도 두세 명 정도만 더 모으면 돼.”
“아직 건의도 안 했고 선장님이 받아들이지도 않았잖아.”
키이엘로가 도멤과 나를 걱정스레 쳐다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대로 키이엘로가 걱정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유격대를 꾸리는 것은 아직은 가정 상황일 뿐이지만 어떤 경우든 전투가 시작되면 키이엘로는 최전선에 설 것이다. 도멤이 부러 가벼운 어투로 말했다.
“안 받아들이시고 배기겠어? 선장님이 말씀하셨잖아. 정면 돌파는 어렵다고.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놈들이 있다면 선장님도 좋은 건 좋은 거지. 어쨌든 적당히 떠오르는 녀석들이 대여섯쯤 있긴 한데…….”
그때 우리 사이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거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네토르였다.
네토르 이 녀석은 또 언제부터 듣고 있었단 말인가? 우리가 그를 빤히 쳐다보자 호기롭게 끼어들었던 기색이 꺾인 네토르는 조용히 눈을 굴려 시선을 피했다.
“별달리 비밀스러운 곳에서 떠든 것도 아니니 지나가다 들을 수도 있지 않냐?”
그 말에도 나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뒤, 어색한 공기 안에서 먼저 말을 꺼낸 건 도멤이었다.
“네가 같이 나서주겠다고? 진심이야?”
“…그래. 나도 우홉피아주에게 얼굴이 안 알려져 있고, 실력도 보증되고, 너희와 아주 생판 남은 아니니 손발 맞추는 건 어렵지 않겠지.”
“생판 남이 차라리 낫지 않겠어.”
내 말에 네토르가 눈썹을 휘어 올리며 말했다.
“내가 최근에도 너와 싸운 적이 있던가?”
“뭐……, 그건 아니긴 하지. 이때다 싶어서 내 동생을 인질 잡고 해코지하려고?”
“넌 왜 이리 사람에 대해 믿음이 없어?”
나는 떫은 얼굴로 네토르를 마주 보았다.
“너에게만 없는 거다, 얼간아.”
“그래, 말을 말자.”
네토르가 그렇게 꿍얼거리더니 보랏빛 머리칼을 쑤석쑤석 헤집었다. 그러자 도멤이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내게 말했다. 어쩌고 싶어? 나는 그 물음에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 퉁명스럽게 대꾸하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네토르가 손을 더해준다면 편하긴 할 것이다.
네토르를 쳐다보던 내가 말했다.
“실력이 확실한 건 맞아? 나한테도 얻어맞고 나가떨어지면서.”
그러자 네토르가 곧장 말했다.
“내가 전력을 다하지 않았을 뿐이지.”
“입은 터져있어서 다행이네.”
“근데 로트 네 손은 정말 매우니까 말이지……. 뭐, 나쁘진 않아. 네토르는 근거리와 중거리 모두 커버가 되는 전력이니까. 특히 단도를 잘 써.”
내게 자주 얻어맞아 본 도멤이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키이엘로 역시 네토르의 실력에 동감을 표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결국 수긍했다.
“하기야 지금 떠들어서 뭐 해. 선장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그냥 수포로 돌아가는 거지.”
“그 말이 맞아.”
키이엘로가 기운 없게 웃었다. 그는 우리가 위험하게 나서는 것이 편치 않으면서 딱히 말릴 수도 없는 일이라 시무룩한 것 같았다. 나는 대충 그의 머리칼을 쭉쭉 잡아당기며 너나 걱정해, 하고 말했다. 그러자 네토르는 아예 우리 곁에 자리를 잡고 앉더니 턱을 괴고 입을 열었다.
“또 염두에 둔 녀석 있냐? 없으면, 내가 떠오른 사람이 있는데.”
“누구?”
“클레인스.”
“클…… 뭐? 누구?”
내가 처음 듣는단 얼굴로 되묻자 키이엘로가 한숨을 쉬었다. 클레인스 말이야, 로트. 나는 눈을 깜빡였다. 내가 만나본 적이 있었던가? 이름이 들어본 것처럼 낯익기는 했지만 뚜렷하게 떠오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결국 인상을 찡그렸다.
“그게 누구야? 만난 적이 있어?”
“예전에 유령의 바다에서 마주쳤었잖아. 기억 안 나? 하긴, 그 이후로 다시 본 적도 없긴 하지.”
“유령의 바다에서? 잠깐, 말하지 말아봐. 기억날 것 같아.”
도멤의 말에 나는 머리를 짚으며 끙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네토르는 내 말을 무시하고 잽싸게 말했다.
“주황색 머리에 함저 구역에서 일하는 두더지 같은 녀석. 몰라?”
“기억날 것 같다고 했잖아! 기다리라고!”
“의미 없는 것 같아서.”
나는 짜증스럽게 그를 한 번 노려봤다가 시선을 돌려버렸다. 도멤이 정말로 기억나냐며 의심하듯 묻자 나는 뚱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근 한 달 정도 전의 일이라 어슴푸레한 인상만 남아있었지만, 주황색의 머리와 맹하던 태도는 선명했다.
그 녀석 눈이 잘 안 보인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언제나 묻는 거지만. 잘 싸워?”
“응. 클레인스는 믿어도 좋아. 게다가 청각이 엄청 좋아서 잠입에는 특히 뛰어나지. 가끔 덜렁거리긴 하지만 방해가 될 정도는 아냐.”
키이엘로의 대답에 어째 나 때보다 확신에 찬 것 같군, 하고 네토르가 구시렁거렸다. 나는 그것을 무시하며 생각했다. 키이엘로가 확답할 정도라면 눈이 어두운 것은 크게 상관하지 않을 정도로 실력이 좋은 것일 터였다. 무엇보다 완전히 앞이 안 보이는 것도 아니라고 했었으니까.
그것보단 그렇게 앞이 잘 안 보이는 클레인스를 네토르가 먼저 추천한 것이 더 놀라웠다. 내가 별다른 반대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도멤이 손을 마주쳐 주의를 끌고 정리했다.
“좋아, 하지만 클레인스는 함저 구역에서 나오려고 안 하니까 나중에 물어보는 게 낫겠지. 그럼 우리는 로트, 나, 네토르, 클레인스. 이렇게 이루어진 유격대를 상정하고 선장님께 건의해보자고.”
“다음 간부진 회의까지 기다려야 하나?”
“아마 그럴 필요 없이 곧 전술 관련해서 공지하러 선원들을 소집할…….”
키이엘로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갑자기 배가 크게 흔들리며 휘청였다. 난간에 앉아 있던 도멤이 휙 뒤로 고꾸라질뻔하자, 얼른 그를 붙든 나와 키이엘로가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네토르 역시 당황한 얼굴로 눈을 굴리며 미간을 좁혔다.
“뭐지?”
“좌초?”
“그럴 리가!”
내 말에 숨을 헐떡이며 대꾸한 도멤이 겨우 갑판 위로 올라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바다로 떨어져 죽을뻔했네! 십년감수했다며 넌더리를 내는 그를 뒤로하고 선미루를 보자 키를 쥐고 있던 우투그루와 디겔 역시 멀리서도 당황한 기색이 확연해 보였다.
갑판의 선원들이 웅성거리며 디겔 쪽을 보았다. 도멤이 의아한 얼굴로 그들을 보다가 내게 물었다. 발카는 별말 없어? 그 말에 발카가 부리를 열었다.
『아냐, 이 항로가 맞아. 걸릴 건 없을 텐데……?』
“발카는 항로에 문제가 없다는데. 뭐에 부딪힌 거지?”
그때 배가 한 번 더 쿵, 소리를 내며 휘청였다. 일순 배가 기우는 것에 우리 역시 비틀거리며 주변의 난간과 기물을 잡아야 했다. 청명한 하늘이 이어지고 있었으니 폭풍이나 다른 여건 때문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그때 나는 디겔과 눈이 마주쳤다. 디겔은 내게 아는 게 있느냐 묻는 얼굴이었다. 내가 고개를 가로젓자 그가 다시금 해도로 고개를 처박았다.
그러던 와중 배 아래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처럼 느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화산이 분화하기 전 산이 흔들리는 것 같은 진동이었다.
난간을 부여잡은 도멤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대체 뭐야? 그렇게 외치는 것과 동시에 갑판 아래에서 선원 하나가 뛰쳐나왔다. 그가 숨을 헐떡이며 소리쳤다.
“괴물이다! 배 밑에 괴물이 있다!”
선원의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다를 뚫고 커다란 기둥이 솟구쳤다. 어두운색에 커다랗고 둥근 빨판이 달린 기둥이 매끄럽게 움직이며 수면을 때렸다. 우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크라켄이다! 악명 높은 바다 괴물과 비좁은 바다에서 마주친 것이다!
텐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재수 옴 붙었군. 그러자 발카가 의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크라켄이 이 시기에 나온다고…?』
그러나 우리 눈앞에 있는 것은 명백하게 거대한 문어 다리였고, 그것이 위협적으로 움직이자 키이엘로가 이를 갈았다.
“진짜로? 우홉피아주가 코앞인데 이러기야?”
“이런 젠장, 왜 비좁은 바다에 크라켄이 있는 거야?!”
도멤 역시 다를 것 없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무기를 꺼내라! 우투그루의 외침에 계단 가까이에 있던 선원들이 달려가 무기들을 꺼내오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