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139)
바다새와 늑대 (138)화(139/347)
#138화
우리는 우홉피아주에 밧줄을 던져 걸었다. 우홉피아주에서 검은바다로 올라타기 위해 이미 밧줄을 내던지고 있었기에 그다지 눈에 띄지도 않았다. 우리가 우홉피아주의 배의 선측에 붙으려 밧줄을 쥐는 찰나, 우렁찬 외침이 울려 퍼졌다.
“클루스도, 옛 친구여! 오늘에야 내게 구걸하러 왔는가?”
우홉피아주의 난간에서 그렇게 외친 남자는 다름 아닌 페데르였다. 그는 푸르죽죽한 청록색 머리칼을 구불구불 늘어뜨리고 선장모 아래에서 히죽 웃었다. 클루스도가 대번에 맞서 응수했다.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페데르! 네놈의 배를 쳐부숴 주마!”
“으하하!”
그러나 페데르는 유쾌하다는 듯 낄낄 웃기나 하더니 이내 몸을 날렸다. 일순 긴장감이 쭈뼛 감돌았다. 페데르가 검은바다의 갑판으로 올라왔다! 도멤이 서두르며 말했다. 우리에겐 좋은 일이야, 선장이 저기로 갔으니 선내 전력이 줄겠지.
그 말과 함께 우리는 우홉피아주로 뛰어들었다.
선측에 따개비처럼 달라붙은 우리는 서둘러 우홉피아주의 전열함 아래쪽의, 열리지 않은 포문을 찾았다. 도멤과 네토르가 포문 중 하나를 열고 우리에게 손짓했다. 나는 클레인스를 툭툭 쳐 신호하고 먼저 포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바깥은 소란스러운 시장통인데 안으로 들어오자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나는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고 클레인스를 툭툭 쳤다. 그러자 클레인스도 안으로 들어왔다. 이어 도멤이 들어오고 네토르가 들어오던 도중, 그가 바깥을 보더니 욕을 지껄이며 몸을 재빨리 들여보냈다.
“왜 그래?”
“코르벳이 생각보다 빨리 따라붙었어. 선체가 작으니 속도 내기에도 이로운 건가…….”
“서두르자.”
일이 불리하게 흘러가기 전에 랄티아를 구하고 선내를 뒤집어놓은 뒤 검은바다로 귀환해야 했다. 산하 해적까지 검은바다의 갑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백병전에 동참한다면 일이 불리해진다.
우리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아래쪽의 포문으로 들어오긴 했으나 함저 구역으로 가려면 두어 층은 더 내려가야 했다.
계단을 찾아 선내를 조용히 가로지르던 그때, 클레인스가 돌연 우리를 붙들었다.
“누가 와요.”
그 말에 우리는 각각 나와 네토르, 클레인스와 도멤으로 나뉘어 복도 양쪽에 숨을 죽이고 몸을 낮췄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세 명의 해적이 조금 빠른 걸음을 걸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검은바다, 모조리 코를 베어줄 테다…….”
“난 예쁜 코가 좋은데.”
“포탄, 포탄, 포탄…….”
한 놈은 연신 욕을 하고 있었고, 한 놈은 헛소리하고 나머지 하나는 포탄을 찾는지 ‘포탄’이란 단어 하나만 연신 웅얼거리고 있었다. 이쪽만 포문을 안 열어둔 게 포탄을 아끼기 위해서였나? 우리는 서로 눈을 굴리며 각자 시선을 교환했다. 어쩔까? 좀만 참아, 조용히 넘어가자. 그래, 괜한 위험 부담은 없어야지.
암묵의 합의가 끝난 뒤 도멤이 클레인스의 등에 글씨를 썼다. 클레인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새삼 도멤이 글을 배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쁜 코……. 그래, 난 예쁜 코가 좋아.”
“부선장들의 코면 만족하냐?”
“그거 좋지. 예쁜 코.”
졸지에 키이엘로와 우투그루의 코에 대한 품평을 들어버렸군.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그들의 대화를 엿듣다가 눈을 굴렸다. 해적들의 기척에 감각을 곤두세우면서 나는 주변으로 시선을 내던졌다.
계단이 있는 곳, 포문이 있는 곳, 궤짝들이 있는 곳을 차례로 살피며 숨어가며 움직일만한 곳을 찾고 있는데, 돌연 해적들의 소리가 멎었다. 멀어진 것이 아니었다. 갑자기 뚝 멎은 소리에 내가 의아하게 눈을 드는데, 맞은편에 숨은 도멤 역시 의아한 얼굴이다가 이내 안색이 희게 질렸다. 그의 시선에는 클레인스의 발이 있었다.
모퉁이 너머로 클레인스의 발이 나가 있는 것이었다!
“……포탄, 포탄, 포탄…….”
“난 예쁜 코가 좋아. 예쁜 코. 자르고 말려서, 잘 보관해야지.”
“그래.”
그러나 곧이어 해적들의 말소리가 다시금 들려오기 시작했다. 못 본 건가? 내가 서둘러 손짓하자 도멤이 클레인스를 건들더니 등에 무어라 다시 적었다. 그러자 클레인스가 아차 한 얼굴로 서둘러 발을 집어넣었다. 좋아, 이제 해적들이 가기만 기다리면 될 것이었다.
그때였다. 클레인스가 돌연 이를 갈며 칼을 뽑아 들었다. 그것에 놀랄 틈도 없었다. 모퉁이에서 고개가 확 튀어나왔다. 입이 귀까지 걸린 얼굴로 히죽 웃은 해적이 외쳤다.
“예쁜 코!”
“이 망할, 깜짝이야!”
놀란 내가 반사적으로 해적의 얼굴을 주먹으로 갈기자 네토르는 엄지를 세웠다. 그러고 있을 시간에 이 새끼를 처리해줬으면 싶었다. 코트 안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던 발카 역시 꽥 소리를 질렀다. 미친 상판대기를 어따 들이밀어! 여전히 걸걸한 말솜씨였다.
그때 클레인스가 다급하게 외쳤다.
“주변에 다른 해적은 없어요! 들키기 전에 처리하죠!”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도멤이 곧장 다른 해적의 목을 향해 창을 꽂았다. 피가 팍 튀어 얼굴을 적셨다. 불쾌감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틈에 클레인스 역시 예쁜 코 운운하다 맞은 해적에게 칼을 찔러 넣었다.
그러나 포탄을 찾던 해적이 우리를 보고 곧장 뒤로 돌아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네토르가 욕지거리를 지껄이며 튀어 나갔다.
“잔챙이가 있― 악!”
“닥쳐!”
네토르가 해적의 등을 찍어 누르며 빠르게 목을 그었다. 핏물이 바닥을 적셨으나 검붉은색의 배 덕분에 눈에 크게 드러나진 않았다. 나는 늘어진 해적들의 팔뚝을 잡고 물었다.
“어디에 숨길만 한 곳 있어?”
“포탄을 찾던데, 그 사이에 넣어두자.”
좋은 생각이었다. 클레인스는 주변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더니 도멤과 내가 포탄 상자를 파헤쳐 그 안에 해적들을 구겨 넣은 뒤 포탄들을 그 위에 얹어둘 때쯤 말했다.
“누가 더 있는 것 같아요.”
그 말에 우리는 숨을 죽이며 몸을 낮췄다. 도멤이 속삭였다.
“제발 아까처럼 걸리지만 말자.”
“죄송해요, 잠입에 자신 있다고 해놓고…….”
“됐어, 해결됐잖아.”
나는 짧게 클레인스의 자책을 치워내고 기척을 살폈다. 클레인스는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의 발이 모퉁이 밖을 빠져나간 것 정도는 소소한 실수였다.
몇 명이야? 네토르의 낮은 물음에 클레인스는 미간을 좁혔다. 한 명 같은데요. 나는 그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한 명? 하지만 지금은 전투가 일어나고 있었다. 홀로 돌아다니는 인원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하지만 아무렴 어떻겠는가. 예측을 벗어나는 일이 왕왕 생기는 것은 이상할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몸을 낮춘 채로 계단 쪽을 향했다. 기척과 가까워졌는지 클레인스가 머뭇거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도멤이 속삭였다. 왜 그래?
“뭔가……. 기척이 이상한…….”
그때 그가 뒤를 휙 돌아보았다. 클레인스가 빠르게 쏘삭였다.
“이쪽 말고 저기! 저기서 여러 명이 와요!”
그럼 이쪽의 한 명부터 처리하는 게 좋았다. 나는 검을 고쳐 쥐고 모퉁이 뒤에 있을 해적을 향해 빠르게 내찔렀다. 그 순간 이마에 차가운 쇠막대가 맞닿았다. 마주친 회색 눈이 크게 뜨였다. 나는 휘두르려던 손을 우뚝 멈추었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랄…티아!”
“언니?!”
랄티아가 새된 소리를 내려다 입을 틀어막고 나를 보았다. 나는 내 이마에 겨눠진 쇠막대를 손가락으로 툭 밀어냈다.
파이프? 조잡하게 덧붙여진 파이프는 피스톨의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기능도 별반 다르진 않을 것 같았다. 도멤이 놀란 얼굴로 나와 랄티아를 보다가 이내 우리를 잡고 아래로 당겼다.
“뭐야, 정말로 로트 동생이야? 근데 일단 조용히!”
네토르와 클레인스 역시 일차적인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을 깨닫고 곧장 작전을 바꿨다. 우선 조용한 곳으로 피해서 상황 파악부터 하죠. 그렇게 말한 클레인스가 기척이 느껴지는 곳과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랄티아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나와 이들을 번갈아 보다가 내 손길에 몸을 낮추고 따라왔다. 혹시라도 포위당할 일은 없도록 상자들로 가려진 곳에서 자리를 잡자 랄티아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운동하라고 했는데도…….
그때 랄티아가 당장 도멤과 네토르를 향해 물었다.
“누구세요?”
“어쩌다 동행하게 된 우홉피아주의 숙적 해적단. 넌 어떻게 나와 있는 거야?”
도멤이 ‘정말 짧고 간단하지만, 사실을 적중하는 소개였어, 로트…….’하고 웅얼거렸지만 나는 그것에 귀 기울일 여력이 없었다. 랄티아는 별달리 다친 곳은 보이지 않았다.
마을에서 지낼 때보다 조금 수척하고 지쳐 보였지만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다. 나는 내심 안도하며 랄티아의 회색 눈을 보았다.
랄티아가 조용히 도멤과 네토르, 클레인스를 의심스럽게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이 해적단이 싸우는 일에 집중하는 것 같았어. 그래서 탈출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지. 제국도 근처라니까 적당히 구명정을 훔쳐 타고 도피할 생각이었어…….”
“무모하긴! 그러다 해적과 마주쳤으면 어쩌려고! 배 구조는 알아?”
“그땐 이걸 써야지.”
랄티아는 손에 쥔 피스톨을 흔들어 보였다. 나름 자신감 있게 보이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그다지 믿음직스럽진 않았다.
“그리고 이 배는 전열함이잖아? 예전에 책에서 배들의 구조를 본 기억이 있어. 나도 다 계획하고 실행한 거야. 그런데 언니는…….”
책으로 본 배 구조를 기억한다고? 도멤이 얼이 빠져 되물었지만 랄티아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무언가 대답을 바라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클레인스가 그게 뭔데요, 하며 랄티아가 쥔 피스톨을 가리켰지만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나만 이글이글 응시하는 랄티아에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나중에 설명할게. 일단 이 배를 빠져나가서 우리 쪽 배로 건너가자. 그 김에 이곳 배도 죄다 터트리고…….”
“엄마랑 로타, 루티는? 혼자 왔어?”
나는 일순 누가 명치를 걷어찬 것처럼 입을 벙긋거렸다. 머리가 띵했다. 랄티아는…… 엄마와 쌍둥이 동생들이 죽은 것을 모르는 것이다. 나는 랄티아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기 전에 재빨리 입을 열었다.
“…나중에 알려줄게. 일단 넌 그 체력으로 여길 나가는 일에 집중해.”
“언니…….”
“잠깐, 누가 와요.”
랄티아가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불렀으나 클레인스가 그것을 가로막았다. 훌륭한 인기척 감지기였다. 도멤이 창대를 고쳐 쥐고 망을 보았다. 네토르 역시 나와 랄티아에게서 시선을 떼어내고 클레인스가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잠시 후 위에서 해적들이 계단을 내려왔다.
내가 랄티아에게 작게 속닥였다.
“아래층에서 해적들을 본 적 있어?”
“아니, 사실 날 감시하던 해적들 외에는 아무도 안 마주쳤어.”
“…….”
그럼 그 감시하던 인원들은 어떻게 되었는데? 네가 손을 쓴 거야? 나는 그렇게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꾹 삼켜내고 고개만 주억거렸다. 아무렴 속이 쓰리더라도 랄티아가 중간에 도로 잡히지 않고 안전한 것이 더 중요했다.
웅성웅성 떠들며 성큼성큼 걸어오는 해적들을 보며 긴장하고 있는데, 클레인스가 말했다.
“아까의 해적을 잡을 때 마지막 놈이 소리친 것을 희미하게 들었나 봐요. 대화상 포수 중 몇이 내려와 살피는 중이에요.”
“그냥 닥치고 돌격할까?”
“로트 동생이 있잖아. 위험이 너무 커.”
네토르의 말에 도멤이 웅얼웅얼 말했다. 그에 네토르가 꿍얼거렸다.
“언니 쪽은 칼부림도 하는데 동생은 왜 못 하는 거야?”
“입 안 다물면 평생 입에 구멍 뚫린 채로 살게 해준다.”
내가 낮게 으름장을 놓자 네토르는 시니컬하게 눈을 굴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