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134)
바다새와 늑대 (133)화(134/347)
#133화
아니~! 초월자들의 격 높으신 이야기를 왜 제게 물으세요~! 도멤은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는 바다에 빠졌는데도 숨이 막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그것을 의아하게 여기기도 전에 다시금 마주친 푸른색 눈에 도멤은 모른다는 의미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뱀이 한탄했다.
「그래, 마장이 짙으니 그러리라 생각했도다. 작은 인간아, 대답해주려무나. 어찌 내가 잠들어있던 곳까지 마장의 기운이 미쳤더냐?」
이럴 수가, 단답형 문제가 아니라 서술형 문제였다. 도멤은 난감한 얼굴로 뱀을 보았다. 대답을 안 했다고 날 꿀꺽 삼키면 어쩐단 말인가? 사막으로 된 섬나라에 있다는 스핑크스처럼 말이다! 그러나 뱀은 퍽 너그럽게 말했다.
「작은 인간아, 이야기를 해주렴.」
“마장의 기운이 뭔가요?”
도멤은 제가 말해놓고 헉, 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바닷속에서 말을 할 수 있어! 혹여 살아서 돌아간다면 로트와 키이엘로에게 해줄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았다.
물론 듣고 난 뒤에 둘이 도멤을 부족하지만 착한 친구 취급을 더 먼저 할 것이 분명하지만 말이다. 도멤이 속에서 난리가 났건 어쩌건 간에 뱀은 도멤의 말을 듣고 아아, 하고 웅얼거렸다.
「그런가. 그것을 모르는가. 작은 인간아, 시간이 많지 않구나. 나는 초월자들에 의해 나의 형제와 갈라져 이곳에 갇혔다. 내내 잠들어있다가 불과 며칠 전, 어느 배가 지나가며 남긴 짙은 마장으로 인해 눈을 떴고, 나의 의지에 응한 저 작은 문어가 나를 돌봐주고 있었음이라.」
‘작은 문어’……. 도멤은 뱀의 크기 개념이 자신과 과하게 다르다는 것을 내심 깨달았다. 아까부터 계속 작은 인간, 작은 인간 하더니 정말 작게 보이는 거였구나.
그나저나 며칠 전이라면 아마 우홉피아주일 것이다. 그들의 배에 있을 마장석 기구로 인해 깨어났다는 뜻인가?
도멤이 눈을 가늘게 뜨다가 이내 뱀을 보았다.
“그건 아마 배의 기구일 거예요.”
「배의 기구.」
“네. 인간들은 마장석이란 걸 이용해서 기계 따위를 만들었고, 만드는 중이에요. 아마 그것 때문인 것 같은데…….”
「하지만 작은 인간아, 네가 타고 왔을 배는 일전의 그것보다 마장이 희미하구나.」
애초에 마장석에서 나오는 척력이 ‘마장’이라는 이름까지 번듯하게 가졌던 명백한 기운이라는 것도 몰랐던 도멤에게는 영문 모를 소리였다. 그때 뱀의 눈이 가물거리기 시작했다. 뱀이 한탄했다.
「아아… 잠시 눈을 떴던 것도 한때인가. 작은 인간아, 나의 부탁을 들어주려무나.」
도멤은 생각했다. 눈 좀 뜨이게 날 잡아먹겠다는 것만 아니면……, 아니,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주겠지만 능력 밖의 일은 곤란한데. 그러나 뱀이 요구한 것은 굉장히 간단했다.
「작은 인간아, 나에게 손을 얹으렴. 그리고 나는 튼튼하니 어디에 굴려도 상관없다. 주머니에 넣어도 좋으니 날 데리고 다니며 나의 형제를 찾아주려무나.」
댁을 담으려면 꽤 큰 주머니가 필요할 텐데요……. 도멤은 미심쩍은 얼굴을 했으나 이내 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반질반질한 비늘의 감각이 싸늘했다.
그러나 도멤이 손을 얹고 뱀을 보는 그 순간, 뱀을 감싸고 있던 하얀 나무들이 빛을 잃더니 느슨하게 풀어져 내렸다. 마치 수많은 흰 리본들이 나부끼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그제야 도멤은 뱀이 있는 주변을 볼 수 있었다. 암초가 가득한 비좁은 바다에서 뱀이 있는 곳만 말끔한 평지였다. 마치 누군가 뱀을 그곳에 두기 위해 돌을 둥글게 깎아낸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가운데에서 포말로 사라지는 나무줄기들 사이로 뱀이 혀를 날름거렸다. 그리고는 눈을 번뜩 뜨고 도멤을 보았다.
「나는 요르문간드. 형제와 함께 나고 함께 죽을 자. 우리를 갈라 죄악을 저지른 초월자들의 끝을 지켜보고 시작을 되감아야 하는 자이니, 작은 인간아, 내 너와 함께하고 때론 지혜를 나눠주리라.」
그러더니 뱀은 이내 눈을 감았다. 흰빛이 뱀을 감싸더니 거대하던 뱀은 작게 줄어들어 똬리를 틀었다. 날 데려가렴. 작아진 뱀이 그렇게 말을 남기더니 눈을 감았다.
도멤은 어안이 벙벙해져 요르문간드를 보다가 이내 마법이 끝난 것처럼 서서히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결국 서둘러 똬리를 튼 채 잠든 요르문간드를 코트의 안에 넣고 끌어안은 도멤은 서둘러 바다 위로 헤엄쳤다.
그렇게 도멤의 주머니 안엔 세계의 뱀 한 마리가 잠들어있게 된 것이다.
“…….”
“…….”
우리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도멤이 침묵을 무어라 생각한 것인지 나 안 미쳤어! 하고 말하자 키이엘로가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라며 애써 위로해주었다.
한편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도멤의 이야기 자체는 내가 발카와 만났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존재가 세계의 뱀이란 점이 굉장히 걸렸다. 다른 선원들도 뱀의 말을 들었나? 적어도 네토르의 반응도 그렇고 다른 이들은 못 들은 것 같은데 도멤은 어떻게 들을 수 있었지?
‘우리를 갈라 죄악을 저질렀다’라고……. 그러고 보면 뱀의 목소리가 처음 들렸을 때도 그는 ‘초월자들은 죄를’ 어쩌고, 하고 한탄했었다.
이렇게 놓고 보니 정말로 바다의 전설에 대해 괜한 단서를 알게 되는 기분이었다. 딱히 알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우홉피아주가 지나가며 마장석에서 마장이 많이 흘러나왔다고.
잠시 생각하던 나는 음, 하고 결론지었다.
“어쨌거나 우리가 착실히 우홉피아주를 추적하고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나리란 근거가 되어주네.”
“난 정말…… 이 현실과 전설 사이의 괴리감을 견딜 수가 없어…….”
도멤이 우는 소리를 냈다. 나는 그냥 견뎌, 하고 대충 대꾸하고 뱀이 들었을 주머니를 힐끔 보았다. 저걸 굳이 갖고 다녀야 할까?
만약 막말로 우리가 세계의 뱀 다른 한 짝을 더 찾으면 뭘 하겠는가? 뭐 퍼즐 맞추듯 뱀들 입에 서로 꼬리 물게 하면 빠바밤 새로운 세계, 하면서 달라지나?
다소 얼간이 같은 생각을 하며 뱀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지긋이 보고 있자 키이엘로가 내 시선을 눈치채고 내 어깨를 붙잡았다.
“내다 버리면 안 돼, 로트…….”
동물 유기야……. 아니, 딱히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나는 키이엘로의 말에 속으로 ‘어림잡아도 수천 살은 되었고 지적 능력도 받쳐준다면 슬슬 독립할 때 아냐?’하고 혼자 반박했다.
어쨌거나 우리에게 중요한 건 뱀이 아니었다. 우리는 도멤의 이야기를 흥미롭고 신비로운 바다 미신 경험 정도로 결론을 내리고 크라켄에게 큰 피해를 보지 않아 다행이라고 떠들 뿐이었다.
그때 네토르가 발로 내 종아리를 툭툭 건들었다. 왜 시비 거는 거냐는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자, 네토르가 다른 쪽을 고갯짓했다. 그의 턱짓에 따라 눈을 옮기자 테드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입을 닫고 짜증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저 새낀 또 뭐야? 테드의 등장에 도멤과 헤더가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향했다.
어차피 또 뭐라고 징징거리러 왔겠지 싶어 대충 상대할 생각이었다. 따라 일어나려는 키이엘로의 어깨를 눌러 다시 앉히고 말했다.
“그냥 나 혼자 갈게. 뭐 우르르 나오냐.”
“괜찮겠어?”
“안 죽일 자신 있어, 로트?”
아니 걱정하는 게 그쪽이었어? 나는 황당한 기분이 되었다. 이것들이 날 무슨 폭력쟁이로 생각하네……. 나는 불퉁하게 그들을 봐주고 이내 걸음을 옮겼다.
테드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가 나와 자리를 옮겼다. 선실을 나와 복도를 걷던 테드는 구석진 곳에 오자 돌연 울분을 토해냈다.
“아까 그 괴물은 또 뭐야?”
“뭐, 크라켄? 듣자 하니 여러 이유로 튀어나왔다는 모양이더라. 근데 너 아직도 이 배에 있었냐?”
“나도 탈출하려고 했어!”
‘탈출’이라……. 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테드를 보았다. 말을 들어보자 하니 구명정을 빼돌려 도주하려 했지만, 크라켄에 막히고 배는 착실히 우홉피아주와 가까워지고 진퇴양난이라고 느낀 모양이었다. 나는 대충 테드가 늘어놓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고개를 기울였다.
“야, 그래서 날 굳이 세워두고 말하는 이유가 있어? 내가 네 안타까운 이야기까지 하나하나 들어주면서 공감해줘야 해?”
“너… 넌 대체 나한테 왜 이래?”
나는 그 말에 잠시 어이없다는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내가 뭘……? 테드가 입술을 바르르 떨며 억울함이 그득 찬 눈으로 나를 보았다.
“너 변했어, 로트렐리. 마을에 있을 때는 이러지 않았잖아. 나와 아주 모르는 사이인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대해?”
“아니 미친……. 내가 무슨 네 전애인이라도 된다는 듯 씨부리지 마.”
“그런 게 아니라! 너 말이야, 내가 잘못된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아? 나는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난, 난 마을로 돌아가고 싶어…….”
테드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내게 호소했다. 그리고 굉장히 유감스럽지만, 난 테드의 처지가 안타깝다고는 느껴질지언정 여전히 내가 책임질 일로 느껴지진 않았다. 얘는 다른 선원들에게도 이런 식으로 말했나? 다른 놈들은 이걸 또 곧이곧대로 듣고 내가 매정한 인간인 것처럼 쳐다봤다 이거지?
나는 에휴, 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헛소리 좀 그만해. 넌 네 입장은 그렇게 잘 이해가 되면서 내 입장은 생각도 안 하냐?”
“로트렐리 넌…….”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너 잘 생각해봐. 난 뭐 해적들하고 싸우는 게 두렵지 않고 죽는 게 달가워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 우홉피아주 만나서 목숨 보장 안 되는 게 너뿐인 줄 아냐고. 그래, 뭐 나야 랄티아를 구해야 한다며 스스로 남은 거고 넌 딱히 여기 남고 싶지 않은 차이는 있겠지.”
나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며 눈썹을 휘어 올리고 테드를 응시했다.
“근데 그래서 나보고 뭘 어쩌란 거야? 네가 같은 마을 출신이니까 내가 널 소중히 감싸 안고 그 망할 섬으로 도로 데려다줘야 한다고? 미쳤냐? 넌 지금 나한테 내 동생보다 널 우선으로 두란 소릴 한 거야. 말이나 되는 소리야?”
내 말에 테드는 어깨를 움츠렸다가 무어라 따지려는 듯 입을 벙긋거렸다. 나는 그가 입을 열기 전에 먼저 재빨리 말했다.
“그래, 너도 힘들기야 하겠지. 해적들한테 탈출했더니 그 해적하고 한판 뜨러 가는 새끼들 배에 올랐으니 오죽 속 터지겠냐? 근데 그건 네 사정이지.”
나는 테드의 가슴팍을 밀치며 씹어뱉듯 말했다. 네 사정이라고. 그에 테드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내가 마을에 있을 때랑 다르다고? 그럼 같겠냐? 상황도 환경도 목표도 모조리 다른데 내가 섬에서 다른 가족들하고 오순도순 살던 때랑 같겠어? 너야말로 내 입장에선 지금이 이상해, 알아? 맨날 날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이던 놈이 갑자기 날 무슨 영웅 나으리 취급하며 친한 척, 날 데리고 섬에 돌아가 줄 착한 아이, 그런데 갑자기 달라진 여자애, 딱 이 정도로 생각하는데 내가 널 뭐 어떻게 대우해 달라는 거야?”
테드는 내 말에 입술을 사리물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나는 아주 순간적으로 길게 대화를 이어나가도 테드와 나 사이의 간격을 좁히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테드 역시 나를 전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존재를 바라보듯 쳐다보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