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171)
바다새와 늑대 (170)화(171/347)
#14화
“…….”
난데없는 말에 도멤은 허공을 휘젓던 손을 갈무리하고 다시 우투그루를 돌아보았다.
“왜 그런 말을 해? 여긴 사창가도 아니라고 했잖아.”
“그걸 믿어? 확실히, 그들이 말한 일을 하고 있는 건 맞아. 하지만 그렇다고 매춘을 하지 않느냐는 말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더군.”
도멤은 그런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투그루의 첨예한 감각이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건물에 손님이 드나드는 것을 보지 못했다. 어떤 종류의 손님이든 말이다.
도멤은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우투그루에게 물었다.
“이곳 사람들이 뭔가 속이고 있을 거라 생각해?”
“글쎄. 하지만 의심해서 나쁠 건 없지.”
“하지만 키이엘로가 데려온 곳이고, 걔만 보고 우리를 숨겨 준 사람들이야. 굳이 우릴 속여서 뭘 한다고?”
“로트렐리의 바다새를 잊은 모양인데.”
우투그루의 차가운 말에 도멤은 할 말을 잃었다. 도멤의 눈이 반사적으로 어둡고 조용한 주변을 살폈다.
“그, 바다새를 넘기려고 할 거라 생각하는 거야?”
“일리 있는 이야기 아닌가.”
도멤은 약간의 초조함을 느꼈다. 로트렐리는 이미 바다새를 빌미로 동생을 두 번씩 빼앗겼고, 육지에서는 소문이 파다해 운신에 제한이 걸려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런 것들로 이미 압박감을 느끼고 있을 로트에게 이 이상 불안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우투그루의 팔을 붙든 도멤은 혹시나 방 안에 있는 로트가 들을까 겁나 그를 데리고 계단의 층계참으로 끌었다. 우투그루는 인상을 찌푸리며 버티다가 도멤이 자신을 데려가는 이유를 뒤늦게 알아챈 듯 순순히 걸음을 옮겼다.
도멤이 말했다.
“키이엘로를 아이 때부터 알아 왔던 사람들이야. 섣불리 의심할 수는 없어.”
“창부들 사이에서 우정이 피어나나?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우투그루……. 만약 네 의심이 이 건물 사람들 대다수가 매춘부였기 때문에 오는 거라면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는 걸 넌 알아야 해.”
도멤의 말에 우투그루는 인상을 찡그렸다. 창백한 이마가 일그러진 미간 탓에 갈라졌다.
“왜 아냐? 저들은 돈만 주면 뭐든 하는 사람들이야. 몸도 파는 작자들이 다른 건 왜 못 팔겠어?”
“우투그루.”
도멤은 앓는 소리를 내며 이마를 문질렀다. 우투그루의 어머니인 겔라 부인이 워낙 엄격한 사람이었기에 그 아래에서 우투그루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호의에 기대 지내는 중이었다. 게다가 키이엘로 역시 그들이 치료를 도와주고 있었다.
도멤이라고 사창가들이 즐비한 골목에서 지내는 것이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종종 불쾌한 취객의 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무엇보다 자신의 기본적인 윤리관에 어긋나는 장소에 있다는 불편함이 골목을 상기할 때마다 느껴졌다.
그러나 그건 그거였고,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투그루의 의심이야 거의 습관에 가까운 일이었으니 그를 논리적으로 설득한다면 우투그루가 날을 세우는 걸 만류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도멤은 침착하게 말했다.
“키이엘로와 오래 인연을 이어왔고, 그의 어머니와도 인연이 있는 분이셔. 우리야 여기 사람들을 처음 보니까 쉬이 믿긴 힘들지만 키이엘로와는 쌓아온 신뢰가 있을 거잖아.”
“그리고 그놈은 앓아누운 상태고 말이지. 저놈이 정신 못 차리는 틈에 우리 옆구리에 칼날 하나씩 꽂고 어디 구석에 버린 뒤 변명하려 들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야, 너는……. 너 왜 이리 사람이 어두워?”
너 뭐 이상한 책이라도 봐? 배신과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그런 거? 행복하던 사람이 나락으로 가는 그런 거? 도멤은 얼이 빠져 중얼거리듯 한탄했다.
아니, 어떻게 생각이 이렇게 튀지? 이쯤 되면 제일 위험한 건 우투그루였다! 도대체 누가 저런 생각을 하냐고!
그러나 우투그루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도멤을 보다가 말했다.
“그깟 인연, 키이엘로가 돈이 되는 것 같으니 붙이려면 그놈 어머니 이름이야 얼마든지 갖다 댈 수 있어.”
“우투그루…….”
거기까지 듣자 도멤은 우투그루의 불신에 마담 릴리 같은 사람을 향한 경멸이 뼛속 깊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걸 어떻게 해결하나……. 도멤은 동시에 고민했다.
우투그루의 말이 굉장히 야박하게 들리긴 했으나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심하기에는 그들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도멤은 우투그루를 힐끔 보았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솔직히 난…… 네가 너무 과하게 사람을 못 믿는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우투그루, 매춘부라고 해서 그들이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생각만 하는 건 아냐. 물론 그들의 직업 자체는 옳지 않고…… 나도 그에 거북함을 갖고 있지만, 로지안나가 말한 것처럼 여기 사람들은 거기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있는걸.”
“그런 희망찬 이야기에 기대서 사람을 믿으라고? 그랬다가 뒤에서 칼 맞으면 누가 책임지지?”
너 진짜 삭막하게 산다……. ‘꿈, 희망, 자존감, 사랑’ 중에 고르라고 한다면 ‘망자’에 동그라미 칠 것 같은 녀석 같으니. 스스로가 그 넷 중에 고르라면 ‘감사’를 고를 것 같은 사람임을 생각하지 않은 도멤은 속으로 우투그루의 박정함에 혀를 찼다.
착잡함에 우러나온 탄식을 애써 집어넣고 심호흡을 한 도멤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물론 네 의심도 타당한 면은 있지만, 네가 너무 덮어놓고 의심만 하니까 하는 말이잖아.”
우투그루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덮어놓고 믿다가 등에 칼 맞는 것보다 덮어놓고 의심하는 게 낫지’하는 얼굴이었다. 도멤은 짧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무엇보다 키이엘로의 어머니도 매춘부셨고, 그분은 키이엘로를 비교적 잘 키워내셨어. 그런 분들이 정말 돈만 생각했다면 키이엘로는 잘 클 수 없었을 거야.”
“자식까지 팔 생각으로 키웠을지 누가…….”
우투그루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도멤은 충격받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말실수했다는 것은 알았는지 우투그루의 표정이 흔들렸다.
둘 사이에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우투그루를 바라본 도멤은 조용히 을렀다.
“너 그런 말, 키이엘로 앞에선 절대 하지 마.”
“…….”
“여기서 지내는 게 불편해서 그러는 것 같은데,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는 걸 너도 알잖아, 우투그루.”
도멤의 말에도 우투그루는 묵묵부답이었다. 그에 도멤은 옅게 한숨을 쉬고 우투그루의 어깨를 두드린 뒤 몸을 돌려 걸어갔다.
우두커니 선 우투그루의 귓가에 방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도멤이 방으로 들어간 뒤에야 그는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그때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생각하는 줄은 몰랐구나.”
“……이젠 엿듣기까지 합니까?”
마담 릴리였다. 마담은 털이 풍성하던 까만 숄은 어디에 뒀는지 품이 낙낙한 나이트 셔츠와 깅엄체크가 들어간 어깨걸이를 걸치고 있었다. 새빨간 립스틱도 바르지 않아 낮보다 창백하고 가냘프게 보였으나 검은 칠을 한 손톱은 그대로였다.
인상을 찌푸리고 날카롭게 내뱉는 우투그루를 아래층에서 올려다본 마담은 어깨를 으쓱였다. 너희가 와서 대화한 거지, 난 계속 여기 있었어.
그 말에 우투그루는 더 말하지 않고 몸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마담 릴리의 목소리가 그의 발을 붙들었다.
“여길 나가면 갈 곳은 있니?”
“…….”
“아이를 치료하며 챙길 여력은 있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우투그루가 마담의 하얀 머리칼을 노려보며 일갈하자 마담 릴리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와 그의 앞에 섰다. 마담에게서 옅은 술 냄새가 풍겼다. 우투그루가 인상을 찌푸리는데, 마담 릴리가 입을 열었다.
“아이가 말했던 것 같은 성격은 아니구나, 너. 왜, 여기 있는 게 그렇게 몸서리나니? 구태여 이러저러한 이유 붙여가며 꺼리고 싶을 정도야?”
“마주치는 사람마다 댁을 좋아할 이유는 없을 텐데요.”
“글쎄다……. 내가 보기에 너는 그냥 이곳을 자세하게 아는 걸 피하는 것 같아서 말야.”
우투그루는 잠시 말을 잃었다. 마담 릴리는 그를 보다가 헛헛하게 웃고는 계단의 난간에 팔을 걸치고 턱짓했다. 아이가 최근에 불을 쓴 적이 있니?
그 말에 우투그루는 얼굴을 굳히고 마담을 바라보았다. 키이엘로가 인간 성냥처럼 불을 다룬다는 것은 그들로서도 최근에 알았던 일이다.
그가 그러든 말든 마담 릴리는 여유로운 기색으로 우투그루를 보다가 작게 속삭였다. 쓴 적 있구나. 우투그루는 미간을 좁히고 자리를 뜨려 했다.
그녀와 더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친근하지도 않은 연장자가 말을 길게 늘어놓는 것은 그 같은 젊은이라면 누구든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가 몇 걸음 더 옮기기도 전에 옆구리의 끈에 매어둔 담뱃대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들이마신 마담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지니아에게 여길 보여주고 싶었어. 퍽 사람처럼 사는 꼴을 하고 있다고 말야.”
“……뭘 말하고 싶은 겁니까?”
우투그루가 신경질적으로 마담을 돌아보자 그녀는 흘러내린 머리칼을 넘기면서 담배를 빨았다. 그에 우투그루는 자신이 말려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키이엘로의 어머니 이름이 나오든 말든 그냥 방으로 들어가 누웠어야 했다. 우투그루가 속으로 한탄하거나 말거나, 마담 릴리는 우투그루를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난간 너머로 실내의 작은 로비를 바라보았다.
마담이 담배 연기를 내뱉어냈다.
“아이가 언젠가 했던 말이 기억나. 그 애가 다시 연락이 닿았던 게 열여섯 즈음이었나……. 만난 가족들과는 잘 지내느냐 물어보니까 뜻대로 안 되었다고 했었지.”
“…….”
“그런데 그때쯤 네가 나를 알았다면 너도 나에게 그 애와 비슷한 얘길 할 것 같네.”
마담은 얼굴을 샐쭉 비틀더니 우투그루를 보았다.
“넌 아이의 파편을 밟고 싶지 않은 거지, 그렇지?”
“밟아봤자 피만 볼 것 굳이 왜 밟습니까?”
“그게 너에게 그만큼의 날카로움은 되는 모양이구나.”
우투그루는 입을 다물었다. 마담 릴리는 별다른 덧붙임 없이 담배를 빨아들였다. 그녀가 뱉어내는 회한인지 뭔지 모를 것이 뭉게뭉게 피어 우투그루의 발치에 쌓였다.
우투그루는 이것에 넘어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게 뭐란 말인가, 그딴 자식.
불쾌한 사생아, 불쾌한 짐승, 불쾌한 매춘부, 불쾌한 사창가에 불쾌한 담배 연기. 모조리 불쾌하고 불편한 것들뿐이었다.
우투그루는 꽉 다물린 턱의 아래로 물에 잠긴 것처럼 답답함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에게 키이엘로는 어느 날 나타나 제 가족을 무너뜨리고 모든 것을 멀리서 관조하는 작자였다.
그런 놈에게 무슨 사정이 있었다며 온 세상 사람들이 떠들더라도 자신만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인제 와서 그런 것 따지며 손 내밀기에도 형제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그러나 우투그루는 매캐한 연기에 그을리는 것처럼 둔중하게 폐부를 짓누르는 감각 아래에서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마담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입가에서 연기가 하얀 뱀 혀처럼, 혹은 새어 나오는 연륜처럼 흘러나왔다.
“넌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듯 보이지. 하지만 살다 보면 저절로 보여.”
마담의 까만 눈동자가 우투그루의 얼굴을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
“너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감정적인 작자들이야. 그걸 애써 이성으로 둘러 아닌 척하지.”
우투그루는 그것을 듣자마자 패배를 직감했다. 그는 마담을 돌아보았다. 마담은 우투그루를 비웃지도, 안타깝게 여기지도 않는 무미건조한 눈동자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우투그루는 입술을 깨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이 어떻게 키이엘로가 불을 다룬다는 것을 알고 있죠?”
그에 마담은 얇게 입꼬리를 올리며 읊조렸다. 긴 이야기가 될 거야.
아주 긴 이야기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