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159)
바다새와 늑대 (158)화(159/347)
#2화
우투그루는 일순 벙쪘다.
“……네?”
“그렇지 않더냐. 바다새도 있고, 본인도 항해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던데.”
“하지만…….”
클루스도가 우투그루의 말을 끊고 혀를 찼다.
“우리 덕에 동생도 되찾았겠다,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일 아니겠느냐.”
“…….”
우투그루는 무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클루스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로트렐리는 하선을 계획하고 있는걸요. 우투그루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
사실을 하나 털어놓는 것만으로 벅차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우투그루를 클루스도가 응시했다.
“마음을 바꾸게 하면 되지. 시꺼먼 아저씨인 내가 가서 제안해도 그다지 듣지 않을 테니……. 네가 가서 말해 보거라.”
“제가요?”
“그래.”
우투그루는 당황스러웠다. 차라리 키이엘로를 시키지 왜 자신이란 말인가? 로트렐리가 어디 우투그루가 사정사정한다고 들어줄 위인이던가?
애초에 우투그루는 그녀 앞에서 빌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라고 로트렐리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로트렐리가 하선하지 않고 선원이 되어준다면 어떤 경우든 항해의 영역에서는 거리낄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로트렐리는 제 동생과 육지로 정착하길 바란다. 그런 로트렐리가 그들과 함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투그루가 말했다.
“그 애는 아마 생각을 바꾸지 않을 거예요. 차라리 아버지께서 진지하게 대화를 시도하시는 편이…….”
“네가 생각해도 그 애가 기를 꺾지 않을 것 같더냐?”
우투그루는 잠시 말을 잃었다. 클루스도의 말은 여상스러운 말투였으나 어딘가 불안한 감이 있었다. 우투그루는 클루스도를 쳐다보다가 가까스로 대꾸했다.
“네, 아무래도……. 동생을 위해서라면 해적질을 더 이어가진 않겠죠.”
“그래…….”
클루스도는 느긋하게 읊었지만 우투그루는 술렁거림이 사라지지 않았다. 설명할 수 없는 직감이 그의 불안감을 부채질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섬뜩함에 우투그루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동안 클루스도는 얼핏 웃으며 턱을 괴었다. 그는 짧은 시간에 선택한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 동생만 붙들어둔다면 바다새는 우리 것이 된다는 말 아니더냐.”
우투그루는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아들의 얼굴이 굳어지자 클루스도는 그를 달래듯 말을 이었다.
“우투그루, 잘 생각해 보거라. 우리에겐 이제 디겔도 없어. 하지만 그 자리를 대신하듯 바다새를 가진 여자애가 나타났잖니. 그 여동생을 잡으면 된다.”
“……그게.”
그게 우홉피아주와 다를 게 뭐죠? 우투그루는 그 말을 마저 꺼내지 않고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 잠시 눈을 질끈 감았던 우투그루는 침착하게 클루스도를 바라보았다.
“차라리 걔를 설득하는 것이 낫겠어요. 걔는 안 그런 것 같아도 곤경을 모르는 척하는 사람도 아니고, 어쩌면…….”
“내가 고작 그 애 하나를 위해서 고개를 숙여야겠느냐?”
클루스도가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말하자 우투그루는 입안을 깨물었다. 그러나 그는 금방 사실적이고 클루스도에게 거슬리지 않을 만하게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바다새를 위해서라면 응당 치러야 하는 대가일지도 모르죠.”
그 말에 클루스도는 흠, 하며 등을 도로 의자에 파묻었다. 우투그루는 클루스도를 응시했으나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어쩌면 너무 비싼 대가일지도 모르는 일이고 말이다.”
“…….”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왜 굳이 어렵게 구는 게냐?”
그렇게 말한 클루스도가 자리에서 일어나 우투그루에게 다가왔다. 순간 그는 깨달았다. 아버지는 이미 선택을 했다. 우투그루는 뒷걸음질 치고 싶은 것을 참으며 겨우 바닥에 발을 붙이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우투그루. 이런 일을 맡길 만한 것은 너뿐이야. 로트렐리를 유인한 뒤에 그 동생을 잡으면 되는 일이다.”
클루스도는 우투그루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듯 쥐고 느리게 말했다.
“알잖느냐. 이 아비는 너만 믿고 있단다.”
“……. 차라리 키이엘로를, 설득하시지 그러세요. 키이엘로는 로트렐리와 친하고……. 그 녀석이 동참한다면 로트를 설득하는 것도 쉬울…….”
“키이엘로? 우투그루! 진심인 게냐?”
우투그루는 얼핏 비웃음이 서린 목소리에 붉게 충혈된 눈으로 클루스도를 보았다. 우투그루는 이미 우홉피아주와의 전투에서 로트렐리가 어떤 사람인지 명백하게 보았다.
온갖 태만과 무감을 모아놓은 것 같다가도 의지와 분노로 돌변하는, 그야말로 파도치는 바다와 같은 사람. 그래서 그녀를 지배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 위를 따라 항해하는 것만이 가능한 자.
키이엘로가 로트렐리에게서 빛나는 의지와 열정을 보았다면 우투그루는 그 맹목적인 투지와 분노를 목격했다. 우투그루는 그런 종류의 사람을 건드려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안다.
백번을 봐줘서 만약 키이엘로가 이 배에 로트렐리가 머물기를 원한다면 그는 충분히 로트렐리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얼간이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고, 최후의 수단으로 그의 악력을 사용할 리 없다는 것 또한 알았다.
반면에 클루스도의 이런 반응은 우투그루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키이엘로를 아끼는 것이 아니었던가? 어쩌면 우투그루보다…….
우투그루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는 얼굴로 한 발 빠져 있는 주제에 클루스도에게 온갖 특혜는 받아 가는 키이엘로가 증오스러웠고, 그래서 그런 그와 똑같이 취급받지 않기 위해 항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렇지 않았던가? 클루스도가 비웃는 것인지 후련한 것인지 모를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말 안 듣는 그 애는 굴러온 돌이고 네가 내 아들 아니겠어.”
우투그루는 그 자리에서 굳어졌다. 그는 그 말에 기뻐해야 하는지 절망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렴풋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아버지, 당신은 정말로…….
그는 항상 의아했었다. 정말 아들로 인정받고 싶다면 저 멍청이는 왜 항상 자신이 피해자라는 얼굴로 능력을 뽐낼 자리에 불참하는가? 왜 항상 빈둥거리며 선원을 살피는 일조차 하지 않아 아버지가 도멤으로 하여금 키이엘로를 살펴보도록 말해야 한단 말인가?
왜 키이엘로는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닌 선장님이라고만 부르는가?
우투그루는 클루스도에게 묻고 싶었다. 왜요, 제가 키이엘로보다 길들어 있으니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요?
그러나 그는 감히 아버지에게 그렇게 따지지 못했다. 대신 우투그루는 고개만 끄덕였다. 맞아요, 아버지. 그에 클루스도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래. 이래야 내 아들이지.”
딱 하루를 더 고민하던 결국 우투그루는 그 자리로 왔다. 로트렐리 쪽에서 먼저 이용할 수 있는 패를 만들어줘서 다행이었다. 우투그루는 머릿속으로 수없이 계획을 돌려보며 검과 창 따위를 챙겼다.
그는 로트렐리와 그 일행이 있을 선실로 향했고, 이윽고 의아한 기색의 로트렐리에게 말했다.
“도와줘.”
* * *
갑작스레 들이닥친 우투그루를 당황스러운 눈으로 보는 로트렐리에게 그는 빠르게 말했다.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빨리 짐 챙겨. 무슨 일인지는 가면서 말해줄 테니까.”
“짐? 짐이라면 대부분 챙겼는데…….”
“그럼 네 동생이랑 들고 빨리 나와.”
우투그루의 급한 목소리에 도멤이 서둘러 그를 붙잡았다.
“무슨 일인데 그래?”
그러나 우투그루는 도멤에게 대꾸하는 대신 그의 품에 창을 떠밀었다. 반사적으로 창대를 받아든 도멤이 황당한 얼굴을 하는데, 우투그루는 키이엘로에게도 검을 내밀었다. 로트렐리는 의아한 얼굴을 하면서도 짐을 들고 일어나 그의 뒤를 따랐다.
로트렐리를 따라나선 랄티아는 불안한 얼굴로 우투그루를 보았다. 우투그루는 사방을 살피며 선원들의 눈을 피해 갑판으로 나가려 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클루스도에게 그들이 어디론가 가려 한다고 들키면 안 됐다. 그러나 우투그루의 걱정과는 달리, 선내에는 선원들이 적었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지만 우투그루는 어딘가 꺼림칙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한시가 바쁜 와중에 차근차근 설명할 여유는 없었다. 클루스도는 우투그루에게 오늘까지만 생각할 시간을 줬다. 그러니 그들이 검은바다를 나간다면 오늘 안에 탈출해야 했다.
감이 좋고 머리가 명석하다던 그녀의 동생은 그런 우투그루의 태도에서 무언가 미심쩍은 낌새를 눈치챈 것 같았다.
“누가 우리를 노려요?”
“…….”
우투그루는 허를 찔린 사람처럼 멈칫 멈춰 서며 입을 꾹 다물었다. 로트렐리의 어깨에 앉아 있던 발카가 자색 눈으로 그들을 빠르게 살폈다.
랄티아의 말에 얼굴이 굳어진 키이엘로가 들불처럼 홱 우투그루를 쏘아보았다.
“선장님이야?”
“설명하자면 길어. 일단 따라와.”
“어디로 가는 건데?”
키이엘로가 경계하며 묻자, 우투그루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우투그루가 키이엘로에게 무어라 쏘아붙이기 전에, 둘의 사이로 도멤이 끼어들며 말했다.
“둘 다 싸울 때야? 그리고 우투그루, 설명이 필요할 것 같긴 하다.”
“이 녀석은 선장님 말이면 뭐든 따르는 놈이야. 어떻게 믿으라고?”
키이엘로의 날 선 말에 도멤은 마찬가지로 마뜩잖은 얼굴을 했지만 침착하게 우투그루를 바라보았다. 우투그루는 키이엘로의 말에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내 입술을 콱 깨문 그는 짓씹듯 말을 내뱉었다.
“……아버지가 바다새를 원해.”
그 말에 로트렐리의 얼굴이 살벌하게 얼어붙었다. 바늘조차 들어가지 못할 듯 시퍼렇게 얼어붙은 표정은 흡사 혹한의 빙하 같았다.
로트렐리가 걸음을 멈추고, 우투그루를 보았다. 도멤 역시 당황한 표정으로 우투그루를 돌아보았다.
“왜? 그간 조용하다가 인제 와서?”
“아버지도 고민을……. 고민한 시간이 있었던 모양이지.”
우투그루는 답지 않게 버벅이는 말투로 그를 변호했다. 우투그루는 짙은 불신을 담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키이엘로의 시선에 짜증과 함께 미약한 수치심이 솟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로트렐리가 물었다.
“이것만 답해. 그렇다면 왜 내게 도와달라고 말했어? 내가 지금 널 돕는 거야, 아니면 다른 사람을 돕게 되는 거야?”
“날.”
우투그루는 지체 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로트렐리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것에 오히려 우투그루가 당황해 그녀를 보았으나 로트렐리는 침착하면서도 파랗게 빛나는 눈으로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일단은 내가 널 도와주겠다고 했으니까 덮어두고 네 말대로 해주지. 근데 만약 거짓말이었다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
로트렐리의 말에 우투그루는 입을 벙긋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그는 웅얼거리듯 말했다.
“그렇지만 이건 널 돕는 일이기도 해. 자세한 경위는 나중에 설명해주지. 지금은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면…….”
지체 없이 걸음을 마저 옮기는 로트렐리를 따라 다른 이들도 첨언 없이 그들을 쫓았다. 그러나 다소 횡설수설하던 우투그루는 갑판으로 나가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로트렐리는 의아한 얼굴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우투그루의 시선이 닿는 곳을 보고 표정을 굳혔다.
클루스도가 선미루의 난간을 짚고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