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187)
바다새와 늑대 (186)화(187/347)
#30화
마담의 인사를 뒤로하고 골목으로 나오며 도멤이 키이엘로에게 물었다. 혁명단이 뭐야?
그에 모자를 눌러쓰던―외모를 가리기 위한 봉인 도구였다― 키이엘로는 잠시 주변을 살피더니 가벼운 목소리로, 그렇지만 다소 나직하게 말했다.
“제국에 반발해서 운동을 벌이는 단체야. 예전부터 점점 생기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규모가 커져서인지 제국군이 눈을 까뒤집고 찾고 있는 것 같더라.”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어쩌면 마담 릴리의 ‘비밀 보장 대실’ 따위의 고객이 그런 사람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도멤이 작게 감탄하는 와중에 우투그루는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는 듯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대낮이라 고요한 골목길을 설렁설렁 건달처럼 걸어가며 내가 물었다.
“혁명단이라. 뭐에 반발하는 거지?”
“여러 가지겠지. 섬의 식민화부터 다른 민족 문제에 심지어는 환경보호단체까지 끌어들였다더군. 크게 대두되지 못한 문제까지 포함하면 아마 엄청나게 많은 불만이 있을 거야.”
우투그루의 말에 나는 소소하게 감탄했다. 거, 잡탕이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그렇게까지 하나? 그냥 제국이 싫어서 모인 것 아냐? 다른 누군가와 같이 목소리를 내봐야 제국 같은 큰 세력에 맞선다면 기죽기밖에 더하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집단이 불현듯 가엾어졌다. 그러나 내 생각을 반박하듯 우투그루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제국의 행보가 공익을 해치는 면이 있어서 다들 아닌 척하지만, 심적으로 가담하고 있을걸. 혁명단에 호의를 갖고 있는 것을 더하면 그 수는 더 많겠지. 당장에 혁명단에 우호적인 기사를 실었다가 폐간된 신문만도 몇 개인지.”
“신문을 폐간해?”
“그럼 자기들한테 불리한 이야기를 떠드는 언론을 제국이 가만히 두겠어?”
나는 속으로 제국에게 혀를 내둘렀다. 독재자 납셨네. 하긴, 제국은 독재가 아닌 척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들이 하는 일은 이미 로지안나에게 들어서 환멸이 나긴 했지. 시시콜콜한 땅 위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골목을 나왔다.
골목 밖으로 나와 사람들의 인파에 섞이기 시작한 뒤로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혁명단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꺼내지 않았다. 다만 서둘러 필요한 것을 사고자 발걸음을 재촉했을 뿐이었다.
먼저 육포 따위의 저장식을 산 우리는 순조롭게 대장간까지 향했다. 옷은 상인과 너무 거리가 가까워지기 때문에 가장 마지막 일정으로 미룬 상태였다.
다행히 항구도시라 그런지 무기를 구비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혹은 수수한 옷차림인 우리를 보고 심부름을 나온 급사 정도로 생각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날씨가 점차 더워지고 있어 대부분 비슷한 얇은 옷들을 입고 있어 의도치 않은 위장술을 펼친 기분이었다.
검과 창을 사는데 들어가는 돈이 아까워서라도 제대로 된 것을 골라야 했다. 총기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제국이 화약을 독점하고 있는 만큼 총기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다소 규모가 있는 섬들은 이미 화약 거래 규제가 있는 걸지도 몰랐다. 괜히 신 포도를 보는 여우 심보가 되어 나는 속으로 툴툴거렸다.
됐다 그래, 어차피 장전하는 데 시간도 걸리고 사거리도 짧은 총기보다 검이 훨씬 낫다. 이왕 마련하는 거, 날도 잘 들고 가볍고 잡는 감도 좋고 튼튼하고…….
그러다 문득 나는 미미하게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분명……. 우홉피아주를 처음 만났을 때, 누군가 나한테 총을 쏘지 않았었나? 잠시 고민하던 나는 혼자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놈들이야 워낙 세력이 컸으니 총 한 자루쯤은 갖고 있었을 수도 있겠지.
검은바다와 전투할 때는 눈에 띄지 않았으니 그들도 총기에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 금방 날렵하고 짧은 검을 고른 우투그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기대고 있던 기둥에서 몸을 떼어냈다. 이어 키이엘로와 내가 검을 골라 대금을 치르던 때 우투그루가 우리에게 다가와 나직하게 말했다.
“제국군이다.”
그 말에 우리는 반사적으로 돌아가려는 고개를 간신히 붙들었다. 나는 괜히 빵모자의 작은 챙을 잡고 내리다가 검을 천에 둘러 내미는 대장간 주인의 손에 얼른 그것을 받아들었다.
철 두드리는 소리가 시끄러운 대장간 밖으로 척척, 열 맞춘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밖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제국군을 구경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인 것처럼 창을 고른 도멤이 얼마 없는 주화를 세며 눈을 흘겼다.
“뭐 저리 험상궂게 돌아다녀?”
“그러게. 진짜 그 혁명단인지 뭔지를 찾는 건가?”
도멤과 내가 속닥거리는데, 대장간의 주인장이 대뜸 우리에게 끼어들었다.
“다른 섬에도 죄다 제국군들이 파견된 모양이오. 요새 소문도 있던데. 새로운 수배지도 내려온다고…….”
갑작스러운 난입에 당황한 내가 슬쩍 고개를 숙여 눈가를 모자챙으로 가리는 동안, 도멤이 넉살 좋게 속닥거렸다.
“제국군은 하여간 사람 수는 안 부족한가 봐요.”
“부족할 일이 뭐 있겠소, 모자라다 싶으면 다른 섬에서 잡아다 입대시키면 되는 것을.”
가죽으로 된 작업복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던 주인장이 떨떠름한 얼굴로 대장간 앞을 지나가는 제국군들을 흘기며 혀를 찼다. 그런 것을 차치하더라도 많고 많은 땅 중 가장 큰 땅을 갖고 있는 제국은 인구도 많았다.
그 많은 인구가 다 귀족이진 못하니까 부려 먹을 노동력도 많은 셈이었고, 제국인 외의 이들을 그들보다 한 단계 낮은 신분으로 보니 인구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못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제국이 여러 국가로 분열되어 있던 옛날이라면 모를까 제국이 통일되고 승기를 잡은 지금은 다른 섬들이 단합해 저항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게다가 제국과 다른 섬들의 기술 격차도 점차 커지는 추세였다.
더 나중이 되면 검이나 창은 쓸모없어질지도 모르지. 그때는 총 맞기 싫어서라도 사람들이 몸 사리며 살지도 모르겠다.
나는 작게 말했다.
“제국을 조각조각 쪼개야 해.”
“나중에 너한테 땅을 가르는 능력이 생기면, 알지? 제국부터야.”
꿈도 큰 헛소리를 지껄이며 도멤이 작게 키득였다. 다 샀으면 어서 가자. 우투그루가 우리를 재촉했다. 그러자 도멤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인장을 보았다.
나는 그제야 도멤의 창을 감싸던 주인장의 손이 뚝 멈춰있는 것을 보았다. 의아함에 슬쩍 고개를 들자 그와 눈이 딱 마주쳤다. 내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주인장의 입이 느리게 벌어지는 것과 동시에 도멤이 멍한 얼굴을 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챈 키이엘로가 긴장해 주인장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우투그루가 나와 도멤을 뒤로 잡아끌고는 주인장과 눈을 마주했다.
“그, 그 눈…….”
“오늘 하늘이 맑네요.”
“그…….”
“그렇죠? 하늘이 맑죠? 멀쩡한 사람 눈을 파란색으로 오해할 만큼.”
우투그루의 낮은 목소리에 주인장은 나를 가리키던 손을 움츠렸다. 우투그루의 목소리 속에 ‘그렇다고 하지 않으면 이 좋은 날이 네 제삿날이 될 거다’라는 의미가 담겨있음을 잘 알아챈 것 같았다. 주인장은 우리의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나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발카를 두고 와서 다행이라고 다시금 생각했다. 바다새는커녕 그냥 새조차 보이지 않는 일행에 그는 긴가민가한 얼굴이 되었다. 그 틈에 도멤이 얼른 창을 받아들었다.
그러자 키이엘로가 천사처럼 웃으며 주인장의 손에 주화 몇 닢을 얹었다. 그리고는 눌러썼던 모자를 살짝 올리며 그의 손을 잡고 상냥하게 말했다.
“좋은 검 감사해요.”
이…… 이 새끼, 미인계와 뇌물 수수가 너무 자연스러웠다! 심지어 공갈 협박을 갈기던 우투그루의 얼굴마저 굉장히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이 되었다. 이 둘로 이복형제 공갈단을 꾸려도 좋을 것 같았다.
주인장은 미인계에 당한 것인지 뇌물에 당한 것인지, 혹은 그 둘 다에 당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벌어지던 입을 딱 다물었다. 그러자 키이엘로는 곧장 우리를 데리고 대장간을 나섰다.
도멤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어쩐지 얘네 둘과 함께라면 아무것도 안 무서울 것 같아.”
“여러 의미로 사회 경험이 풍부해 보이긴 하더라.”
나는 서둘러 걸음을 재촉하며 지껄였다. 해적 새끼들, 아주 다재다능했다. 나와 도멤이 그러든 말든 키이엘로와 우투그루는 말없이 성큼성큼 발을 놀렸다. 되도록 빨리 자리를 벗어나려는 것 같았다.
하긴, 저 주인장이 끝까지 입을 다물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저 둘은 이럴 때만 죽이 잘 맞지, 아주. 그러나 그런 태평한 생각은 얼마 가지 못해 깨졌다.
대장간을 뒤로하고 광장을 가로지르는 순간 뒤에서 주인장의 외침이 울렸다.
“파란 눈! 파란 눈이다!”
일순 왁자지껄한 광장 위로 누군가 얼음물을 부은 것 같았다. 파란 눈? 바다새를 데리고 있다는? 어디에? 광장이 술렁이는 소리가 마구잡이로 울렸다.
그러자 키이엘로에게서 드물게 욕설이 터져 나왔다.
“이런 씨, 돈 아까워…….”
그러나 그것에 웃을 수 없었다. 광장의 끄트머리로 나가려던 제국군의 행렬이 주인장의 외침에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그 앞의 대장 격으로 보이는 인물이 주인장을 보았다. 뛰쳐나가려는 다리를 간신히 붙들고 있는데, 나와 우투그루의 눈이 마주쳤다.
그가 작게 말했다.
“뛰지 마. 지금 우리한테 발카 없는 걸 기억해. 천천히 걸어…….”
우리는 웅성대는 인파 속으로 눈에 띄지 않을 속도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의 바람과 달리, 제국군은 너무 빨리 주인장에게 도착했다.
그리고 주인장은 손가락을 들어 우리 쪽을 똑바로 가리켰다. 사람들의 시선이 도미노처럼 좌르륵 우리를 향했다.
그 순간 우투그루가 이를 갈며 외쳤다.
“튀어!”
곧장 인파를 헤치고 달려 나가기 시작하자 광장에서 밀쳐진 사람들의 비명이 터졌다. 서라! 제국군이 외치며 우리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인파가 있는 거리라 그들은 함부로 발포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투그루가 달려오는 제국군들을 향해 생선을 늘어놓은 좌판을 뒤엎어 던졌다. 얼음조각과 비린내 나는 생선들이 하늘을 부유했다.
도멤이 외쳤다.
“아깝게 뭐 하는 거야!”
“어차피 우리 거 아냐! 생선값 생각하다 저놈들에게 붙잡힐 참이야?!”
나도 생선 가게를 하는 자영업자에게는 미안했지만 우투그루의 말에 동의했다. 제국에게 청구하세요! 물론 제국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나는 속으로 욕을 쉴새 없이 짓씹었다. 젠장, 젠장, 대장장이 개자식! 뇌물까지 받고 얼굴에 넘어가서 입 닥쳤으면 끝까지 입을 닥쳤어야지!
망할 새끼, 파란 눈을 제국에 넘기면 부귀영화가 따라오기라도 하냐? 늘어진 가판대를 뛰어넘고 사람들을 피해 내달리는 그때였다.
뒤에서 제국군이 외쳤다.
“그레고리 경에 의해 수배된 자다! 푸른 눈의 마녀! 푸른 눈은 생포하고 나머지 폭도는 사살하라! 잡은 자에게는 포상이 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