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bird and the Wolf RAW novel - Chapter (195)
바다새와 늑대 (194)화(195/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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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우투그루가 자신을 어떻게 쳐다보든 아랑곳하지 않은 키이엘로는 그들이 오기 전에 먼저 불쑥 선반들 사이에서 나갔다. 램프를 들고 나간 그의 모습에 승무원 중 한 명이 화들짝 놀라 외쳤다.
“뭐야? ……승무원? 왜 여기 있어?”
“그게…….”
키이엘로는 램프를 든 채 보란 듯 고객들에게 힐끔 시선을 주더니, 자신에게 말을 건 승무원에게만 손짓했다. 가까이 오라는 뜻이었다.
그에 주춤하던 선원이 제 일행들을 보았다가 고객인 부부에게 고갯짓으로 인사하고 다가왔다. 가까이 온 그는 바닥에 옷차림이 흐트러진 채로 쓰러져있는 선원 둘과 세 명이 더 있는 것을 보고 멈칫거렸다.
키이엘로는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선원에게 고개를 기울이고 속닥였다.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탓에 제압하느라고 소음이 새어나간 모양입니다.”
“불미스러운 일?”
선원은 가까이 다가온 지나치게 수려한 얼굴에 흠칫하다가도 그 내용에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키이엘로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한심한 작당을 한 모양이라…….”
“……어떤?”
키이엘로가 나직하게 말하자 선원의 목소리도 덩달아 나직하고 은근해졌다. 우투그루는 그런 그들을 보며 ‘저건 또 무슨 짓이냐’하는 얼굴을 했다.
그리고 우투그루의 시선과 부딪친 로트렐리는 ‘나라고 알겠냐’하는 얼굴로 눈을 굴렸다. 그때 키이엘로가 약간의 참담함을 담은 어투로 말했다.
“제 친구를 그렇고 그런 마음으로…… 덮치려 한 모양입니다.”
“뭐? ……‘그렇고 그런 마음’? 누굴?”
키이엘로는 시선으로 우투그루를 쳐다보았다. 그에 도멤과 로트렐리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우투그루는 당연히 키이엘로의 말에 지독하게 불쾌하다는 표정을 했고, 도멤과 로트렐리는 입술을 깨물고 있는 게 선원의 눈엔 모두 치욕스러워하거나 분노하는 후배들처럼 보였다.
키이엘로, 이 대단한 놈. 로트렐리는 속으로 야유인지 환호인지 모를 것을 외치며 입술을 더 꾹 깨물면서 고개를 숙였다. 선원은 쓰러진 이들을 떨떠름하게 보았다가 키이엘로에게 물었다.
“그럼 이렇게 두들겨 둔 건 너희 짓이냐?”
“친구가 당하는 꼴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죠.”
꽤 능청스럽게 말한 키이엘로가 이어 원통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그래……. 그렇지만 고객께는 어떻게 변명할 생각이냐, 에밀?”
“큽…….”
도멤이 기침하듯 웃음을 토해냈다. 그러나 선원은 분함에 헛기침한다고 생각한 것인지 대수롭지 않게 그것을 넘겼다.
‘에밀’은 눈을 잠시 굴리고는 끙 앓는 소리를 냈다.
“저희가 직접 가서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마 어느 정도는 고객님들께서도 이해해주실 겁니다.”
그에 선원은 결론이 마음에 든 것인지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선원들에게 돌아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언짢은 기색이던 남자 고객도 그가 돌아가자 주름져있던 미간이 펴졌다. 승무원이 ‘죄송합니다’로 시작된 긴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사이, 일행은 빠르게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 물자를 싸두었던 들었다.
로트렐리가 배낭의 주둥이를 열자 발카가 눈치 빠르게 그 안으로 들어갔다. 바다새도 보이지 않게 들었고, 든 짐으로 인해 옷에 수놓은 이름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선원인 척 위장하고 배의 갑판까지 가서 구명정을 타고 나가면 된다. 그들은 시선을 교환했고, ‘에밀’은 떨어진 것을 줍는 척 쓰러진 선원 중 진짜 에밀의 이름을 뜯어냈다.
이름이 있던 부위는 몸싸움을 하다 보면 뜯어질 수 있는 위치였기 때문에 크게 의심을 사지는 않을 것이다. 키이엘로는 뜯은 천 자락을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고, 쥐덫을 찾기 위해 흩어지는 선원들을 스쳐 고객들에게 다가갔다.
그 뒤를 따라온 일행들을 보고 고객에게 설명하던 선원이 의아한 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웬 보따리야?”
“사실 이 심부름 때문에 함저 구역에 왔던 거라서요.”
“아……? 그래?”
선원은 알쏭달쏭한 얼굴로 눈을 굴렸다. 함저 구역의 물자를 뺄만한 일이 있는지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그의 생각이 길게 이어지기 전에 키이엘로가 서둘러 그것을 끊어냈다.
그는 퍽 능숙하게 진상 고객들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선내에서 승무원들 사이에 있던 불미스러운 일로 승객분들께 피해를 끼쳤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시정하겠습니다. 이후 객실에서 룸서비스를 추가적으로 제공하는 식으로 보상을 받으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줄줄 흘러나오는 말에 로트렐리는 상황도 잊고 잠시 넋을 잃고 키이엘로를 쳐다보았다. 뭐지? 내가 알던 그 사회성 부족 키이엘로가 맞나?
얘 왜 이런 부분에서만 경력이 많아 보이냐? 비슷한 눈치로 도멤과 시선을 교환하던 로트렐리는 문득 진상치고는 고객 둘의 태도가 조용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생각보다 순한 진상이었던 건가? 아직도 키이엘로를 향해 이를 아득바득 갈고 있는 우투그루를 제외한 셋이 다소 의외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때였다.
로트렐리는 귀부인과 눈이 마주쳤다. 다소 어둑하긴 했으나 램프가 바로 근처였다. 빠르게 고개를 숙이긴 했지만 로트렐리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저 표정은 뭐지? 그 젊은 부인은 자신을 보고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처럼 묘하게 비틀어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과 오랜만에 만났을 때 긴가민가하며 골몰하는 것과 빼닮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로트렐리는 저런 부인을 알지 못했다. 그녀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귀족처럼 보이는 부부의 뒤에 시종 차림의 남자가 서 있었고, 그들의 주변에는 승무원이 하나 있었다.
여차하면 밀치고 도망갈 수 있겠군. 로트렐리는 내심 안도했다. 그때 남자 쪽이 부러 점잔빼는 기침을 하고는 혀를 찼다.
“그런 일엔 일절 관심 없소. 보상도 필요 없고. 여객선에서 이게 웬 소란인가 싶을 뿐이지. 어쨌든 쥐가 있는지는 또 모를 일이니 앞서 말했듯 쥐덫만 확인하고 객실로 돌아가겠소.”
옆에서 그 말을 들은 선원이 ‘에라이, 귀찮게…….’하는 눈을 한 채 입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안내하겠습니다.”
그때 창고 안쪽에서 어, 하는 외침이 울렸다. 이번엔 또 뭔가 싶었던 선원이 미간을 좁히고 고객 둘에게 양해를 구하더니 서둘러 그쪽으로 몇 걸음 옮겼다.
“왜 그래?”
“차, 창고들 문이 안 잠겨있어서 열어봤는데…….”
말을 흐리는 내용을 들은 키이엘로는 조용히 직감했다. 도멤의 사회적 지위를 버린 처음의 시도도 무산되더니 우투그루를 판 이번 시도도 무산되는구나.
그와 비슷한 생각을 모두 했는지 도멤은 흐리게 웃으며 붙든 배낭을 더 단단히 잡았고, 우투그루는 키이엘로를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로트렐리 역시 설마 하는 마음과 탄식을 동시에 하며 눈을 흘겼다가 다시금 부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굳은 것인지 놀란 것인지 모를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남자의 팔에 건 손에 힘이 들어갔는지, 옆의 신사가 그녀에게 몸을 기울이며 ‘왜 그래?’하고 물었다.
그때였다.
“이게 뭐야!”
열려서 엉망이 된 창고들을 확인한 선원이 비명을 꽥 질렀다. 그에 함저 구역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그쪽을 향해 모여들었다.
운명을 감지한 로트 일행은 느리게 고객들의 옆으로 자리를 옮기는 척 함저 구역의 위층으로 가는 계단을 향해 걸음을 떼었다.
“너희 여기서 무슨 일 있던 건지…….”
선반에서 튀어나온 선원이 그들을 향해 묻다가 묘한 예감을 느꼈는지 말을 뚝 끊었다. 그리고 고개를 슬쩍 기울이며 그들이 든 배낭을 바라보았다.
“너희…….”
“선빵.”
키이엘로가 나직하게 말하며 천장에 붙어있던 문을 퍽 쳐서 열어젖혔다. 힘을 과하게 줬는지 문은 거의 부서지며 떨어져 나갔다. 위층의 밝은 전등 빛이 터지듯 함저 구역에 있는 이들의 눈을 파고들었다.
“필승!”
놀라서 그들을 가로막으려는 시종을 발로 차며 로트렐리가 다시금 외쳤다. 그것과 거의 동시에 그들은 몰아치는 폭풍처럼 창고를 뛰쳐나갔다.
깜짝 놀란 남자 고객이 왁 소리치고, 부인은 아직도 얼이 빠져 있었다. 선반들 사이에 있던 선원들은 고함을 지르면서도 당장 나오지 못했다.
넷은 복도를 가로질러 몇 개의 층계를 더 올라갔다. 번개 같은 속도였다. 두어 층을 올라가자 난간이 있는 여객선의 복도가 나타났다.
시간은 한낮, 어둑하던 함저 구역에서 보지 못했던 햇빛이 쨍하게 그들을 뒤덮었다.
호화로운 여객선에서 그렇게 우당탕 뛰어다니는 것은 어린아이를 제외하면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그만큼 복도를 달리는 내내 마주친 승객이나 승무원들이 화들짝 놀라 저마다 비명을 질러댔다.
난간 너머에서 울리는 파도 소리와 창해의 푸른 산란이 로트렐리에게 미약한 해방감을 담은 들숨으로 가슴 깊이 퍼지고 있었다. 비단 그녀만 그런 기분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달리는 내내 실성한 듯 으하하 웃어대던 도멤이 장난꾸러기 소년처럼 외쳤다.
“우리 진짜 폭도 된 거 같아!”
“이미 그렇게 불리고 있는데 원하는 대로 해드려야지.”
시니컬하지만 유쾌한 얼굴로 응수하던 우투그루는 잠시 후 걸음을 멈춰 섰다. 호위병으로 보이는 이들이 그들의 앞길을 막고 있었다.
우투그루가 이를 갈았고, 키이엘로는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쓸고 지나갈지 말지 고민했다. 아직 노상 갑판까지는 한 층이 더 남아있었다. 호위병 중 한 명이 외쳤다.
“단델리온 백작 부인의 명령으로 당신들을 저지하겠습니다! 저항을 포기하고 무릎을 꿇으십시오!”
갑작스러운 소동에 구경하려는 승객들과 그들을 통제하기 위한 승무원, 여객선 내의 호위 인력과 귀부인의 호위병까지 득실득실 모여들자 바다 외에는 빠져나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승객들이 수군거리며 일행을 보고 있었다. 로트렐리의 앞은 단델리온인지 뭔지 하는 부인의 호위병이, 뒤는 여객선의 승무원들이 막고 있었다.
“도둑놈들! 밀항자에 도둑입니다! 잡아야 해요!”
창고에서 말을 나눈 선원이 폐가 터져라 달려온 탓에 숨을 허덕이면서 외쳤다. 그에 고상한 선객들이 웅성거리며 흥미 가득한 눈으로 일행을 바라보았다.
우투그루가 혀를 찼다.
“백작 부인에 호위병까지 있다니, 생각보다 더 사치스러운 여객선이었군.”
“쓸어낼까?”
“넌 무슨 사람 친다는 걸 벼룩 털어내는 것처럼 말하냐.”
키이엘로를 타박하는 도멤을 마지막으로 로트렐리가 넌지시 물었다.
“다들 짠물 먹은 비스킷도 괜찮냐?”
난데없는 말에 셋이 의아한 얼굴로 로트렐리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로트렐리는 품에 안고 있던 배낭의 주둥이를 열었다.
“발카, 나와!”
『멀미 나서 죽는 줄 알았어.』
잠시 툴툴거린 푸른 파도 빛의 새가 구름을 가르는 대기처럼 창공으로 솟구쳐 날아올랐다. 승객들 사이에서 경탄이 섞인 외침이 울렸다.
도멤이 약간의 불안을 담고 물었다.
“로트, 뭐 하려고?”
“움직이지 마라!”
호위병이 버럭 외쳤다. 그러나 로트렐리는 별안간 우투그루의 멱살을 잡은 채 키이엘로와 도멤에게 소리쳤다.
“뛰어내려!”
그 말과 동시에 로트렐리는 난간을 밟고 허공으로 몸을 날리고 있었고, 우투그루는 멱살이 잡힌 채 딸려갔다. 그에 사방에서 놀란 비명이 울렸다.
다음 순간, 반사적으로 똑같이 난간 밖으로 몸을 날린 키이엘로와 도멤이 아차 한 얼굴을 했다.
“앗, 무심코…….”
“나 왜 뛰었지?!”
“왜 내 멱살을―”
그들이 무어라 말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푸른 바다가 빛을 반짝반짝 산란하며 그들을 기다려왔다는 듯 가까워졌다. 여객선의 건현