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17)
바다새와 늑대 (16)화(17/347)
#16화
도멤과 우투그루를 둘러싸고 있던 해적들이 우리를 눈치챔과 동시에 단도가 날아들었다. 남은 검 하나로 날아드는 단도를 막고 나와 키이엘로는 앞으로 튀어 나갔다. 날 찌르려 드는 해적의 칼을 옆으로 피하며 들고 있던 검을 바닥에 꽂았다. 그러면서 칼을 든 해적의 손을 잡으며 팔꿈치를 붙잡아 팔을 꺾었다.
상대가 이를 악무는 것과 동시에 나는 해적의 팔을 휘둘러 다른 해적을 찌르고 꽂아두었던 검을 뽑아 들었다. 검으로 팔을 잡은 해적을 찌르고 발로 걷어차자, 덤벼들던 다른 해적이 부딪혀 쓰러졌다. 그런 해적의 가슴팍을 우투그루가 팍 찍었다.
피가 분수처럼 튀었다. 창을 휘두르던 도멤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거 수가 너무 많지 않아? 쥐처럼 번식이라도 했나.”
“일단 나가! 어두워서 제대로 싸울 수도 없다고!”
키이엘로와 도멤이 뒤쪽에서 해적들을 막는 사이, 나와 우투그루는 각자 횃불과 램프를 들고 앞으로 달려가며 숨어있다 달려드는 해적들을 처리했다. 우리가 들어왔던 갑판 계단에 도착했을 때, 숨을 몰아쉬던 도멤이 꽥 소릴 질렀다.
“저게 뭐야! 아깐 없었잖아!”
“뒤에 다시 온다!”
우투그루가 소리치며 단도를 던졌다. 달려오는 와중에도 저걸 주운 건가, 조금 질린 얼굴을 했다가 나도 검을 고쳐 쥐었다. 계단 쪽은 나무상자 등이 잔뜩 쌓여서 막혀있었다. 열댓 명이 달려오는 것을 보며 이를 사리무는데, 돌연 키이엘로가 계단 쪽으로 뛰어들었다.
“키이엘로?”
내가 당황하는 사이, 키이엘로는 길을 막은 나무상자 중 큰 것을 잡더니 손에 힘을 주었다. 곧 우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궤짝들이 무슨 쿠키 부수듯 부서지는 것을 목격한 나는 입을 벌렸다. 미친놈 아냐? 저걸 저렇게 부순다고?
그러나 우투그루나 도멤은 그다지 놀랍지 않은지 오히려 키이엘로를 재촉했다. 빨리 해! 더 빨리 못 부수냐? 키이엘로는 둘의 재촉에 울컥한 것 같았지만 이내 빠르게 상자를 모두 부수고 남은 잔해를 던져 가까이 온 해적들을 쳐냈다.
도멤과 우투그루가 빠져나가자 키이엘로와 나도 계단을 올라갔다. 그때 단도가 날아들어 내 다리를 스쳤다. 악, 하고 비명을 지르자 키이엘로가 놀라서 얼른 내 팔뚝을 잡아끌었다. 이어 내가 도멤의 부축을 받자 그는 갑판 위에서 주변을 살피다가 얼굴을 조금 단단하게 굳혔다.
우투그루가 작게 욕을 짓씹으며 검을 고쳐 쥐었다. 계단에 장해물을 쌓은 범인으로 보이는 해적들이 우투그루의 검에 쓸려나갔다. 키이엘로는 갑판 아래에서 올라오는 해적들을 막았고, 나는 나를 부축하려는 도멤을 만류하고 검을 들었다.
도멤이 창을 빙글 돌리며 앞뒤로 해적들을 찌르고 한 바퀴 돌며 다가오는 해적을 밀쳐냈다. 나는 그 틈에 허리띠를 풀어 다리에 동여매고 검을 휘둘렀다. 검술 특성상 다리를 많이 써야 하니 얕은 부상인 옆구리는 내버려 두는 게 나았다. 우투그루와 도멤이 서둘러 해적들을 해치웠다.
갑판 위의 해적들을 상대하다가 키이엘로 쪽을 보자, 계단에서 우르르 넘어진 해적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키이엘로는 빠르게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들이 했던 것처럼 계단을 막으려는 생각 같았으나, 처음 와서 살폈던 것처럼 갑판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키이엘로의 눈이 꺾인 돛대에 꽂혔다.
나는 설마, 하는 눈으로 키이엘로를 보았다. 그때 키이엘로가 갑판 위에 있는 부러진 돛대 중 작은 조각으로 다가갔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돛대의 크기에 비교해서 작다는 말이었지 계단을 틀어막을 수 있는 정도의 크기는 되는 것을 말이다.
키이엘로가 그것을 들어 계단 쪽으로 처박았다.
도멤은 제가 다 뿌듯하단 얼굴이었고, 우투그루는 심드렁할 뿐이었다. 나는 당황해서 그들을 보다가 키이엘로가 별달리 지친 기색 없이 가자, 하고 말했을 땐 속으로 비명을 질러야 했다.
쟤 대체 뭐야?
내 속은 어찌 됐든 그들은 서로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모두 피범벅이었다. 검을 한 번 털어 피를 떨쳐낸 우투그루가 피곤하다는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버지와 디겔 아저씨께 보고하러 가야겠어.”
검은바다로 돌아가면서 내가 다리를 절자 도멤이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아, 로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리띠로 종아리를 졸라맸으나 부족했던 모양인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하긴, 전투가 한창이라 마음이 급해 제대로 지혈하지 못했으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우투그루는 다리를 다쳐 속도가 느려진 나를 조금 못마땅하게 보았지만, 딱히 뭐라 말을 하진 않았다. 나는 도멤을 보고 그가 내게 했던 물음을 돌려주었다. 너는 괜찮아?
내 말에 도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내가 그런 질문을 할 줄 몰랐다는 얼굴을 했다. 그러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걱정할 정도의 몸 상태는 아냐……. 그리고는 그 말과 동시에 도멤은 와췌, 하고 거하게 재채기를 했다. 나는 도멤이 창을 휘두르던 장면과 지금의 대답을 서로 맞춰 보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럼 그게 감기 때문에 컨디션이 안 좋은 와중에 휘두른 창이란 말이지.
우리는 서둘러 검은바다에 올라 숨을 골랐고, 그사이에 우투그루는 간부진에게 곧장 가서 해적선에서의 일을 말했다. 키이엘로가 아, 하더니 자신도 간부진 쪽으로 황급히 다가갔다.
클루스도와 디겔은 해적이 있어 전투했다는 말에 잠시 놀랐을 뿐,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 ‘다 알고 있었다’ 표정을 보고 조금 속이 울컥하는 걸 느꼈지만 키이엘로가 말을 꺼내자 그마저도 사그라들었다.
“그 녀석들, 우홉피아주 산하 해적이에요.”
“뭐?”
“확실해? 장담할 수 있어?”
놀라는 간부진 사이로 우투그루가 날카롭게 반응했다. 그에 키이엘로가 조금 울컥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확실해. 우리가 떨어졌던 층에 우리 쪽 정보원이 죽어있었어. 이번에 합류하려 했던 사람 말이야.”
“뭐……!”
디겔이 기함했다. 키이엘로가 빠르게 진정하며 클루스도와 디겔에게 마저 설명했다.
그들이 시체에 가했던 짓과 시체의 목덜미에 찍혀있던 문양까지 말하자 그들의 얼굴이 누구 하나 빠짐없이 심각해졌다. 그들은 죽은 정보원을 안타까워했으나 우홉피아주에 대한 정보도 없다는 것에 유감스러워했다.
도멤이 내게 작게 말했다. 언제나 이런 식이긴 했어. 정보원은 검은바다 밖의 인원이라고 했다. 대충 키이엘로가 물자 조달을 하면서 정보원을 요청하면, 정보를 다루는 쪽에서는 정보원을 보내는 식인 것이다. 계약관계다 그거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선원이라면 좀 더 슬퍼했을 텐데 의외로 깔끔하다 싶었다. 말하자면 이번 정보원은 좀 많이 버틴 편이었다고 했다. 우홉피아주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고, 어느 섬을 들렀는지 따위를 알려주는데, 그걸 토대로 우리 쪽에서 단서를 조합해 정보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위험한 일을 하려는 사람이 있는 게 신기했지만, 우홉피아주는 악명이 높은 만큼 적도 많은 모양이었다.
나는 내가 홀로 항해한 지 이 주일쯤 되었을 때 마주쳤던 검은바다를 떠올렸다. 과연. 우리 섬의 정보도 들어왔었단 걸까.
우홉피아주는 규모가 상당히 컸다. 잔악하기로도 손에 꼽지만, 그 규모는 혀를 내두를 정도라 정보원들이 속속 죽어 나가는 이유도 수많은 눈에 의해 걸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솔직히 우홉피아주가 암만 크다 해도 일개 해적인데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약간의 의아함과 회의감이 들었지만, 굳이 추궁하지는 않았다.
요컨대 검은바다가 만들어진 지 거의 십 년 가까이 되어가면서도 우홉피아주를 못 잡고 있는 이유는 그런 연유에서였다. 배에서 죽어있던 정보원을 떠올리고 속이 울렁거리는 걸 느꼈다. 아무렇지 않게 뒤집어썼던 피 냄새가 이제야 코를 자극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애써 생각을 돌려 도멤에게 물었다.
“근데 우리 아직 그 해적들 모두 죽인 게 아니잖아. 가두고 왔지.”
“맞아……. 빨리 얘기해야겠네.”
그렇게 말하며 도멤이 대화하는 간부진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 하는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배에 충격이 왔다. 내가 재빨리 난간으로 몸을 빼 해적선 쪽을 보았다. 도멤이 뭐야? 저기서 쏜 거야? 하고 당황했다.
나는 미간을 좁히고 난파선을 보았다. 그리고 입에서 욕이 나오는 것을 막지 못하고 소리쳤다.
“이런 썅! 저놈들이 포를 꺼냈어요!”
“뭐? 분명 선내에서는 화약 냄새가 없었는데…….”
키이엘로가 당황해서 내 옆으로 와 해적선을 보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키이엘로와 달리 나는 배 뒤쪽으로 화약을 들여놓는 것을 보고 이를 갈았다. 저놈들, 배 밖으로 화약을 빼둔 건가? 선장인 클루스도가 정보원에게 전서구를 보낼 것이라 했으니 아마 그 전서구를 받고 대비를 해둔 것이 분명했다.
디겔이 서둘러 선미루 위로 뛰어가 종을 거세게 울렸다.
술에 취한 해적들은 나오는 족족 도로 갑판 아래로 밀어버리고, 정신이 있는 선원들을 무장시키며 소리치는 클루스도의 목소리가 귓가에 윙윙 울렸다. 나는 천을 찾아 다리를 단단히 동여매고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 다리가 욱신거렸지만 참을만했다.
다시 한번 난파선 쪽에서 포를 쏘았다. 쾅, 하는 소리가 왕왕하게 울렸다. 화포의 무게가 무거우니만큼 화약을 배 아래에서 가져오는 것이 어려운 듯했지만 그래도 위협적인 건 변함이 없었다.
나는 어느새 갑판 아래에서 검은 가죽 코트를 챙겨와 팔을 꿰고 있던 키이엘로에게 물었다.
“우홉피아주가 너를 잘 알아?”
“그런 편이지. 나는 딱히 눈에 안 띄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치고는 굳이 화약을 배 밖으로 꺼내 놨다가 들이는 수고를 하는 걸 보면 키이엘로를 경계했던 것일 수도 있었다. 하긴, 검은바다가 우홉피아주를 완전히 격파한 적은 없어도 자잘한 전투는 했을 것이다. 그때 목격한 키이엘로의 괴력을 경계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정신 나간 놈이지.
키이엘로가 나에게도 코트를 내밀었다. 탁한 푸른색의 코트였다.
“경갑 같은 건 없으니까 별수 없어. 이거라도 입어야 해.”
나는 알아서 팔을 꿰어 입고 혁대를 졸라맸다. 검은바다의 선원들이 하나둘 백사장으로 내려가 난파선 쪽으로 소리치며 달려갔다. 갑판 위에서는 포를 꺼내 포좌의 문을 열어 반격을 준비했다.
발사! 외치는 소리와 함께 포가 쏘아지는 소리가 하늘을 쪼개는 우레처럼 크게 울렸다.
그때 내 눈에 베제와 웬 어린 소년이 들어왔다. 쾅, 우리 쪽에서 쏜 포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번개처럼 깨달았다. 저 애가 제일 어리다던 프라세구나. 클루스도의 명령에 베제는 프라세에게 칼을 매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저절로 꺼림칙해지는 기분을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바쁜 와중이란 것을 알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도멤과 키이엘로가 내려갈 준비를 하다가 날 보고 눈을 깜빡이며 멈췄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디겔에게 말을 걸었다.
“저, 프라세인가, 이 애도 출전하는 건가요?”
내 말에 디겔이 자신도 그닥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우투그루가 날 보고 얜 뭐지, 하는 얼굴로 보며 품이 큰 소매에 끈을 감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프라세와 내 눈이 마주쳤다. 구불거리는 고동색 머리칼 사이로 회색 눈이 순하게 빛났다. 진심이에요? 나는 무심코 날카롭게 말했다. 로트! 도멤이 작게 비명을 지르며 키이엘로와 함께 내 쪽으로 뛰어왔다.
동시에 디겔과 베제가 나를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다들 내가 먼저 무슨 말을 하면 저렇게 눈을 뜨는 것 같단 말이지. 내가 못할 말 했나?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