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144)
바다새와 늑대 (143)화(144/347)
#143화
도멤의 말에 클레인스가 침착하게 전했다. 아직은 선내를 뒤지고 있어요……. 클레인스의 말에 네토르는 로트렐리를 향해 혀를 찼다.
“저 녀석은 왜 서둘러 나가서 일을 꼰 거람.”
“하지만 로트의 행동이 옳았어. 계속 여기서 뭉개고 있었다면 지금쯤 키이엘로의 목이 갑판을 뒹굴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도멤이 그렇게 응수하며 갑판에서 페데르와 맞서고 있는 키이엘로와 로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도멤은 자신의 코트를 벗었다.
그에 네토르가 눈썹을 휘었으나, 도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것을 랄티아에게 건넸다.
“발카도 너도 눈에 띄면 위험해. 검은색이니 없는 것보다야 몸을 숨기는 데 용이하겠지.”
그에 랄티아는 발카를 꾹 끌어안고 도멤이 벗어준 코트를 받아들었다. 코트를 걸친 랄티아는 로트렐리가 그랬듯 품에 발카를 넣었으나, 옷이 커서 그다지 단단하게 고정되지는 않았다.
결국 랄티아는 발카를 계속 끌어안았고, 발카도 코트 자락을 붙들었다. 그래도 옷이 큰 탓에 잘 감춰졌다. 코트를 걸친 랄티아는 잠자코 몸을 웅크린 채 그들의 사이에서 회색 눈을 들어 시끄러운 바다 위를 훑었다.
그때 클레인스가 욕을 짓씹었다. 이쪽으로 와요! 결국 그 말에 도멤이 셔츠와 조끼 차림으로 낮추고 있던 몸을 일으켜 창을 들었다. 곧바로 선미를 향해 오던 해적이 모퉁이를 돌고는 그들과 마주쳤다.
해적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여기―!”
도멤은 곧장 창을 휘둘러 창날로 해적의 목을 부욱 찢어놓고 발로 걷어찼다. 순식간에 발에 차인 해적이 난간 밖으로 나자빠지자 붉은 안개가 낀 바다로 풍덩 빠져들었다.
귀가 먹먹한 소란의 사이로도 해적의 고함을 들은 우홉피아주의 패거리들이 선미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네토르가 일어나 도멤과 다른 쪽의 길목을 막고 검을 휘둘렀다.
“선미에 있다! 선미다!”
해적들이 외치는 소리에 랄티아는 입술을 깨물며 난간 너머를 보았다. 검은바다와 맞붙어 싸우던 코르벳 위의 해적들도 고개를 들고 우홉피아주 본선의 선미를 보고 있었다.
비좁은 선미로 해적들이 몰려들었으나 오는 방향은 비좁은 길목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도멤과 네토르는 그리 힘들이지 않고도 해적들을 쓰러트려 나갔다.
그러나 그 순간 해적들의 뒤로 쿵쿵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바로 클레인스가 랄티아에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죄송해요, 실례할게요.”
그러더니 클레인스는 랄티아를 옆구리에 끌어안고 선미루의 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도약에 랄티아가 깜짝 놀라 그를 붙들고 소리쳤다.
“뭐, 뭐 하는, 어딜 가는 거예요?”
“피해야 해요. 도멤 형, 네토르 형! 헤로이핀이 와요!”
클레인스가 빠르게 벽을 오르며 도멤과 네토르를 불렀다. 그러자 도멤이 창을 휘두르며 외쳤다. 먼저 가! 그 말에 클레인스는 결국 입을 꾹 닫고 마저 올라갔다.
해적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갑판에서 선미루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해적들의 물살에 자유로운 헤로이핀이 선미의 길목에 선 도멤을 보았다. 그러나 그 거구는 도멤에게는 볼일이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헤로이핀이 선미루로 향하기 위해 걸음을 떼려 하자, 그것을 막는 것처럼 도멤은 초록빛 눈을 긴장으로 빛내며 창대를 바닥에 쾅 찍었다. 거구의 시선이 굳건한 소리에 다시 도멤에게로 돌아왔다.
도멤은 버럭 외쳤다.
“덤벼라, 이 돼지 새끼야!”
“우…….”
헤로이핀이 우둔한 소리를 내더니 이내 위협하는 짐승처럼 이를 드러내며 도멤에게 덤벼들었다.
한편, 가장 높은 고도의 갑판인 선미루로 올라선 클레인스는 당연하게도 모두의 눈에 띄었다. 노상 갑판에 있던 해적들이 그를 발견하고 저기다, 하며 외쳤다. 랄티아는 클레인스의 옆구리에 짐작처럼 들린 채 발카를 도멤의 코트 안으로 감싸 숨기고 몸을 한껏 웅크렸다.
클레인스는 동년배의 여자애를 끌어안은 상태가 마치 모래주머니를 매단 것뿐이라는 것처럼 빠르게 움직여댔다. 랄티아를 감싼 도멤의 까만 코트가 클레인스가 휘두르는 검의 궤도를 따라 몰아치는 밤바다처럼 펄럭였다.
클레인스의 뒤를 따라 올라온 네토르가 합세해 해적들을 베어 넘겼다. 그때 화살이 쐑, 하고 날아와 클레인스의 어깨에 꽂혔다. 랄티아를 들고 있던 쪽의 팔이었다.
큭, 하고 치밀어 오른 클레인스의 소리와 함께 랄티아는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반사적으로 발카를 끌어안은 랄티아가 욱신거리는 팔뚝과 무릎에 으으, 하고 앓다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선미루에 올라온 해적들이 랄티아를 향해 뛰어들었다.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볼트가 달려들던 해적의 머리를 꿰뚫었다. 피가 팍 튀는 것에 눈을 질끈 감고 피했던 랄티아가 가까스로 눈꺼풀을 들어 올려 검은바다 쪽을 살폈다. 그러자 모노클을 눈두덩에 끼운 꽁지머리의 남자가 그들의 방향으로 쇠뇌를 겨누고 있는 것이 보였다.
베제였다. 그는 이내 선미 방향으로 몇 번 더 볼트를 쏘더니 이내 근처에서 다가온 해적의 공격을 피해 몸을 돌려 시야에서 사라졌다.
랄티아는 얼빠진 얼굴로 숨을 몰아쉬다가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그러자 클레인스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놓쳐서 죄송해요, 괜찮아요?”
“어깨가…….”
랄티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클레인스를 보았다. 주홍빛 머리의 소년은 어깨에 화살이 박힌 탓인지 눈가가 머리칼에 가려졌음에도 잔뜩 고통스러워 보였다. 아닌 척 의연하게 랄티아를 살핀 클레인스가 해적의 칼을 쳐내며 빠르게 말했다.
“화살을 맞아서 그쪽을 들 수는 없겠어요.”
“최대한 알아서 피해 볼게요.”
클레인스는 랄티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바로 섰다. 제 근처에 계세요. 나직한 말에 랄티아는 긴장한 얼굴로 불편한 듯 꿈틀거리는 발카를 끌어안고 클레인스의 뒤에 섰다.
곧이어 네토르가 다가와 랄티아의 뒤쪽에 서서 경계했다. 해적들과 그들의 대치 구도가 만들어지자 그들은 서로 간을 보듯 상대를 응시했다.
그 틈에 클레인스가 네토르에게 낮게 물었다.
“도멤 형은 어쩌고요?”
“얘를 노리는 헤로이핀을 떼어두려면 상대할 녀석은 필요해.”
그 말에 랄티아가 깜짝 놀라 네토르를 돌아보았다. 클레인스 역시 끓는 소리를 내며 인상을 구겼다. 도멤이 홀로 헤로이핀을 상대하게 뒀다고 타박하고 싶었으나, 그럴 여건이 되지 않음은 그들도 알았다.
랄티아는 사방을 향해 눈을 굴리다가 선미루 아래 노상 갑판에서 로트렐리가 키이엘로와 함께 페데르에 맞서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느새 둘은 자잘하게 베인 상처가 늘어있었다.
클레인스는 시야가 불편한 것은 거짓말인 것처럼 유려하게 움직이며 해적들을 베어냈다. 어깨의 부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멀쩡한 팔을 휘둘러 민첩하게 사람의 기척을 찔러내는 서슬에 해적들이 좀처럼 접근하지 못하고 공격하다가도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네토르는 검으로 다가오는 해적들을 가르다가도 비수를 던져 원거리에서 활을 든 사수들을 견제했다. 그 틈에서 랄티아는 손에 쥔 황동색의 피스톨을 꾹 쥐었다.
급박한 상황 탓에 뻣뻣하게 힘이 들어간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랄티아는 입술을 사리물며 애써 머리를 팽팽 굴렸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두려움에 떠는 것은 나중에 해도 좋았다.
몇 번이나 남았을까? 몇 번을 더 쓸 수 있을까?
랄티아는 회색 눈으로 피스톨을 부러뜨릴 것처럼 쳐다보다가 클레인스가 고개를 다급히 돌리며 다친 쪽의 팔로 자신을 끌어당기자 반사적으로 공포에 질린 얼굴을 했다.
쾅! 선미루 위로 뛰어든 헤로이핀이 갑판을 부술 듯이 커다란 소리를 냈다. 헤로이핀이 뛰어든 곳에서 훌쩍 물러난 클레인스의 턱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네토르가 욕을 내뱉으며 빠르게 물었다.
“도멤은?”
“…잘 안 들려요.”
그가 긴장한 어투로 전하자 랄티아는 까만 코트를 꽉 움켜쥐었다. 그때 시끄러운 전투의 소란 사이로 자루가 바닥을 내리치는 것 같은 둔탁한 음이 울렸다.
순간 선미루 뒤쪽에서 훌쩍 도약한 도멤이 맹렬하게 굳힌 얼굴로 허공에서 헤로이핀의 머리 위를 정확하게 찌르며 내리꽂혔다. 그러나 헤로이핀이 빠르게 몸을 돌려 도멤의 창은 거구의 목덜미 근처를 스치듯 찌르고 지나갔다.
바닥에 콱 꽂히는 소리에 인상을 구긴 도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창대를 돌리며 갈무리해 물러났다. 그의 발치로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도멤의 이마에서 핏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도멤의 초록색 눈이 날카로운 침엽수 잎처럼 사납게 빛났다.
“이 망할 새끼가 튀어?”
거친 숨소리와 뒤섞인 목소리가 잔뜩 갈라져 있었다. 도멤이 내뱉는 씩씩 소리에 랄티아는 그가 어쩌면 내상을 입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랄티아가 읽은 책 중엔 의학책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의 기억을 되짚으며 한가하게 도멤을 살펴볼 시간은 없었다. 헤로이핀은 이를 드러내며 도멤을 보다가 자신에게 날아드는 네토르의 비수를 그대로 맞았다.
그러나 화상으로 뒤덮인 거구의 사내는 일전 맞았던 화살을 대충 내버려 둔 것처럼 제 몸에 박힌 비수를 대충 뽑아 바닥에 던졌다. 그는 사방을 경계하는 고릴라처럼 씨근덕대며 주변을 견제하다가 이내 랄티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랄티아의 옆에 있던 클레인스가 욕을 짓씹으며 그녀를 밀쳐내고 검을 휘둘렀다.
손의 살갗이 거칠게 베여나갔으나 헤로이핀은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헤로이핀은 클레인스는 상대도 하지 않고 랄티아를 쫓았다. 그러자 도멤의 창이 랄티아와 헤로이핀 사이를 가르고 들어왔다.
“어딜!”
도멤은 창대를 돌리며 헤로이핀의 다리를 걸었다. 그러나 훌쩍 뛴 사내가 도멤의 뒤에 쿵 내려앉더니 주먹을 휘둘렀다. 덩치에 맞지 않게 즉각적이고 빠른 반응이었다. 미처 피하지 못한 도멤이 피투성이인 주먹에 맞아 윽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도멤 형!”
클레인스의 외침과 거의 동시에 네토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동생을 노린다!
그 말대로였다. 순식간에 랄티아의 앞으로 다가온 헤로이핀이 랄티아를 잡아채려고 했다. 곧장 번개처럼 일어난 도멤이 창을 휘둘렀다. 헤로이핀의 팔뚝부터 어깨까지가 도멤의 서슬에 죽 찢겼다.
뒤이어 그가 헤로이핀의 목덜미를 찔러냈다. 그러나 이때까지의 공격들이 그랬듯 유의미한 타격이 되지 못한 모양이었다.
헤로이핀의 손아귀가 노도처럼 달려들어 달아나던 랄티아의 목줄기를 틀어쥐었다. 랄티아가 지른 비명과 동시에 그 품에서 발카가 소리쳤다.
『안 돼!』
바다새의 목소리가 페데르를 상대하던 두 사람의 귓가에 선명하게 맞닿았다. 로트렐리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페데르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음산하게 웃었다. 이걸 어쩌나.
“내기는 내가 이겼군.”
로트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시퍼렇게 분노한 로트가 고개를 다시 페데르에게 돌리는 순간이었다.
정수리부터 쇠못을 꽂는 것 같은 고통이 파고들었다.
“로트!”
키이엘로가 외쳤다. 페데르의 칼이 로트렐리의 옆구리에 깊게 파고들어 있었다. 코트 자락 사이로 그것을 본 발카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허억.”
로트렐리는 숨을 토해내듯 내뱉으며 몸을 수그렸다. 토해낸 숨에 섞여 튀어나온 핏방울이 먼저 바닥에 뿌려지고, 그 뒤를 따라 찔린 곳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페데르의 칼이 빠져나오자 더 많은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키이엘로는 곧장 페데르를 걷어찼으나, 그것을 흘려내듯 피한 페데르가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서둘러 몸을 뺀 페데르 역시 다소 지친 상태였다.
그러나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은 해적은 잽싸게 외쳤다.
“헤로이핀, 인질을 데려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