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135)
바다새와 늑대 (134)화(135/347)
#134화
“넌 어떻게 애가 그렇게 매정해?”
“매정한 게 아니라 내게는 당연한 일이야. 넌 절대 내게 랄티아보다 우선시될 수 없으니까.”
“나는 그럼 어떡해야 해? 그 해적들하고 맞붙을 때가 되면 난 어떡하라는 거냐고!”
“넌 왜 자꾸 그걸 나한테 물어? 다른 선원들하고도 대화한다며, 그 사람들한테 물어봐! 내가 무슨 동화 속 요정 할머니야? 네 살길은 네가 찾아!”
내가 버럭 소리치자 테드는 허탈한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항상 제자리걸음인 이 대화가 진저리가 났다. 테드는 계속해서 내가 자신을 살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는 그와 상종하고 싶지도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테드가 자꾸 내게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피차 서로가 이해가 안 될 것이니 그만두면 좋을 텐데 테드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파리 쫓듯 손을 내젓고 그에게 말했다.
“됐다, 난 진짜로 너랑 더 대화하고 싶지 않아, 알아들어? 이 배에 너만 싸움 못 하는 거 아냐. 정 쫄리면 전투가 일어날 땐 어디 숨어 있든가! 지금 이 배는 다들 우홉피아주와의 전투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네가 계속 징징거린다고 들어줄 사람 하나도 없어!”
내 말에 테드는 욱한 얼굴로 콧잔등을 찡그리며 나를 쳐다봤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보고 있기만 했다. 나는 그가 더 할 말이 없다고 판단한 채 이내 돌아섰다. 등 뒤에 남은 테드는 내가 복도를 벗어나 선실로 들어갈 때까지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자리로 돌아가자 두런거리며 수다를 떨고 있던 헤더가 먼저 나를 발견하고 고개를 들었다.
“왔어?”
“왜 절 그렇게 위아래로 훑어보세요?”
“피 묻은 건 없나 해서.”
저기요. 나는 헤더를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다가 이내 한숨을 쉬며 해먹에 앉았다. 해먹의 끝에 앉아 있던 발카가 슬쩍 내게로 다가와 품에 안겼다.
도멤이 물었다. 별일 없었어? 나는 해먹에 누우면서 고개를 까딱이고는 말했다. 백날 똑같은 말만 하는 새끼야. 도멤이 그 말에 혀를 쯧쯧 차며 고개를 설설 저었다.
네토르와 헤더까지 더해 다섯이서 한동안 시답잖은 이야기나 떠들던 우리는 복도에서 집합이라며 외치는 선원의 목소리를 듣고 두더지처럼 고개를 들었다.
“집합이라네.”
“아마 전술 관련해서 의견을 모을 생각인 게 분명해.”
키이엘로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그에 나는 아, 하며 도멤과 시선을 마주쳤다. 네토르 역시 중얼거렸다. 유격대, 잊진 않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헤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격대라니? 하며 되물었지만 우리는 이따가 들어보라며 걸음을 재촉했다. 갑판으로 나가자 자리를 비우기 힘든 선원들은 제외하곤 다들 모였는지 넓던 노상 갑판이 바글바글 시장통 같았다.
세운과 원도 갑판에 나와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미미한 불안과 경계가 섞여 있었다. 잠시 몸을 싣는다는 게 다른 해적과의 전면전이 있을 때까지 남아야 했으니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다. 그러다 세운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반갑게 인사했다. 나와 도멤도 그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우투그루는 선미루로 올라가는 계단에 서 있었는데, 키이엘로 역시 간부진의 위치에 맞게 우리에게 짧게 인사를 하고 우투그루 반대쪽의 계단으로 갔다. 텐이 그 뒤를 느리게 따라갔다. 키이엘로까지 열을 맞춰 선미루의 계단에 서자 우투그루와 키이엘로는 마치 수문장처럼 보였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던 중 클루스도와 디겔이 나와 선미루에 섰다. 그럼 클루스도는 염라인가, 하고 생각하던 나는 손차양을 하고 위쪽을 보았다. 해가 저물기 위해 파르스름하게 빛나는 시간이었음에도 햇볕이 따가웠다.
눈살을 미미하게 찌푸리며 시선을 돌리는데, 문득 프라세와 눈이 마주쳤다. 프라세는 어색한 얼굴로 나에게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했다. 베제는 나를 보지 못한 건지 안 보고 있는 것인지 앞만 응시하고 있었다.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얼굴로 어설프게 눈인사를 하고 그 옆의 베제를 힐끔 본 뒤 클루스도에게로 시선을 다시 고정했다. 선미루 위에 당당히 선 클루스도는 웅성거리던 선원들이 조용해지자 입을 열었다.
“이제 곧 붉은 바다로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홉피아주와 전면전을 치르겠지. 이전처럼 허탕을 칠지도 모른다 생각하는 놈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번엔 바다의 마녀가 전해준 이야기이니 확실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루루미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내 쪽으로 선원들의 시선이 닿았다 떨어졌다. 도멤이 멋쩍게 입꼬리를 삐죽 올리며 눈을 굴렸다. 이거 어색하네. 그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이어지는 클루스도의 말에 집중했다.
“언제나 그랬듯, 전술을 짜기 위해 좋은 생각이 있다면 차례로 발언해라. 의견 있나?”
“선장님.”
도멤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에 클루스도가 말해보라는 듯 턱짓했다.
“우홉피아주에 비해 우리의 전력이 적은 것을 걱정하시는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그런데, 유격대로 잠입할 소수 인원을 꾸려서, 밖에서는 우홉피아주와 산하 해적의 시선을 끄는 사이 우홉피아주 본선으로 숨어 들어가 내부를 치는 건 어떨까요?”
“이미 생각해둔 인원이 있는 모양인데.”
“로트와 저, 네토르, 그리고 본인이 수락한다면 클레인스를 포함해 꾸리고 싶습니다.”
도멤의 말이 끝나자 선원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클루스도의 측면에서 한 발짝 뒤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있던 디겔이 오른팔의 후크를 허공에 휘저으며 말했다.
“너무 위험하지 않아? 잠입을 위해선 그 녀석들 시선을 우리가 끌어야 하는데 결국 배수진을 치자는 이야기 아닌가?”
“키이엘로는 잠입조에 포함하지 않을 생각인가?”
“키이엘로는 너무 눈에 띄고, 디겔 아저씨 말마따나 우리 쪽에도 위험 부담이 있어요. 그러니 큰 전력인 키이엘로는 잠입보단 배를 지키는 쪽이 나아요.”
클루스도의 물음에 네토르가 답했다. 대화를 듣던 우투그루는 흠, 하고 소리를 내더니 내 쪽을 보며 물었다.
“네 바다새는 어쩔 셈이야? 우홉피아주는 네 새를 노리는 데 따로 있으면 새만 잡고 목표를 이룰 수도 있잖아.”
요컨대 발카를 따로 뒀다가 발카가 인질로 잡힌다면 잠입조의 전세가 불리해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를 보며 대답했다.
“네가 간과한 게 있는 것 같은데, 우홉피아주는 내가 너희와 합류한 걸 알지 못할 거야. 아마 혼자 어딘가에서 오고 있으리라 여기겠지. 그러니 발카는 나와 함께 간다. 어차피 나와는 말도 통하니까 사고 칠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아.”
우투그루는 짧게 내뱉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선원들의 분위기를 살피던 클루스도가 수염을 쓰다듬더니 낮게 목을 울렸다. 크게 반대하는 녀석들은 없는 것 같군.
그 말에 헤더가 속닥였다. 그야 그렇겠지, 키이엘로도 두고 가, 위험한 일은 자기들이 알아서 떠맡아. 뭘 더 바라겠어? 나는 시니컬한 헤더의 말에 웃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꾹 깨물었다.
클루스도가 결론을 내렸다.
“좋아, 유격대에 대한 안건은 받아들인다. 다만 클레인스를 설득하는 건 너희가 알아서 해라. 만약 클레인스가 싫다고 한다면 다른 이들을 찾는 것도 알아서 해보고. 자, 그럼 본격적으로 해상전에 관해 얘기해보도록 하자.”
클루스도가 그렇게 말하며 선원들의 주의를 끌었다. 네토르가 끙, 하고 소리를 냈다. 함저 구역까지 내려가야겠군. 선원들이 하나둘 의견을 내는 사이로 나는 네토르의 말을 듣고 문득 한 번도 본 적 없는 간부진이 떠올랐다. 생각난 김에 나는 도멤에게 작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간부진 중 한 명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하몬 말이지?”
도멤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몬은 함저 구역으로 가지 않는 이상 보기 힘들지……. 도멤은 무어라 설명할지 고민하는 것 같다가 이내 에이, 하고 말했다.
“어차피 클레인스를 설득하려면 함저 구역에 가야 해. 그때 만나보는 게 빠르겠다.”
“오……. 만날 수 있는 거야?”
“그렇지. 함저 구역이면…… 오랜만에 랜턴을 꺼내야겠네.”
함저 구역은 배의 가장 아래쪽인 만큼 어두컴컴할 것이다. 우홉피아주의 산하 해적이 어느 정도로 예상되는지, 어느 경우엔 어떻게 할지 따위를 떠드는 전체 회의가 끝날 때까지 나는 부풀어 오르는 불안감을 애써 짓눌러야 했다. 그때 디겔이 말했다.
“그리고 비전투 인원 말인데.”
“이런, 내 얘기로군.”
헤더가 앓는 소리를 내며 작게 속닥였다. 나도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헤더는 둘째치고 테드도 이 얘길 듣고 있을까? 디겔이 운을 떼자 클루스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배에 올랐던 의사 자네들과 헤더, 그리고 그 잡일꾼은 위험하게 전투에 참여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안전한 실내로 대피하게 할 생각인데 이견이 있는가?”
“저……!”
그때 베제가 당황한 얼굴로 손을 들며 소리를 냈다. 클루스도가 의아하게 그를 보자 베제는 제 옆의 프라세를 보았다가 말했다.
“프라세도 싸우기엔 아직 너무 어린데요.”
“하지만 그 애는 싸울 능력이 있지 않더냐. 우린 전력이 별로 없다.”
나는 그 말에 당황해서 클루스도를 올려다보았다. 디겔은 불퉁한 얼굴로 프라세와 클루스도를 번갈아 보았다. 베제가 난감한 얼굴로 프라세를 보았으나 프라세는 오히려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싸울 수 있어요. 도멤이 허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열네 살이 뭐라니…….
그러나 클루스도의 말대로 전력이 하나라도 아쉬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프라세와 베제를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프라세는 비전투 인원의 호위 인력으로 돌리면 어떨까요?”
내 말에 베제가 나를 홱 돌아보았다. 나는 안경잡이의 시선을 애써 모른 척하며 말을 이었다.
“전력이야 하나라도 아쉬운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프라세가 나서기엔 위험하다고 생각됩니다. 비전투 인원 중 호위 인력으로 쓸 만한 사람이 원밖에 없는 만큼 안전이 불안한데, 프라세를 그쪽으로 붙여서 비전투 인원의 안전을 돕는 게 다른 인력을 축내는 것보다 나을 것 같은데요.”
“……저도 동의합니다.”
잠시 나를 쳐다보던 베제가 말했다. 그에 프라세는 실망한 얼굴이었지만 그 옆에 있던 선원이 그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무어라 꾸중을 냈다. 클루스도는 고민하는 기색이었지만 디겔은 반색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헤더가 안전해질 확률이 비교적 더 커지고 어린애인 프라세도 참전하지 않으니 좋은 것 같았다.
클루스도가 세운과 원을 향해 어떻냐며 묻자 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클루스도는 별수 없이 수긍했다.
“그래, 그렇게 하지. 그럼 이번 집합에서 결정된 사안들을 잘 기억해둬라. 우홉피아주와 결전이 다가온다!”
클루스도의 힘 있는 외침에 선원들이 주먹을 내지르며 소리쳐 동조했다. 우렁찬 소리 사이로 조용히 있던 헤더가 내게 말했다.
“꿈은 멀고도 멀구나. 난 아빠를 지켜주고 싶은데 현실은 내가 지킴 받아야 하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