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160)
바다새와 늑대 (159)화(160/347)
#3화
랄티아는 조심스레 로트렐리의 손을 찾아 쥐었다. 로트렐리 역시 동생의 손을 마주 잡고 클루스도를 올려다보았다.
우투그루는 뻣뻣하게 굳어 버린 시선을 굴려 가까스로 갑판 위를 살폈다. 갑판의 위에는 검은바다의 남은 선원들 역시 소집되어있었다.
그는 뒤늦게 목구멍이 틀어 막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자신이 그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는 절망감이 덮쳐왔다.
“우투그루.”
클루스도는 고개를 기울이며 한숨을 쉬더니 아들을 불렀다.
“아무래도 계획은 실패한 모양이구나.”
“…….”
우투그루는 그가 자신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클루스도는 우투그루가 지금이라도 바다새를 아버지의 손에 쥐여주기를 종용하고 있었다.
사실 그러기 위해 이들을 데리고 나왔다고, 변명이라도 하기를……. 우투그루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주먹을 쥐었다.
그는 아버지를 적대하고 싶지 않았고, 선원들까지 소집된 지금 그들과 부딪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투그루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로트렐리에게 속삭였다.
“너……. 약속 지켜.”
그 말에 로트렐리가 눈을 크게 뜨는 순간, 우투그루는 브레딕과 눈이 마주쳤다. 브레딕의 붉은빛 눈동자가 그를 보고 있었다. 그것에서 우투그루는 미약한 위로를 느꼈다. 우투그루가 외쳤다.
“구명정은 선미에 있어! 당장 뛰어!”
그 외침에 로트렐리는 랄티아의 손을 잡고 선미로 푸른 꼬리별처럼 달려갔다. 우투그루와 키이엘로, 도멤 역시 그들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하자 클루스도는 얼굴에 서리가 내린 듯 표정이 가라앉았다. 그가 선미루의 난간을 쾅 내리쳤다.
붙잡아라! 클루스도의 명령에 잠시 주춤하던 선원들이 당황한 얼굴을 하면서도 이내 그들을 향해 덤벼들었다. 키이엘로가 텐에게 외쳤다.
“텐! 먼저 가서 배를 내려줘!”
『이젠 별걸 다 시켜 먹는군.』
늑대는 툴툴거리면서도 선미로 날아가듯 내달렸다.
로트렐리 역시 발카에게 말했다. 발카, 그를 도와! 바다새가 솟구치는 파도처럼 날아가는 순간, 로트렐리와 랄티아의 앞을 선원들이 막아섰다.
그들은 당황스러운 것 같다가도 곧이어 클루스도의 생각을 이해한 것 같았다. 로트렐리는 랄티아를 자신의 뒤로 감추며 이를 갈았다.
“비켜, 너희 상대할 생각 없어.”
“우리도 그랬다. 하지만 선장 명령이고.”
우리에겐 바다새가 필요하니까……. 선원의 말에 로트렐리는 긴말하지 않고 검을 뽑아 들었다. 싸둔 짐을 랄티아에게 던지듯 건넨 로트렐리는 일말의 주저 없이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캉! 날카로운 소음이 갑판 위를 울렸다. 로트렐리도 선원도 서로를 죽일 생각까지는 없는 이들이 검을 맞대니 도통 결착이 나지 않았다.
몇 번이고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리고, 수적인 열세에 몰려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나는 로트렐리의 뒤로 선원 중 하나가 덤벼들었다. 로트렐리는 유연하게 피했으나 이내 퍼뜩 랄티아를 바라보았다. 랄티아를 노린 거다!
“랄티아! 도망가!”
하지만 가야 할 선미의 방향은 막혀있었고, 랄티아가 갈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었다. 랄티아가 피스톨을 들어 겨누자, 그 위력을 똑똑히 보았던 선원들이 주춤하며 물러섰다.
그러나 피스톨의 안에는 마장석이 없었다. 그것이 들통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저 위협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로트렐리는 욕을 짓씹으며 랄티아에게 뛰어갔으나 이내 선원들에게 가로막혔다. 그녀가 이를 갈며 검날을 세웠다.
도멤 역시 선원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로트렐리와 랄티아에게 몰리는 선원들을 붙잡고 막아내는 탓에 점차 서로의 거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우투그루와 키이엘로 역시 무기를 들고 공격을 막아내며 로트렐리가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진척이 없었다. 선원들이 외쳤다.
“우투그루, 선장님 말씀을 어길 생각이냐?”
“너희 다 정신 차려! 우리에겐 바다새가 필요하다고!”
그들의 외침에 키이엘로는 어금니를 사리물며 선원들을 밀쳐냈다. 선원들이 우르르 넘어졌다.
그때 우투그루와 키이엘로의 앞에 클루스도가 곡도를 빼 들고 섰다. 클루스도는 두 아들의 앞에 서서 선원들을 내려다보았다.
“나머지는 도멤과 로트를 막아라. 동생을 붙잡는 데에 주력해.”
클루스도의 싸늘한 명령에 선원들이 주춤거리다 랄티아를 향해 달려갔다. 로트렐리가 고함을 지르며 그들을 막아냈으나 몰려드는 손아귀를 피해 밀려난 랄티아는 발이 엉켜 갑판 위로 넘어졌다.
자매가 정착을 위해 싸뒀던 짐이 떨어지며 물건들이 쏟아졌다. 키이엘로가 줬던 유리병과 하몬이 챙겨준 마장석 따위가 갑판 위를 구르며 마구잡이로 흩어졌다.
랄티아가 반사적으로 그것들을 주우려 했으나 로트렐리는 허공에 뻗어진 동생의 손을 가로채듯 잡고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뒤로 선원들이 자매를 붙잡기 위해 달려들었다.
키이엘로와 우투그루는 제 앞을 막아선 아버지를 보며 얼굴을 굳혔다. 우투그루가 긴장해 검을 고쳐 쥐고 있는 동안 키이엘로는 사납게 물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요, 선장님.”
“키이엘로, 탓하지 마라. 못 할 짓을 하는 것도 아니지 않더냐?”
“로트는 이 배를 떠나길 원합니다!”
“그거야 모를 일이지.”
클루스도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육지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아느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생면부지의 땅에서 여자 둘이 사는 것이 어디 쉽겠느냐? 우리는 바다새가 필요하고, 로트와 그 동생이 우리 배에 있는다면 그들도 어려운 일 없이 정착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어떻게…….”
키이엘로는 희게 질린 얼굴로 클루스도를 바라보다가 이내 단단하게 표정을 굳혔다. 그건 옳지 않아요. 그 말에 클루스도는 느슨하게 늘어뜨려 쥐고 있던 곡도를 고쳐 쥐었다. 그러더니 허허 웃었다.
“그럼 무엇이 옳은 선택이냐? 우리도 힘든 와중에 바다새까지 놓칠 수는 없는 일 아니더냐? 검은바다를 생각한다면, 내가 옳은 일을 했으면 했지.”
클루스도의 말에 키이엘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투그루는 긴장한 눈초리로 그것을 일별했다.
검은바다의 선원들도 마찬가지지만 그들도 서로를 죽이고 해할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우투그루는 되도록 마찰 없이 배를 빠져나가고 싶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최고로 충동적인 짓이라고 해도 좋았다. 우투그루는 로트렐리와 그 동생을 탈출시키는 동시에 자신도 함께 검은바다를 뒤로하고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키이엘로의 부러졌던 팔도 아직 완전히 낫지 않은 상황이었다. 선원들과 클루스도를 뚫고 선미로 안전하게 가는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을 뿌리치다 보면 유혈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르고, 혹은 탈출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계산을 하고 있는 우투그루와 달리 키이엘로는 불타는 것 같은 눈동자로 클루스도를 직시하며 말했다.
“우홉피아주가 했던 행동을 주워섬길 생각이신가요?”
“병든 아비에게 못 하는 말이 없구나, 키이엘로.”
클루스도가 불쾌하게 을렀다. 아무래도 내가 널 너무 편하게 대해준 모양이지. 우투그루는 입술을 깨물며 키이엘로를 힐끔 보았다. 진짜로 못 하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우투그루는 자신은 못 했던 말을 그가 대신 꺼내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클루스도를 불쾌하게 할 만한 말을 했기 때문에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반면 키이엘로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클루스도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너흰 내 아들이다. 내 뜻을 따라줄 생각은 없느냐?”
“…….”
우투그루가 침묵하고, 키이엘로는 검을 세워 들었다. 클루스도는 유감스러운 낯을 했다. 그는 고작 여자애 하나 때문에, 게다가 자신이 로트렐리와 그 동생의 편의를 충분히 봐주겠다고 했음에도 아들들이 제게 반기를 드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로트렐리와 한 편이 된다면 바다새는 우리의 것이 된다. 그 간단한 논리를 왜 알지 못한단 말인가? 이제 그도 늙었고 병들었다. 검은바다를 존속하고 생의 막바지까지 그럴듯하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라도 잃는 것이 아까웠다.
클루스도는 한탄했다가, 이내 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그래…….
“엇나가는 아들들을 훈육하는 것도 아비의 도리지.”
클루스도의 곡도가 단번에 횡으로 궤적을 그리며 휘둘러졌다.
랄티아에게 뻗어지는 선원들의 손아귀를 쳐내던 로트렐리와 도멤은 그들을 밀어내는 것도 힘에 부치는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도멤은 부상이 나은지도 얼마 되지 않았으며, 로트렐리는 최근까지도 깨어있는 때보다 정신을 잃고 있던 때가 더 길었다.
랄티아는 자리를 피하려다 인파에 떠밀려 다시금 넘어졌다. 그녀는 자신의 허약한 몸뚱이 상태가 새삼 지독하게 증오스러웠다. 그때 누군가 랄티아를 향해 창대를 휘둘렀다.
“랄티아!”
로트렐리가 날카롭게 소리치며 랄티아를 감싸 안았다. 창대가 로트렐리의 후두부를 가격했다. 도멤이 로트렐리를 부르며 뒤늦게 선원을 창으로 쳐서 밀어냈다.
랄티아 역시 저를 내리누르는 무게에 서둘러 로트렐리를 살폈다. 찢긴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로트! 정신 차려봐!”
도멤이 급하게 로트렐리의 어깨를 흔들었으나 로트렐리는 이미 의식을 잃은 것 같았다. 당혹감에 굳어졌던 도멤은 입술을 깨물고 랄티아를 보았다가 급하게 다시 일어나 창을 휘둘렀다.
선원들을 창대로 후려 패 물러나게 한 도멤이 등 뒤로 랄티아와 로트렐리를 살피며 외쳤다.
“랄티아, 로트를 들 수 있겠어?”
“해, 해볼게요.”
그러나 랄티아는 자신이 없었다. 다행히 로트렐리의 팔 아래로 몸을 넣어 부축하듯 들어 올릴 수는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처럼 쓰러진 사람을 들고 옮기는 일은 무리였다.
대치가 격해지기 시작하자 점차 서로의 무기가 거침없이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랄티아는 눈을 굴려 마장석이라도 찾아보려 했지만 짐이 떨어졌던 때에 흘린 탓에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그 순간 도멤의 옆에서 누군가 끼어들었다. 선원이 휘두른 검을 쇠뇌의 활대로 쳐낸 베제가 도멤에게 말했다.
“엄호할 테니까 가!”
“베제!”
도멤이 놀라 외치는 순간, 쾅, 하는 소음이 갑판을 뒤덮었다. 키이엘로의 발이 찍어 내린 갑판의 목재가 갈라져 있었다. 클루스도가 분노해 소리쳤다.
“네가 기어이 패륜을 저지르려는 것이냐!”
그러나 키이엘로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복잡해 보이기도 했고, 어떤 부분은 후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키이엘로의 손아귀에서 불씨가 튀어 오르자 선원들이 주춤거렸다. 아무도 괴력과 괴이쩍은 능력을 가진 부선장에게 달려들고 싶지는 않으리라.
클루스도는 격노한 얼굴로 곡도를 휘두르다가 우투그루와 눈이 마주쳤다. 키이엘로와는 달리 우투그루는 좀처럼 클루스도에게 덤비지 않았다.
그는 그저 이 배를 벗어나고 싶었다. 우투그루는 이 배의 선원이나 아버지를 공격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일이 틀어져서…….
그러나 그 순간, 클루스도는 우투그루에게 달려들었다. 이를 악물며 몸을 물리던 우투그루의 멱살을 틀어쥔 클루스도가 윽박질렀다.
“정신 차려라, 우투그루!”
우투그루는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굳어졌다. 그러나 그 순간 클루스도의 팔을 누군가 틀어쥐었다.
덥수룩한 백금발이 클루스도와 우투그루 사이를 가르며 휘날렸다. 우투그루는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브레딕은 그런 우투그루를 마주 보며 긴장 어린 얼굴로 웃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