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182)
바다새와 늑대 (181)화(182/347)
#25화
나는 생각을 흩어내고 키이엘로를 돌아보았다. 키이엘로는 어딘가 미심쩍다는 얼굴로 허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투그루를 떠올리며 지독하게 의심하는 중인 것 같았다.
아직 덜 아문 상처 탓에 셔츠 안으로 붕대를 두르고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그도 다 나았으니 이후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여기던 참이었다. 나는 키이엘로에게 물었다.
“마담께 발카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지?”
“응. 일단 잘 숨기면서 다녀야겠지…….”
“내 눈도 문제야. 뭐, 그래. 발카나 내 눈은 어떻게든 잘 가리자 치고. 어디를 향할지도 문제야. 검은바다가 어디로 갔는지 아는 바가 없잖아.”
내 말에 키이엘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고민하는 표정으로 잠시 허공을 응시하다가 내게 말했다.
“우홉피아주를 쫓을 때처럼 정보원을 써야 하나?”
“그거 돈 들지 않나? 보통 얼마나 드는데?”
키이엘로는 머뭇거리다가 내게 가까이 와서 귀에 대고 속닥였다. 나는 그가 말한 금액에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그건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자.”
“그래…….”
지금의 우리에겐 그만한 돈이 없어……. 퍽 처량하게 중얼거리던 나와 키이엘로는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게다가 키이엘로가 말한 금액은 우홉피아주에게 원한이 있는 정보원에게 할인을 받은 금액이었다. 검은바다의 정보를 얻을 땐 그런 요행도 바랄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더해, 항해하는 배는 추적하기 힘든 면이 있다. 그러니 몇 년 넘게 우홉피아주를 쫓던 검은바다의 담판도 이제야 겨우 끝을 보게 되지 않았는가.
그래, 그 돈을 써가며 정확한지도 모를 정보를 사는 것보다 차라리 초월자를 한 번 더 찾아가는 미친 짓을 하자.
그때 멀찍이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멤이었다. 그는 어깨에는 발카를 앉혀두고 빨랫감이 가득 든 통을 옆구리에 끼우고 있었다.
“너희 둘이 멀뚱멀뚱 서서 뭐 해? 다 끝났으면 나 좀 도와주라.”
“……훌륭한 전업주부다.”
키이엘로가 중얼거리는 말에 웃음을 터뜨린 나는 도멤에게 다가가 발카에게 손을 내밀었다. 얼른 내 팔에 옮겨 앉은 발카는 내게 부리를 문질러댔다.
『바다는커녕 밖에도 못 나가니까 심심해.』
“좀 참아. 지금은 별수 없으니까.”
나는 발카의 깃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리고 도멤에게 말했다.
“도멤, 검은바다가 어디로 갔을지 짐작되는 건 없지?”
“음……. 그때 너무 멀어져서 갔을 거라고 추정되는 곳이 너무 많아…….”
“그런데 로트, 이전에도 말이 나왔지만 무작정 찾아간다고 해서 해결되진 않을 거야.”
“나도 알아.”
나는 눈가를 가린 머리카락을 대충 쓸어올리며 말했다. 나도 그 부분에 관해서는 고민을 했었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무작정 쳐들어가서 너 죽고 나 죽자 덤빌 생각 만만이었던 것은 우홉피아주만으로 족했다.
나는 이제 포기가 아니라 미래를 바라봐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전과 같은 마음가짐으로는 검은바다를 상대할 수 없음이 분명했다. 물론 다 같이 간다고 해서 검은바다를 우리 넷이서만 상대하는 건 무리지만, 적어도 도움을 받을만한 구석은 있었다.
도멤과 키이엘로를 바라보며 내가 말했다.
“사란을 불러볼까 생각 중이야.”
“사란……. 그러고 보니 인어가 있었구나. 그 인어가 검은바다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것까진 기대 안 해. 그렇게 바다 위의 누구든 찾아갈 수 있다면 굳이 내게 자기를 부르는 방법을 알려주진 않았겠지.”
일전의 붉은 바다로 찾아왔던 것도 불안정해진 내 기운을 느끼고 온 것이라고 했으니, 그때처럼 어떠한 특정 지표가 있지 않은 이상 내가 없는 검은바다를 찾아낼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밑져야 본전이니 물어보긴 할 생각이지만.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도멤은 이내 어깨를 늘어뜨렸다.
“문제는 밖에 나가기 힘들단 거지.”
“맞아…….”
나 역시 어깨를 늘어뜨리며 한숨을 쉬었다.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 데다, 몰래 항구까지 갔다손 쳐도 인어를 불러내는 순간 그것이 다른 이의 눈에 띄면 큰일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이 인어를 불러낼 수도 없었다. 키이엘로와 도멤도 기운 빠지는 한숨을 쉬었다.
“한밤중에 로지안나 그 여자랑 같이 다녀와.”
우리 셋의 사이로 냉랭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고개를 퍼뜩 들자, 우투그루가 위층의 창가에서 우릴 내려다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눈을 깜빡이다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뭐라고? 그에 우투그루는 짜증이 섞인 얼굴로 나를 보며 재차 말했다.
“로지안나 그 여자랑 밤에 다녀오라고.”
“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로지안나야?”
“시커멓게 커다란 사람 둘이 있는 것보다는 누가 봐도 여자인 사람이 끼어있는 게 경비병의 의심을 덜 사.”
우투그루는 한숨을 쉬더니 미간을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밤이면 네 눈이나 인상착의도 별로 두드러지지 않을 거고, 지리는 로지안나가 잘 알고 있겠지. 만약 경비병이 너희 둘을 발견하더라도 강도나 무뢰배라고 의심을 하진 않을 테니까.”
그 말에 도멤이 동의했다.
“우투그루 말이 맞아. 물론 정말 당장 나간다면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나는 끙 앓는 소리를 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그럼, 그건 내가 로지안나와 알아서 얘기해볼게.
내 말에 어련히 그러라는 듯 우투그루는 미련 없이 창가에서 몸을 떼고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키이엘로는 자기 할 말만 하고 가버리는 우투그루가 못마땅하다는 얼굴을 했으나, 남보다 못한 사이답게 금방 관심을 거두고 나와 도멤에게 말했다.
“인어의 도움을 받아서 검은바다를 추적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자. 우리가 쪽수가 부족하니까 배수진을 치자면 해군에게 신고하는 방법도 있긴 해.”
“이야……. 해적이 해군에게 해적을 신고한다니.”
내 말에 키이엘로는 어쩌겠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몰랐어? 우리는 지금 퇴직한 해적이잖아. 그 말에 와하하 웃던 도멤이 말을 받아 입을 열었다.
“어쨌든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다 보면 방법이 보일 거야.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나는 도멤의 말을 듣고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들이 내 믿음에 응해 검은바다를 쫓는 것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고마웠지만 동시에 약간 의문이 들었다.
특히 우투그루는……. 그렇게 배에 헌신했는데도 인제 와 생각이 바뀐 걸까? 키이엘로와 도멤은 나름 검은바다에 미련이 없으리라 생각하면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는데 우투그루는 영 미심쩍었다.
잡일을 마저 모두 끝내고 방으로 돌아가며 나는 계속 그것을 생각했다.
클루스도의 말을 거역한 우투그루, 항상 검은바다를 위해 일하던 우투그루, 클루스도가 사라지면 모든 게 평화로워질지 모른다던 우투그루, 병색이 짙어진 클루스도를 걱정하는 우투그루, 섬에서 뚱한 얼굴을 하던 우투그루, 겔라 부인의 고함 아래 서 있던 우투그루…….
그 모든 것들이 서로 들어맞지 않는 퍼즐 같았다. 나는 끼워 맞출 수 없는 조각들을 늘어놓다가 이내 모두 쓸어 담아 뚜껑을 닫듯 생각을 그만뒀다.
그래도 우투그루는 간사한 녀석은 아니니까. 나는 부러 상념을 흩어내고 걸음을 마저 옮겼다.
* * *
해가 저물어 갈 즈음, ‘오늘도 처먹어라, 돼지들아!’하며 우렁차게 식사를 가져다주는 로지안나를 대뜸 잡아다 나는 복도로 나왔다.
쟁반을 내려놓기도 전에 내게 끌려 나온 로지안나가 눈을 둥글게 뜬 채 나를 보고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일이야? 밥 안 먹을 거니?”
“부탁할 일이 있어.”
나는 낮에 상의했던 일을 이야기하며 로지안나를 살폈다. 로지안나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상상 이상으로 흔쾌히 그래! 하며 대답했다.
물론 거절당하리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조금 얼이 빠져서 로지안나에게 말했다.
“넌 셀리팜이잖아? 그런데 우릴…… 생각보다 잘 도와주네.”
“너희는 지금 검은바다에서 나왔다며? 그리고 셀리팜과 검은바다의 동맹도 우홉피아주가 끝장난 이후로는 딱히 지킬 필요도 없고. 뭐, 그리고 솔직히 검은바다에 속해있었대도 어쨌든 도와주긴 했을 거야. 릴리 이모는 키이엘로라면 무조건 도와주려 하고, 키이엘로는 널 도와주려 하니까 릴리 이모를 도와주고 싶어 하는 나는 결과적으로 너도 도와주는 거지.”
나는 뜻밖의 이야기에 로지안나를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다단계야? 어쩐지 로지안나가 창부로 위장하였다 해도 마담 릴리의 가게에 너무 붙어있다 싶었다. 나는 로지안나에게 물었다.
“생각해 보니 그렇네. 셀리팜은 어디에 두고 왜 여기에 와있는 거야?”
“난 휴가 받았어.”
“…….”
해적이 휴가라고……. 워라밸이 보장되는 해적선이었다니, 셀리팜을 다시 봤다. 내 시답잖은 생각을 가르고 로지안나가 말했다.
“농담이고, 사실 셀리팜 쪽에서 내 편의를 많이 봐준 편이긴 하지. 요새 제국 정세가 뒤숭숭한 건 아니? 그 탓에 제국 아래의 섬들까지 요동치고 있어……. 불안한 시대란 말이야.”
제국이 불안정한 것과 셀리팜에서 로지안나가 편의를 받은 이유가 무슨 연관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깨만 으쓱였다.
“나는 애초에 고향도 작고 동떨어진 시골 섬이었던 터라 잘은 몰라.”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른 섬들은 아닐걸? 이 섬을 포함해서 말야. 특히 백려는 난리가 났지. 제국이 대체 뭘 준비하는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낌새가 이상해.”
‘백려’라……. 세운과 원의 고향인 나라였다. 그 둘은 잘 지내고 있을까 모르겠네. 야무지게 생긴 의원과 무심한 낯짝의 무사를 떠올린 나는 시선을 돌렸다.
로지안나는 옆을 지나가는 여자애에게 쟁반을 맡기고 그 안에서 빵 두 개를 꺼내더니 내게 하나를 내밀었다. 일행이 있는 방으로 쟁반을 든 여자애가 도도도 걸어가는 것을 본 나는 빵을 손으로 떼며 물었다.
“어떤 면에서 이상한데?”
“몇 가지 알려줄까. 거인의 바다에서 무차별적으로 포경사업을 횡행해서 고래들의 씨가 마른 것, 마찬가지로 먹지도 않는 물고기를 막무가내로 잡아들이고 땅을 파헤쳐 유황을 죄다 캐는 점, 해적들을 깡그리 잡아들이고 있는 점…….”
마지막은 그다지 이상하지 않은데…….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로지안나를 보았으나 그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전부 자연이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정책 방향이었다.
아무리 제국이 육지의 모든 물자가 자신의 것이라는 듯 파렴치하게 굴고 있다곤 해도 이상했다. 그놈들이 화약을 독식하니, 슬슬 해적단은 포탄을 구하는 것도 벅차지고 있다고. 로지안나가 볼멘소리로 꿍얼거렸다.
하기야, 화약을 만드는 데에 염초가 가장 많이 들어간다고는 해도 다른 부가 재료를 제국이 독점한다면 화약의 물가가 오르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게다가 제국이 아예 화약의 거래 자체를 관리 감독하려 든다면 못 할 것도 없으리라. 대체 왜 그런 일을 하지? 제국의 정책들이 뭘 목표하고 있는지도 알기 어려웠다.
그때 내 어깨에 앉아 있던 발카가 질색을 하며 말했다.
『위험해, 바다가 망가지면 결국 육지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어있어.』
그 말에 나는 부쩍 늘어난 바다의 이상 현상과 괴물 출현을 떠올렸다. 예전에 사란에게 들었던 말처럼 정말 바다가 망가지고 있는 걸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