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155)
바다새와 늑대 (154)화(155/347)
#외전1-4화
디겔은 다시 뱃길에 나섰고, 몇 개월, 때로는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나가 있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들은 주로 섬의 물건을 팔 거나 우홉피아주의 흔적을 쫓아 그들의 분위기를 살피는 일을 했다. 때때로 악천후와 마주치고, 때로는 무서운 바다 괴물과 마주쳐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그들은 평화로웠다.
그러나 해가 넘어가고 얼마 되지 않아 우홉피아주는 한 번 더 움직였다. 첫 습격의 충격을 미처 다 씻어내지 못한 때였다.
섬이 습격을 받았다는 전서구를 받고 급하게 뱃머리를 돌려 섬에 도달했을 때 디겔은 기이한 위화감을 느꼈다. 달려 나온 사람들 사이에서 로라와 헤더가 보이지 않았다.
선착장에서 바라본 섬은 엉망이었다. 푸르던 초목은 모두 까맣게 타 있었고, 사과 향이 물씬 풍겨야 할 공기는 연기의 매캐함이 가시지 않아 퀴퀴했다.
디겔은 평소와 달리 침체된 사람들의 공기를 헤치고 집으로 허겁지겁 뛰어갔다. 잘린 팔뚝이 욱신거리며 아파 왔다. 후크가 달린 팔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디겔은 그 핑계로 발걸음을 늦추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지만, 꾸역꾸역 다리를 움직여 집에 도달했다.
이때쯤 시기를 맞아 가지각색의 꽃들이 만발해 있어야 할 정원은 엉망이었다. 마당 바닥은 마구잡이로 파헤쳐져 푸른 잔디가 아니라 오물 같은 흙이 흉흉하게 드러나 있었고, 꽃과 나무는 꺾여 지푸라기만도 못해 보였다. 디겔은 숨을 헐떡이며 로라와 헤더를 부르짖었다.
그 둘이라면 정원을 이렇게 뒀을 리가 없었다. 디겔은 집 안에 들어갔다가 깨진 집기가 어지러이 흩어진 것을 보았다. 동시에 짙은 한기가 훅 끼쳐왔다.
집의 바닥에 만들어두었던 지하실 문이 열려있었다. 그는 주춤 물러나 곧장 다시 문을 닫았다. 어쩌면 자신이 넋을 빼고 다른 사람 집을 착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디겔은 정원을 뒤돌아보았을 때 그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착각하겠는가? 그가 로라를 위해 만든 울타리와 헤더를 위해 만든 그네, 로라가 정원수를 손질하려고 올라가던 것을 자신이 잡아주던 사다리, 물을 떠 오라던 헤더가 생뚱맞게 물장난을 치고 있던 작두 우물까지 모두 그가 아는 물건들이었다.
그때 디겔은 옅게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급하게 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가 헤집어진 정원의 뒤편에서 주저앉아 울고 있는 헤더를 보았다. 디겔은 순간 하늘에서 몸이 쑥 꺼지는 것 같은 감각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헤더, 헤더, 왜, 이런 곳에 있어, 응? 왜 울고 있어. 엄마는?”
“아빠…….”
헤더는 디겔의 목소리에 그를 돌아보고는 더욱 펑펑 울기 시작했다. 헤더는 온몸이 흙투성이였다. 나이가 들기 시작한 이래로 헤더가 이렇게까지 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디겔은 황망한 얼굴로 딸을 감싸 안았다.
그의 팔이 형편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로라는 어디 있어? 응? 네 엄마는 어디 있느냔 말야……. 왜 이곳에 혼자 앉아 있어…….”
디겔이 애써 침착하게 물으며 헤더의 등을 도닥였으나 헤더는 곧 죽을 것처럼 울기만 했다. 이대로 헤더의 눈물이 넘쳐 정원을 덮으면 소금기 있는 물에 그나마 남은 꽃도 다 죽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디겔은 헤더를 마치 어린아이를 보듬듯이 품에 끌어안고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로라는 어디 있는 거야, 로라는……. 엄마는 어쩌고 왜 여기 혼자 있는 거야……. 디겔은 헤더의 울음소리를 품에 안은 채 새파란 하늘만 노려보았다.
로라는 어디에 있는가…….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이 기어코 나만 버리고 하늘로 솟아났는가…….
로라는 우홉피아주의 습격이 들이닥치자 디겔이 만든 지하 대피소에 헤더를 먼저 집어넣었다. 그리고 디겔의 아내인 자신이 없으면 집을 뒤지다 헤더가 숨을 곳을 찾아내리라 생각한 로라는 해적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헤더는 로라를 따라 나가려 했지만, 로라는 지하실의 문을 잠갔다고 했다. 그리고 문을 발견하지 못하게 러그를 끌어와 덮어 가렸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습격이 해일처럼 섬을 쓸고 지나간 뒤 다른 사람이 헤더의 고함을 듣고 문을 열어주었으나 모든 일은 끝난 뒤였다. 결국 로라의 시신은 일부밖에 찾지 못했다.
클루스도가 경황없는 디겔과 헤더를 도와 로라의 장례를 치렀다. 디겔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그 대피소를 만든 것은 둘 모두 안전하길 바라서였다. 그러나 그 야무지고 강단 있는 사람은 피하는 것을 하지 않아 기어코 자신이 따라가지 못할 곳까지 가버린 것이다.
로라 조네스, 이 야박한 사람아,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정말로 날 두고 가버리면 어떡하는가…….
디겔은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우는 헤더를 끌어안고 울지도 못했다. 자신마저 세상이 다 망가진 마냥 굴면 헤더는 누가 챙긴단 말인가.
디겔은 반쯤 넋을 뺀 채로 시간을 보냈다. 겨우 생각할 머리가 생겼을 즈음엔 헤더도 마음을 추스르고 망가진 정원의 바닥을 다시 다지고 있었다.
디겔은 아내의 정원에 손을 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손대봐야 망가지기만 하는 정원, 차라리 마지막까지 로라의 손이 닿았을 모습을 그대로 두고 싶었다.
그래서 디겔은 처음 두어 번은 헤더를 말리다가, 어느 날 헤더가 다시 살려낸 나무를 보자 그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생각보다 그는 사실 로라의 화사했던 정원을 더 그리워했고, 헤더는 그럴 능력이 있고…….
자신은 무엇을 할 수 있지? 이젠 로라도 없고, 헤더는 로라의 정원을 돌보고 있는데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여기서 시간을 때울 셈인가?
디겔은 천천히 가슴속을 차갑게, 때로는 뜨겁게 달구는 응어리를 느꼈다. 평화를 바라던 자신의 소망이 지나쳤단 말인가?
이게 다 우홉피아주 때문이었다. 그놈들이 내 아내를 온전히 묻을 수조차 없게 하고, 내 평온한 가족을 망쳐버렸다. 나와 헤더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가장 소중하던 사람을 앗아간 작자들이…….
디겔은 새벽에 홀로 술잔을 기울이다가 울컥 솟아난 눈물을 술에 섞어 마셨다. 들이마시는 것이 슬픔인지 증오인지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얼마 후 바트릭이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의 딸의 장례를 치른 지 하루도 안 되어 일어난 일이었다. 디겔은 만연한 죽음에 진절머리가 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날 새벽엔 바트릭의 아들놈이 문을 두드렸다.
디겔은 제가 문을 열어놓고는 잠시간 침묵했다. 왜 이런 기분이 든단 말인가. 로라가 돌아온 것이라고 기대라도 했나? 어쨌거나 디겔은 도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로라가 바트릭의 아들딸에게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디겔은 작은 램프의 빛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다가 도멤과 주절주절 대화를 나눴다. 사실 디겔은 그 당시 도멤이 안타깝기는 했으나 신경 써 줄 여력이 없었으므로, 무슨 대화를 했는지도 자세히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어렴풋하게 헤더를 어떻게 둬야 할지 고민했던 것 같다.
도멤이 며칠간 그의 집에서 신세를 지는 동안, 디겔은 심혈을 기울여가며 정원을 가꾸는 헤더를 보고 고민에 잠겨있었다. 그의 마음은 거의 헤더를 섬에 두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헤더는 정원 가꾸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섬에 두자.
무턱대고 뱃길에 데려가는 일은 섬에 두는 것보다 배는 위험할뿐더러, 그가 만든 대피소로 피했던 헤더는 무사했으니 아마 앞으로도 제때 피하기만 한다면 될 것이었다.
헤더도 디겔의 의견에 찬성했다. 사실 헤더는 디겔이 다시 바다에 나가는 것을 바라지 않았지만 디겔은 이미 우홉피아주를 향해 칼을 갈고 있었다. 슬픔을 조금 떨쳐내고 되찾은 이성은 오로지 증오를 벼려내는 숫돌로 사용되었다.
디겔은 로라의 말을 기억했다.
‘이제 날 움직이는 건, 내 사랑하는 당신과 우리 딸이야.’
그것은 디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를 죽인 우홉피아주를 용서하지 못했다. 그들이 존재함으로 헤더가 다시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면 거의 미칠 것 같았다.
비단 디겔뿐만 아니라 섬의 대부분이 우홉피아주를 향해 전력으로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었기에, 어중간하게 해적질하던 검은바다는 완전한 복수귀로 다시 나타났다.
클루스도는 사람들을 이끌어 바다로 향했고, 그 중엔 디겔이 말렸던 키이엘로가 포함되어있었으나 디겔은 더는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단 한 가지의 목표에 사로잡힌 자는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다.
그렇게 디겔은 바다로 갔다.
그리고 바다에서 죽었다.
디겔은 이런 것이 주마등인가 싶었다. 사람은 때로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그 상황이 지난 뒤 되돌아봐야만 알아채는 때가 있다. 디겔의 시간은 아마 로라가 죽던 그때 멎어버린 것 같았다. 그러니 그때의 헤더가 얼마나 자랐는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가 마땅히 관심을 주고 주변에서 제지해야 하는 소년들이 배에 오르고 칼을 휘두르는 것을 아무런 생각 없이 대했다. 그는 그저 헤더를 로라처럼 잃을 수 없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그 집념에만 갇혀서 스스로의 시간을 멈춰버린 머저리였다.
자신이 세상을 멈춘 듯이 본다고 세상이 실제로 멈추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아둔했단 말인가? 자신이 무엇을 보든 그것은 자신의 시선이며 그 본질은 결국 자신이 개입하지 못하는 부분에 있을 것이다. 디겔은 고통과 함께 찾아오는 아릿한 후회에 입을 우물거렸다.
그가 조금만 더 딸과 대화를 했다면, 자신만의 강박에 너무 사로잡히지 않았다면 죽을 때 죽더라도 아쉽지는 않았을 텐데. 디겔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 헤더의 머리칼의 감각을 상기하기 위해 애를 썼다.
아기일 때는 솜털처럼 부드러웠고, 더 커서는 점차 뻣뻣해서 빗자루라고 놀리기도 했던 금발의 머리카락……. 젖살이 가득했던 뺨과 팔뚝이 길고 단단해진 것도 뒤늦게 상기했다.
몸이 자라면 마음도 자란다. 나이가 들면 생각도 시각도 달라진다. 그러나 디겔은 헤더가 그러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 어릴 때부터 봐서 그저 어린 상태 그대로인 것이라고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발 늦게 깨닫는 것이다. 그래, 너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작자들의 딸이었지.
디겔은 희미하게 한탄했다. 내가 그것을 모르고…… 그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그리고 끝에 이르러 디겔은 이제 로라를 따라갈 때가 되었다.
사랑하는 자를 위해 어디든 갈 수 있는 불량배 조네스를 그리며 울기만 하던 늙은 항해사는 이젠 그를 따라간다.
동부 해안에서 백 년 동안
서부 해안에서 백 년 동안
오, 그래 오, 백 년 전에
나는 불량배 존을 알지
바다에선 멋지지만
육지에선 불량배야
충고 따윈 듣지 않는 존
나는 항해사가 우는 것을 들었지
늙은 항해사가 우는 것을 들었지
하지만 그런들 존은 개의치 않아
그것 아는가?
나는 그대와 함께라면
그대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네
디겔은 흐려지는 의식 사이로 헤더를 쓰다듬던 손에 물방울이 닿는 것을 느꼈다. 그가 마지막으로 느낀 이승의 감촉이었고, 그것을 통해 그는 끝까지 슬퍼지고 후회하고 말았다.
그대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네
하지만 그런들
우는 항해사는 어찌하는가…….
바다새와 늑대 1부 외전1 (완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